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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데뷰
시인 조병화 편 - 수학·물리 선생님을 했었죠.
시인 조병화 편
수학·물리 선생님을 했었죠.
1967.05.12 방송
‘나의 데뷰’는 가수, 영화배우, 스포츠 선수에서 시인, 화가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의 저명인사들을 초청해서 데뷰시절의 숨은 얘기를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 안녕 하세요. 각계 각층의 저명인사들을 초청해서 데뷰시절의 숨은 얘기를 들어보는 이 시간. 오늘은 문단에서 저명한 시인 한 분을 모셔 봤습니다.

- 조병화 입니다.

- 안녕 하세요.

- 네. 오래간만 입니다.

- 선생님의 작품은 저도 굉장히 많이 애송을 하고 작품을 통해서 많이 알고 있는데요. 굉장히 많이 쓰셨죠? 작품.

- 뭐 그저 그렇습니다.

- 몇 편이나 될까요? 지금까지 쓰신게.

- 작년도 까지 15권의 시집을 냈는데.

- 네.

- 작년도 까지 뭐 그렇습니다.

- 많은 숫잘거에요. 아마 다른 시인들 하고 비교해서.

- 근데 그것이 저는 그렇습니다. 시단 사람들 시를 쓰는 하나의 그 우리나라의 하나의 문학, 소위 문학 그 자체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서 작품들을 만들고 있는데 저의 경우는 지금까지도 그 문학 그 자체 보다도 말이죠 제가 어떻게 사느냐 살아갈 것인가 이런 그 하나의 생존 문제를 가지고 둘러쌓이기 때문에 항상 내 주변에 일어나는 것, 또 내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하나의 세계 이런게 늘 줄기차게 가기 때문에 말이죠 지금도 이 문학 청년들 주로 만나서 얘기는 현대시 라는걸 현대시 현대시 라는걸 자꾸 많이 들어요. 또 저도 그 강의 시간에 현대시를 갖다가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의무적으로써도 현대시를 많이 또 읽을 필요도 있고 읽고 있는데 말이죠. 제 개인의 경우는 그와 좀 떨어져서 말이죠. 하나의 나의 인생의 하나의 개척의 길로써 시를 줄기차게 잡고 있기 때문에 자꾸 시가 이렇게 나오는거 같습니다.

- 선생님 저 지금도 교편 잡고 계시지만

- 네. 네.

- 전에는 이 글하고는 관계없는 직업을 가지셨다는걸로 제가 알고 있는데요.

- 그렇죠. 제가 그 최종학교에서 그 전공은 물리 화학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기초 물리, 기초 화학 그렇기 때문에 수학이라는건 물론 거기에 인제 따라오는 거구요. 그래서 해방 후 교편을 잡을 때요 쭉 수학, 물리 이런걸로써 쭉 학생들하고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 네.

- 지금은 대학에 가서 현대문학 주로 시론을 주로 해가지고 문장론 이라던지 현대 창작 연습 이라던지 주로 문학을 얘기하고 있는데 대단히 딸리지요. 그렇습니다.

- 그 전공하고 지금 가지신 직업하고 바뀌게 된 계기랄까 어떤것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궁금 하네요.

- 이게 대단히 거 긴 얘기가 되지만 간단히 얘기해서 말이죠.

- 네.

- 직접 동기는 해방 후에 그 여러가지 물결이랄까 특히 나에게 견딜 수 없던 물결은 그 정치 물결 입니다. 그 학교 댕길때 까지는 주로 옛날 저희들이 배우던 철학이라는게 독일에서 들은 관련 철학 이랄까 그 중에서도 시인으로 말한다면 괴테같은 사람을 중심으로 해가지고 헤쎄 라든지 로만로랑 이라든지 라이나말야 리키 라던지 또 무슨 한스카로사 라던지 이렇게 해 가지고 주로 그런 하나의 인간의 형성 이런걸 주로 해서 아마 강의 보다도 그런 방면의 서적들을 일고 그랬는데 해방이 돼가지고 흘러들은 그 이질적인 물결 이라는거요. 그것은 그 때 구체적인 얘기를 한다면 좌익세력 이라던지 또 거기에 따른 하나의 민족세력 이라던지 이렇게 들어와 가지구서 대단히 그 어린 나의 그 하나의 인생관이라는 것이 방황하기 시작을 했어요. 어떤것이 이게 정말로 옳은 것인가. 또 어떤것이 나의 체질적으로 맞는 하나의 코슨가 이렇게 방황하기 많이 시작을 할 때에 시 라는 것이 대단히 나에게서 말하자면 독백 형식으로써 쓰기 시작한것이 이런 그 그 때는 무슨 요새 학생들은 시다 강의도 받으면서 시를 쓰지만 주로 그냥 낙서 비슷이 써 둔 것들 그런것이 제일 간단한 형식이기 때문에 이런 시의 형식을 타고 흘러 들어온거 이런것이 저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구요. 간접적으로써 저는 중학교 시절부터 대단히 그 간단해서요 짧막한 시간을 이어가는데 시가 대단히 친구가 됐었어요. 노는시간 같은데 말하자면 나를 키워준 말, 또 나를 위로 해주는 말, 또 나에게 하나의 큰 도움이 되는 말들 인생을 살아가는데 이런데 그 시 구절구절이 나오는 그 좋은 말들을 갖고 외고 외고 그래서 늘 사실 호주머니에 시집을 끼고 댕겼습니다. 요즘의 학생들은 시와 대단히 먼 또 시집을 가지고 다니는 학생들을 그리 못 보지만 말이지요. 그 호주머니에 늘 가지고 댕겼던게 시집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시를 연구해서 그형태를 잡아들이는거 보다 자연의 하나의 생활 분위기로써 나의 개인 생활 분위기로써 시라는 것이 늘 떠나지 않았더랬어요. 인제 그런게 겸해서 해방 후에 그러한 못 견디는 나로서는 지금 대단히 좀 어느정도 정리가 됐습니다만은 못 견디는 그런 그 물결속에서 혼자, 혼자를 지키기 위해서의 조그마한 정신의 등불처럼 그렇게 지켜온 것이 시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부터 출발이 된것 같습니다.

