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인생극장. 달려오는 사람들. 롯데삼강 제공입니다.
김남 극본. 이규상 연출. 달려오는 사람들. 열한 번째.
(음악)
(시계종 울리는 소리 및 전화벨 소리)
- 아... 네.
- (전화 음성)어, 난데 서 사장 들어왔니?
- 아... 안 들어왔어요.
- (전화 음성)11시 반 아니냐, 통금시간 다 됐잖아.
- 모르겠어요.
- (전화 음성)그럼 어디 연락해볼 데도 없어?
- 그 사람 회사 직원들 집엔 안 갔을 거 아니에요?! 회사 행사장에서
피해 나가버린 사람인데. 그러면 알아볼 데가 없어요.
- (전화 음성)없다니, 무슨 말이야?
- 집을 찾아갈 만한 사람이 없단 말이에요! 친구가 없는 사람이잖아요!
- (전화 음성)친척들 집에.
- 그런데도 갈 만한 데가 없어요.
- (전화 음성)그럼 말야, 이거 혹시 무슨 사고가 생긴 거 아닐까?
- 사고는 무슨 사고예요! 그 사람이 어린앤가요?!
- (전화 음성)글쎄, 그렇긴 하지마는 꽤나 알려진 사람인데 밤늦게 혼자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걸 본다면 말야.
- 이름은 다소 알려졌어도 얼굴까진 유명인이 아니에요. 자기가 뭐 탤런튼가요?!
걱정 말고 들어가세요. 저도 자겠어요.
(전화기 내려놓는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 뭐예요?
- 목욕 준비 해놨는데요.
- 필요 없어요.
- 그럼 애를 데려올까요?
- 오늘밤은 아줌마가 좀 데리고 자요.
(음악)
- 여기 잘 오시는 집이에요?
- 아니, 처음인데.
- 오늘 기분이 좀 안 좋으신가 봐요.
- 아니야, 아니야. 숙녀한테서 저녁을 대접 받았으니 답례를 하는 게 예의 아니오?
- 으으흥, 과분해요. 저녁식사 한 끼뿐인데 이런 나이트클럽에까지. 여긴 생각보다 분위기가
훨씬 좋아요.
- 흠, 그렇군요.
- 그런데, 사장님.
- 네?
- 본래 술을 좋아하시나 봐요.
- 왜요?
- 오늘 저녁 술을 여러 잔 드셨어요.
- 흠, 그랬습니까. 음, 그렇지만 취하진 않았으니까 염려 마시오.
- 어머, 아.
- 왜 그러세요?
- 시간이 벌써...
- 가야 할 시간입니까?
- 네, 너무 늦었어요.
- 미스 오.
- 네?
- 겁이 많은 편인가요?
- 겁? 으흠, 아니요.
- 그렇다면 앉으시오.
- 왜요?
- 사장 따위 그런 인식으로 날 보지 말아요.
- 뭘... 바라세요?
- 우리가 오늘밤 이 자리에서 밤새워 얘기하는 것.
- 무슨 얘기요?
- 사람과 사람의 얘기.
- 사람들의 얘기를 좀 들읍시다.
- 안 돼요. 전 가겠어요. 사장님.
- 흠, 가시겠다면 미안합니다. 쓸데없는 얘기를 너무 많이 지껄여서.
- 사장님은 여기 그대로 계실 거예요?
- 어차피 집에는 가고 싶지 않은 밤이니까. 자, 더 늦기 전에 어서.
- 네, 사장님. 그럼 안녕히.
- 오늘 저녁 고마웠습니다. 또 만날 수 있기 바랍니다.
(발자국 소리)
- 미스 오.
- 어머, 어머, 이 기자님. 아니, 여기서.
- 네, 누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누군데요?
- 서 사장.
- 어머, 뒤를 밟았군요.
- 네, 줄곧.
- 어디서부터요?
- 회사 기념파티가 열리고 있었는데 서 사장은 참석치 않고 몰래 혼자 빠져 나갔습니다.
- 그래요? 왜요?
- 글쎄요, 그건 개인의 문제니까.
- 용건이 있으신가 본데 왜 그럼 안 만나세요?
- 혼자 되길 기다렸는데 줄곧 두 분이어서요.
- 흐흠, 감시당하고 있는 줄은 몰랐어요.
