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극장 거리마다 낯선얼굴
고려야구 제공입니다.
언제인가 우리가 처음 만난 밤은. 쓸쓸한 겨울 거리에 눈 송이 처럼 흩어지는 낯선 얼굴.
밀려오는 그리움이여. 지난 가을 당신은 낙엽을 태우는 불꽃이더니, 이제는 한줄기 바람되어 흘러가는가.
사랑을 그 누가 아프다 하리. 우리마음 깊은 숲속에서 길고 긴 어두움을 흐느끼는 겨울 바람이여.
김경란 극본 이규상 연출 여섯번째.
(문 두드리는 소리)
누구세요?
나야.
기다려요.
어머, 왠일이야 추운데? 어서 들어와.
아. 혜수야 말로 왠일이야? 오늘 쉬는 날 아냐?
집에 갔었었구나?
응.
하하. 앉아. 차 마셔 우리. 물을 끓이고 있었어.
응.
생강차 마실테야? 커피?
어. 생강차 줘.
흐음. 절에 갔었어?
응.
집으로 돌아오셨어? 어머니?
아니.
그럼?
아버지가 오늘 가시기로 했어.
하아. 자 마셔.
흐음. 냄새가 좋군.
돌아오실 거 같애?
모르겠어. 돌아오시게 해야지.
얼굴이 안 좋아 보여. 잠 못잤어?
흐음... 어머닌 이혼하시고 싶어하셔. 사실, 완전히 모른다는 건 불가능 한거야. 서서히 지쳐가셨던거야.
그래서 사업에 몰두하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에게 불만을 품고, 계속 다른 여자를 만나고.
흐흐흐. 우습군. 20년 동안을 서로 속아주며 살아가다니. 내가 행복에 속았듯이 말이야.
아버지께서는 어떻게..?
철저한 분이시니까, 이혼 같은 치욕은 남기시지 않겠지.
그래. 좋게 해결될 수 있을거야.
내가 견디기가 힘들어. 어머니의 괴로움. 아버지의 위선과 허위를 말이야.
아버님을 미워해?
미워하느냐고? 아니.
그럼?
용서할 수 없을 뿐이야. 미워하진 않아. 미워할 수가 없어. 내 인생의 터전이야 아버지는.
그 터전이 오늘날의 서지훈의 터전이. 그런 허위에 자리잡았다는 것이 기분나쁠 뿐이야.
하아~ 어떻게 할테야?
극복해야지. 다시 원상복귀 시키는 거야.
그게 가능할까?
물론 어려울거야. 하지만 50이 가까이 되신 부모님들이 이혼하시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잖아?
그 분들이 내게 완전한 부모님이셨듯이. 나도 아들 역할을 완전히 해내겠어.
바로 그거야.
뭐가?
지훈씨의 심리. 그런 것이 바로 아버지의 허위와 통하는 거야.
뭐라고?
위선과 허위에 부딪치려 하지 않는 것. 고통을 피하고 안락이나 사회적인 체면과 재빨리 결탁해 버리
려는거 말이야. 너무 세련되서 싫어.
맞아. 난 그렇게 살아. 인생은 좀 더 생산적이어야 해. 쓸때 없는 아집이나..
아집이 아니라, 고통이야.
고통이라도 좋아. 그런 것에 흔들릴 필요는 없어.
그래서 자기나 자기 식구 이외는 그 누구도 고통스럽거나 불행해도 상관하지 않는거야.
혜수. 난 그렇지 않아. 지킬건 지켜, 견딜건 견디고. 왜 갑자기 그런 식으로 날 해석하려는 거야.
우리가 한 두달 사귄거야? 벌써 2년이 됐어. 우리가 만난지.
미안해.
2년동안 넌 나의 습기가 돼주었어. 그래. 난 조금은 메마른 놈이야. 하지만 네가 있어서 난 여유를
가지게 되었어. 이젠 혜수 없이는 이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어졌어.
아니야, 지훈씨는 강해.
네게는... 약해. 그럴수 밖에 없잖아. 결혼해 이젠.
결혼?
응. 오래 기다렸어. 그리고 말이야. 어쩌면 우리의 결혼이 우리집을 다시 결합시킬지도 몰라.