- 네. 그래서 시인이 되시지 않을 수 없었다.

- 지금도 그 다른 사람이 타이틀을 갖다 시인이라 그러지만요. 시인이라는 그 자체를 사실 전 대단히 그 다른 생각으로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왜그러냐면 지금 직업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직업적으로 시인이 된다는건 시를 모독하는거 같고, 어디까지나 그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그 순수한 길, 정신에 있어서 영혼 적인거 정신적인 그런 길이 역시 시의 길이라고 생각할 때 말하자면 그런 길을 걷고 있는 한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싶지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서 이렇게 참 돌아댕기기는 싫습니다.

- 사랑의 날개라는 작품 언제쯤 쓰신건지 기억 나세요?

- 그건 뭐 오래된 것 같습니다.

- 오래 된거죠.

- 네.

- 이게 최영섭 씨에 의해서 작곡이 되고

- 네. 네.

- 테너 이유근 씨가 노래로 부른게 있는데요.

- 그래요?

- 준비해 봤어요. 들어 보시죠.

- 네.

♬ 사랑의 날개 - 테너 이유근

- 지금 노래를 들어보니까 가사 보다도 곡과 노래가 더 훌륭한것 같습니다.

- 네. 지으실 때는 생각 못하셨던 멜로디로 타고 나오니까 또 다르게 느껴지실 것 같아요.

- 네.

- 그렇게 해서 인제 문단에 데뷰를 하신것이 언제쯤 데뷰 라면은 역시 응모가 아니셨던가요?

- 네. 저는 그 단행본으로써 묶어 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대로 혼자 꾸물꾸물 내 스스로를 정리하고 또 내 스스로를 뭐 하나 이렇게 생각할 때 모은것들 그런게 어떻게 돼가지고 그 당시에 참 잊어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분들이 보고서 시집으로 하나 묶어 내는게 어떠냐 그래서 대단히 마음에 꺼렸지만 묶어낸 것이 말하자면 지금 얘기하는 버리고 싶은 유산 저의 말하자면 제 1의 시집 인데요.

- 네.

- 인제 이 시집이 나온것이 1949년 봄 입니다.

- 한 20년이 거진 되오는 셈이죠?

- 네. 그렇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그 당시에는 수학 선생님의 자리는 물러서신 후 이신가요?

- 네. 역시 그 아닙니다. 그 때 역시 학생들 한테 수학을 대주며 물리 대주면서 한편 그런 공직 생활 하면서 내 개인의 소위 자아의 생활이랄까 이런건 줄기차게 그렇게 참 어둠을 속에 흘러 나오고 있었는데 그런 때 모은 작품들이 말하자면 창작 시집으로써 묶어낸거 그것이 저의 처녀시집 입니다.

- 네. 그 여러가지 작품 중에서도 모여진 단행본 입니다만은 그 중에서도 맨 처음에 쓰신 시는 아마 기억을 하고 계실것 같은데요.

- 네. 처음 말이죠. 우리말로써 처음 정말 쓴거 우리 모국어로써 해방 후에 그것이 `소라` 고 당시에 저의 자화상 같은 겁니다.

- 그래요?

- 한번 읊어 볼까요?

- 네. 들어보고 싶은데요.

- `소라` 라는 건데요.

- 네.

