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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이어령 편 - “영어 사전 팔아서 냄비우동 사먹던 시절”
문학평론가 이어령 편
“영어 사전 팔아서 냄비우동 사먹던 시절”
1967.05.20 방송
‘나의 데뷰’는 가수, 영화배우, 스포츠 선수에서 시인, 화가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의 저명인사들을 초청해서 데뷰시절의 숨은 얘기를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 안녕 하세요. 각계 각층의 저명인사들을 초청해서 데뷰 시절의 숨은 얘기를 들어보는 이 시간, 오늘 즐거운 주말 한 때를 위해서 특별한 손님 한 분을 모셨습니다.
우리 문단에 너무도 유명한 문학 평론가신데요.

- 이어령 입니다.

- 저, 선생님 성함 가지구요 얘기가 저희 방에서도 되기가 하는데 령으로 발음을 해야 하는지 녕으로 발음을 해야 하는지 그런거 가끔 망설이는데요.

- 네. 저도 가끔 그런걸 질문을 받게 되는데요. 내 자신이 그걸 잘 모르겠어요. 근데 한글에 대한 그 맞춤법 규정 이라든가 한자 음을 읽는 것은 참 이런건 대단히 거 산문적인 얘기긴 합니다만 이어녕이가 맞는데 녕, 근데 사람들이 자꾸 령이라고 불러요 령. 특히 제 고등학교 동창들은 이어령이라고 그래야지 그 당시에 이어녕이라고 그러면은 제 동창생이 아닙니다. 왜냐면 어렸을 때 사람들이 이어령이라고 불렀어요.

- 네.

- 저도 그게 이어령이가 맞는 줄 알았는데 후에 또 정말 오늘 데뷰 시간 입니다만은 글을 쓰게 되고 사방에서 질문을 받고 제가 찾아 보니까 이어녕이라고 읽는것이 맞는거라고 그래요.
그러나 고유명사라고 하는 것은 이미 남이 불려지면 굳어 버리니까 이어녕 이라면 내 이름 같지 않구요 이어령 이라고 해야 되는데 또 하나 우스운건 집에서는 전혀 다르게 으영이라고 부릅니다. 왜그런가하면 대게 이 서울이나 충청도 지방에서는 거 헌병이라고 하지 않고 흔병이라고 그러잖아요?

- 네. 그게 뭐 표준말일거에요.

- 네. 네. 그러니까는 어 발음을 으라고 그럽니다. 암행어사가 아니고 암행으사.

- 네. 네.

- 그러니까 으고 그 다음에 으니까는 이제 영이라고 불러요. 그래서 으영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으영이라고 그러면 우리 집안식구, 어령이라고 그러면은 고등학교 학생. 왜그런가 하면은 고등학교 애들은 해방 직후에 이제 부르게 됐으니까 그 때 우리나라 말에대한 맞춤법도 일정한게 없고 이러니까는 어령이로서 그냥 됐죠.
그렇게 때문에 저는 부르는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의 발음을 들어보녀 집안식군지 동기동창생들인지 또 정확한 그 국어 지식이 있는 소위 유식한 학사들인지 금새 알수 있습니다. 어녕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국어 실력 있는 사람이에요. 제가 보기로는.

- 그럼 앞으로 문학 평론가로서는 이어녕 씨로 부르는게 아마 옳을 것 같습니다.

- 네. 문교부에서 그렇게 하는것을 원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문교부에 따르는 거니깐요.

- 선생님 이 데뷰 시절에 얘기라던가 또 그 이전에 문학 수업 하실 때 얘기 공개를 해 보신 적이 있으세요?

- 남들은 문학 수업도 잘 쓰고 말이죠. 또 외국 작가들도 자기가 문학을 하게 된 동기 같은게 상당히 거 스릴있고 로맨틱하고 그런데 저에 관한한 참 그 사람들이 부러워요. 문학수업 시절을 쓴다던지 자기 문학을 한 회고담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거. 왜냐하면 전 얘기 할 만한 아무 기억도 없습니다. 사실상. 그래서 글을 통 쓰질 않았어요. 아마 이번 시간에 처음으로 내가 문학 하는거에 대한 얘긴데 솔직하게 얘기하라면은 문학을 내가 공부하면서 하던거는 영어 사전 팔아가지고 냄비우동 사먹던 그러한 그 불행했던 시절밖엔 아무 기억도 없어요. 그래 제가 농담 하느라고

- 그건 학교 다니실 때 얘기시죠.

