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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백년설 편 - “처음부터 노래를 하려 했던건 아니었어요”
가수 백년설 편
“처음부터 노래를 하려 했던건 아니었어요”
1967.04.20 방송
‘나의 데뷰’는 가수, 영화배우, 스포츠 선수에서 시인, 화가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의 저명인사들을 초청해서 데뷰시절의 숨은 얘기를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 누구나 화려하고 대성한 오늘이 있기에는 가슴 설레이며 등장하던 데뷰시절이 있습니다.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들을 초대해서 정다운 음악과 함께 데뷰시절의 얘기를 들어보는 이 시간.
오늘은 어떤분을 모셨을까요. 》

- 안녕하십니까. 오늘로써 꼭 마흔번째를 맞는 나의 데뷰. 이 시간에는 우리 가요계에서 선구적인 가수 한 분을 모셨습니다.

- 백년설 입니다.

- 네. 아마 사십대 이상 되시는 분들은 귀에 익으신 성함이 되겠습니다. 한 사십 그 이상 돼야 되겠죠?

- 아마 그럴겁니다.

- 물론 그 아랫 분들도 아시고 계시지만은. 은퇴 공연을 한 몇년전에 하셨죠?

- 네. 4년째 되는가 봅니다.

- 네. 그러면은 이 가요계 하고는 떠나시는 거에요? 은퇴 공연을 하시면은.

- 아마 실제 현역 무대는 나가지는 않죠. 그러나 가요계를 떠났다고 할 수는 없는게 역시 내가 하는 사업이 변두리에서 일하고 있으니깐요.

- 네. 많이 봐주셔야 될거 같애요.
은퇴 공연을 하실 정도로 인제 가요계에 전적으로 투신을 하신 셈인데 맨 처음에 이 가요계를 들어오실 때는 그런 의도가 아니셨을 수도 있을것 같구요. 아주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가요계에 들어오셨을 수도 있고 여러가지 경우가 있을텐데 선생님의 경우는 어떤지.

- 네. 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역시 노래를 할려고 하진 않았습니다. 처음에.

- 네.

- 제가 문학을 좋아했기 때문에 희곡을 한번 써봤으면 아니면은 어떤 그 오페레타를 자기 자신이 한번 만들어 봤으면

- 네.

- 이런 꿈을 지니고 있었어요.

- 네.

- 그러던게 우연히 아마 그런걸 하기 위해서 일단 노래를 알았으면 좋겠다. 말하자면 음악의 흐름을 일단 알았으면은 그런걸 제작하는데 아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 구체적으로 음악계에.

- 네. 그 때 말하자면 자기 자신이 작품을 써보기도 하고 또 한번 연출을 해봤으면 하는 그런 꿈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일단 노래를 한번 배워보자 말이지.

- 네.

- 자신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한게 아니고

- 네.

- 작품을 쓴다면은 그런 기초를 알아야 할 것이라고 해서 하나의 상식적으로 한번 배워두겠다 하고 출발한겁니다.

- 네. 그런데 아주 그 길로 들어서시게 된거죠?

- 그렇게 됐어요. 근데 그 때만 하더라도 자신이 인제 그런것을 좀 깊이 연극이라도 배울라면은 그 때만 하더라도 일본을 가야 되니까요.

- 네. 몇년 전 쯤이 되나요 그러니까.

- 그러니까 뭐 그것이 이제 삼십년이 넘지요.

- 네. 일본에를 가야 되는데.

- 네. 근데 그 때 제 처지가 뭐 그런건 깊은사정 뭐 제한된 시간이라서 말씀드리진 못하겠습니다만은 일본 가는데는 그 때 그 요시차리면은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 요시차리...?

- 요시차리라는건 뭐인가 하면은 그 일본 사람들 그 관원들이 싫어하는 대상이지요. 말하자면 사상적으로 자기네들이 주목하는 주목의 대상이 되는걸 말하는게죠.

- 네.

- 그런 사람들은 일본과는 요즘에 말하자면 참 입국허가지만 비자지만 그 때는 토항증이라고 했어요. 그것이 허가되지 않습니다.

- 네.

- 그래서 난 그 가지 못해서 참 애타고 있을땐데 우연히 레코드에 취입함으로 해서 그 때는 취입을 일본가서 해야 하니까 그래서 그 취입한다는 핑계로써 일본 들어가게 됐어요.

