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극장 거리마다 낯선얼굴
고려야구 제공입니다.
『 언제인가 우리가 처음 만난 밤은. 쓸쓸한 겨울 거리에 눈 송이 처럼 흩어지는 낯선 얼굴.
밀려오는 그리움이여. 지난 가을 당신은 낙엽을 태우는 불꽃이더니, 이제는 한줄기 바람되어 흘러가는가.
사랑을 그 누가 아프다 하리. 우리마음 깊은 숲속에서 길고 긴 어두움을 흐느끼는 겨울 바람이여.』
김경란 극본 이규상 연출 열여섯 번째.
- 미스 윤, 퇴근 안할 테야?
- 아니요. 조금 더 있겠어요.
- 그래? 차 한잔 같이 마시려고 했는데. 전시회 얘기도 구체적으로 할 겸 말이야.
- 아이, 어떠하죠? 전화를 기다리고 있어요.
- 미스터 서?
- 네.
- 왜. 무슨 일이 있어?
- 아니요.
- 근데, 오늘 종일 미스 윤 안색이 나빠. 신경이 예민해 진거 같고.
- 제가 좀 신경질이었죠? 최이사에게.
- 그래. 그 분 나이만 들었지. 어린애야. 너무 귀하게만 살아서. 흐흠. 미스 윤이 참아야 해.
- 죄송했어요.
- 아니야. 자, 그럼 갈께.
- 내일도 나오실 꺼죠?
- 그럼. 이젠 바빠. 본격적으로 작품을 구상해야지.
- 그럼 들어가세요.
- 응. 그럼 내일 봐.
(발 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 하아.
(책장 넘기는 소리)
-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 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 없이 괴로움 속에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 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다.
따르르릉 (전화벨소리)
- 여보세요?
- 나에요. 뭐하고 있어요?
- 기다렸어요. 그리고 시를 읽었어요.
- 하하. 무슨 시를 요?
- 후훗.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 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다.
하하. 어때요?
- 혼자에요?
- 네. 어머니는?
- 하하. 괜찮아요. 몇 해전에 수술을 했었는데, 그게 재발할 뻔 했대요.
- 어머머, 큰일 날 뻔 했군요.
- 이제 됐어요. 보고 싶어요.
- 나도요.
- 몇 일내에 올라가겠어요.
- 거기 있어요. 난, 만나고 싶지 않아요.
- 만나지 못하면은 볼 수 없어요.
- 끊어요.
- 혜수씨.
- 전화요금 많이 나가요. 하하.
- 후훗. 내일 가겠어요.
- 어머니 곁에 계세요.
- 가겠어요. 기다려요. 기다려요.
(전화 끊는 소리)
(음악)
- 아, 네 서지훈 입니다.
- 저, 수미에요. 아시겠어요?
- 어, 왠일이세요? 수미씨가?
- 하하하. 오늘은 제 술친구 좀 돼주시겠어요?
- 아하. 이거 대뜸 빚쟁이가 되는 군요. 아유~ 어제 이거 너무 마셔서 지금에야 일어났어요.
- 나오세요.
- 아. 네 그러죠.
(음악)
(문 여닫는 소리)
- 어서오세요.
- 수미씨 어딨어요?
- 네. 저. 저쪽 입니다.
- 아.
(발소리)
- 안녕하세요.
- 앉으세요.
- 으. 담배연기가 가득 찼군요.
- 담배 싫어하세요?
- 즐기진 않습니다. 연기가 싫어서요.
- 난 연기가 좋아서 피워요. 불 좀 켜줘요.
- 음.
(담배불 붙이는 소리)
- 왜 담배를 펴요? 여자 몸엔 치명적이라던데.
- 하아.
- 담배가 즐거워요?
- 고통스러워요.
- 아, 근데 왜 먹어요?
- 속이는 거죠.
- 흐음. 속인다?
-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담배라는 좀 견디기 쉬운 고통으로 바꾸어 버리는 거에요.
- 견딜 수 없는 고통이라?
- 영훈씨 집 약도 좀 그려줘요.
- 네?
- 여기 메모지 있어요. 볼펜 있지요? 그려주세요.
