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 극본. 이규상 연출. 달려오는 사람들. 세 번째.
(음악)
(차 소리 및 발자국 소리)
- 가만 있자...
- 저, 여보세요.
- 네.
- 서진실업 비서실이 몇 층이에요?
- 비서실이요?
- 네.
- 저도 거기 갑니다만, 아, 안내판이 있군. 어, 5층인데요?
- 고맙습니다.
- 어, 엘리베이터는 이쪽입니다.
- 아, 네.
(발자국 소리)
- 실례지만 누굴 만나러 가십니까?
- 사장님이요.
- 사장?
- 서진실업 직원 아니세요?
- 아닙니다. 사장을 잘 아십니까?
- 아니요.
- 시간 약속이 있으세요?
- 아니에요.
- 그럼 만나시기 힘들 건데...
- 아, 돌려줄 게 있어요.
- 뭔데요? 아, 실례했습니다.
- 으흠, 꼬치꼬치 캐묻기 좋아하는 직업이신가 보군요?
- 아하하하하하하.
(음악)
(발자국 소리)
- 여깁니다. 상무님.
- 어?
- 신문사에서 손님 오셨는데요.
- 어?! 아니, 자네.
- 오랜만일세요.
- 아, 이 사람. 취재 왔군. 그동안 한 번도 소식 없더니.
- 왜? 오면 안 되는 곳인가. 대 서진그룹의 대 상무님.
- 아하하하, 동창생들끼리 그따위 소린 그만두고 앉게.
- 음.
- 날 만나러 온 건 아닐 텐데.
- 그래, 사장을 만날 셈인데 자네한테서 예비지식을 좀 얻을 셈이야.
- 쓰려고 하는 기사의 제목은 뭔가?
- 그냥, 경제계의 최근 동향?
- 하하하하하하.
- 사장은 지금 계신가?
- 나한테 보고하고서 외출 하는 사람 아니잖아.
- 오늘은 못 만날 각오 하고 왔지. 대그룹의 총수를 나 같은 말단기자가 함부로 만날 수 있나?
- 이봐.
- 응?
- 졸업 후로 사장을 가끔 만나 본 일 있나?
- 없어.
- 사실 이제 말이지만 졸업 후 우리 몇 명이 오퍼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어.
- 그러기에 자네들은 한국 경제계의 풍운아들 아닌가?
- 그때가 오히려 더 좋았는데.
- 지금은 어때서?
- 똑같은 맨주먹 친구들이었는데 지금은-.
- 한 사람은 사장님, 자네는 상무. 그런 식이란 말인가?
- 아아, 관두고. 사장은 지금 없는데 부사장한테 가지. 인사시켜주지.
(음악)
(문 여닫는 소리)
- 어디서 오셨어요?
- 네, 사장님을 좀 뵈러 왔는데요. 잠깐이면 돼요.
- 안 계세요.
- 언제 들어오세요?
- 글쎄요. 만날 약속을 하셨나요?
- 아, 아니요. 그런 건 아니지만.
- 지금 계시지도 않지만요. 그러시면 곤란해요. 스케줄이 없으면은 만나실 수가 없어요.
- 네, 그런 것쯤은 잘 압니다만 대수로운 용건이 아니어서요.
- 그러시면 용건만 말씀해주세요.
- 그 사장님 차 운전하시는 분도 안 계시죠?
- 네, 사장님 모시고 나갔어요.
- 아, 그럼 이걸- 사장님께 전해주세요.
- 봉투 속에 무슨 편지예요?
- 아니요. 이걸 전해주시구요. 어제 폐를 끼쳤던 사람이라면 아실 거예요.
-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 말씀해도 모르실 거예요.
- 그렇지만...
- 아무 이상이 없으니까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전해주세요.
- 네, 그러죠.
- 아, 참. 저, 그러고 사장님 운전기사를 어떻게 하면 만나죠?
- 용건이 사장님이에요? 운전기사예요?
- 아하, 미안합니다만 두 쪽 다예요.
- 내용을 밝힐 순 없나요?
- 말하고 싶지 않아요. 공연히 소문만 날 일이거든요. 하찮은 일인데.
- 운전기사를 연락 하시려면요. 오후 늦게 전화해보세요. 비서실 아니면 차량부에요.
- 네, 고맙습니다.
- 안녕히 가세요.
(문 여닫는 소리)
- 미스 김. 그건 뭐지?
- 글쎄, 뭐가 들어 있는 봉툰데.
