(음악)
인생극장. 달려오는 사람들. 롯데삼강 제공입니다.
김남 극본. 달려오는 사람들. 이규상 연출. 열여섯 번째.
(음악)
(문 여닫는 소리 및 발자국 소리)
- 혼자 있군.
- 네, 앉으십쇼. 회장님.
- 음... 안색이 안 좋은 거 같은데.
- 별 지장 없습니다. 몸은 아직 건강하니까요.
- 이거 웬 그림이지? 며칠 전엔 없던 거 같은데.
- 네, 좀 아는 사람이 개인전을 했기 때문에.
- 그래? 솜씨가 괜찮군. 이름이 누구지?
- 아직 안 알려진 사람입니다.
- 장래가 유망하군. 어때? 이 그림이 마음에 드나?
- 네.
- 하긴 자네도 학생 땐 그림을 좀 했었다니까, 하하하하.
- 오늘 다른 일 없으십니까?
- 나 지금 누굴 좀 만나고 오는 길이야.
- 누군데요?
- 우리나라의 경제전문가,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 서 사장.
- 네.
- 자넨 학구적인 편이니까 대개 잘 알 거야. 오늘 한국경제의 추세에 대해서
설명과 토론을 좀 벌렸는데 말이야.
- 새삼 다시 설명을 듣기에는 늦었지 않습니까?
- 서 사장은 지금 뭘 기다리고 있나?
- 네?
- 행운이나 기적인가?
- 회장님.
- 들어보게, 내 얘기. 내 얘기가 아니고 그 전문가의 얘기야. 월남 붐에 편승해서 몇 개의
재벌이 탄생했으나 지금 남아 있는 건 2개 정도야. 2개가 남은 대신 50여 개가 도산했어.
- 그러니 어쨌단 말입니까?
- 중동 붐에 편승해서 우리 기업도 탄생했지만 그 붐은 이미 시들었어. 버섯은 고목과
장마가 있어야 성장을 하는데 장마는 그치고 고목도 다 말라버렸단 말이야.
- 그 전문가가 그러던가요?
- 현실을 직시하자 그 말이야. 우리 서진이 도산의 위기에 있다는 걸 애써 부인하려 들지 말어.
- 시인하는 건 아직 빠릅니다. 난 좀 더 최선을 다해보고 싶을 뿐입니다.
- 아니야, 자넨 지금 좌절하고 있어.
- 좌절이 아닙니다. 고통하고 있을 뿐입니다.
-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네.
- 뭡니까?
- 짓고 있는 공장과 철강회사를 매각하게.
- 철강회사를 팔아넘기라고요? 그게 없으면 서진은 뭐가 남는단 말입니까?!
그 공장은 제 필생의 사업이었습니다!
- 그 공장을 시작하면서 우린 근본적으로 위기를 맞이했잖아? 아깝지만 야심을 축소하잔 말이야.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 안 됩니다. 안 돼요!
(음악)
(차 멈추는 소리 및 차 문 여닫는 소리)
(발자국 소리 및 쇠 문 여닫는 소리)
- 어머!
- 안녕하십니까?
- 아, 어서 오세요.
- 사장님 심부름 왔습니다. 어제 지시를 받았는데 못 오고 하루 늦었습니다.
- 네, 와주셔서 고마워요.
- 저 이건 작품료라고 하시던데요.
- 아이, 고맙습니다.
(봉투 열어보는 소리)
- 어머, 너무 많은데.
- 그리고 이건 그냥 사장님의 선물인데요. 어... 아, 여기 진열대 위에 놓으면 좋겠군요.
- 뭔데요? 어... 어머나...! 이뻐요.
- 인형세틉니다. 우리 회사 수출품이에요.
- 사장님이 보내주셨어요?
- 네, 실례가 많았다고 전해주시라던데요?
- 하하, 정말 고마워요.
- 저한테 그러진 마십쇼, 허허.
- 아이, 괜찮아요. 전해주실 거 아니에요? 저 그런데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사장님 방이 넓은 편인가요?
- 사장실 말입니까?
- 네, 회사.
- 상당히 넓은 편이죠. 음... 이 화실보단 조금 적으려나? 아니, 클 거 같은데요?
- 어머나!
- 왜 그러십니까?
- 제 그림을 사장님께서 사주셨거든요? 8호짜리 소품인데 바다그림 말이에요.
- 그래요?
- 아이, 방이 그렇게 크다면 그 그림은 안 돼요. 너무 빈약하거든요.