지훈씨.
(음악)
함박 두개 시키세요.
니가 시켜 임마. 왜 맨날 나를 거치니?
하아. 이봐요. 함박 두개만 하세요.
틀렸다.
에?
함박 둘! 이렇게 하면 되는거야. 그냥.
(전화벨 소리)
네. 가빈입니다.
어. 나야 수미.
어. 왠일이야?
가게에 뭐 필요한거 없어?
어~ 냅킨도 있어야 하고, 과일도 좀 있어야 겠는데?
응. 오케이~ 영훈씨 있어?
어. 왜?
바꿔줘.
기다려. 이봐 영훈이 전화.
누구에요?
수미.
네.
네 전화 바꿨어요.
나야, 잠깐 나와.
왜?
냅킨이랑 과일이 필요하대. 혼자 들고 올 수 없잖아?
알았어. 어디야?
가게 앞 공중전화.
응 알았어.
다녀오겠어요.
응. 빨리 와야 돼. 오늘 주인아저씨 나오시니까.
네.
(음악)
어~ 여기야.
후웃. 무슨 장난이야? 들어오지 않고.
하이 춥다. 우리 차나 한잔 마시고 가.
빨리 사가지고 오라던데?
괜히 딴청 부리지 마.
딴청?
영훈씨가 그런거 개입하는 남자 아니라는 걸 내가 알아. 그러니 우리 얘기 좀 해.
좋아.
후훗. 저기로 들어갈까?
(음악)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 영훈씨는.
수미는?
생각하는 거 별로 없어. 요샌 영훈씨 생각하면서 살아.
하아. 쓸때 없는 생각을 하고 있군.
아니, 처음으로 생각하는 재미를 느끼고 있는 걸? 생각을 고호르는 어떻게 말하는지 알아?
사랑이라고 해. 영훈씬 뭘 사랑하고 있어?
요즘은 별을 생각해. 흐흐. 다른 것은 생각하고 있지 않아.
그게 뭔데? 괴로운 거야?
응?
근데 왜 그렇게 괴로워 해? 흐음. 난 영훈씨 보면 가슴아파.
가자, 일어나자.
영훈씨.
나와. 먼저 나간다. 흠.
(개 짖는 소리)
들어가 자거라. 해리! 춥다.
(문 여는 소리)
잠깐 나 좀 보자.
늦었어요.
잠깐 와라. 술 한잔 하자.
흐음.
앉아라.
흐음.
(술 따르는 소리)
마셔라.
많이 마셨습니다.
그래? 하아. 한마디로 너에게 부탁하겠다. 돌아가 다오.
난.. 난 즐거워서 이러고 있는 줄 압니까?
그럼 왜 그러는 거야? 흠. 보다 바람직한 해결책이 있을거야. 우리에게 시간을 줘.
무척 애쓰시는 군요. 형님의 집안을 지키기 위해.
당연하지 그건.
그런 당연함으로 타인의 불행도 당연하게 생각합니까?
무엇보다도 중요한건 네 어머니가 네가 돌아오기를 원한다는 거야.
이건 어머니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 자신의 문제에요. 내 사진의 문제 입니다.
나의 출생과 아버지의 인생사이에.. 그러니까 우리 끼리 해결 짓는 겁니다.
어떻게.
난 아버지의 위선의 실체가 아닙니까? 이 집은 아마 그걸 보면서 살아야 할 겁니다.
그래서. 이미 다 들어난 위선을 어쩌자는 거야.
후훗. 그건 모르죠. 단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건. 아버지라는 명사가 내게 주어졌던 아픔입니다.
나의 성장은 그 출혈로 이루어 졌으니까요. 이젠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 날수가 없어요.
일어나겠습니다. 직업이란 피곤한 거군요.
직업?
네. 술을 나르지요.
뭐?
하하. 왜 어울리지 않습니까? 사생아와 웨이터. 술이 필요한 사람들이죠. 먹고 살려면 술을 날라야 하고,
숨을 쉬려면 술을 마셔야 하니까요. 으음.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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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극장 김경란 극본 거리마다 낯선 얼굴 이규상 연출
여섯번째로 고려야구 제공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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