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극장 거리마다 낯선얼굴
고려야구 제공입니다.
『 언제인가 우리가 처음 만난 밤은. 쓸쓸한 겨울 거리에 눈송이 처럼 흩어지는 낯선 얼굴. 밀려오는
그리움이여. 지난 가을 당신은 낙엽을 태우는 불꽃이더니, 이제는 한줄기 바람되어 흘러가는가.
사랑을 그 누가 아프다 하리. 우리마음 깊은 숲속에서 길고 긴 어두움을 흐느끼는 겨울 바람이여.』
김경란 극본 이규상 연출 열 일곱번째.
- 손님이 왔는데, 이렇게 세워두기야?
- 흠. 너무 늦었다.
- 흥. 이럴 땐 예절 따지는 구나.
- 하아, 들어오랄 것도 없고. 나가지.
- 엄만 어떠셔?
- 하, 괜찮아. 자. 가자.
(부스럭 거리는 소리)
- 아이, 참. 이거.
- 응? 뭐니 이게.
- 잣죽이랑 통조림이야. 그냥 사왔어.
- 선희야, 갔다 둬라.
- 으응. 고마워요.
- 아이, 아니에요.
- 나 나갔다 올게.
- 응. 오빠. 그럼 안녕히 가세요.
- 잘있어요. 놀러와요 우리집에.
- 네.
(문 여닫는 소리)
- 내가 찾아온 게 기분 나쁜 모양이야. 그래?
- 으응? 아니야.
- 솔직하게 얘기 해도 돼. 어차피 내가 솔직하게 행동하고 있으니까.
- 왜 왔어?
- 보고싶어서. 뭐 다른 이유라도 있을 것 같아서 묻는거야?
-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어서 물어보는 거야.
- 관 둬, 난 많이 비참해져 있으니까. 하아, 인천은 이상하게 낯설지 않은 동네야.
- 이리로 가.
- 응.
(발소리)
- 여관에서 자봤어?
- 응. 수학여행 가서. 경주 여관에서 잤었어. 흐흐.
- 흐흐. 혼자선 자진 않았겠구나.
- 응. 둘이서 잔 것도 아니고.
- 들어가자. 흐음.
(발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 방 있어요?
- 네. 따라오세요.
- 들어와. 빨리 빨리 행동해.
- 으응. 알았어.
(발소리)
- 이 방이에요. 숙박계 적어주시고요.
- 네. 흐음.
(문 닫는 소리)
- 어우, 왜 이렇게 간이 조마조마 하니. 들킬까봐 혼났어.
- 누구한테?
- 우리 오빠. 후훗.
- 흐흐. 수미, 참 귀여운 여자구나. 앉아.
- 흠.
- 괜찮겠어?
- 뭐가?
- 내일 아침에 내가 올테니까, 문 꼭 걸고 자.
- 영훈씨.
- 무서운 꿈 꾸지 말고.
- 가지마.
- 가야해.
- 가지마.
- 수미야.
- 그냥. 그냥 있으면 되잖아. 얘기 좀 해 우리. 우린 한 번도 둘이서 얘기해 본 적이 없잖아?
- 할 얘기가 없는거야 우린.
- 나는 있어. 그러니까 들어줘.
- 무슨 얘기?
- 그런 식으로 말하지마. 그런 식으로 날 밀어내지마. 들어주겠다고 약속해.
- 듣고 있잖아.
- 아니, 듣는 척 할 뿐이야. 영훈씬 귀를 닫고 있어. 나, 영훈씨가 좋아.
- 나도 수미가 좋아.
- 사랑해.
- 사랑하지마.
- 왜?
- 나쁜 놈이니까 난.
- 바보 같은 짓 하지마 영훈씨.
- 바보?
- 그래, 바보 같은 짓이야. 이젠 그만 둬.
- 너, 무슨 소릴 하는거야.
- 혜수언니.
- 혜수?
- 그래. 그들을 내버려둬. 그들은 어울리는 사람들이야. 혜수언닌 지훈씨 같은 사람이 필요해.
- 하아, 내말 들어. 그만 둬.
- 다른 미움으로 다른 사랑을 방해하지마.
- 닥치지 못해.
- 고운 말씨를 쓰는구나.
- 네가 뭘 알아. 뭘 알아.
- 그래. 난 아무것도 몰라. 하지만.
- 하지만.
- 영훈씨. 제발.
