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극장 거리마다 낯선얼굴
고려야구 제공입니다.
언제인가 우리가 처음 만난 밤은. 쓸쓸한 겨울 거리에 눈 송이 처럼 흩어지는 낯선 얼굴.
밀려오는 그리움이여. 지난 가을 당신은 낙엽을 태우는 불꽃이더니, 이제는 한줄기 바람되어 흘러가는가.
사랑을 그 누가 아프다 하리. 우리마음 깊은 숲속에서 길고 긴 어두움을 흐느끼는 겨울 바람이여.
김경란 극본 이규상 연출 네번째.
혜수?
응.
뭐하고 있어?
꽃을 꽂아.
가자.
지훈씨. 오늘은 혼자 가. 미안해.
혼자갈려면 난 어저께 가야 했어.
맞아. 너무 늦었어. 어머님 기다리실꺼야.
함께 갈려고 했던거야. 아직도 화가 안풀렸어?
화? 무슨 화?
우리 어머니 때문에 말이야.
아니야. 어머니 문제가 아니라, 나 때문에 그래. 시간이 필요해.
무슨 시간?
나를 정리하고 싶어.
정리?
응. 내일 연락할께.
혜수.
가봐.
너 참 독한 애로 구나.
지훈씨.
전에는 그렇지 않았어. 전엔 따뜻했어. 지금 난 네가 필요해.
그 어느때 보다 더 네가 내 옆에 있어줘야 해.
알아.
내가 괴롭다는거 알지? 내가 나의 괴로움을 표시하는 걸 싫어 하는 놈이라는 걸 알지.
알아.
그럼 내 말에 따라줘. 너마저 날 힘들게 하면 안되잖아.
하지만 지훈씨. 나는 지훈씨 말에 따라야 하는건지 아닌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어.
뭐라고?
시간이 필요해.
알았어. 간다.
미안해.
(발자국 소리)
난 이해 못하겠어. 네가 왜 그런 고민을 하는지.
(음악)
아유~ 이렇게 파리 날리다간 우리오빠 굶어 죽겠다. 음악 틀어주기도 싱거울 정도야.
나 커피한잔 줘.
오케.
방학동안 계속 이렇다면 곤란한데.
어. 내려왔어?
응. 판 고르기도 귀찮아서.
오므라이스 두 개 만들라고 하세요.
어이! 오므라이스 둘.
커피마셔.
아니.
그럼 술?
허어. 독한거라면.
하하. 내가 만들어 줄께.
영훈씨 어디서 자?
방에서.
하핫. 가출한거야?
아니. 내 집을 찾았어.
근데 왜 여기서 일해? 술 마실려고.
후훗. 자 마셔.
응, 고마워.
전엔 집에서 살지 않았어?
응?
네 집을 찾았다고 했잖아.
흐음. 술을 마실수 있는 곳이라면은 어디든 내 집이거든.
좋아. 그런 얘긴 묻지 않을께. 거짓말 하려고 노력하지 마.
거짓말?
응. 보기 흉해.
자. 오므라이스 몇 번이야?
아. 이리 줘요. 내가 갖다 줄 테니까. 수미 잠깐. 좀 비켜주겠어?
응. 자. 하하하.
왜 웃어?
아니야 조심해서 가져가. 금방 쏟아 버릴거 같이 보여. 하하하.
춘식씨. 웨이터가 저렇게 안어울리는 사람 구경해 봤어?
아직 서툴러서 그래. 처음이라잖아.
아니야. 서투른 것과 달라. 어울리지 않는거야.
어울리는 사람이 따로 있니?
춘식씨 같은 사람. 하하. 난 음악이나 틀어야 겠다. 영훈씨 한테 술 한잔 더 줘.
그렇지 않아도 많이 마시고 있어. 자기 월급 만큼 마시겠다는 놈이니까.
뭐야?
(목탁 소리)
아주머니, 아드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아. 네.
어머니.
들어와라.
네.
그럼 얘기 하십시오.
네. 스님. 감사합니다.
늦게 와서 미안해요. 식사는 하셨어요?
그래.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요. 돌아가서 해결해요. 아버지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인천에 다녀오셨답니다.
거기는 늘 가시는데 아니냐?
네? 어머니. 어머니는 알고 계셨어요?
그럼, 모를 수 있었다고 생각했니? 넌?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그래. 모를 수가 없는거야. 단지 확실히 알수가 없었던거 뿐이지.
니 아버지는 그렇게 철저하신 분이야.
대체 언제부터 알고 계셨어요?
그 얘긴 그만 두자. 나도 지쳤다 이젠.
어머니. 전 알아야 하잖아요.
한번 이리로 오시라고 해라. 어차피 해결을 지어야 할테니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해결 하셔야 해요. 이러고 계시면 지시는 거에요.
지훈아.
네. 어머니.
내가 어리석었어. 처음부터 묵인하는게 아니었어.
왜 묵인하셨어요.
아버지를 믿었기 때문이야. 게다가 너를 낳고, 삼년이나 병상에서 지내야 했으니까.
끝난 줄 알았지. 아이까지 낳고 살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어머니.
그러니 돌아가라. 아버지 보고 오시라고 해.
어떻하시게요.
나는, 지훈아. 너를 믿는다. 하기야 지금까지도 너만 믿으며 살아 왔으니까.
어머니.
(음악)
(벨소리)
누구세요?
나.
(문소리)
해리! 해리!
(개 낑낑소리)
이리와!
그래. 너 기억하고 있니? 혜수라는 여자 말이야. 그래. 생각하고 있었을 게다.
솜털 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너보고 당당해서 보기 좋다고 했지? 보고 싶지 않으냐. 넌?
흐흐흐. 난 보고 싶어. 그런데 말이야. 그런 여자는 쉽게 변하지 않거든. 넌 운이 좋았던 거야.
어쩌면 우리 형보다 더 운이 좋은 놈인지 모르지. 너 알았니? 그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난 알아. 그 여자가 별이란 걸 말야. 별이었어.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하나는 어디서. 흐흐.
무엇이 되서 다시 만나리 하고 읊어보고 싶어지는 여자였어.
하아. 가라 해리. 나 혼자 있고 싶어졌다. 흐음.
(발소리)
영훈아, 와서 앉아라.
저 취했어요. 가서 자야겠어요.
흐음. 이리 와서 앉아!
왜 그러시죠?
대체 어쩔 작정이냐.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어쩌겠다는 거야. 여기 들어와서.
여기.. 여긴 아버님의 집이 아닙니까? 그럼 나의 집도 되고요.
아버지의 집에 아들이 함께 사는게 어색합니까?
네 말이 옳다. 하지만, 최선의 말은 아니야.
하기는 저 마다 사정이라는게 있으니까요.
우선, 집으로 돌아가거라. 네 어머니 한테.
싫습니다.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어.
흐음.
돌아가서 공부를 해. 그래서 입시를 치르도록 해라. 우선 대학은 들어가야 한다.
넌 내 아들이 아니냐.
아들.
그래. 돌아가라 어서. 나머지 일은 내가 해결하겠다.
무슨 해결이요. 우리 어머니와 결혼 하시겠어요?
뭐? 뭐라고?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그런 얘기가 아니었던가요? 그럼 무슨 뜻이었습니까?
(음악)
김보연, 유민석, 박일, 김계식, 오세홍, 권희덕, 안경진, 유해무, 장춘순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 기술 이완섭,
인생극장 거리마다 낯선 얼굴
김경란 극본, 이규상 연출, 네번째로 고려야구 제공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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