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각계 각층의 저명인사를 모시고 데뷰시절의 숨은 얘기를 들어보는 이시간. 오늘은 인기 코메디언 한 분을 모셔봤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살살이 서영춘이에요. 헤헤.
- 저 앞으로 한 20분 동안 마음놓고 웃어도 되죠.
- 네.
- 오늘 아주 신사풍에 정장을 하고 나오셨는데 이런 옷차림 평소에 하시고 다니세요?
- 네. 저는 본래 몸이 좋기 때문에요. 건강한 축에 들기 때문에 여름에도 이 남방이라던가 이런걸 입지 않습니다. 뭐 제 개성이라고 그럴까 꼭 이렇게 좀 타이를 매고 모자는 제가 꼭 쓰고 다니는 습성이 있어요. 네. 제 개성이겠죠.
- 그 이유는 그냥 습성 때문이세요?
- 네. 그렇죠.
- 혹시 머리 관계 그런거...
- 아니 그런건 없습니다.
- 네.
- 아 이거 뭐 늙기도 전에 환갑이 돌아왔나요? 벌써 머리에 관계가 있으면 뭐 야단나게요.
- 아 요즘 어떤분, 요전에요 그림 그리시는 분 머리가 없어서 베레모를 쓰신다 그런 얘기를 제가 들었거든요.
- 네.
- 요즘 어떠세요. 바쁘세요?
- 뭐, 덕분에 오늘도 이시간에 또 이렇게 나오느라고 매일 매일 시간에 쪼들리다 보니까 뭐 바쁘다기 보다도 제 임무수행에 조금 고되고 있습니다.
- 네. 오늘 옛날 얘기요. 서영춘씨 연예계하고 인연 맺으신지 아마 꽤 오래 된걸로 알고 있는데요.
- 그렇습죠. 14년째 접어들었다고 보겠습니다.
- 네. 14년 동안 코메디언을 하신건 아니지 않겠어요?
- 그렇습죠. 14년을 본격적으로 코메디를 한것이 아니라 제가 이 데뷰 한지가 이제 14년에 제쳐 들은게 아니라 접어 들었습죠.
- 네. 맨처음 그러니까 학교 다니신다거나 또 집에서 동네에서 어떤걸 인정 받으셨어요? 뭘 잘한다고 또 난 앞으로 뭘 하겠다고 그런일 있으셨을것 같은데요.
- 네. 참 그 어려운 질문을 하시는데요.
- 어렵지 않죠. 있으신 그대로면은.
- 제가 이 어렸을때 부터 그 좀 유달리 농담을 잘하구요 친구끼리도 같은말을 해도 거 좀 빙 돌려가면서 하는 말 있잖아요. 견말이라고 그러죠. 그런걸.
- 네. 네.
- 그런걸 어렸을 적 부터 학교다닐 때부터 아마 그렇게 장난을 몹시 좋아했어요. 그러다보니깐 이제 그 어린 시절에 동심으로 돌아가겠습니다만 어린 친구들도 너 이제 이다음에 크면은 배우가 한번 되면 넌 괜찮을거다 이런 얘길 하고 그랬는데 사실 노래도 즐거워했었고, 그림을 제가 좀 그렸었어요. 네. 그래 국민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려서 출품작품도 몇 작품 내봤습니다. 네. 그래가지고 연예계 나왔던 동기가 된다면은 아마 미술을 한것이 동기가 됐을 거에요.
- 네. 그러면은 노래 좋아하시고, 그림 그리는건 좋아하시고 하면은 다른 학과 성적은 어땠을까요.
- 그렇습죠. 그러니까 인제 그게 꼭 둘이서 하면 2등하고 열에서 하면 10등 했으니까 등수안엔 들었죠. 근데 그 국민학교 때만 하더라도 벌써 왜정때 아니겠어요?
- 그렇죠.
