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인생극장. 달려오는 사람들. 롯데삼강 제공입니다.
(광고)
김남 극본. 이규상 연출. 달려오는 사람들. 일곱 번째.
(음악)
- 어서 오세요.
- 네, 가만 있자... 그런데 오 선생은 아직 안 나오셨나?
- 저, 여깄어요.
- 아, 안녕하십니까?
- 어머나, 이 기자님.
- 오, 하하하. 성을 다 기억해주시고 고맙습니다. 영광인데요?
- 그렇게 미련한 머리는 아니에요.
- 미련해가지고 그림이 됩니까? 컴퓨터보다도 더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이 있어야 될 건데.
- 공치사하지 마세요. 오늘도 한가하시네요?
- 하하, 그렇게 보이십니까?
- 음, 한가한 장소에서만 봬니까요.
- 아니, 이 치열한 예술의 세계가 한가한 겁니까?
- 치열한 건 저 혼자의 문제예요.
- 으흠, 너 같은 구경꾼이 뭘 아느냐.
- 아하하하, 그런 건 아니에요. 보아하니 그림을 사시려고 온 것도 안 같구요.
- 네, 미리 말씀 드리자면 그렇습니다.
- 또 그렇다고 해서 진심으로 그림을 보려고 온 것도 안 같아요.
- 완전히 머릿속을 까뒤집고 보시는군요.
- 하하하, 기분 나빠 하지 마세요. 그게 더 마음 편하고 좋아요.
- 아, 나도 언제 이런 데 와서 빨간 딱지를 하나씩 부쳐보나...
- 아이, 모두 사려고 오는 사람들만 있으면 이런 작품전 할 필요도 없죠, 뭐. 안 그래요?
- 말씀의 장단이 또 바뀌는군요. 아하하하하하.
- 하하하하하.
- 아, 아, 이 화분 참 좋다. 누가 보냈나? 서진그룹 사장 서영진? 아니, 서 사장이.
- 왜 놀라세요?
- 여기 그 사람 왔다갔나요?
- 아니요, 사람 편에 그냥 보내왔어요.
- 그날 우물쭈물하시더니 사실은 잘 아는 사이였군요.
- 아유, 몰라요.
- 거짓말 마세요.
- 아, 정말이에요. 한 번밖에 본 일이 없어요.
- 그런데 이렇게 큰 화분을?
- 그분 그림을 좋아하나 보죠?
- 좋아하다마다요. 사실은 고등학교 때 그 친구 미술반이었습니다.
- 그래요?
- 엉뚱하게 빗나갔지만 고등학교 때 화가가 되겠다고 한 적도 있으니까요. 근데 두 분 사이가 좀 이상한데?
(음악)
- 어서 오세요, 사모님.
- 사장님 계셔?
- 아니요, 중앙청에 가셨어요.
- 오, 회장님은?
- 계세요.
(문 여닫는 소리)
- 사모님이 요즘 회사 출근을 너무 자주하시는데?
- 그런 것 같애요.
- 그런 것 같다니? 그게 무슨 표현이야, 하루도 안 거르고 어쩔 땐 하루에도 두세 번씩인데.
- 일이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에요?
- 물론 그렇겠지, 그렇지만 말야. 부인이 저렇게 자주 내왕하는 거.
- 보기에 안 좋아요?
- 글쎄... 보기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까?
- 아, 엄연히 우리 회사 이사의 한 사람 아니에요?
- 그거야 개인 회사는 어디 안 그런 데 있나? 할머니도 이사고, 돌 지난 애도 이사고, 다 그럴걸.
- 아하하, 월급쟁이가 그런 데 신경쓰지 마세요.
- 나도 내 회사니까. 그런데 여자가 저렇게 설치고 다니는 회사치고-.
- 뭐예요?
- 잘되는 데 못 봤어.
(음악)
- 그래? 그 친구가 그런 소릴 했어?
- 그 경리 상무 바꿔치울 수 없어요?
- 음, 무슨 명목으로... 일개 평사원도 아닌데 명목이 있어야 하지 않니.
- 너무 비협조적이잖아요. 지까짓 게 뭔데...
- 서 사장과 이 회사 창립동지 아니냐?
- 그러니까 건방져서 틀렸단 말이에요. 창립동지건 뭐건 지금 고용인 아니에요?
- 이 회산 틀려먹은 자들이 우글우글하다.
- 왜 그걸 가만두는 거예요?!
- 서 사장이 우유부단한 탓이지. 나이 어린 탓에 매정하지 못하고 말하자면, 아직 인간적이란 말야.
경영주는 인간적이 있는 반면, 그와 똑같이 비정한 면이 있어야 돼.
- 아버지가 경리 상무를 불러 직접 지시해주세요.
- 난 안 돼.
- 왜요? 회장이 뭐하는 자린데요?