- 왜요?
- 대답해야 해요? 그래야 이해한다는 뜻은 아니겠죠?
- 종이 이리줘요.
- 여기.
(종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
- 흠.
- 고마워요.
- 아니요. 사람이란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하는 거죠.
(음악)
- 여기, 경주야.
(발소리)
- 얘, 니가 왠일로 전화를 다하니?
- 후훗,
- 응?
- 차 시켜.
- 응. 나 커피줘요. 몇 달만이니 이게.
- 미안해. 연락못해서
- 하긴, 나도 마찬가지지 뭐.
- 바빴지?
- 응. 졸업논문 때문에 애먹었어 얘.
- 졸업하면 뭐 할꺼야?
- 시험봐야지 뭐.
- 무슨?
- 순위고사.
- 결정했어? 교사되기로?
- 응. 근데, 아주 어려워졌어. 서울시험엔 모두들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 넌 될꺼야 그래도.
- 모르지. 나 어쩌면 지방으로 갈지도 몰라. 근데, 넌 어떻게 지내니? 지훈씨 잘 있고? 왜? 무슨일이 있어?
- 글쎄.
- 니네 결혼할 때 되지 않았니?
- 경주야.
- 응.
- 어떻게야 할지 모르겠어.
- 왜? 다른 여자 생겼어?
- 흐흐흐.
- 아이, 무슨 웃음이 그러니?
- 그럴수 있는 남자지? 지훈씨. 쉽게 다른 여자 사귈수 있겠지?
- 그렇겠지 뭐. 넌 안그러니?
- 헤어질꺼 같애.
- 뭐?
- 놀래는 척 하지마.
- 그래도. 넌 그럴수 없을 텐데. 이유가 뭐야?
- 이건 확실해. 사람은 사랑을 하면서 살아야 돼.
- 사랑하지 않니?
- 지훈씨와 있으면 사랑할 필요가 없어져. 그냥 그 사람 곁에 있으면 돼. 아주 상식적인 여자가 되어서.
- 이상한 논리구나.
- 지훈씨 옆에선 난 사랑을 중요하다고 생각치 않아. 그저 내 생활에 도구가 되어버려. 안락과 허영을 만족
시켜주는.
- 얘.
- 후훗. 사랑을 말이야 진흙더미에 올려 놓고 발로 짓밟는거 같애.
- 왜 그러니 너. 다 그렇게 살아 사람들.
- 모르겠어. 여하튼. 헤어져야겠어.
- 너, 다른 남자 생겼니?
- 뭐?
- 그러지 않고는 지훈씨를 벗어날 생각을 못해.
- 경주야, 내가 그런 여자야? 난 결국은 그 정도 밖에는 안되지?
- 맞아, 그래.
- 흠. 왜 사람이 이렇지? 왜 이렇게 유치하지?
- 어쨌든, 네가 괴로워 하는건 알겠는데 아마 안될꺼야.
- 뭐가?
- 내 생각엔 넌 지훈씨를 벗어날 수 없어.
(음악)
- 흠.
- 오빠 뭐해?
- 어, 미음 좀 끓인다.
- 아이, 오빤. 날 부르지 않고.
- 하하. 괜찮아 선희. 고생했다. 내일 부턴 회사에 나가.
- 응. 오빠. 이리나와 내가 끓일게.
- 어, 괜찮다니까.
- 아이, 이리 줘. 아유, 이게 뭐야? 계속 저어줘야 되는데.
- 하하. 아니, 탔니?
- 아니야. 오빠?
- 응?
- 서울에 가지마. 아줌마가 너무 쓸쓸해 하셔. 가게도 혼자선 힘드신거 같고, 저, 여기서 공부해서.
- 그만. 선희야.
(벨소리)
- 어? 누구지? 이 밤중에?
- 내가 나갈께.
(발소리)
- 누구세요? 흠.
(문 여닫는 소리)
- 아니, 수미.
(음악)
(음악)
김보연, 유민석, 박 일, 유근옥, 안경진, 정경애, 전기병,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이원석
인생극장 김경란 극본 거리마다 낯선 얼굴 이규상 연출
열여섯 번째로 고려야구 제공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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