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극장
나 혼자 생각할꺼야 ... 삼성제약 고려식품 공동제공 입니다.
유보상 극본 이규상 연출 스물 일곱번째.
(바람소리)
어휴. 이거 왠 바람이 부노. 사랑방 학생 방에 있나?
네. 할머니.
어머나. 낙엽이 마당에 잔뜩 쌓였네요.
아이 들어오세요 할머니.
아니야. 이거 받아. 편지 왔어.
편지요?
거 우체부가 버스정거장 앞 가게에 다가 맡겨놓고 갔더구만.
고마워요 할머니.
어여 문닫고 들어가라고.
네.
(문소리)
아저씨구나.. 하핫.
(종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영아야.
아침에 일어나니. 찬서리가 하얗게 내렸구나.
벌써 가을이 깊어가는구나.
그동안 잘 있었니?
한번 그 곳엘 들른다는게 마음만 매일 앞섰지. 조금만치 틈도 생기지 않는구나.
바빴단다 아저씨가.
아저씨 많이 욕했지?
그래도 아저씬 좋단다.
니가 무슨 욕을 해도 아저씬 마냥 즐거운거다.
왜 그런지 아니?
내가 널 사랑하고 있으니까. 하나도 밉지가 않은거란다.
너는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나는 니 마음속에 자리잡고.
우리는 서로 아끼면서 내일을 가꾼거란다.
그리고 우리 다시 만날땐.
환하게 웃어버리자꾸나.
옛날 얘길 하면서 말이야.
(음악)
아저씨.
첫눈이 내렸어요. 편지 안할려고 했는데, 방문앞에 소복히 쌓인 첫눈을 보니까.
아저씨 생각이 더 간절해 졌어요.
아저씨 그렇게 바빠요?
바쁘게 움직이는 아저씨 모습이 보고 싶어요.
하지만 참을래요.
아저씨 말씀대로 참고 참았다가. 나중에 환하게 웃으며 만날래요.
그때 많은 얘기가 봇물 터지듯 많이 나올꺼에요.
(음악)
올 겨울은 유난히 춥구나.
매년 입학시험때만 되면 춥다더니, 올해는 한걸음 더 빨리 온거 같구나.
그러고 보니 내일 모레면 입학시험 날이구나.
영아도 작년 생각이 나겠지?
그때 영아가 대학입학시험을 보던 날도 오늘처럼 추웠는지 모르겠구나.
아무튼 몹시 추운 겨울 날씨.
몸 건강해야 된다.
(음악)
(소란스런 사람들 소리)
얘! 영아야! 여기야 여기.
어머 정희 너 왔었구나.
외교관도 왔어.
어딨어?
춥다고 다방에 들어가 있어. 시험 잘 봤니?
모르겠어. 어떻게 봤는지.
아무튼 다방으로 들어가자. 나 추워 못 견디겠다.
추운데 뭣하러 나왔니.
아무튼 들어가서 얘기해.
응.
(음악)
하아. 이제 살것 같네.
영아. 오랫만이다.
오랫만이야.
잘 봤니? 시험은?
잘 못 본거 같으니? 내 얼굴이?
야. 너무 똑바로 쳐다보지마. 난 니가 똑바로 쳐다보면 겁나더라. 한대 또 딱 하고 올라올까 말이야.
후훗.
그러니까 나 화나게 만들지 마.
시험 잘 봤어?
아이 얜. 벌써 몇번째 묻니?
나 지금 속상하단 말이야.
왜? 시험 잡쳤니?
아. 고거 하나가 왜이렇게 생각이 안나지?
글쎄. 아저씨가 사다준 수필집 말이야? 거기서 영어문제가 많이 나왔는데 말이야. 단어 하나가 딱 막히잖니.
야. 수필집에서 무슨 영어문제가 나오니.
하하. 넌 모르면 가만히 있어.
얘, 아저씨가 수필집인줄 알고 사다준 책이 영어 백일 완성이란 거였어.
그래서.
그 숙어를 보니까. 생각은 꽉 막히고, 아저씨 얼굴만 눈앞에서 뱅글뱅글 돌더라 얘.
얘. 그 아저씬가 뭔가 때매, 너 시험 잡쳤구나. 응?
모르는 소리 마. 내가 그 책 덕을 얼마나 봤는지 아니?
또 한번만 그런 소리 했다간,
딱 하고 한대 또 올라오니?
조심해.
