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화려하고 대성한 오늘이 있기에는 가슴 설레이며 등장하던 데뷰 시절이 있습니다.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들을 초대해서 정다운 음악과 함께 데뷰 시절의 얘기를 들어보는 이 시간. 자 오늘은 어떤 분을 모셨을까요.
- 안녕 하세요. 나의 데뷰,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 악단의 중진 성악가 한 분을 모셨습니다.
- 안녕 하십니까. 오현명 입니다.
- 네. 아주 굵직한 바리톤 아 바리톤 아니고 베이스 신가요? 어떻게.
- 네. 베이스 바리톤 이라고 해서요. 바리톤 이면 바리톤 이고 베이스면 베이스지 왜 베이스 바리톤이 뭐냐 하는데 사실은 바리톤은 좀 높은거고 베이스는 아주 낮은거고 그 중간대에 위치하는 것이 베이스 바리톤 입니다.
- 그럼 선생님 저 디스크 곡목 소개 할 때는 베이스 바리톤 오현명 씨의 독창들.
- 그것이 아마 정확하죠.
- 네. 베이스 바리톤. 네. 처음 안 사실 인데요. 이 좋은 볼륨있는 소리는 볼륨있는 체구에서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선천적으로 아마 성악을 하시기 위해서 태어나신 분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네. 뭐 사실은 그렇습니다만 저에 관한 한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몸만 크지 목소리는 크지 않고.
- 아이 천만의 말씀 이에요. 저 제가 어디서 본 얘긴데 외국의 무슨 지휘자가 돼지 같이 먹는 여자는 새 같이 먹는 여자는 돼지 같이 노래를 한다구.
- 아 그거 얘기 잘 했군요.
- 외국의 경우엔 어때요?
- 외국의 경우에는 뭐 성악가들이 대게 보통사람 보다 역시 큰 편이 많죠. 네. 아주 큽니다. 더군다니 이 베이스 바리톤이나 베이스 같은 건 뭐 여기 우리 외국 사람이 와서도 그렇고 뭐 거의 그 저 1배 반은 큰데 뭐 그렇습니다.
- 네. 그럼 선생님 저 학교 다니실 시절에는 어떠셨어요. 이 저 체구가.
- 체구가 지금 보다는 물론 퍽 좀 이 살도 없었는데요. 킬로로 따지면 제가 학교 다닐 때 벌써 80킬로 였었어요. 대학생 때.
- 네. 그 때도 음성이 역시 베이스 바리톤 이셨고.
- 네. 그저 그렇게 될라고 그랬네요. 참고로 지금 93킬로 쯤 돼요.
- 13킬로가 늘으셨군요.
- 네.
- 맨 처음에 음악 하실 때 가정에서도 보통 싫어들 하죠?
- 네. 뭐 그런거 있었습니다. 근데 제가 음악하는 저희 아버지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 였고 그래서 교회에 나가니까 찬송가를 부르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 것이 많이 도움이 됐죠.
- 네. 보통들 그 합창대에서 일을 하게 되면 그 길로 들어서는데.
- 네. 또 우리 형님이 지금 작고 하셨습니다만 바이올린을 좋아 했습니다. 중학교 때 부터 바이올린을 좋아하고 그러니까 레코드을 뭐 SP지만 그런걸 많이 들었어요. 할렐루야 코러스 던가 이걸 들어서 어렸을 적에 참 감명을 얻어서 또 유행가 말입니다. 지금 말하는 대중가요를 그렇게 많이 좋아하지 않고, 그 때는 비 타협적이라서 절대로 나는 유행가는 안 한다 이런 신임을 가져서 지금 뭐 하면 좀 유치하지만.
- 그대로 하신 셈이 되죠. 저 맨 그럼 학교 다니실 때 이 학예회라 그러나요? 대중 앞에서도 노래도 많이 부르셨잖아요.
- 네. 그런건 더러 있습니다.
- 맨 처음에 좀 커서 부르신 노래론 어떤 게 기억이 나세요?
- 제가 저 뭐 제일 처음에 노래 부른것은 교회에서 역시 특별히 거 무슨 감사주일 인가 그랬는데 지금 지휘자로 계시는 KBS 지휘자로 계시는 임원식 선생님, 저희 교회에 같이 다녔어요.
- 네.
- 그 분이 음악학교 다니고 와서 내 소릴 듣더니 아 너 이번 감사주일에 한번 노래하라 자기가 반주한다 그래서 그 찬송가 중에서 `예수 나를 오라하네` 이런걸 제가 처음으로 불렀습니다.
