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극장 거리마다 낯선얼굴
고려야구 제공입니다.
『 언제인가 우리가 처음 만난 밤은. 쓸쓸한 겨울 거리에 눈 송이 처럼 흩어지는 낯선 얼굴.
밀려오는 그리움이여. 지난 가을 당신은 낙엽을 태우는 불꽃이더니, 이제는 한줄기 바람되어 흘러가는가.
사랑을 그 누가 아프다 하리. 우리마음 깊은 숲속에서 길고 긴 어두움을 흐느끼는 겨울 바람이여.』
김경란 극본 이규상 연출 열한번째.
- 영옥아, 식사들 하시라고 해라.
- 네.
(발소리)
- 저 사모님, 그 사람은..
- 그 사람이라니?
- 이층에..
- 한 집에 있는 사람아니니?
- 네, 사모님. 어? 오빠 오세요?
- 어, 그래. 어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 어, 그래. 앉아라.
- 어이구, 이거 진수성찬인데요? 아유, 아버지 안녕히 주무셨어요?
- 어, 그래.
- 자, 드세요. 자, 어머니도 앉으세요.
- 어..음..
(음식 먹는 소리)
- 안녕히 주무셨어요?
- 앉아라. 영옥아? 어서 찌개 이리 갔다 놔라.
- 네.
- 음. 어험. 흠.
- 아버지. 의논해 보셨어요?
- 오냐.
- 어떻게 하시기로 하셨어요? 어머니.
- 내 다시 한번 그 얘를 만나보겠다. 집안 어른도 만나 뵙고. 다시 결정하기로 하자.
- 너무 서두르진 마라.
- 하하하. 고맙습니다. 엄마.
- 어서 밥이나 먹어라.
- 분명히 며느리는 잘 얻었다고 생각하실 거에요.
- 글쎄다.
- 글쎄 혜수는 잘 해낼 거에요. 뭐든지.
- 혜수?
- 어, 결혼 하기로 했어. 곧 직장을 그만두게 해야 겠어요. 꽃은 지금만 꽂아 두려고 해도 여기저기
바쁠 테니까요. 방마다 다 꽃을 꽂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하.
- 넌 걔 얘기만 나오면 말이 많아 진다. 나쁜 버릇이야. 영옥아 물 좀 다오.
- 잘 먹었습니다.
- 드시고 나오세요.
- 어? 왜 그렇게 식사를 조금 하세요?
- 어. 많이 먹었다.
- 아버지, 저 오늘 인천에 갑니다.
- 뭐.. 뭐라고?
- 가만히 계세요. 어쨌든 영훈이가 어머니 눈 앞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어머니가 잘 참고 계시지만
영훈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에 못이 박힐 거에요.
- 가서 뭐라 그럴테냐?
- 데려가라고요.
- 녀석은 누구의 말도 안 들을거야.
- 해보는 거죠. 저, 나가 보겠어요.
- 벌써 가니?
- 영훈이의 일터를 알아 두려고요.
- 인천엔 내가 가는게 낫겠다. 네가 이렇게 나설 일이 아니야.
- 안돼요. 아버지. 아버지는 일단 인천엔 발을 끊으셔야 합니다. 내게 맡겨 두세요.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 으흠...
(음악)
(음악)
- 어디 아파?
- 아니.
- 으음. 근데 오늘 얼굴이 그래?
- 하아. 왜?
- 창백해. 자, 마셔. 따뜻해 질꺼야.
- 하아, 고마워.
- 그 여자가 속 썩여?
- 그 여자?
- 어떤 여잘까? 상대를 알아야 싸우든지 이기든지 하지.
- 나 오늘 쉰다.
- 뭐?
- 나가봐야 겠어. 미안해.
- 영훈씨? 이봐?
(음악)
- 저 역시, 국화를 중심으로 해야 되겠죠?
- 어, 국화를 많이 사용하게 될 거야.
- 소재가 한정돼 있어서 조금 아쉬워요.
- 별 수 없지 뭐. 우리 꽃꽃이 회는 아직 시작이니까 남들이 안하는 계절에 해야 그래도 인상에 남을거야.
- 꽃 값이 비쌀텐데.. 괜찮겠어요?
- 우리 그이 돈 많아. 그거 하난 든든해. 호호호
- 좋으시겠어요. 선생님.
- 좋을거 같아?
- 네.
- 그럼 혜수도 시집가. 한창 나이에 가야지 한 번 늦으면 자꾸 늦어져.
