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극장 거리마다 낯선얼굴
고려야구 제공입니다.
언제인가 우리가 처음 만난 밤은. 쓸쓸한 겨울 거리에 눈 송이 처럼 흩어지는 낯선 얼굴.
밀려오는 그리움이여. 지난 가을 당신은 낙엽을 태우는 불꽃이더니, 이제는 한줄기 바람되어 흘러가는가.
사랑을 그 누가 아프다 하리. 우리마음 깊은 숲속에서 길고 긴 어두움을 흐느끼는 겨울 바람이여.
김경란 극본 이규상 연출 아홉번째.
(초인종소리)
누구세요?
나야 엄마.
(문 여는 소리)
어휴, 왜 이렇게 늦었니. 춥지?
아냐, 괜찮아.
(문 닫는 소리)
흐음. 저녁은?
먹었어요. 아버지 주무세요?
그래. 저.. 낮에 서군 다녀갔다. 만났니?
네.
무슨 일이 있었니? 몹시 초조하더라?
일은.. 주무세요. 엄마.
음..
(문 여닫는 소리)
하아..
(음악)
넌 지금 망각하고 있는거야. 결혼이라는 것의 본질을.
울었어요? 가 있어요. 내가 갈께요.
아무 이유나 보람없이 그 남자의 일이 자신의 몫이 된다는 것을 말이야.
눈이 내리는 군요. 싸락눈이.
왜 일까? 그 핵심을 혜수는 피하고 있어.
흐흐. 물이 없어야 생명이 지속되다니, 갈대란 참으로 아픈 것이군요. 우리의 영혼이 그래요. 아파야 기쁨을 느껴요.
결국은 사랑이 문제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어야 된다는 명분은 오직 사랑에만 있어.
꽃을 보면 생각이 나요. 모든 육신은 풀과 같고, 그의 열매는 풀의 꽃이다.
결국 혜수에겐 그 명분이 없어진 걸까?
난 너무 괴롭게 살아와서 이젠 고통이 호흡처럼 자연스러워요.
넌 나의 운명이야. 나는 너 없이 살수가 없어.
손을 이리 줘요. 손을 이리 줘요.
(음악)
지훈씨, 내겐 시간이 필요해.
서두르지마, 아주 조금만 완전히 나 혼자 있게 해 줘.
그럼 나는 어른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지금껏 내 어깨를 짓누르는 숫한 짐의 무게를 벗어 버릴지도 모르지.
어쩌면 사는 일이 단지 전혀 의미없는 많은 짐을 짓는 다는 것을 수긍하게 될련지도 모르고.
아니, 아니다. 오직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는 일이 인생의 전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될런지도 모른다.
(음악)
(문 여는 소리)
다녀올게 엄마.
으응. 그래. 일찍 들어오너라.
응.
(문 닫는 소리)
어머.
잘잤어?
왠일이야?
하하하. 눈이 와서.
눈? 오래 서 있었어?
아냐, 금방 왔어.
아잉. 바보 처럼 들어오지 않고, 귀가 빨간대 뭐.
자, 가자.
그래.
어젠 내가 격했어. 미안해.
아니야, 지훈씨. 그런 소리 하지마.
혜수도 어제 한 소리 같은건 이제 하지마.
그게 용건이야?
아니, 어.어! 택시!
(차 서고 가는 소리)
일이 바쁜가 오늘?
월요일 이니까.
절에 가야겠어.
그래?
아버지가 다녀오셨는데, 이혼하시겠다고 버티신다는 거야.
큰일이네.
위자료도 필요없다.
그럼?
지훈이를 갖겠다.
그래서?
해결의 실마리는 거기에 있는거야. 난 아버지와는 떨어질 생각이 없거든.
어머니와는 떨어질 수 있고?
어머닌, 나와는 떨어질 수 없어.
그렇게 설득하려고?
응.
같이 사시는게 좋아. 두 분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데.
반드시 함께 사셔야 돼. 아버지가 사랑한 분은 어머니니까.
후훗. 아닐지도 모르지. 그건 아무도 몰라.
무슨 뜻이야?
인천의 여자. 그 분을 사랑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는 뜻이야.
아니, 그건 실수야.