- 네. 어떻게 정말 우연히 노래하고 인연을 맺게 되셨네요.

- 네. 그렇게 됐어요.

- 네. 이 `두견화 사랑` 이라는 선생님의 노래가 언제쯤 부르신거에요. 그 조금 후가 되겠죠?

- 네. 그 데뷰해서 2차 취입 때 취입한 겁니다. 그것이.

- 두번째 곡이요.

- 네. 그렇죠.

- 첫번째 곡은 무엇이었나요.

- `유랑극단` 이라는게 있었어요.

- 근데 `유랑극단` 맑고 `두견화 사랑` 을 첫번재로 준비해 봤는데요.

- 네.

- 들어보기로 하죠.

♬ 두견화 사랑 - 백년설

- 십년이면은 강산도 변한다던데요. 무려 삼십년전에 노래, 자신의 노래 들으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세요?

- 글쎄요. 일변 정말 참 그 서글픈 생각도 나고, 또 젊었었던 시절이 꿈이 부풀었던 시절을 생각 하니까 한결 지금 이 때도 마음이 좀 젊어진것 같은 두갈래의 느낌입니다.

- 네. 맨처음에 그 `유랑극단` 을 취입 하실 때는 정말 꿈도 많으셨고 하실텐데 그 때에 그 가요계가 지금하고는 뭐 여러면으로 굉장히 다르죠. 많이 달라졌죠?

-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 때는 그 레코드 회사가 오개 회사가 있었어요. 콜롬비아, 빅스타, 오케, 태평, 포리돌 이렇게 있었는데 그리고 또 레코드 회사마다 성격이 뚜렷했습니다.

- 네.

- 어느 회사는 포리돌 같은데는 민요를 참 잘했다던지 이래서 또 어떤 콜롬비아는 세미 클래식 한 노래가 주로 많이 제작했다던지, 또 가령 그 말하자면 현대감각 유행성이 빠른것은 오케회사, 또 그 태평레코드 같은데는 많이 그 발매금지도 당했습니다만은 소위 그 민족 인식이 그 농후하다고 해서 색안경으로 봤던 회삽니다. 거기는 참 말하자면 한국적인 정서 말하자면 그 때 그 한국사람들의 처지를 넋두리 한거지요.

- 네. 선생님은 어느 레코드 회사에서 데뷰 하셨어요?

- 네. 처음에 데뷰 한것은 태평에서 데뷰 해가지고 다음해에 송년 후에 오케로 옮겼죠.

- 네. 옮기는 그 이유 중에는 어떤것이 제일 큽니까.

- 네. 뚜렷한 이유라는것은 그 때 태평레코드 회사는 그 오개 회사들 중에서 한국사람의 그 경영자에 의해서 운영 됐습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운영난으로써 그 일본 회사로 결국은 예속되게 됐죠 다시. 어차피 팔릴 바에는 이제는 그 때는 내가 노래만 한것이 아니고 제작부 일원의 한사람으로서 제작을 했어요. 같이 말하자면 경영을 해온 셈이나 마찬가지죠.

- 네.

- 그러다가 이제 노래만 팔게 되니까 어차피 노래를 팔 바에는 고가로 팔자 그래서 이제 시장으로 진출한거죠.

- 역시 보수 문제가 그제나 지금이나 문제가 되는거 같아요.

- 네.

- 요즘 신인가수들이 정말 히트곡 하나로 화려한 데뷰를 하는데 말이죠.

- 네.

- 그 때 선생님도 그 `유랑극단` 이 굉장한 히트였겠죠. 물론?

- 그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레코드나 영화 스타라던지 이것은 처음에 아주 문제를 일으켜야 되거든요. 요즘에도 거 뭐 그 사람이 가수가 되느냐 안 되느냐 한 장에 결정 됩니다. 한곡에 좌우 될수 있습니다.

- 선생님이 일으키셨던 문제 좀 자세히 얘기 좀 해주세요.