- 데려갈 사람이 있어야죠.
- 아유~ 다 아는데 뭘 그래? 그 사람 괜찮던데?
(문 여는 소리)
- 누구세요? 어머..
- 나오세요. 잠깐.
- 누구야?
- 아. 아니에요. 잠깐 나갔다 올게요.
- 어. 그래..
(문 여닫는 소리)
- 무슨 일이에요?
- 외투 입고 나오세요.
- 왜요?
- 어서.
- 돌아가세요. 나 들어가야 겠어요.
- 아니, 잠깐.
- 어..
- 나오세요. 기다리고 있겠어요.
- 흐음.
(문 여닫는 소리)
- 선생님.
- 어.
- 시간 좀 주세요. 급한 일이 있어서요.
- 그래. 난 오늘 쭉 여기 있을테니까.
- 곧 돌아오겠어요.
- 아니야. 늦어지면 그냥 퇴근해.
- 감사합니다.
(음악)
- 춥지 않아요?
- 추워요.
- 조금만 걸으면은 찻집이 있어요. 소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간 촌스럽고 편한 찻집이죠.
- 여기는 어떻게 알아요?
- 후훗. 고등학교 때 친하던 친구놈이 여기서 인천으로 통학을 했어요.
- 이상하게 이런 소읍은 마음이 편해요. 이방인이라는 여유같은게 생기는 건지 옆에 있는 사람이
친숙하게 느껴지고..
- 후훗, 아무도 자기를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좀 더 자기다워 지는 거죠.
- 어쨌든 난 지금 추워서 그러는데 팔 좀 잡아도 될까요? 흠.. 걸을 땐 이게 훨씬 자연스러워요.
그리고 도대체 난 누구하고 걷든 혼자서는 못 걷겠어요. 팔이 허전해서요.
- 혜수씨?
-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말아요. 자, 빨리 걸어요. 어서 따뜻한 차를 마셨으면 좋겠어요.
(바람소리)
- 그와 결혼할 거에요?
- 그런 얘기 안하면 안될까요? 난 지금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단지 영훈씨와 함께 있는
일이 중요해요.
- 아! 여기에요. 먼저 올라가요.
- 정말 오래된 집인가봐요?
(발소리)
(음악)
- 어이. 안녕하세요? 유 선생님.
- 어머, 지훈씨? 왠일이야?
- 저.. 혜수 어디갔어요? 꽃 받으러? 아니 이렇게 추운날 그렇게 부려 먹기 입니까? 하하하.
- 아유~ 아니야. 누가 와서 함께 나갔는데?
- 아니, 누구요?
- 글쎄?
- 누굽니까? 친구에요?
- 난 잘 모르겠어요.
- 남자였어요?
- 응, 그랬던거 같아.
- 남자?
(발소리)
- 바람이 좀 잔잔해 졌어요.
- 이리 쭉 걸으면은 포도원이 나와요.
- 후훗. 포도가 주렁주렁 열릴 때 왔으면 좋았을 껄.
- 흐흐. 좋았겠어요?
- 어린애 같죠?
- 어린애 같으면 좋겠어요.
- 아.. 이 길로?
- 네.
- 아. 아늑한 동네에요. 봐요. 석양이 지고 있어요.
- 혜수씨.
- 응?
- 뭘 두려워 하고 있어요. 왜 끝없이 자신을 가두어 두려고 해요.
- 그럼 영훈씬, 우리의 상황이 괴롭지 않아요?
- 괴로워요. 하지만 난.. 그래요.
- 자꾸 이런 얘기 할꺼에요?
- 그래요. 그만 둬요. 손이 깃털처럼 부드럽군요.
- 후훗. 내 자랑은 그 것 뿐이에요.
- 흐흐흐. 저게 보이죠? 포도원.
- 와~ 나무가지가 하얘요. 눈이 온 거 처럼.
(음악)
『 사랑이란 은밀한 약속이어서 함께 걸으면 걷기에 아름다운 길이 나타나 석양이 질 시간엔
석양이지며, 그 끝에는 포도원이 나타나는가.
나의 사랑하는 자, 우리가 함께 봐서 동네 유숙한 장.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달려가
포도음이 돋았는지 꽃 술이 퍼졌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살펴보자.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 』
(음악)
인생극장 김경란 극본 거리마다 낯선 얼굴 이규상 연출 열한번째로 고려야구 제공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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