- 바다엔 소라 저만이 외롭답니다. 허무한 희망에 몹시도 쓸쓸해지면 소라는 슬며시 물 속이 그립답니다. 해와 달이 지나갈수록 소라의 꿈도 바닷물에 굳어 간답니다 큰 바다 기슭엔 온종일 소라 저만이 외롭답니다. 이것이 그 당시의 신데요.

- 네.

- 저는 항상 머릿속에 그런걸 가져오기 땜에 말이죠. 한 30분 한 1시간 이렇게 말하자면 그냥 자연히 흘러 나오는거 꾸미지 않고 그런걸로써 출발이 돼서 오늘날까지 시를 쓰고 있는데 지금도 대충 그렇게 무슨 꾸민다든지 이런건 저의 기법에서 그런건 좀 적습니다.

- 네. 자화상 이라고 말씀 하셨는데요.

- 그 당시에 저의 뭐 자화상 쓸쓸한 자화상인데 뭐 그런 겁니다.

- 네. 시 쓰시는데 즉흥으로 쓰실 경우가 있으시구요. 그렇지 않을 경우엔

- 밑바닥엔 늘 다른 시인들도 아마 그럴 겁니다. 밑바닥에 늘 자기 그 생애 라는게 깔고 들어가 있어가지고 어느 그 동기가 있어가지고 훅 나올 때 그것이 그게 즉흥적으로 나온다고 물론 볼 때 형태적으론 즉흥적으로 나오지만 그 늘 그런 세계에 깔려 있을 겁니다. 저의 경우는 그렇게 본다면 역시 억지로 쓰는게 아니라 즉흥적인게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니까 하나 테마를 잡으면 30분 내지 1시간 아니면 또 두고 다른 기회에 또 쓰고 그렇습니다.

- 네. `소라` 잘 들어봤습니다.

- 네.

- 시에다가 곡을 붙인게 꽤 있는것 같아요. 박인환 씨의 시에다가 이준섭 씨가 곡을 붙인게 있는데요. `세월이 가면` 이라는거.

- 네. 그 좋은 노래죠.

- 네. 현인 씨의 노래로 준비해 봤습니다.

- 네.

♬ 세월이 가면 - 현인

- 이 시를 쓴 박인환 씨는 일찍 가신거죠?

- 이미 뭐 세상을 떠났지만 제가 그 문단에 이 시집을 가지고 나올 때 울타리로들 있던 분들이 지금은 시를 안쓰고 계시지만 김광준 이라든지 지금 소설을 쓰는 이봉구, 박인환, 또 지금 부산에 있는 양병 씨라고 블란서 문학 하는 분이 있어요. 그 분들이 말하자면 그 당시에 저희 주위에 서 가지고 늘 참 얘기도 해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제가 문단에 뛰어들고 그랬는데 말입니다

- 네. 그 당시에 뭐 재미난 얘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지금하고는 또 여러가지로 풍류라던가 다를것 같은데.

- 그렇지요. 6·25 동난 직전이지요. 그 무렵에. 그 때 보다도 이제 그 언교 가지고서 부산 가가지고서 언교 댕길 때 여러가지 참 많은 쓰라린 얘기도 있고 재밌는 얘기도 있고 이것도 수복하고 바로 그 후에 박인환 군의 그 노랜데요.

- 네. 노래 들으시면서 뭐 주위 그 당시의 주위 사람들 지금이라도 생각을 많이 하셨으면.

- 네. 그리워 집니다.

- 네. 아까도 선생님 작품을 많이 쓰신다는 얘기 제가 드렸는데요. 시라면은 안팔리는 것이 거의 정도 라고 할 수 있을 정도지요?

- 저희 나라 뿐만 아니라 외국두요 시는 잘 안나가는 모양 입니다.

- 근데 선생님은 예외가 아닙니까?

- 글쎄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 시대 글쎄 제가 저와 비슷한 슬픔이나 고민이나 이런걸 가지고 있는 우리 국민들이 많은것 같지 않습니까? 그랬기 때문에 아마 읽히는거 같아요. 뭐 제가 시를 잘 써서 읽힌다는거 보다도.

- 네. 비결이라고 한다면.

- 네. 근데 요즘에 그 신인들이 쓰는 시를 읽어보면 말이죠. 자기가 없는 시들을 너무 써요. 자기가 비어 있는 시, 형식적인 시 이런건 아주 건방진 얘기 같지만 그건 좀 삼가해 주면 되리라고 생각 합니다. 문학이라는건 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그 말하자면 육성, 그 사람의 그 체취, 그 사람의 땀 이런것이 역시 겸해 나오는거 아주 그 넘쳐 나오는거 묻어 나오는거 이런것들이 그 사람들의 그 문학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 네. 앞으로도 작품 계속 많이 써 주십시오.

- 감사 합니다.

- 고맙습니다.

(입력일 : 2007.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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