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극장 거리마다 낯선얼굴
고려야구 제공입니다.
언제인가 우리가 처음 만난 밤은. 쓸쓸한 겨울 거리에 눈 송이 처럼 흩어지는 낯선 얼굴.
밀려오는 그리움이여. 지난 가을 당신은 낙엽을 태우는 불꽃이더니, 이제는 한줄기 바람되어 흘러가는가.
사랑을 그 누가 아프다 하리. 우리마음 깊은 숲속에서 길고 긴 어두움을 흐느끼는 겨울 바람이여.
김경란 극본 이규상 연출 일곱번째.
여보세요? 화원이죠? 여기 은화에요. 네. 어제 꽃을 주문했죠? 네. 좀 첨가 할게 있어서요.
똑똑똑(문 두드리는 소리)
잠깐요. 누구세요? 들어오세요. 문 열렸으니까요.
(문 여는 소리)
어어.. 앉으세요. 아. 네. 까치밥 다섯묶음, 자주대국 스무송이,노란 소국 다섯묶음, 네. 언제까지
갖다 주시겠어요? 될수 있으면 빨리 부탁합니다.
(전화기 내려놓는 소리)
앉아요.
흠..
무슨 일이에요?
지나다가 들렀어요. 큰 플라타너스가 있길래.
후훗. 날이 좀 풀리고 있죠?
눈이라도 올거 같아요.
차 마실래요?
아뇨. 곧 가봐야 합니다.
출근이 이른 모양이에요? 술집인데도.
내가 일찍 가는 겁니다.
왜요?
난 고집은 센 놈이지만은 철면피는 아니니까요. 그 집은 나를 질식시켜요.
나도 그래요. 그 집에 들어가면 마른 땅에 올라선 개구리 같아요.
후후.
난 그래서 그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죠. 영훈씬 나와 그게 달라요.
그런 집이 있어요. 단란한 가정이면서도 타인에게는 더 없이 불편한 집.
난 타인이 아니에요.
타인일 것이 좋을 뻔 했어요. 영훈씨를 위해서나 지훈씨를 위해서나..그리고.. 아. 인사가 늦었군요.
지훈씨는 잘 있어요?
아.. 저 갈대인가요?
후훗.. 억새에요. 갈대는 강변에서 높게 자라는 거고, 이건 토박한 땅에서 억세게 자라는 거죠.
아름답군요. 근데, 저렇게 벽에 걸려 있어도 됩니까?
네. 물속에 꽂아두면 오히려 썩어요. 꺾어서 저렇게 놓아두면 일년이고 이년이고 가요.
단지 어릴 때 꺾어야 돼요. 다 자라고 꺾으면 씨가 날아가 버리니까요.
어릴 때 상처는 오래가는 법이지요. 하아. 하지만 물을 안마셔야 오래간다는 건 생소하군요.
후훗. 가끔 그런 걸 느껴요. 식물에게 수분이 결여 된다는 보다 더 큰 고통은 없을거라는.
결국 억새는 고통으로 자신을 유지하고 있는거에요.
영혼은 그래요. 그 기쁨보단 고통이 기울어지고, 그것에서 더 강한 기쁨을 느끼죠.
난 고통이 두려워요. 술도 담배도 그래서 즐기지 못해요. 그건 일종의 고통을 길들이는 과정이거든요.
그것을 극복하면 예감하지 못하는 기쁨이 오는건가봐요? 하지만 늘 나는 고통이 두려워요.
사랑의 고통도 그렇습니까?
사랑의 고통?
그래서 형님과 지냈어요..
난 형님을 사랑해요.
하아. 빨리 말하지 마세요. 천천히 다시 한번 얘기 해봐요... 어설픈 것은 그게 무엇이든지 당신하고는
어울리지 않아요. 가겠습니다.
영훈씨!
네?
당신은 괴롭지 않으세요?
바람이 심해졌어요. 눈은 오지 않겠군요. 안녕히 계세요.
(음악)
아버지?
그래.
오늘 가시겠어요?
음. 지금 가려고 한다.
말씀 드릴게 있어요.