- 그런 말 하지 않는 자리야. 난 애초부터 대내문제는 노터치하기로 약정이 돼있잖니.
- 그럼 그냥 알고만 계시겠단 말이에요?!
- 그래, 그건 여차하면은 책임이 뒤따르는 문제 아니냐. 책임 있는 일은 서 사장이 해야 돼.
- 아버지는 그럼 파티나 다니고 손님접대만 하시겠단 말이에요?!
- 안 그러면 말야, 회사 경영을 통채로 넘겨주든지.
(음악)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 및 발자국 소리)
- 정 상무님.
- 오, 이 기자.
- 여전히 바쁘시군.
- 이놈의 경리 담당은 말야 결재서류가 하루 오백 장이야. 이해 하겠어?
- 뭐가 그리 많나?
- 돈 들어오고 나가는 게 몽땅 여기서 빠지거든.
- 잘 돌아가는군.
- 뭐가?
- 밖에선 이러쿵저러쿵 소리가 많지만 들어와보면 열심히 일들 하고 있으니 말야.
- 회사가 다 그렇고 그런 거지. 사장은 만나 봤나?
- 없어. 어디 갔나?
- 공장 쪽일걸?
- 공장엔 뭐하러 날마다 쫓아가지? 그 공장 때문에 회사가 이 야단 아닌가?
- 왜?
- 너무 힘에 부치는 걸 착공했어. 사운을 걸고 시작했는데 돈줄이 잘 안 풀리니
공장 건설은 지지부진이고 또 공장이 완공되야 회사가 숨통이 터질 건데 말야.
- 예측을 못했나?
- 계산 상으로는 오케이였지.
- 현실을 알 수가 있나. 국내 경제, 국제 경제는 예측을 못했어.
- 그래서 비관적이란 말인가?
- 허덕허덕하는 판인데 뭐 어떻게 되겠지.
- 전망 있군.
- 아, 맨손으로 시작했는데 맨손이야 안 남겠어?
(음악)
(문 소리)
- 아, 이제 오세요? 늦으셨군요.
- 일찍 들어왔소?
- 저도 온 지 얼마 안 돼요.
- 당신도 무척 바쁘군.
- 어디서 오세요?
- 공장에서.
- 지금까지요? 당신... 어디서 술 하셨어요?
- 공장 인부들이 술을 한잔씩 하더군.
- 아니, 그래서 거기 어울려서 막걸리를 한잔씩 하셨단 말이에요?
- 그렇소.
- 아, 당신 다됐군요. 그런 체통머리 없는 사장이 어딨어요?!
- 왜, 잘못한 건가?
- 체면과 품위가 있어야 하잖아요?!
- 체면, 체통?! 하... 여보. 호텔에서 글라스에 위스키를 담아 마셔야만 체면인가?
당신도 당장 내일 공장에 한번 나가봐. 그 사람이 어떻게 땀을 흘리고 어떻게 일을 해나가는지.
가서 똑똑히 한 번 보란 말야!
- 뭐예요? 당신 지금 취하셨어요? 하아, 그럼 당신이 직접 기름장갑을 끼고 며칠 일해보시지 그러세요?
- 그래, 내가 조금만 더 기분이 안정된다면 그러고 싶소.
- 기업경영은 그런 게 아니에요. 책을 좀 읽어보세요.
- 관둬요. 그런 것으로 다투고 싶지 않느니까.
- 아... 속상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에요. 좀 건드리지 말아요.
- 그러지, 피곤해. 가서 자야겠어. 애긴 자나?
- 그래요.
- 애기 잘 키워.
- 무슨 말씀이에요?
- 건강하고 착하게 잘 기르란 말야.
- 걱정 마세요.
- 이제 보니 당신, 옷도 안 갈아입고 술까지 한잔 하셨군. 얼굴 색깔이 붉은 걸 보니까.
- 모임이 있었어요.
- 그래서 마셨나? 호텔에서.
- 네, 왜요? 그게 나빠요?
- 좋지.
- 비꼬지 마세요. 난 당신의 아내로서 사회생활을 하는 거예요.
- 내 아내로서?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렇다면 고맙소.
- 아, 자겠어요.
- 이봐.
- 애한테 술냄새를 풍기지 마라. 애 옆에 가지 말란 말야! 당신한테선 향수냄새밖에 나는 게 없어.
당신한테선 엄마냄새가 나지 않는단 말야!
(음악)
박웅, 유민석, 김정미, 오세홍, 이기전, 김환진, 안경진, 양미학, 전기병.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이원섭. 주제가 작사 작곡 서유석.
노래 서유석, 김형균과 메아리.
(광고)
(음악)
인생극장. 김남 극본. 달려오는 사람들. 이규상 연출, 일곱 번째로 롯데삼강 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