- 그럼 어떡합니까? 그림을 키울 수도 없는 것인데.
- 아니에요, 방법이 있어요. 그 방에 걸어놓을 만한 크기로 바다그림을 다시 만들어서 드릴게요.
- 그러실 수도 있습니까?
- 그럴 수 있죠, 뭐. 제 그림을 좋아하시는 분에게 좀 더 좋은 걸 보내드리고 싶어요.
- 그럼 지금 가져갈 만한 게 있습니까?
- 음, 아니에요. 제가요. 다시 바닷가로 가서 그려야 해요. 그렇지만 며칠 안 걸릴 거예요.
- 그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아, 네. 안녕히 가세요.
(음악)
(문 여닫는 소리)
- 어서 오세요, 사모님.
- 사장님 계셔?
- 네. 연락드릴까요? 혼자 계시는데.
- 필요 없어. 회장님은?
- 외출하셨어요?
- 외출?
(전화벨 소리)
- 네, 사장님.
- (전화 음성)공장에 갈 테니까 차를 대기시키도록.
- 네, 알겠습니다. 저, 그리고 사모님이 오셨습니다.
- (전화 음성)뭐?
- 아, 관두라니깐.
(문 여닫는 소리)
- 여보. 나 좀 봅시다.
- 그래요.
(발자국 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 두 분이 왜 저러시지?
- 글쎄, 좀 이상하시네요?
(발자국 소리)
- 음, 앉으시오.
- 바빠요. 가봐야겠어요.
- 앉아!
- 왜 그래요?!
- 당신 회사 출입을 삼가 해.
- 뭐라구요?! 왜요? 여기가 제 금지구역인가요?
- 당신이 들락거릴 때 몇 사람이 당신을 보게 될지 생각해봤어?
- 알아요, 그런 식으로 훈계하려들지 말아요. 난 당신에게가 아니라
아버님한테 용건이 있단 말이에요.
- 용건이 있으면 전화를 쓰든지 집에서 만나.
- 그런 것까지 참견하지 말아요. 난 엄연히 이 회사 이사예요.
- 그래! 이사님! 그래서 당연히 고개를 똑바로 들고 모두의 인사를 받으면서
당당히 들어오고 싶단 말이지?!
- 그런 일까지 간섭받고 싶지 않아요. 내 할 일을 당신한테 설명할 수도 없구요.
- 당신 또 그때 그 부동산 브로커를 만나는 건 아니겠지?
- 신경 쓰지 말란 말이에요! 안 만나요!
- 이거 봐! 당신은 당신 혼자로서 이사가 아니야?! 내가 사장이니까 당신은 이사란 말이야!!
그걸 똑똑히 알고 있어! 직원들이 당신 귓등에 대고 뭐라고 할지 그것을 생각해보란 말이야!!
- 태평스럽고 도덕군자 같은 말씀 말아요!! 더 얘기하기도 싫어요!!
(발자국 소리 및 세게 문 여닫는 소리)
(음악)
(문 여닫는 소리)
- 언니, 비가 오네요.
- 비?
- 종일 날이 이상하더니 비가 오려고 했나 봐요. 아... 비가 오니까 화실이 쓸쓸하네요.
학생들도 오지 않고.
- 음... 그래. 이런 날 바다에 가면 아름답겠지?
- 왜요?
- 비오는 바다를 한 번 그려보고 싶어.
- 지금 다녀오세요, 그럼.
- 지금?
- 스케치만 해오죠, 뭐.
- 아, 그럴까?
- 저때 거기로 가실 거죠?
- 그래.
- 그럼 다녀오세요.
- 청승맞다고 그러지 않을까? 비가 오는데 여자 혼자서.
- 아하하, 언니가 언제 그런 거 따지셨어요? 개울가에서도 캔버스 받혀놓고
닷새간이나 살으셨으면서.
- 아이, 그래. 그런데 이런 날은 처음이잖아?!
- 언니, 어째서 비오는 바다를 그리려고 하세요?
- 글쎄, 나도 몰라.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랐어.
- 왜요?
- 응, 그냥 갑자기.
(음악)
박웅, 유민석, 김정미, 이기전, 안경진, 양미학, 유해무, 전기병.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이원섭. 주제가 작사 작곡 서유석.
노래 서유석, 김형균과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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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인생극장. 김남 극본. 달려오는 사람들. 이규상 연출. 열여섯 번째로 롯데삼강 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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