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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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인생극장 거리마다 낯선 얼굴
제15화 - 그 사람. 여자를 잘 알아.
제15화
그 사람. 여자를 잘 알아.
1979.12.15 방송
인생극장 거리마다 낯선 얼굴는 1979년 12월 1일부터 1979년 12월 31일까지 제31화에 걸쳐 방송되었다.
인생극장 거리마다 낯선얼굴

고려야구 제공입니다.

『 언제인가 우리가 처음 만난 밤은. 쓸쓸한 겨울 거리에 눈 송이 처럼 흩어지는 낯선 얼굴.

밀려오는 그리움이여. 지난 가을 당신은 낙엽을 태우는 불꽃이더니, 이제는 한줄기 바람되어 흘러가는가.

사랑을 그 누가 아프다 하리. 우리 마음 깊은 숲속에서 길고 긴 어두움을 흐느끼는 겨울 바람이여.』

김경란 극본 이규상 연출 열 다섯번째.



(전화벨 소리)

- 여보세요?

- 나에요.

- 하아.

- 아직 있었어요?

- 네.

- 그냥 걸어봤어요. 너무 늦어서 없을 줄 알았어요.

- 어머니 어떠세요?

- 좀 나아지셨지만, 지나가는 병은 아닌거 같아요.

- 어떻게 아프신건데요?

- 내일 결과가 나올겁니다. 한 몇 일 여기에 있어야 할거 같아요. 저 수미에게 전해주겠어요?

- 그러죠.

- 하아. 이제 들어가요. 늦었어요.

- 알았어요. 어머니 잘 간호하세요.

- 몸 조심해요.

- 전화.. 또 주시겠어요?

- 내일.

- 안녕.

(전화기 내려 놓는 소리)

(음악)

(음악)

(문 여는 소리)

- 어머, 어머 언니. 어서오세요.

- 아직 있었네? 집으로 들어갔으면 어쩌나 걱정했어.

- 하하. 이제 들어가야지요. 노래 듣고 있었어요. 기분이 엉망진창이라서요.

- 좀 앉았다 가도 되지?

- 네. 차 마실까요?

- 아니야. 잠깐 앉아.

- 이렇게 늦게까지 안들어 갔어요?

- 전화가 왔었어.

- 전화?

- 영훈씨에게서. 몇 일 못나오겠대.

- 으응. 왜요?

- 어머니가 편찮으신 모양이야.

- 아, 그래요? 많이 아프신가?

- 잘 모르겠어. 어떻게, 일손이 모자라서.

- 아니에요. 그보다 영훈이 얼굴을 못봐서 섭섭하네요.

- 후훗.

- 후후후. 마음이 너무 목말라서 그런지. 실컷 보기라도 해야 견딜수 있을 거 같았거든요? 아 참.

지훈씨 왔다갔어요.

- 지훈씨가?

- 나보고 술친구 해달라고 그러더군요. 외로웠던 모양이에요. 괴로워 하고요. 발 밑이 흔들리는 거

같다고 자꾸 되뇌이더군요. 자신을 잃었다나요? 근데 이상해요.

- 뭐가?

- 술에 절어서 그렇게 횡설수설하니까 갑자기 매력적이었어요.

- 그 사람. 여자를 잘 알아.

- 하하하. 그런거 같았어요. 집안이 다 그런 모양이죠?

- 흠. 그런가봐.

- 아이, 우리 술이나 한 잔 들어요. 어차피 늦었으니까요.

- 그럴까?

- 가져올께요.

- 하아.

(사람들의 웅성거림)

- 이봐요. 여기 커피하나.

- 선불이에요.

- 아, 여깄어요.

- 아. 손님. 이리오세요. 손님 혼자세요?

- 네.

- 그럼 이쪽으로 합석하세요.

- 아유, 실례합니다.

- 아니에요. 여기, 커피 빨리 갔다줘요.

- 아, 저도요.

- 네.

(음악)

- 누굴 기다리세요?

- 아니요.

- 기다리는 자세인데요?

- 그래요? 전 다방에서 누굴 기다려 본 적이 없는 걸요.

- 여자친구도 말이에요? 후후, 그건 참 이상하군.

- 내가 늦으니까요.

- 하하하하하. 무슨 꽃 입니까?

- 이건 옥자마에요. 냄새가 아주 향기롭죠.

- 오, 어디.

- 자요. 어때요?

- 오, 정말 향기롭군요. 아름다운 여자의 살냄새 같은데요?

- 네?

- 아니, 왜요?

- 살냄새가 이렇다면 좀 끔찍할거에요.

- 왜요?

- 안고 있으려면 숨이 막힐 테니까요.