얘. 그러나 저러나. 정희야. 나 아는 사람 만나지 않았겠지?
응. 못봤어.
아휴. 시험장을 나오면서도 나 아는 사람 눈에 띄면 어떻할까 하고 그 생각 뿐이었어.
봐 봤자야. 이제 종치고 땡 한거야.
발표가 언제지? 너 합격했다 하면 한턱 엄청 낼께.
그때 까지 기다릴수 없어. 나 지금 배고파.
그러니? 그럼 나가자.
오늘은 적당히로 안 통할 거야.
나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거든.
아무튼 너 오늘 단단히 각오해 둬.
되게 잘 못 걸렸구나.
하하하..
(음악)
왜 안먹니?
으음.. 많이 먹을거 같은데. 막상 못 먹겠어.
어. 안먹으면 아깝잖아. 내가 이거 얼마를 투자해서 먹는 칼질을 시켰는데 안먹니?
니가 먹으면 될거 아냐.
흐흠. 나 바로 그 얘길 기다린거다.
하하.
어떻든 영아 너 오늘 해방된 기분이겠다.
그렇긴 한데 왠지 자꾸 불안해.
떨어질 것도 같고, 붙을 것도 같고.
으음. 맘 푹놔.
얘. 밥알 튀어나와.
하하
아저씨한테 전화 한번 해볼까?
아냐. 안돼. 나중에 만날꺼야.
너 어떻게 할래? 오늘 대성리 들어갈꺼니?
글쎄. 생각중이야. 늦으면 봐서 너네 집으로 들어갈께..
우리집에서 자.
암튼 봐서. 너 먼저 들어가 있어.
너 어디 가게?
오랫만에 병태들 대합실에나 가볼까 해서.
야. 아서아서..
넌 먹기나 해.
거긴 왜 갈려구.
재수하면서 1년동안 사귄얘들 갑자기 보고 싶어졌어.
갔다가 걔네들한테 잡혀서 한바탕 뭉치는거 아니니?
뭉치면 뭉치는거지 뭐?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거야.
그래. 그것도 의리니까 한번 뭉쳐봐.
의리 좋아하지마.
(음악)
어. 영아야 너 오랫만이다.
오랫만이야. 혜영아 나야.
말시키지 마. 얘. 얘. 지금 심각해.
왜?
얘, 지금 군대나간 지 오빠한테 편지 써놓고 울고 있어.
지 답답한 심정을 깡그리 써놓고 막상 편지를 붙이려고 봉투를 쓰는데. 주소를 모른대.
혜영아.
시험 잘 봤니?
넌?
포기했어 난.
그래서 오늘 얘 더 심란한거야.
남들은 다 365M 골인지점에서 운명을 판가름 하는 날인데, 얜 아예. 시험도 안봤다고.
넌?
나? 휴. 나도 마찬가지지. 뭐.
근데 그렇게 태연하니?
그러니까. 내 인생은 온통 비극일수 밖에 없다니까.
내년에 다시 볼거야.
넌 물론 잘 봤겠지.?
나도 봐야 알꺼야.
우리 다신 이런데서 만나지 않길 바래.
얘, 혜영아 어디가니?
나 여기 다시 안올거야.
결국 나만 또 외톨로 남게 되었구나.
비극이야.
그래. 이건 진짜 비극이야.
(음악)
여보. 차드세요..
음.
당신. 오늘 영아 시험보는데 가 봤어요?
응. 먼 발치에서 봤어.
어때요? 표정이?
창백하더군.
합격이나 했으면 좋겠어요.
글쎄 말이야.
우리가 떠난 뒤에 합격자 발표를 하겠죠?
그럴거야. 그 자식 잘 되야 할텐데. 음.
흐흠.. 휴.. 우리가 2~3년 뒤에 돌아왔을땐, 그 녀석은 많이 변해 있겠지.
아마. 당신을 두고 두고 못 잊을거에요.
흠흐흐흐. 똑똑한 얘야. 그 크고 초롱초롱한 까만 눈이 영아의 전부인거 같아.
하하.. 자. 우리 그만 잡시다.
여보.
응?
내일 마지막으로 영아를 만나고 오세요.
아니야. 그냥 떠나는거야.
그 얘 마음에 더 깊은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그 얜. 날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음악)
손정아 였어요. 그리고 조명남, 이정은, 오세홍, 권희덕, 유근옥, 유명숙, 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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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식품, 삼성제약 공동 제공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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