- 하아, 흐흐. 자라. 흠. 나 간다.
- 영훈씨. 이렇게 그냥 가면 어떻게. 얘기 끝내고 가. 나 못 견딜꺼야.
- 비참해 하지마. 괜찮아. 어쩌면은 수미말이 맞을지도 모르니까.
- 그게 아니야. 난 영훈씨와 함께 있고 싶어.
- 수미야. 넌 예쁜 여자야. 귀여워. 그래서 난 지금 참고 있어. 네가 얼마나 아프게 나를 모욕했는지. 넌
모를꺼야. 남잔 모욕감을 참기가 가장 힘들어.
- 지금 모욕감 얘기 하고 있는거야?
- 아니야, 더이상 우리 슬퍼지지 말자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 이럴수가 있어? 이럴수가 있는거야?
- 하아, 자라 이젠. 응?
- 어서 나가. 가.
- 흐음.
(문 여닫는 소리)
(음악)
- 지훈아.
- 네?
- 어떻게 된거냐?
- 아니, 뭐가요?
- 요즘 통 혜수 얘기가 없으니 말이다. 그 댁에 가봤니?
- 아니요.
- 그럼.
- 좀 미루기로 했어요.
- 아니, 왜?
- 하하. 어머니가 혜수. 마음에 안들어 하시잖아요.
- 그래서 미루기로 했니?
- 왜 혜수를 싫어하세요?
- 하아, 조건이 너무 나빠서 그렇다. 너도 좀 알겠니?
- 네?
- 네가 하도 걔한테 집착을 해서 내가 반대를 못했다만 너도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니?
- 글쎄요. 뭐 그런건 아니에요.
- 내가 외로워서 그런지, 마음이 심란해서 그런지 며느리는 내 맘에 드는 애였으면 좋겠구나.
- 하아, 어떤 여자면 마음에 꼭 드시겠어요?
- 후훗, 내가 골라보랴?
- 하하하. 어머니도.
- 어쩔 셈이냐? 준비를 해야 하는 거니?
- 아니에요. 일단 접어 두세요.
- 뭐?
- 제가 너무 성급했어요. 차차 해 나가겠어요.
(음악)
- 미스 윤, 여기 좀 봐줄테야?
- 네.
(발소리)
- 아, 잘 꽂으셨어요. 하하, 근데 제 2주지가 조금 키가 좀 낮죠? 아유, 잘 됐어요. 스케치 하세요.
- 호호호. 응.
- 어디 좀 볼까요?
- 아이, 못 꽂았어요.
- 괜찮아요. 아, 저 종지들을 다시 한번 구성해 봐요. 꼭 앞줄에 꽃송이가 키가 작아야 되는 건 아니에요.
이걸, 이렇게 꽂으면.. 하하. 조금 입체적으로 되죠?
- 아, 그렇구나. 하하.
- 그리고 꽃 얼굴이 앞을 보도록 유의하세요. 계속 꽂아봐요.
- 네.
(전화벨 소리)
- 네, 은화 입니다.
- 죄송합니다. 윤혜수씨를 부탁합니다.
- 네. 기다려요. 미스 윤.
- 네?
- 전화.
- 아, 네.
(발소리)
- 여보세요.
- 영훈이에요.
- 어디에요?
- 역 입니다.
- 서울에 왔어요?
- 네. 지금 가요. 인천으로 가겠어요.
- 가겠어요?
- 네. 갈께요.
- 여보세요. 잠깐. 왜.. 그냥 가요?
- 어제, 수미가 왔었어요. 인천에.
- 인천에?
- 네. 수미가 그래요. 다른 미움으로 다른 사랑을 방해하지 말라고요.
- 그런소리를.
-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믿을 수가 있어요. 혜수씨?
- 뭘 말이에요?
- 내가 지금 무서워 하고 있다는 걸 말입니다.
- 영훈씨.
- 무서워 하고 있어요.
- 그러지 말아요. 나 좀 만나요.
- 가겠어요. 하아. 그래요. 난 도대체 대책이 없는 놈이에요.
(전화 끊는 소리)
- 아니.
(수화기 내려 놓는 소리)
- 하아.
(음악)
김보연, 유민석, 박 일, 권희덕, 안경진, 정경애, 양미향, 전기병, 이효숙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이원석
인생극장 김경란 극본 거리마다 낯선 얼굴 이규상 연출
열 일곱번째로 고려야구 제공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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