- 네. 오늘 선생님의 첫 곡으로는 `아이아이아이` 라는 이태리 민요죠? 준비 했는데.
- 네. 이건 저 제가 그 다음에 중학교 졸업 맞고서 어떤 음악 단체에서 그걸 한다고 그래요. 그래서 출연 해달라 그래서 아직 그 음악을 전공으로 하지 않을 때지만 처음으로 대중 앞이라 그럴까 극장에서 처음으로 노래 부른 적 있어요. 그 때 곡목이 `아이아이아이` 인데 그 땐 일제시대니까 일본 사람들도 듣고 이런 적이 있습니다.
- 네. 지금 이 디스크에 취입이 된 건 훨씬 성악가로서 성장을 하신 후에 취입하신 거죠?
- 네. 그렇죠.
- 네. 들어보겠습니다.
♬ 아이아이아이 - 오현명
- 이 `아이아이아이` 를 부르실 때만 하더라도 극장에서 부르셨다고 대중 앞이었지만은 역시 아마추어 로서 부르신거죠.
- 네. 네. 그렇습니다.
- 네. 그 후에 인제 본격적으로 악단에 데뷰를 하신 건 언제쯤 입니까.
- 그러니까 이제 해방이 되구서요. 처음에 그 지금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전신인 경성음악대학 음악학교가 현 선생이 만들었죠. 그 때 처음 들어가서 제가 1회 졸업생인데. 그 때 이제 졸업할 때 서울대학을 되고 그 곳을 졸업하고 나서 부터 그 때 재학시절 부터 이제 본격적인 악단 생활을 했다고 할 수 있는데.
- 네. 저 독창회는 그 때쯤 그 무렵에 가지셨나요?
- 독창회는 이제 졸업 맞구서요. 졸업 맞구서 처음에 발표에는 정영식 씨 라고 소프라노 미국에 가 계신데 그 분하고 2인 연주회를 가졌다가 그 다음에 1·4후퇴 시 부산에 가서 남산여고 53년도 에요. 그것이 처음 입니다.
- 네. 독창회면은 여러가지 준비가 필요하겠죠? 연습 또 재정적인거 뭐 애로도 많으실 거에요.
- 이제 그것이 뭐 전문가라곤 하지만요. 외국 경우에는 여기저기 독창회를 한번 준비하면 각 전국을 돌아다니는데 여기서는 한 번 하고 그 다음에 할려면 2~3년 있다가 늘 새로운 그런 겁니다. 그래서 아주 준비라던가 마음 고생이 여간 아니죠.
- 네. 독창회에는 항상 빠지지 않고 오시는 가족 분들에게 특히 신경이 쓰이실거 같아요.
- 뭐 와서. 근데 제가 청중의 한 사람은 제가 청중의 입장으로 얘기 하면요. 어떤 아는 사람이 노래 한다면 그 얼굴을 정시 못하거나 그런것이 있는데 역시 집안 사람들도 제가 노래할 땐 저를 쳐다보지 못하는가 봅니다.
- 네. 들으시기만 하구요. 독창회 많이 가지셨죠?
- 네. 한 4번 쯤 했습니다.
- 네. 앞으로도 또 언제 계획이 있으세요?
- 네. 저 이번 가을부터 제가 그 한국 가곡만 가지고 쭉 우리 그 가곡 음악이 들어온지 한 70년 쯤 되니까 이젠 한국 가곡을 좀 정리해 봐야 되겠다는 그런 모습으로 한국 가곡만을 가지고 앞으로 쭉 한 4~5여회 계속해서 독창회를 할 계획 입니다.
- 선생님의 노래 하나 또 들어보죠. 우리 가곡 인데요. `그네` 들어보겠습니다.
- 네.
♬ 그네 - 오현명
- 베이스 바리톤 오현명 씨의 독창으로 들으신 우리 가곡 `그네` 였습니다. 이렇게 소개를 드리면 되죠.
- 네.
- 독창회 맨 처음에 가지신 거는 별 탈 없이 무사히 넘어가셨습니까?
- 네. 뭐 지금 생각해도 무사히 넘어간 것 같습니다.
- 네. 근데 독창회면은 인제 충분히 연습한 노래만 반주자 하고 같이 호흡만 맞으면 될텐데 오페라도 인제 많이 하시잖아요. 선생님?