- 점심 시간에 빵을 하나씩 주고 그랬어요. 빵을 먹고 있는 시간에는 심심하니까 나와서 노래들을 부르고 이렇게 놀아가면서 먹자 이래서 인제 그런 시간도 있고 했을적에는 딴 친구들 나오면은 그 일본 노래를 부르고 뭐 이랬는데 저는 꼭 나가면 `나그네 설움` 무슨 `번지없는 주막` 뭐 이런 대중가요를 불렀습니다. 그때.
- 네.
- 그래서 그 일본 선생한테도 참 벌도 많이 섰어요. 너는 왜 딴 사람들은 다 이런노랠 부르는데 너는 왜 유행갈 자꾸 부르느냐. 난 안할래도 자연적으로 입속에서도 자연적으로 나오는걸 또 안할수도 없구요. 그걸 뭐 숨어서 할 수도 없는거고 그래서 그런 시간에는 오락시간이니까 자연적으로 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넘 좀 독특하게 그런 그 개성적이래도 그런데 비춰봐서 크면 넌 배우가 되면 괜찮을거다. 동료들도 그랬었어요.
- 네. 그러면은 배우 직업으로 처음에 들어오신거에요?
- 네. 그렇습죠. 배우로서 인제.
- 다음에는 그러니까 직업을 크셔서 가지실 때 다른 직업은 안가지시고?
- 아니죠. 미술했죠. 미술.
- 그림 그리셨어요.
- 네. 그때 인제 황금좌 입니다. 오랜 얘기죠 좀.
- 황금좌.
- 네. 지금은 인제 국도극장 이죠.
- 네. 네.
- 거기 인제 거 참 과히 빛나지도 않지만 선전부에 직을 맡아 가지고 입사를 했어요. 그래가지고 인제 선전물을 다루게 되니까 자연적 극장에는 예나 지금이나 그 단체들이 많이 드나들게 마련이였었고 지금은 국도극장이 한화 봉절관으로써 쇼를 안하지만 그 때는 악극단이 평정했을땐 많이 그 한달에 한번 혹은 두달에 세번 이렇게 악극단이 많이 들어와서 인제 공연을 했습니다. 그 때 한참 번화하게 사회에 막 인기를 끌고 간판을 내걸었던 단체들이 조선악극단, 약초가극단, 무궁화악극단 뭐 호화선악극단 뭐 이런 성도악극단 뭐 이런게 있었어요. 그 때 뭐 송달엽씨 지금은 안계십니다만 윤부규 선생 뭐 이런 등등의 그 선배님들이 많이 활동을 하고 계실땐데 가장 인기 있었던분이 이종철 선생이요.
- 네.
- 그 분이 인제 그 한참 인기가 있을 땐데 극장에다 적을 두고 있으니까 단체가 들어오면은 자신의 그 취미가 있어 그런지 붓대를 놔두고 인제 그 객석에 나가서 그...
- 구경
- 구경을 자꾸 하게 되고 그렇게 돼요.
- 직무 태만 아닌가요?
- 네. 그렇지요. 그랬는데 또 화장실 출입도 배우들이 쓰는 그 화장실 출입도 한번 거기 들어갔다 나오는게 왜그렇게 부러운지 말이에요. 그래서 들어가서 참 이종철씨 얼굴도 자세히 쳐다보고 참 신카나리아씨 얼굴도 자세히 쳐다본적도 있고, 지금은 외국에 가계신 박달마씨 이런분의 그 인상을 앞에가서 자세히 뵙고 한적이 참 누구보다도 횟수가 많았습니다. 근데 어딘지 모르게 제가 자신이 붙은것은 이동주 선생이 나와서 희극을 하시는데 자신이 붙었어요.
내가 만약에 배우가 된다면은 저정도의 희극은 나도 할 수 있을것이다 하는 그 건방진 마음이 들었겠죠? 그런 마음이 들어서 미술 그만두고 나도 배우나 정말 해볼까. 근데 역시 인제 그 미술은 여러가지 색깔을 만지게 되니까 옷이 지져분해져요 첫째. 사람이 구질구질해 지구요. 세수를 물로 한 적이 드물고 꼭 휘발유로 닦습니다.
- 그렇죠.