- 오호, 묘하게 호감이 가는 여잔걸.
- 사장님한테 소개해달라고 그러시죠?
(음악)
(발자국 소리)
- 아이, 부사장과 벌써 얘기가 다 끝났어?
- 오래 얘기할 사람이 못되잖아.
- 아하하하하, 감 잡았군.
- 아하, 난 말야. 사실 사장과 자네들과 동창이라는 것 때문에 핸디캡이 많아.
- 알만 해. 그럴 수 있겠지.
- 비록 자네들과 한 팀도 아니고 다른 세계에 있을망정 약간의 동질감은 갖고 있잖아.
- 고맙네.
- 내가 여기 온 건 사실 기사취재도 있지만 오랜만에 동창도 한번 만나보려는 기대감에서였는데.
- 그래, 자네 기분 알아. 우리도 동기동창한테서 출세하니까 거만해졌다는 얘기 많이 듣지. 내 머리 좀 봐.
- 길었군.
- 이발소에 안 가본 지 6개월째야. 이해하겠나?
- 어렵군.
- 부사장, 그 사람 자네 얕잡아보더군. 그랬어?
- 관료 출신이라 풋내기 기자를 많이 다뤄본 솜씨였어.
- 뭔가 얘기해줄 줄 알았는데.
- 없어. 자신만만, 야망, 사장 칭찬. 그런 것뿐이더군. 뭘 숨기는 것 같아. 기념행사 자랑만 늘어놓고.
- 우리 회사의 문제인물이야.
- 또 한 분 있지? 회장.
- 또 한 분 있지. 사장 부인.
- 말썽트리오로군., 으흐흐흐흐.
- 장인이고 사회경력도 풍부하다고 해서 명예회장으로 추대했는데.
- 소문 안 좋아. 움직이는 외국제 덩어리로 알려졌잖아. 양말에서부터 머리 기름까지.
- 오, 그런 정도는 약과야?
- 부사장도 그런가?
- 글쎄 자네한테는 말하기 곤란하군.
- 부인은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예쁘게 생겼잖아.
- 오퍼상 시절에 만나 결혼했는데 갑자기 남편이 재벌그룹 총수가 되니까 말야-.
- 통속적으로 변했군.
- 가장 변하기 쉬운 스타일이야.
- 이봐, 그런데 사장은 어디 갔나?
- 돈 빌리러.
- 어디?
- 차관교섭인데 직접 나섰어.
- 그게 실패하면 어떻게 되나?
- 하아... 나도 몰라.
(음악)
(문 여닫는 소리)
- 어서 오세요, 사모님.
- 계셔?
- 사장님은 외출중이신데요.
- 회장님은?
- 계세요.
(발자국 소리 및 문 두드리는 소리)
(문 여닫는 소리)
- 오, 어서 와라. 어디서 오는 길이냐?
- 여성단체만 일곱 군데 가입했잖아요.
- 비서를 하나 데리고 다니는 게 어떠냐?
- 서 사장이 반대해요.
- 그 친구 제대로 사장 노릇하려면은 좀 더 커져야겠어.
- 요즘 부쩍 신경질 투성이에요.
- 이제 겨우 서른둘인데 대그룹을 맡아 해나가자니 벅차겠지. 그런데도 나한텐
전혀 경영권에 개입을 안 시키니 말이야. 욕심이 과도한 편이야.
- 저, 아버지?
- 뭐냐?
- 서 사장과 상의를 했는데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아요. 좀 도와주세요.
- 뭔데?
- 회사가 요즘 심상치 않죠?
- 그건 극비야.
- 알아요. 그래서 만약을 대비해야겠어요.
- 무슨 뜻이야?
- 부동산 전문가 한 사람을 포섭해놨어요. 경리 상무를 좀 불러주세요.
- 경리 상무? 니 계획은 알겠는데...
- 그 사람 머리가 괜찮아요?
- 머리야 우리나라 최고 수준이지.
- 서둘러야겠어요. 그이와 토론을 벌일 시간은 이제 없어요.
- 좋다... 경리 상무 오라고 해.
(음악)
박웅, 유민석, 김정미, 오세홍, 이기전, 김환진, 안경진, 신성호, 전기병.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이원섭. 주제가 작사 작곡 서유석.
노래 서유석, 김형균과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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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인생극장. 김남 극본. 달려오는 사람들. 이규상 연출, 세 번째로 고려야구, 롯데삼강 공동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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