- 감시요? 으흐하하하하, 이런 감시는 처음입니다.
- 지금 가셔서 만나세요. 이 클럽은 철야영업인가 봐요.
- 국내 제1급의 호텔이니까. 서 사장은 그럼 오늘밤 여기 있겠답니까?
- 네.
- 그렇다면 내가 가봤자 한마디의 얘기도 안 할 거예요.
- 왜요?
- 지금 저 사람, 자기의 세계를 만들고 있는 것 같은데. 오늘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말이에요.
그 세계에 다른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 회사에... 무슨 일이 있어요?
- 느끼지 못하셨나요?
- 아, 그런 얘기는 전혀...
- 쓸쓸해 보이는군요.
- 누가요?
- 저기 저 어둠 속에 혼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 젊은 사업가.
- 아이, 왜 그렇게 절 보세요?
- 저 사람이 사장이었고 나는 기자라는 위치 때문에 그동안 뭔가 적대감도 사실 가졌었지만
지금 저 곁으로 갈 용기가 안 납니다. 미스 오.
- 네.
- 저 사람 곁으로 가서 얘기상대나 해주세요. 결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 왜 그런 부탁을 하세요?
- 가끔씩 인간은 그런 도움이 필요한 법입니다.
- 아...
(음악)
- 사장님.
- 어? 미스 오! 안 돌아갔군.
- 아, 네.
- 난 고등학교 땐 화가가 되려 한 적 있었소.
- 알고 있어요.
- 대학은 물리과를 나왔는데 교수가 되려 했었단 말입니다.
- 그런데요?
- 서태진, 이 바보 같은 자식! 대학을 졸업하면서 난 욕망의 늪으로 빠지기 시작했소.
미스 오, 내 얘기 들어요?
- 네. 들어요.
- 성공한 사장, 젊은 파이어니어, 무서운 젊은 아이, 으흐흐흐흐... 새로운 물결, 기적의 드라마.
(술 따르는 소리)
- 사장님, 술 더 드시면 저 갈 거예요.
- 음, 그럼 술 더 안 들 테니 내 옆에 앉아 있겠소.
- 네.
- 성공이란 용어 좋아합니까?
-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 왜?
- 성공은 실패와 같은 회전축이에요. 그런 분명한 궤도에는 끼기 싫어요.
- 그럼 우리 바다 얘기, 그림 얘기나 할까요? 미스 오, 난 4년 동안 한 번도 취해본 일이 없는데...
아하, 오늘은 취했군요.
- 더 취하시면 안 돼요.
- 그래... 더 취하면 안 되지. 그랬다간 내 가슴속에 고이고 엉긴 이 더러운 추억들이 모두
쏟아져 나올 테니까.
- 제 어린 시절 얘기를 해드릴게요. 중학교 때 얘기 말이에요. 전 바닷가에서 자랐지만
수영은 못해요. 그래서 바다를 보기만 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파도 소리 및 갈매기 우는 소리)
(음악)
(문 여닫는 소리)
- 어머나, 사모님. 여기서 뭘 하세요? 혼자.
- 상관 말아요. 들어가요.
- 아유, 안 주무셨나 보군요. 지금이라도 좀 주무세요. 곧 날이 샐 건데.
사장님... 여태 안 들어오셨나... 봐요.
- 들어가라는데 왜 그렇게 잔말이 많아요!!
- 네, 그럼.
(문 여닫는 소리)
- 아...
(음악)
(발자국 소리)
- 아...
- 아하
- 음하하,
- 아하하하하하, 피곤하시죠?
- 아, 약간.
- 이젠 헤어져야죠?
- 그래야죠? 하룻밤 좀 어디로 도망했다고 해서 내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
- 흐흐흐흥, 밤새면서 그렇게 얘기해본 건 처음이에요. 아하하.
- 제가 실수나 안 했는지.
- 영국 신사처럼 너무나 완벽하셨어요. 으흥.
- 새벽이 오는 거리, 하하하, 좋군요.
- 사장님.
- 네.
- 용기를 잃지 말고 난관을 이겨 나가세요. 믿어요.
- 고맙소.
- 아, 그럼, 안녕히.
(음악)
(광고)
(음악)
인생극장. 인생극장. 김남 극본. 달려오는 사람들. 이규상 연출. 열한 번째로 롯데삼강 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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