- 물로 안지니까요 페인트가. 이러니 자연적으로 휘발유를 많이 사용하게되고, 석유를 사용하게되고, 그 때 나빠진 피부가 여태 나빠요.
- 지금 좋으신데요. 뭐.
- 지금은 그만 때가 좀 벗었으니까 그렇죠.
- 결국은 그 선전부에 계시고 미술을 좋아하셨던게 배우의 길로 통하는거 같습니다.
- 그렇게 됐습죠.
- 노래 부르신거 취입하신 것도 있는데 `웃음바람 오곡바람` 선생님거죠?
- 네.
- 네. 서영춘씨의 노래 들어봅니다.
♬ 웃음바람 오곡바람 - 서영춘
- 처음에 나도 저만큼 웃길 수 있을것 같다. 인제 그런 자신을 가지셨고 또 자신이 인제 확실히 확실히 믿어지게 돼셨는데요. 맨 처음에는 아마 그렇지 못하셨을 거에요.
- 그러믄요. 그 뭐 참 마음만 그렇게 가지고 있었지 막상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무대에 나가면요. 그냥 그 관중의 시선이 나한테 집중돼있다 하는것을 염두에 두게 돼면은 혀가 돌아가질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하지 말고 내가 외워가지고 나간 내가 줄거리를 잡아가지고 나간 데에 신경을 쓰고 그 분위기에서 얘기가 나와야지 통하죠.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간 의기가 질려서 얘기가 통하질 않아요.
- 아마 평상시에 서영춘씨 팬들이 지금 이 말씀을 들으시면은 의아해 하실거에요. 그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맨 처음에 코메디언으로 시작하신거 아니죠?
- 그렇죠. 처음엔 제가 노래를 불렀어요.
- 네. 역시.
- 네. 저희 또 맏형이 작곡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 네. 서영훈씨.
- 네. 그러니까 인제 그 형님 덕분에 집에서 인제 자연적 형님이 음악을 이렇게 다루게 돼니까 곡조도 집에서 이렇게 듣게 돼고, 이렇게 돼니까 남이 모르는 노래도 내가 아는 노래가 참 가지 수로도 많이 있었고, 이렇게 돼니까 우선적으로 나가서 내가 해야 할 것은 노래를 아무데나 가서 내가 부를 수 있는거니까 형한테 배운 노래가 있고 해서 이래서 처음에는 무대에 나가서 노래를 불렀죠.
아 그런데 딴 사람은 다 재창이 나오는데 또 나만 안나오잖아요 재창이. 거기서 또 기가 죽었습니다. 딴 사람은 나와서 한 곡조만 불러도 재창 나오고 두 곡조 불러도 재창 나오고 그러는데 나는 한 곡조만 해도 재창도 없고 그리고 또 아는 사람도 극히 드물고 단체 내에서도. 연구생이라고 하는 축에 드니까 전부 선배고 말이죠. 이러니깐 그저 한 곡조 부르는것만 해도 다행이고, 그거 한 번 나가는게 하루 세끼 굶어도 그거 한 번 나가는게 왜그렇게 좋은지 말이에요.
그래서 뭐 참 나가서 노래를 부르는 그 순간은 관객들이 봐 줄적에 호화롭게 봐 줄지 모르지만서도 본인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그 쓰라린 고통을 느껴가면서도 그 시간만 돼면은 그 참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화려하게 뵈게 한다는 그 직업이 말이에요. 지금도 의심스러워요. 네. 지금도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그만두는 그 시간까지도 언제나 오해 속에서 이 직업을 그만두게 돼겠는데요. 이 참 보기에는 화려하고 참 치사스런 얘기겠습니다만 돈도 많이 벌고 아주 호화로울거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 그렇지도 않을것 같은데요.
- 물론 저 공무원이라던가 또 그런 상업하는 사람들에 비교하면 양복을 한벌 해 입어도 월부가 아니니깐 일단 현찰제니까 그런게 하나 좀 수입이 있다고 볼까요. 그래서 전 지금 재산이라는것이 양복 밖에 없습니다. 양복, 구두, 모자.