실수? 어떻게 20년의 세월을 실수라고 단정할 수 있어?
그럼, 어머니와의 20년을 허위라고 단정할 수 있다는 뜻이야?
그건 몰라. 그건 남자들의 속성의 일부니까. 하지만 실수라고 일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
실수야 그건.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실수여야 해. 우발적인 충동 말이야.
이상해 지훈씬. 왜 일을 그런식으로 경직시키는 거야? 왜 하나를 인정하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부정하는 거야? 그럼 영훈씬 사람도 아니란 뜻이야?
여..여.. 영.. 영훈이? 영훈이라고?
영훈씨도 인정해. 지훈씨와 똑같이 서현석씨 아들이야.
혜수.
더구나 그는 훨씬 불행해. 그렇지 않아?
흐음. 이.. 이상하군.
뭐가?
니가 영훈이라고 발음할 때, 심장이 쿵 하고 내려 앉았어.
흠.. 난 그저 얘기 했을 뿐이야.
그렇겠지. 그건 알아. 하지만 내가 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던 건 사실이야. 앞으로도 역시 그럴지도 모르고..
그건 나빠. 마치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그런 식으로 연결 시키지 마.
그렇게 연결 시킬 수 밖에 없어.
아무튼 무시하던 말던, 그 얘를 이해할 수 없는 건 사실이야.
왜?
술집에 나간데! 웨이터로 말이야. 으하하하하. 웃기는 녀석이야.
지훈씨. 그게 그렇게 우스워? 단지 우습기만 해?
사장 아들이 웨이터라는 건 확실히 웃기는 일이야. 너도 웃어도 돼! 하하하하.
지훈씨!
(차 서는 소리)
고마워. 가봐.
들어 갔다 가면 안될까?
월요일 아침엔 유 선생님이 나와. 미안해.
오케이~ 그럼 내일 보자.
(음악)
언니.
응?
더 이상 못 꽂겠어요. 그만 두겠어요.
어디 봐. 왜에? 잘 꽂았는데? 계속 해 봐.
아.. 아니요. 언니. 난 이런 꽃 같은거 꽂고 있을 시간 없어요. 마음의 여유도 없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화가 나요.
뭐가?
나 자신이.
왜?
바보 같아서 답답해요.
하핫. 무슨 문제가 있나봐?
네.
뭘까? 자, 여기를 봐. 세 개의 주지로 높이와 부피, 즉 하늘과 땅을 정한 뒤에 어~! 주지는 아주 잘 선택했어요. 선도 잘 고르고.
근데 왜 아름다워 보이지가 않을까? 이 삼각형의 공간을 너무 헤프게 사용했기 때문이야.
헤프게...
응. 여자도 헤프면 후훗. 매력이 없듯이 꽃꽃이도 그래. 공간을 좁게 설정하는 거야. 그래서 그 좁은 공간에 꽃을 꽂으면 결국 밀도가 높아지게
되는 거지. 말하자면 깊이야.
깊이?
응. 깊이. 사랑도 깊이가 있어야 하잖아? 사실 그래. 생활이나 연애 또는 질병, 절망 이런 것들에 부딪 칠 때도 깊어 질때로 깊어지면 문제는
저절로 해결이 돼. 우물도 깊어야 맑고 시원하잖아? 다시 말하면 철저해 지는 거야.
철저..
응. 피하면 안돼. 어떠한 문제든. 근데 수미 문제는 뭐야?
영훈이에요.
응?
영훈이. 후훗. 아무래도 사랑하게 될 거 같아요.
그래?
네. 근데, 그는 마치 벽 같아요. 팍팍 눈 앞을 막아버려요. 난 힘이 들어요. 근데 힘이 든다는 걸 표현 할 수 없어요. 그럼 어디론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거 같아. 하긴 연기처럼 왔으니까요.
자자. 이제 그만. 계속해봐요. 지금 수미의 문제는 꽃이니까.
네. 고마워요. 언니.
고맙긴.
언니한테 털어 놓으니깐 속이 풀려요.
아냐, 자. 계속해.
(음악)
김보연, 유민석, 박 일, 유명숙, 안경진,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이원석
인생극장 김경란 극본 거리마다 낯선 얼굴 이규상 연출 여섯번째로 고려야구 제공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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