- 그렇죠. 학교 다닐 때 고학 할 때죠 그러니깐. 그 당시에 뭐 전쟁통이니깐. 그래서 우선 먹을게 급했고, 참 닐케나 무슨 그 한스카로사의 그 달콤한 시위가 한 조각의 빵으로 변하는것이 나한테는 더 절실한 문제였고 이러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 사전이 제일 그게 팔리기 쉽습니다. 대학 다닐 때 지금 기억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영어사전을 한 여남의 번 팔어서 배가 고프면 그 냄비우동 사먹고

- 네.

- 또 인제 돈이 집에서 온다느니 어떻게 이렇게 되면은 다시 또 영어사전을 사고 이래서 적어도 그 단어수로 말하자면은 몇 만 단어가 넘는 셰익스피어 이후로 찬란한 전통을 가진 영어 단어가 30원 짜리, 20원 짜리 그 냄비 가락국수로 돼서 내 입으로 들어 갈 때 그 익살스러우면서도 통쾌한 맛, 수 만 단어가 하나의 그 조그만 냄비우동 속에서 들어가는거 이걸 보면서 참 세상이 문학이라고 하는건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거 이런것을 느꼈는데 그렇지만 책은 팔지 않았어요. 팔은건 사전류에 대해서만 이제 팔았는데 이런 너절한 얘기가 과연 문학 시대의 회고담이 된다면 좋지 않은 것이 지금 문학하는 사람들이 우선 실망 할거고 가뜩이나 문학 인구가 적은데 자꾸 문학들을 안하려고 들지 모르겠다 하는 생각에 여태까지 비밀로 좀 지켜뒀었어요.

- 용기를 줄이는 말씀이 되실런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진 않겠죠. 노래 들어 볼까요? `들장미` 라는 독일 민요요. 좋아 하세요.

- 네. 아주 좋아하는 노랩니다.

- 네. 소프라노 황영금 씨의 노랩니다.

♬ 들장미 - 소프라노 황영금

- 문학 이라는 것이요. 선생님의 경우 그렇게 아주 궁핍한 상태에 계셨을 때 그 때가 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에 문학이 더 시작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떻습니까.

- 글쎄요. 대게 뭐 입신출세 하는 사람들은 꼭 과거가 가난해야지만 빛이 나는것처럼 공식이 돼있지만은 사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꼭 궁해야 되고, 문학 청년은 뭔가 참 어딘지 모르게 가난해 뵈야 되고 이런식의 통념, 내가 그래서 더군다나 더 싫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궁핍한데서 문학을 했다는 것이 너무 그 통속적인 발상법 같아서 난 이런 얘기를 전혀 하지를 않았어요 지금까지. 근데 제 생각 같아서는 서재가 적어도 수십평은 되고 말이죠. 자기가 글을 읽다가 이렇게 정원을 내다 보면은 적어도 등나무 꽃이라도 좀 피어 있고 이런 환경에서 문학을 해서 못 할건 없다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반드시 이렇게 불행하고 이지러지고 가난하고 이런 것만이 문학의 창조의 꽃을 피운다고 생각을 한다면은 전 조금 문학에 대해서 회의를 느껴요. 그렇지 않고서도 더 풍부한 체험을 갖는게 더 체험이 아닌가 저는 생각 합니다.

- 네. 그 시절에 그 책은 팔지 않으셨다고 그랬는데 아마 역시 그러니가 책은 열심히 좋아하시고 보셨고 또 쓰시고 그러셨겠죠?

- 네. 근데 이제 그 우스운것은 지금 데뷰라고 이렇게 얘기 합니다만은 그게 종이 한 장 차이에요. 제가 아마 그 당시에 그런 일이 없었던들 영원히 아마 문학청년이나 문학을 안했을지도 모르는 그런 결과가 있어요. 누구에게나 그 종이 한 장 차이의 운명의 기로라고 하는거 대단히 이것도 통속적인 얘기지만은.

- 뭐였을까요.