- 그 다음에 웃길 수 있다는거.
- 네.
- 근데 그 당시 연구생 시절하고 비교하면은 굉장한 차이겠죠. 그 당시엔 어떠셨어요.
- 그 당시에는 뭐 사실 양말 같은것만 하더라도 일주일에 한번 빨아신을까 말까 참 꼬지지 했죠 뭐. 네. 꼬지지 하구요. 뭐 그건...
- 출연료 같은거는 거의 없을 정도겠죠?
- 근데 야찬비라고 있습니다. 점심값 주는거요. 그거 한 번 주면 그저 적당히 그냥 단체에 주관 돼시는 분은 적당히 그냥 드리고 댕길려고만 그러지 실상 수입이 단체 수입이 좋지 않으니깐 그랬겠죠 뭐.
- 네. 데뷰시절은 어쨌든 재청도 없었고, 점심값 밖에 없으셨으니까 다시는 오지 않겠죠. `뜨거운 안녕` 이 형님 돼시는 서영훈씨 곡이죠. 쟈니리의 노랩니다.
♬ 뜨거운 안녕 - 쟈니리
- 맨 처음 무대는 인제 노래로 시작을 하셨지만은 무대에서 인제 남을 웃기는 코메디언을 하셨을거구요. 재밌는 얘기가 많을텐데. 또 영화에서도 역시 주역도 하시고 재밌는 역할 많이 해주셨는데요. 어떻습니까 무대하고 영화하고.
- 무대하고 영화하고의 차이를 두고 본다면은 영화는 카메라의 렌즈가 관객이 돼겠구요. 무대는 역시 그래도 즉흥적인 감정을 그냥 토하면은 직접 그 반응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것이 인제 가장 유리한 조건이구요.
- 네.
- 무대는 하루 네번 공연을 하니까 한번 해봐서 반응이 없는 건 이후에 또 고쳐서 할 수 있습니다만 영화는 한번 실수를 해놓으면 그 영화가 보결되서 관객이 봐줌으로 하여금 판단이 내리니까 상당히 조심스럽죠.
- 네.
- 그리고 하는데도 카메라 돌아가는 기계소리만이 들리지 뭐 관객이 지금.
- 반응이 보이질 않죠.
- 네. 앞으로 이 렌즈 앞에 관객의 인원수가 지금 몇사람이 돼리라 하는것은 예측은 할 수가 없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다만 영화는 촬영하는 도중에 렌즈에 비춰서 관객이 한사람이 돼는 천사람이 돼든 만사람이 돼든 관객이다 하는것이 렌즈다 하는것만 생각하고 하면은 아마 틀림이 없겠죠.
- 네.
- 영화도 여러작품 `여자가 더 좋아`라는 것이선 정말 재밌게들 보고.
- 네. 그것이 인제 저의 데뷰 작품이 돼겠습니다. 본격적인 영화의 데뷰 작품이 돼겠는데 참 고충이 많았어요. 그 영화는.
- 많으셨을거에요. 선생님 영화에는 또 여자 분장을 하고 나오시니까요. 굉장히 어여쁜 여자로 보이시던데요?
- 참 부끄럽고 어이없었습니다.
- 앞으로 그 인기인으로서 아까 고민을 말씀하셨는데 그런 고민은 앞으로 꽤 많이 가지셔야돼겠죠?
- 그럼요. 그 고민이 곧 나의 인기니까. 그것이 없어져야 돼겠다 그런 고민이 없어져야 돼겠다 하면은 즉, 다시말해서 나의 인기를 인제 그만 여기서 깃발을 내려야 돼겠다는 얘기가 돼지 않겠어요?
- 네. 그리고 이런 직업 그 고민을 갖는 직업 앞으로 이제 계속 정진.
- 그러믄요. 분투하고 또 노력하고 또 여러분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열심히 싸워야죠.
- 네. 고맙습니다.
- 고맙습니다. 네.
- 나의 데뷰. 오늘 인기 코메디언 서영춘씨와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입력일 : 2007.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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