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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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인생극장 거리마다 낯선 얼굴
제30화 - 내가 왜 잊어야 돼? 누굴 위해서.
제30화
내가 왜 잊어야 돼? 누굴 위해서.
1979.12.30 방송
인생극장 거리마다 낯선 얼굴는 1979년 12월 1일부터 1979년 12월 31일까지 제31화에 걸쳐 방송되었다.
인생극장 거리마다 낯선얼굴

고려야구 제공입니다.

『 언제인가 우리가 처음 만난 밤은. 쓸쓸한 겨울 거리에 눈 송이 처럼 흩어지는 낯선 얼굴.

밀려오는 그리움이여. 지난 가을 당신은 낙엽을 태우는 불꽃이더니, 이제는 한줄기 바람되어 흘러가는가.

사랑을 그 누가 아프다 하리. 우리 마음 깊은 숲속에서 길고 긴 어두움을 흐느끼는 겨울 바람이여.』

김경란 극본 이규상 연출 서른번째.



- 오빠, 어디가?

- 쉿! 조용히 해.

- 아유, 어디가.

- 서울에.

- 아줌마가 찾으시면 어떻하려고. 서울엔 또 뭐하러 가. 또?

- 나 가야 돼.

- 아줌마가 깨어나면 뭐라 그래.

- 바다에 갔다고 그래.

(파도소리)

- 지훈씨, 제발 돌아가.

- 갈께.

- 내가 나빴어. 사랑하는 일 만큼 사랑받는 일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몰랐어.

- 흐흐흐. 후회하니?

- 아니.

- 간다.

- 안녕.

- 아니, 그건 다시 만날때 쓰기로 하자.

- 잊어줘, 부탁이야.

- 누굴 위해서.

- 지훈씨를.

- 후후후. 아니겠지.

(발소리)

- 널 위해서겠지.

- 지훈씨.

- 감추지 마. 감출거 없어.

- 그래. 나를 위해서.

- 좀 더 확실히 표현해 줄까? 너의 철저한 사랑을 위해서. 언제까지 있을거니. 또 온다.

- 하아.

(차 타고 가는 소리)

(음악)

(문 여는 소리)

- 실례합니다.

- 누구세요?

- 혜수씨 있어요?

- 혜수씨? 아, 선생님.

- 어?

- 미스 윤을 찾나봐요.

- 그래? 그 쪽은 이 쪽으로 옮겨 놔요. 조심해요. 조심해요.

(물건 내려 놓는 소란스런 소리)

- 누군데? 미스 윤을 찾아요?

- 네.

- 여기 그만 뒀어요.

- 아, 예. 실례했습니다.

- 아, 아니에요. 혹시 찾거들랑 여기 한번 들리라고 전해주세요.

- 네. 그러죠.

(음악)

(문 여는 소리)

- 안녕하세요. 형.

- 누구시더라?

- 후후, 수미 있어요?

- 수미.

- 나 바뻐. 자꾸 부르지마.

- 후회 안할꺼지? 수미 없다고 돌려보낸다.

- 어?

(발소리)

- 어머, 영훈씨?

- 잘 있었어?

- 후훗. 영훈씨는?

- 흠.

- 마찬가지야. 가서 앉아.

- 어. 그래.

(발소리)

- 하아.

- 흠.

- 커피 마실테야?

- 한 잔 주겠어?

- 응. 물론. 기다려, 가져올게.

(음악)

- (사랑이란 참 부질 없는 거죠? 이렇게 먼 곳, 파도소리가 들리는 바닷가에 아끼는 사람과 함께 있는데, 하룻밤 못 잤다고 졸음이 쏟아져요. 내가 밉죠?)

- (미워보세요. 어디.)

- (두고 보는 거야. 내가 어떻게 사나. 어떻게 살아가나 두고 보는 거야!)

- 흠.

- 왜 그래 영훈씨?

- 음. 어?

- 마셔. 따뜻해. 얼굴이 창백하다.

- 흠. 수미야.

- 응?

- 넌 아니?

- 뭘?

- 혜수. 혜수 어디갔는지. 난 찾아야해.

- 영훈씨.

- 사실 그 말이 하고 싶었던게 아니야. 흠. 그래. 이렇게 묻고 싶었어. 넌 아니?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 몰라.

- 어디 가 있는지는 내가 알지. 알아. 난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거니.

- 나, 일어나.

- 앉아 있어. 수미. 너 밖에 없잖아.

- 나, 남자 약해지는거 보고 싶지 않아. 더구나 이젠 내가 참을 수 없어.