- 네. 근데 그게 있어요. 그게 뭐냐면은 확실히 기억 할 수도 없는 어느 날짜에 저녁 어느 또 그게 출판기념회 였어요. 내가 또 그 날 거기 들르려고 한게 아니라 친굴 만나려고 들렀는데 그 때 안 들렀던들 지금 아마 저는 문학을 하지 않았을거고 딴 짓을 했을런지도 몰라요. 그게 뭐냐면은 모 시인의 출판기념횐데 제가 조금 먹을 줄 모르는 술을 마시고 친구를 찾으러 가는데 보니까 거기에 그 쟁쟁한 문인들이 나와서 그 시인에 대한 그 용비어찬가 소위그 찬미가들을 부르고 있는데 그 때만 해도 젊은 시절이고 아주 저항적이고 말이죠. 정말 자취방에서 내 언제 글에다도 썼지만은 쥐를 잡는거 그거 하나로 울분을 겨우 발산하던 시절이니까는 아니 왜 구질구질한 사람들 잔뜩 모여가지고 뭐 늘 요란한 말들을 하고 하는데 상당히 비위가 거슬렸어요. 그 때 제가 대학에서 문학을 조금 하고 그랬으니까는 제가 온 걸 알고 거기에 독자도 한번 말을 시켜보자

- 네.

- 그래가지고 인제 저를 얘기를 시키라고 그래요.

- 네.

- 그래서 좌우간 그 시인을 20분 동안 좌우간 된소리 안된소리 그냥 죄 공박을 했어요. 그 땐 난 소설 쓸라고 했지 평론도 안 쓸라 그러던 땝니다. 이 소문이 그냥 쫙 나가지고 이것도 처음 공개하는 겁니다. 영화 같으면은 이 개봉 입니다 분명히. 근데 그 한운사

- 네.

- 이상스러운 참 기연인데 한운사 씨가 문화부에 그 때 있었어요 한국일보에.

- 네.

- 그 사람 귀에 들어갔는데 이 사람도 아마 그 당시에는 역시 문맥이 없는 문학청년이고 하니까 불만이 있었던가 보죠?

- 네.

- 그래서 절 시켜가지고 뭐냐면 아, 그런말을 그런 사석에서만 할게 아니라 글로 써보면 어떻겠느냐 이런것이 소위 지금도 가끔 말하지만 우상을 타결하는 글 입니다.

- 어.

- 근데 그게 발표 될 때 운이 좋은건지 하여간 신익희 씨가 돌아가셨어요. 그 발표되던 날. 그러니까 사람들이 뭔가 좀 현 체제 이런것이 무너져야 되겠다 하는거 정치적으로 또 따분하고 변함없는 그러한 사람들이 판을 치니깐 뭔가 새것이 나와야 되겠다 이랬을 때 내가 우상의 파괴다 해가지고 문학적 혁명기를 위하여 하니까는 문학 안하는 사람들 까지도 다 읽었어요. 왜냐면 그 혁명이라는 말 때문에. 그 당시 혁명이라는 말을 못 썼지 않겠어요?

- 한 10년 전쯤 됐으니까.

- 그렇죠. 10년 전이니까. 그러니까 문학적 혁명기라고 그러니까 혁명이란 말이 우선 새롭고 물론 정치적 혁명이면 그 당시에 내가 뭐 평론가가 되기 전에 벌써 죄수가 먼저 됐겠지만은 그러니까 이것이 의회로도 널리 알려져서 제가 그 바이런와 하룻저녁 뭐 일어나니까 외졌다는 식으로 이건 뭐 참 시인에게나 멋있지만 하룻저녁 눈 떠 보니까 문학 평론가가 됐더라 이건 대단히 이미지가 안맞는 얘기지만 동방살롱 이라는데 나가보니까 제 얘기들을 하는거에요. 누군 욕도하고 어떤 사람은 칭찬도 하고 말이죠. 그 오늘 아침 신문 봤느냐 하면서 말이죠. 그 40매를 한목에 전제를 했습니다. 일요특집 판에다가. 그래서 글이라는거 아마 이렇게 써도 되긴 되는건가보다 해가지고 그 다음부터 평론이라는걸 하려고 생각을 했죠. 그러니까 참 우스운 계기 였습니다.

- 네. 대학 다니실 때 였던가요? 그러니까.

- 그렇죠. 스물 두살 때 얘깁니다.

