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극장 거리마다 낯선 얼굴
고려야구 제공입니다.
언제인가 우리가 처음 만난 밤은. 쓸쓸한 겨울 거리에 눈 송이 처럼 흩어지는 낯선 얼굴.
밀려오는 그리움이여. 지난 가을 당신은 낙엽을 태우던 불꽃이더니, 이제는 한줄기 바람되어 흘러가는가.
사랑을 그 누가 아프다 하리. 우리마음 깊은 숲속에서 길고 긴 어두움을 흐느끼는 겨울바람이여.
김경란 극본 이규상 연출 세번째.
웨이터 경험있으세요?
없습니다.
그럴줄 알았어요. 대학생이죠?
아뇨.
그럼?
보다시피 건달이죠.
하하. 난 수미라고 해요. 정수미. 이 술집은 우리 오빠꺼에요. 방학이라서 오빨 거들어 주려고 나와있어요.
DJ를 봐요. 음악 좋아하세요?
네.
어떤 음악?
수미, 여기 커피.
어. 고마워. 마셔요. 아이 잠깐요.
(음악)
어때요? 이노래.
좋아합니다.
음. 이름이 뭐에요?
영. 서영.
음. 영은씨를 보는 순간 이노래를 생각했어요. 내가 오빠한테 얘기 할께요. 오빤 저한테는 꼼짝도 못해요. 하하.
하. 고맙습니다.
아이, 아니에요.
(음악)
오빠 식사하세요.
아버지 모셔와라.
사장님 나가셨어요.
응? 언제?
벌써 한시간 전에요. 정기사가 그러는데 인천에 가신데요.
인천?
네.
2층에 가서 걔보고 밥 먹으라고 해.
네.
그럴 필요 없어요.
흠.
제발 그 시커먼 옷을 벗어버릴 순 없겠니? 내가 기분이 나쁘다. 그림자가 걸어다니는거 같아서. 너 몇살이냐?
스물 둘이에요.
스물 둘?
흠. 하하. 내가 보기엔 너는 스물 두살 같지가 않아.
편안히 나이대로 살지 못했으니까요.
그렇게 살 수도 있었겠지.
어떻게요.
학교는?
안다닙니다.
왜?
아버지가 학비를 대주시지 않던가?
대주셨겠죠.
그런데. 자신이 안갔겠지. 반항하기 위해서.
맞아요.
그게 잘 하는 짓일까?
잘 하는 짓만 하는 사람들만 있습니까? 세상엔? 나는 내 방식대로 삽니다. 내 아버지가 그랬듯이.
흠.
(음악)
아. 어서와.
으응.
들어와.
(문소리)
어우. 좋은데? 지난번에 왔을 땐, 무시무시 하더니 낮에보니까 아름답구나. 흠흠. 난 겨울 나무가 좋아.
하하. 자 들어가자.
싫어.
아니 왜?
흐음. 무슨짓 하려고 방에 쳐박아 놓고.
아이 까불지마. 하하하.
여기 있을테야.
아니 춥지않아?
오늘은 볕이 좋은데? 하늘도 파랗고. 잔디도 푹신하고
알았어. 마실거 가지고 올께.
따뜻한 걸로.
커피?
응.
기다려.
(발소리)
지훈씨!
왜?
아니야. 갑자기 뒷모습이 멋있어 보여서
하하하하. 그럴때도 있니? 하하하
(개짖는소리)
아. 니가 해리로구나? 음. 이리와봐.
아이. 짖지마. 넌 정말 잘생긴 개로구나? 이리와봐 옳지.
흐음. 괜찮아. 와봐.
나는 말야. 지훈씨와 아주 가까워 말하자면 애인같은거야.
그러니까 우리도 친하게 지내자. 응?
옳지. 흐음. 니 모습은 참 당당해서 좋구나. 요샌 당당한 사람이 드물거든.
왜 그래 또.. 어? 서영훈?
네.
야야. 임마. 해리! 저리가! 저리가! 에이 자식이.
응. 너 나왔구나.
저 혜수. 이거 받아서 내려놔줘.
응.
인사하겠어? 혜수?
응. 안녕하세요. 나는 윤혜수.
영훈입니다.
자. 저리가서 앉자. 커피마시자.
함께 마셔요. 두 잔 밖에 안가져왔어.
괜찮아요. 전.
나눠마셔요. 자요 오세요.
내가 가서 영훈이 가져오라 할께.
그럴래. 지훈씨?
응.
가요. 의자에 가서 앉아요.
문득 그의 시선이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스쳤다. 아픔이 파문을 일으키며 내 영혼으로 번져갔다.
그의 등뒤에 하늘이 심해처럼 파래지고 그는 심해어 처럼 하늘 가운데로 떠올랐다.
전. 나가봐야 해요.
하지만 지훈씨가 커피를 가져온다고 했는데.
전해주세요. 차를 마실 생각이 없어서요.
그는 푸른 바다를 거느리고 다니는가. 그가 걸음을 옮길 때 마다 하늘은 자꾸 출렁이고, 그의 검은 옷깃 사이로
현란한 색채의 비늘이 번쩍이고 있었다.
(음악)
꽃이 많이 피었군요. 무슨 꽃이죠?
흐음. 국화. 신이 최후에 만든 꽃이에요. 가장 완전한 꽃.
꽃은 어느 꽃이나 완전하죠. 사람보다.
왜요?
향기를 지녔으니까요. 붙잡을 수도 만질 수도 볼 수도 없을 만큼. 완전해요.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는 걸요?
향기?
사랑? 나는 이 꽃들을 보면서 느껴요. 우리의 영혼의 모습을.
이 꽃무더기 처럼 얼어진 찬란한 영혼 보라색은 효산지설, 노란색은 판시니, 붉은 강낭콩, 진사?
백살의 눈부신 하얀빛, 그런 사랑을 하고 싶어요. 꽃의 향기처럼 완전한 사랑을.
그건 전설이에요. 그런 이름들은 이 세상에선 살 수가 없어요.
아직은 전설이지만, 이제는 이 세상에서도 살 수 가 있을 거에요. 아. 어디로 가요? 당신은?
당신 곁에 머무를 수가 없어요.
가지말아요. 가지말아요. 그렇게 자꾸 흘러가면 안돼요.
(음악)
(전화벨소리)
네.
혜수?
네?
혜수. 나야. 왜그래?
아이. 아니,아이. 잠이 들었었나봐요.
나올수 있지?
왜?
함께 갈 데가 있어.
어디?
절에.
절?
응. 어머니에게.
저. 지훈씨 나 지금 가고 싶지 않아.
왜그래?
기분이 안좋아. 미안해.
왜? 무슨일이 있었어?
아니야.
기다려, 내가 곧 갈께.
지훈씨.
흠..
(음악)
김보연, 유민석, 박일, 오세홍, 안경진, 장춘순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이원석
인생극장 거리마다 낯선얼굴
김경란 극본 이규상 연출 세번째로 고려야구 제공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8.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