- 내가 깨어지는 걸 봐야해. 그리고 잊어.

- 그렇게 해결하는 거야? 두개의 사랑을 한꺼번에 그렇게 해결하려는 거야? 내가 단지 영훈씨 한테 사랑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렇게 철저하게 모욕받아야 돼? 왜!

- 수미. 우리들의 가슴의 창문을 봐. 그렇지. 한 사람밖엔 사랑할 수 없어.

- 내가 그렇게 부담스러웠어?

- 아니. 가슴아팠어.

- 흐흐. 그럼. 이것도 알아.

- 뭘?

- 잊으라고 해서 잊지는 않는다는 걸.

- 수미.

- 왜냐하면, 잊을 필요가 없으니까. 그만 두지 않아. 나는.

- 바보 같은 짓이야.

- 내가 왜 잊어야 돼? 누굴 위해서.

- 내 말을 듣는 거야.

- 후후. 지금 영훈씨는 나를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지? 아니야? 솔직하게 말해봐. 방해받고 싶지 않은거야.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야. 대체.

- 수미야. 내가 그랬잖아. 아프게 살지 말라고. 나쁜 것 곁으로 가지말라고 그랬지?

- 그랬어.

- 근데, 왜 아프게 살려고 그래. 바보같이.

- 몰라. 나도 사람이잖아. 남들 아프게 살듯. 그렇게 살아야지.

- 돌이킬수 있을거야.

- 싫어.

- 하아. 가겠어. 나.

- 또 와. 기다릴께.

- 안 온다.

(발소리)

- 영훈씨?

- 응.

- 술 마시러 와. 이 바보야.

(발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파도소리)

- 혜수씨.

- 왔어요.

- 뭐하고 있어요.

- 파도소리 듣고, 물새울 소리 듣고, 발자국 뒤돌아 걷고, 그리고 기다렸어요.

- 기다려서 온 거 아니에요.

- 알아요.

- 기다리지 말라고 왔어요.

- 알아요.

- 하지만, 가장 외롭군요. 이렇게 단 둘이 서 있으니까.

- 그렇죠? 세상은 그토록 멀고.

- 이럴땐,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아요.

- 서울에도 눈이 왔어요?

- 아니.

- 어젠 눈이 왔어요. 영훈씨 말대로 황홀한 나비처럼 팔랑이다가 휙 바다속으로 사라져 버리더군요. 많이 울었어요.

- 울었어요?

- 참으로 부질 없어서. 눈사람 처럼 서서 울었어요. 그래서 온몸이 젖어 버렸어요.

- 눈사람.

- 네.

- 눈사람이 되버리면 좋겠어요. 꽁꽁 얼어서 대문 밖에 세워져 한밤을 보내다가 따스한 햇살이 비추면 스르르 녹아버리는. 이젠 스르르 없어져 버릴때가 됐네요. 혜수씨를 만났으니.

- 하지만 우린 눈사람이 아닌걸요. 사라지지 못해요. 그러기엔 짐이 너무 많아요.

- 형에게 맞았어요. 바위처럼 강한 주먹이었어요. 가슴이 시퍼렇게 멍들었어요. 보여줘요?

- 아니요.

- 입에서 피도 나오고, 내 영혼까지 상쾌했어요. 그대로 흩어져 버렸을 정도로 때려주었으면 하고 바랬죠. 하아, 너무 가벼운 형량이에요. 너무나 가벼웠어요.

- 아니요. 그다지 가벼운 것은 아닐꺼에요. 사랑은 때로는 잔혹하니까.

- 형이 왔었어요?

- 네.

- 뭐라고 그래요.

- 끝이 없어요. 하, 하긴 우리가 숨을 쉬고 있는데, 무슨 끝이 있겠어요?

- 무섭지 않아요?

- 무서워요.

- 하아, 걸어요. 이대로 서 있다간 모래 속으로 빨려들겠어요.

- 그래요.

- 수미를 만났어요.

- 수미?

- 잊으라고 말했어요. 하하하. 근데 그게 제일 나쁜 말인 모양이에요.

- 가슴 아팠어요?

- 네.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혜수와 나의 사랑을 위해서 너무 많은 댓가를 치뤘구나.

(갈매기 소리 및 파도소리)

(음악)

김보연, 유민석, 박 일, 오세홍, 안경진, 정경애, 양미향, 전기병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이원석

인생극장 김경란 극본 거리마다 낯선 얼굴 이규상 연출 서른번째로 고려야구 제공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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