음. 듣자꾸나.
아.. 저 여기..
음.. 후.. 그래 무슨 말이냐.
녀석은 집을 나가지 않을 작정인가 봅니다.
음.
어머니를 어떻게 설득하시겠어요?
글쎄. 가봐서 의논을 해야지. 이번일은 내가 자꾸 약해지는구나.
그리고 아버지?
으응?
저 경솔한 놈 아니에요. 아시죠?
그럼.
결혼해야 겠습니다.
뭐?
전 부터 말씀 드렸던 여자말이에요. 윤혜수.
음. 그래?
결혼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알아요. 아버지. 하지만 아들의 결혼엔 어머니가 필요합니다. 그걸 아실거에요.
음.. 어머니가 봤다고 했지?
네.
어떻다든?
별로 내켜하시지는 않았지만, 애는 좋아요. 어머니도 곧 그걸 아시겠죠. 어쩜 벌써 느끼셨는지도
모르고요. 단지 집이 가난하고 대학중퇴한 걸 못마땅해 하시는 정도 였어요.
어쨌든 얘길 해보마. 넌 그애가 꼭 필요하니?
네.
조금 그런 감정을 숨겨라. 너무 노출되고 있어.
하하하. 그러게 말이에요.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흠. 알았다. 어쨌든 내가 그 애를 한번 보자. 오후에 회사로 연락해.
네. 알았습니다. 아 참. 아버지.
응?
영훈이가 말입니다.
그래.
술집에 나가는 모양이에요.
뭐..뭐라고?
놀라시는군요.
어.. 그래. 좀 놀랬구나. 지금 방에 있니?
아니요. 일찍 나갔습니다.
흠. 나 나가보마.
아버지.
왜...
그렇죠? 걔도 아버지에겐 나와 똑같은 아들이었군요.
지훈아.
나가보세요. 오후에 연락하겠습니다.
(음악)
어! 수미 와?
응.
(발소리)
뭐하는 거야. 손님왔는데 주문도 안받고.
아이~ 젠장 왜 이래 또? 안 그래도 손님 없어 신경질 나 죽겠는데..
춘식씨가 신경질 날게 뭐 있어?
영훈아 가봐라. 수미 심술났다. 그건 내가 못당하는 심술이니까.
어. 왔어?
맥주 두 병, 안주 하나. 담배 한갑.
알았어.
자.
앉아.
바빠. 양파 껍질 벗겨야 해.
누가 그런거 하라 그랬어?
주방장이 도와달래.
하지마.
왜?
싫어. 불! 후.. 영훈씨도 펴.
괜찮아... 수미.
응?
나 여기 있게 하고 싶니?
응.
그럼 끈적거리지 마.
뭐라고?
네 괴로움은 네가 혼자 해결해.
하아. 어쩜 그런 소릴 해.
어리광 부리지 말라는 소리야. 아픈거야 누구나 다 아픈거니까.
영훈씨.
후훗. 양파껍질 벗기러 가야해. 그게 영훈이야. 자꾸 꿈꾸지 말아.
너. 나한테 한번 죽을 줄 알아. 가만 안 놔둘거야.
후후. 그게 훨씬 보기에 좋군. 음악이나 틀어.
(음악)
어! 여기야.
기다렸어? 많이?
아니, 왜 장갑도 안끼고 다녀?
하하. 잃어버렸어. 하나 사야지.
하핫. 내가 사줄께.
무슨 일이야? 집안 일은 잘 되어 가고?
그저 그래. 영훈이가 술집에 나가는 모양이야. 그 놈이 동생이긴 한 모양이야.
뭐 드시겠어요?
음.. 커피? 으응.. 커피 둘.
네.
오늘 아버지 만나기로 했어.
그래?
예쁘게 보여야 해. 저번 처럼 대들지 말고.
뭐?
결혼 승낙을 받는거야.
지훈씨.
(음악)
김보연, 유민석, 박 일, 김계식, 오세홍, 안경진, 이효숙,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이원석
인생극장 김경란 극본 거리마다 낯선 얼굴 이규상 연출 일곱번째로 고려야구 제공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8.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