- 아하하하하. 그런가요? 이건요.

- 장미도 모르세요?

- 모를리가 있습니까?

- 근데, 왜 물어요?

- 자꾸 묻다보면 이런 질문에도 쉽게 대답할 수 있을 테니까요.

- 어떤 질문이요?

- 이 꽃의 이름은 뭐죠?

- 미안하지만 난 꽃이 아니에요.

- 내게는 꽃으로 보이는데요.

- 그렇다면 잘 못 보셨어요.

(발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 바쁘세요?

- 바빠요.

- 아, 저 잠깐만요.

- 왜 이러세요?

- 삼선교에서 76번 버스을 타고, 남대문에 내려서 꽃시장엘 갔죠? 꽃을 사들고 백화점엘 들어가서 지금

목에 두른 스카프를 사고, 힘이 들어서 다방에 들렀던 거죠?

- 어머.

- 하아. 두시간을 쫓아다녔어요. 그럼 한 5분 쯤 얘기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 무슨 얘기를 하시겠어요?

- 기다림의 얘기. 꽃을 든 그 모습이 기다리는 자세였다는 얘기.

- 난 아무것도 기다린게 없어요.

- 날 기다렸어요. 알겠습니까? 내 이름은 서지훈이에요.

- 윤혜수라고 해요.

- 하하하하하. 자, 갑시다. 우리 축배를 들어여지요.

- 축배요?

- 기다림의 끝을 위해서.

- 하하하. 틀렸어요. 기다림의 시작을 위해서에요.

- 아니, 사랑의 시작이죠.

- 그게 그거에요. 모르세요?

- 아하하하하.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음악)

- 언니?

- 으응? 아.

(잔에 물을 따르는 소리)

-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해요.

- 내가 참 어렸었다는 생각을 했어.

- 언제?

- 지훈씨를 처음 만날 때. 그는 나라는 여자의 속성을 파악했던 모양이야.

- 어떤 속성.

- 허영.

- 하아. 누구에게나 다 있는 거에요.

- 하지만 그게 전부는 다 아니었으니까.

- 헤어질꺼에요?

- 모르겠어.

- 지훈씬, 언니가 그걸 원하고 있다고 하던데.

- 내가 정말 헤어질수 있을까. 그에게 전념한 시간이 얼마나 많은데.

- 사랑했었나봐요.

- 그렇게 믿었었어. 너무 철저하게. 그리고 그걸 거둔다는게 내 양심에 걸려. 참 이상해. 사람들은

모두 쉽게 만나서 쉽게 사랑하고, 쉽게들 헤어지는데.

- 이제 와서 왜그래요? 그렇게 지나간 시간을 부담스러워 하면서.

- 가야겠어. 집이 멀거든.

- 언니.

- 수미. 영훈이 정말 사랑해?

- 네.

- 안녕.

- 같이 나가요. 나도 외투만 입으면 되요.

- 아니야. 혼자가고 싶어. 꽃 꽂으러 와. 언제든.

(문 여닫는 소리)

- 바람이 심하게 불어. 들려?

- 아니. 아무것도 혜수의 숨소리 외엔.

- 그렇게 커? 내 숨소리가?

- 으응.

- 후훗. 남자랑 한 방에서 단 둘이 있는 건 처음이거든. 당연한거지 뭐.

- 혜수.

- 응?

- 이렇게 해 봐. 눈 감아봐.

- 왜?

- 입술이 예뻐 보여서.

- 지훈씨 입술도.

- 가져도 되겠지?

- 글쎄. 난 잘 못할거 같애.

- 가만히 있으면 돼.

- 무서워.

- 괜찮아.

- 자신 있어?

- 바보같이. 하아.

- 지훈씨. 지훈씨.

- 응. 혜수.

- 사랑해요.

- 나도.

- 사랑해요.

(음악)

- 누구세요?

- 어머니. 저, 나에요. 지훈이에요.

(문 여닫는 소리)

- 늦었구나. 왠일이니.

- 어, 좀 마셨어요. 엄마, 올라가겠어요.

- 왜 그렇게 마셨어.

- 하하하. 글쎄 말이에요 엄마. 난 형편없는 놈인가봐요.

- 무슨소리냐?

- 형편없어요. 흐흐. 어째서 그렇죠? 하하하하. 너무 행복한 놈이라서 그런가 봐요. 엄마. 네? 하하하.

(음악)

김보연, 유민석, 박 일, 권희덕, 안경진, 이효숙,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이원석

인생극장 김경란 극본 거리마다 낯선 얼굴 이규상 연출

열 다섯번째로 고려야구 제공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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