- 네.
- 저도 무대에서 여러번 뵜는데. 그건 또 연기하고 겹치는 일이기 때문에 참 힘드실 것 같아요.
- 네. 그런거 있습니다. 근데 그 독창회는 혼자 뭐 한 한 시간 내지 한 시간 반쯤 버티니까요. 그 참 그 굉장히 긴장하고 하는데 이 오페라는 연기에다가 오케스트라에다가 또 같은 합창 같은 또 역을 하는 그 테너, 소프라노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주고 받고 할 때에는 음악이 흐르니까 어느정도 도움이 되지만요.
- 네.
- 어떻게 까먹기 시작하면 혼자 까먹으면 괜찮은데 인제 제가 까먹으면 상대방도 못 나옵니다.
- 그렇죠.
- 이것이 지금 우리 연습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결함이라고 봐야겠지만요. 뭐 그런 일이 아직 전통도 없는 우리나라에선 얼마든지 있는 일이에요. 그래서 전 제가 이런 뭐 실수한 얘기를 해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 재밌어요.
- 두번째 카르멘 때 말입니다.
- 네.
- 제가 인제 그 투우사 역 있지 않습니까?
- 네. 네.
- 그것을 했는데. 3막 맨 마지막 아주 그야말로 막이 내려오는 순간 제가 노래를 해야 막이 내려오는데 그 때는 반주고 뭐고 없습니다. 씬을 잠깐 얘기하면 카르멘이 저를 쫓아오려다가 호세가 막는 장면이 있습니다. 제가 무대 뒤에서 노래를 해야만 연기가 연결이 돼서 카르멘이 쫓아올려는 걸 호세가 아주 막는 장면이 있는데 그걸 그만 저는 잊어먹고 무대 뒤에 가서 드러누워 있었던 거죠.
- 네.
- 그래서 4~5분간 전혀 소리없이 지휘자는 그 때 김성녀 씨 였었는데 지휘자가 야단을 하고 막을 못 내려오니까요. 그거 때문에.
- 네.
- 뭐 그런 실수 있구요. 처음 오페라 나가서 또 하나 실수는 그 때 그 콩쥐팥쥐에 황소 역으로 나갔는데 제가 그 오페라 거의 처음이라 할 수 있을 정돈데 무대 중앙에 서서 아주 통쾌하게 웃는 장면이 있습니다. 근데 그것이 어떻게 긴장을 했었는지 웃긴 웃었는데요. 입을 벌리고 보니까 입술이 이 하고 붙어서요. 이 하고 붙어서 내려오질 않아요. 입술이.
- 네.
- 입이 다물어 지질 않습니다.
- 네.
- 그래서 혼난 적이 있어요.
- 네.
- 나중에 연출자 보고 그랬더니 아 그 땐 쓱 돌아서서 침을 바르면 되지 않느냐. 진작 가르쳐 주지 않고.
- 좋은 의미로 관객을 잘 속이는 방법도 습득을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 아 뭐 그런 경우가 뭐 부재 합니다. 얼마든지 있습니다.
- 될 수 있는대로 그런 실수가 없도록 해야 되지만요.
- 없도록 해야죠. 네.
- 무대에 출연을 하시면서 이 애로점으로 연출자를 좀 곤란하게 하신 적도 있으셨겠지만은 작년이던가요? 리고레토 연출도 맡으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 네.
- 역시 고충이 많겠죠. 연출도.
- 네. 뭐 성악가가 연출을 한다는 것은 좀 다르고 한데 오페라를 많이 하다 보니까 경험이 있다고 그랬어요. 더군다나 리고레토는 처음에 할 때는 그 외국 사람이 와서 했기 때문에 그 때 제가 출연 했었어요.
- 네.
- 그걸 토대로 해서 좀 해보자 그래서 한 거죠.
- 네. 그럼 앞으로는 어떤 무대로 서실 생각이세요. 노래, 연출, 뭐 연기...
- 글쎄요. 욕심 같아서는 둘다 다 하고 싶은데요. 이제 뭐 저보다 이제 나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젊은층에서는 나올거고 또 본격적으로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 도와야 될거 아닙니까? 그 때 까지의 전 한 과도기고 뭐 그 뭐라그러까요. 뒤에 그 받들어주는 사람이랄까. 그것에 불과 하지요.
- 네. 시간도 다 됐는데요. 고맙습니다.
- 네. 안녕히 계십시오.
(입력일 : 2007.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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