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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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인생극장 거리마다 낯선 얼굴
제26화 - 당신을 버려요. 난.
제26화
당신을 버려요. 난.
1979.12.26 방송
인생극장 거리마다 낯선 얼굴는 1979년 12월 1일부터 1979년 12월 31일까지 제31화에 걸쳐 방송되었다.
인생극장 거리마다 낯선얼굴

고려야구 제공입니다.

『 언제인가 우리가 처음 만난 밤은. 쓸쓸한 겨울 거리에 눈 송이 처럼 흩어지는 낯선 얼굴.

밀려오는 그리움이여. 지난 가을 당신은 낙엽을 태우는 불꽃이더니, 이제는 한줄기 바람되어 흘러가는가.

사랑을 그 누가 아프다 하리. 우리 마음 깊은 숲속에서 길고 긴 어두움을 흐느끼는 겨울 바람이여.』

김경란 극본 이규상 연출 스물 여섯번째.


(음악)

- 아이, 그런 얼굴이 아닌줄 알았어.

- 어떤 얼굴.

- 어느 때 보다도 어두워. 난 밝은 얼굴이 돼 있을 줄 알았어.

- 밝은 얼굴?

- 음. 포기한 사람 다운. 조금 메마른 얼굴 말이야.

- 포기하지 않았어. 아무것도.

- 영훈씨. 무슨 일 있었어?

- 없었어.

- 없었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아.

- 마치 큰 일을 저지르고 말 것 같은 얼굴이야. 아이, 거둬 치울 수 없어? 그런 축축한 얼굴은.

- 하아. 넌 참 잘 아는 구나.

- 영훈씨에 대해선. 하긴, 내 육감은 늘 틀리긴 하지만.

- 나도 틀리기 바래.

- 마치 내 온몸이 촉각으로 된거 같애. 지겨워. 이 끈적거리는 예감들이. 떠날테야?

- 응. 수미에게선 떠나야 겠어.

- 왜?

- 다치고 싶지 않아. 곱게 살아. 수미는.

- 어떤 여자를 만나든 영훈씨는 그렇게 얘기할 거야.

- 나 갈께.

- 영훈씨.

- 응.

- 아직 끝난게 아니야?

- 끝이있니? 우리들에게. 사람들에게. 하아, 그건 없는 거야.

(음악)

(벨소리)

- 누구세요?

- 나.

- 어머.

(수화기 내려 놓는 소리)

- 누구냐?

- 그 사람이에요.

- 누구?

(문 여닫는 소리)

- 안녕하세요.

- 아니, 그래. 어떻게 왔니.

- 귀가죠. 밤이 되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까. 올라겠습니다.

- 하아.

(문 여는 소리)

- 누구에요. 어머니.

- 걔가 돌아왔다.

- 영훈이요?

- 그래, 나 들어가겠다. 아버진 또 늦으시는 구나.

- 흠.

(음악)

(문 여는 소리)

- 들어왔니? 다시 원점인가? 흐흐흐.

- 웃지 말아요.

- 이럴땐 웃음이 자연스럽지.

- 소름끼치고 알겠어?

- 난 누구의 웃음이든 웃음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

- 누구의 울음이든 그것도 웃음으로 받아들이듯이.

- 네 울음은 네가 책임져. 울음소리 들어달라고 투정 부릴거 없어.

- 투정? 하아, 그래. 당신은 운이 좋은 놈인건 틀림이 없어. 우리 어머니가 사셨으니까. 후후, 이런 얘기 그만두기로 하지.

- 아버진, 인천에 가셨어.

- 기다려요. 조금. 조급해 하지 말고.

- 좋아. 기다리지. 하지만 조건이 있어.

- 조건?

- 다신 여기 들어오지 마. 이건 분명히 해두는 거야.

- 흥정에 소질이 있군요. 그래요. 나가죠. 흠.

- 밤이 깊었어. 오늘은.

- 넌 우리 어머니가 사셨다고 안심하고 있지. 하지만 아니야. 그 때 어머닌 돌아가셨었어. 수십번, 수백번 씩 죽었었어. 그 괴로움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어?

- 그 대신 넌 우리집을.

- 그 대신이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야. 울음소리가 투정으로 들리는 네 귀 때문에.

(문 닫고 나가는 소리)

(음악)

(문 두드리는 소리)

- 누구세요?

- 나.

- 어머, 영훈씨.

(문 여는 소리)

- 밤이 늦었는데.

- 왜 여기 있어요.

- 기다렸어요. 여기 밖엔 연락이 닿을 데가 없잖아요.

- 내가 왜 왔는 줄 알아요?

- 쉬러 오기를 바랬어요. 앉아요. 차 끓일게.

- 아니.

- 어머.

- 당신을 버리러 왔어요. 내가 떠나는 게 아니라, 버릴거에요.

- 난 보내지도 않고, 버려지지도 않아요.

- 그런 소릴 하는 여자는 불행해지기 쉬워요.

- 상관 없어요. 불행하는 거.

- 뭔가 단념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끊어 버린다는 거, 언제나 마지막 실을 한 가닥 갖고 싶어 하죠. 사람들은. 희망.

- 그걸 가져요. 우리.

- 아니요. 난 끊어야 해요. 당신에 대한 나의 희망.

(발소리)

- 벗어요.

- 영훈씨.

- 벗어요.

- 벗을께요.

(음악)

- 혜수.

- 여긴 좀 추운거 같아요.

- 헉헉. 어쩌면은 거절이었는 지도 몰라. 난 그저 혜수를 갖고 싶었는지도 몰라. 당신은 알아?

- 알아요.

- 하지만은 좀 더 참을 수 있지 않았을까. 당신의 행복을 위해.

- 행복에 매달려 본 적이 없어.

- 왜 그렇게 쉽지? 말이?

- 어려운 말일 수록 쉽게 할 수 밖에 없어요. 아니면 어떻하겠어요.

- 난 문득 혜수를 사랑하지 않는 다는 생각이 들어.

- 나도 그래요.

- 그렇게 조금만 사랑한거 같지는 않아서.

- 나도. 그래.

- 이제. 변명 그만 두겠어. 지금 내겐 혜수 뿐이야. 누워요.

(음악)

(전화벨 소리)

(전화기 떨어뜨리는 소리)

- 헉헉.

(전화하는 소리)

(전화기 내려 놓는 소리)

- 어머니. 나 잠깐, 잠깐 다녀오겠어요.

(문 여닫는 소리와 발소리)

- 헉헉. 혜수.

- 하아, 응?

(음악)

- 가요.

- 가요.

- 당신을 버려요. 난.

- 가세요. 영훈씬 갈 수는 있어도 버리지는 못해요.

- 옷 입어요. 추워요. 춥게 살지 말아요. 따뜻하게 살아요.

- 영훈씨. 차라리 엉엉 울어요. 그렇게 괴로워 하지 말고.

- 가요.

(발소리)

- 영훈씨. 난 알아요.

(문 여닫는 소리)

- 나는 알아요. 사랑은 여자가 지켜야 한다는 것을. 당신들이 헛된 야심과 고통과 방황속에서 흔들릴 때에도 반딧불 처럼 차갑게 반짝이며 사랑은 여자가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을

(문 여닫는 소리)

(발소리)

- 혜수. 뭘 하고 있어. 도대체. 그런 모습을 하고서.

- 꽃을 꽂고 있어.

(음악)

인생극장 김경란 극본 거리마다 낯선 얼굴 이규상 연출

스물 여섯번째로 고려야구 제공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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