- 네. 그러니까 `우상의 파괴` 라는것이 인제 데뷰 작품이 되겠군요. 그렇게 되겠죠?

- 그렇죠. 그렇지만 남이 인정하지 않는 데뷰 작품이죠.

- `들장미` 에 이어서 `내 말 전해주오` 이태리 민요인데요. 테너 이우근 씨의 노랩니다.

♬ 내 말 전해주오 - 테너 이우근

- 그러니까 선생님의 경우는요. 평론가가 돼야겠다 이래서 평론가가 되신것도 아니시고, 또 흔히 얘기 하듯이 소설 글을 쓰다가 안돼서 평론을 하신것도 물론 아니시구요.

- 그러니까 그래요. 대게 소설 쓰다 못하면은 평론가가 된다 이런 얘길 하는데 그런 사람들에겐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왜냐면 법률학 하다가 소설 쓰게 된 사람도 많고 의사가 되려다 소설 쓰는 사람도 많아요. 그렇다고 그래서 으레 그 의사가 되려던 거 보다 소설이 더 쉬운것도 아닌거고 법관이 되려다가 프로벨 또 바사카 같은 사람도 그랬습니다만은 공증인이 될려다가 어떻게 작가가 됐다고 그래서 공증인이 되는것이 작가 되기보다 어렵다 이런 뜻도 아니겠고 누구에게나 다 우연한 일로 전향 같은걸 많이 하게 됩니다. 근데 사실은 제가 평론가로 알려졌지만 원 데뷰 조그마한 데뷰로 말하자면 제가 대학 학생들 콩쿠르에서 소설에 한번 그 당선 된 일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 원칙적으로는 소설로 반쯤 데뷰를 해 놓고 그 다음에 평론으로 또 반쯤 데뷰 해 놓고 또 요즘 또 소설을 써서 반쯤 데뷰를 하는데 남들은 데뷰라 그러지만 난 아직도 데뷰를 한 기분이 아닙니다. 겸손이 아니라 아직도 데뷰한 기분이 아니고 인정 당하지 않은 하나의 사설 문필가 나 혼자 쓰고 나 혼자 즐기는 이런건데 어떻게 된거 같습니다. 다만 한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거는요. 그 때 그 소설 쓴것이 `초상화` 였어요. 근데

- 처음이시죠.

- 네. `초상화` 라고 하는거였는데

- 아니 그 때 재학시절...

- 재학시절에

- 재학시절에요? 네.

- 그 때 그 상을 주시는 분이 `초상화` 라고 그러니까 그림인줄 알고 앞으로 미술 공부 더 열심히 하십시요 그러면서 상장을 줘요. 그래서 내가 상이라는게 형편 없는 거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상을 주는 사람이 그게 소설 인지 그림 인지도 모르고 와가지고서 그 높은 사람은 이제 꿔다가 주는거니까 `초상화` 이렇게 돼있으니까 앞으로 열심히 그림을 더 많이 그려서 좋은 사람이 돼서 잘못하면 미술로 데뷰 할 뻔 한 일이 있었습니다. 다 세상은 그런거에요 알고보면.

- 정말 이겠죠?

- 아 그 사실 입니다.네.

- 그 후에 평론 쭉 쓰시다가 인제 근래에 소설 그 `초상화` 이후에 본격적인 소설가로서 데뷰 하신 적은 얼마 안 되시죠?

- 그렇죠. 작년에 `장군의 수염` 근데 그것도 알고보면 편집자가 너무 졸라서 쓴거지 뭐 그렇게 큰 소설가가 될려는 욕망도 없습니다. 좌우간 글을 써가는 거에요. 허국처럼.

- 네.

- 그냥 밥을 먹고 호흡 하듯이 글을 써가는건데 남이 그걸 소설가다 평론가다 불러 줄 뿐이지 자기 자신은 그냥 숨 쉬고 밥 먹는 하나의 생활의 일부로써 하고 있다는거 그러니깐 데뷰란 거창한 말은 저한텐 어울리지 않습니다.

- 고맙습니다.

- 코티 벌꿀비누 분포 동산유지 제공 나의 데뷰. 오늘은 우리 문단의 대표적인 평론가 이어령 씨를 모시고 얘기와 음악을 들어봤습니다.

(입력일 : 2007.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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