- 글쎄 뭐 다른 얘기는 그건 자화자찬이 되니까 말할 것도 없고 뭐 다른 사람들 말이 수년을 쭉 계속해서 일본의 그 때 가수들은 일년에 히트가 두곡 나면은 큰 벌이가 됐습니다. 한국에는 그런 인세를 받는 제도가 아니고 말하자면 전속료 제도 였기 때문에 별 수입의 차이는 없었지만은 일년 열두달 쭉 한달도 결하지 않고 히트를 낸 그런 과거도 있었고, 문제는 그 때 그... 합방을 탄식하는 노래였어요. 그래서 그게 팔리다가 나중에 금지 당하고... 그래서 육개월동안 발매 금지 당하고.

- 네. 재밌는 얘깃거리도 많군요. 자 `고향길 부모길` 이라는건 훨씬 후에 부르신 곡이죠?

- 훨씬 후에죠. 네.

- 그 노래 지금 준비했는데 들어보죠.

- 네.

♬ 고향길 부모길 - 백년설

- 맨 처음에 노래가 그렇게 히트를 하고 그러면은 노래를 들은 사람들이 보고싶어 할 거 아니에요?

- 네. 그렇습니다. 그 때에는 요즘에는 뭐 TV도 있고 방송국도 많이 있었지만은 그 때 그 레코드 음반이 팔리게 되면은 전국 각 지방 특약점에서 신청이 옵니다.

- 네.

- 실물 한번 뵈주지 않으면은 판매 성적에 대단히 영향이 있다고 그래서 엄청 많이 신청오기 때문에 실현 무대로써 연주회를 하게 됩니다. 이제 전국을 순회 합니다.

- 네.

- 그 특약점이 있는 곳에는 빼먹지 않고 가게 됩니다.

- 네. 지방공연 비슷하겠군요.

- 그렇죠. 지방공연이죠.

- 그러면은 정말 그 때 화려한 스테이지에 서는 가수 분이 셨는데 요즘에는 팬들이라고 그래서 여러가지 정말 싸인 공세니 납치 공세니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때는 어땠어요. 상황이. 팬들의 극성 소행이.

- 아마 그 때에 요즘에는 제가 뭐 그 말을 조금 들어봤습니다만 실제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그 때 굉장했습니다. 그 때 물론 납치도 있었고요. 정말 길거리 지나다닐 때 그 여관 같은데 몰래 이 여관에 들었다 이렇게 소문만 내고 실제는 다른 여관에서 자고 그런 때가 많이 있습니다.

- 네. 지금하고 비슷하군요.

- 네.

- 그 때 같이 어깨를 겨누던 가수 분들 지금들은 다들 물러서고 계시죠?

- 네. 지금 남인수 씨가 고인이 됐고, 또 이난영 씨가 그렇게 됐고, 지금 현역으로 일하시는 분은 이제 장세정 씨, 김정구 씨 그런 분들이죠. 네.

- 아까 맨 처음에 이 노래 부르시게 된 동기가 부르기 위해서 나오진 않았는데 어떻게 가수가 되셨다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 네.

- 은퇴 공연을 하시고 지금 지나간 일을 돌이켜 보시고 어떻게 생각하세요. 후회를 하시진 않으십니까?

- 않습니다. 근데 그 내가 은퇴하게 된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종교에도 어떤 그 영향이 있기 때문에 했습니다만은 역시 최초에 내가 노래하기 이전에 노래하는 사람들을 좀 키워보고 그 무대를 스테이지를 만들어 보자 하는 꿈을 내가 은퇴하고야 한번 실현시켜 볼라고 지금도 그런 내가 쇼 비지니스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좀 국제 적인것을 해볼까 하고 있죠. 계획하고 있습니다.

- 네. 그리고 끝으로 가수 지망생들이 참 굉장히 많은 숫자에 달할텐데 해주시고 싶은 얘기 또는 듣고 싶은 얘기들도 많을거 같은데요.

- 네. 제가 하고싶은 얘기는 반드시 내가 직업적인 가수가 되기 위해서 노랠 배우지 말고 국민 다같이 노랠 즐길 수 있고 노래를 소화 시킬 수 있는 이런 취미를 가졌으면 좋겠고 또 지금 무대 나올 때는 먼저 사람이 됐으면 합니다.

- 네.

- 남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고 또 그 가사 내용에 적합한 처신을 해서 아름답게 행동도 표현을 했으면 하는것이 후배들하고 그 동지들에게 바라는 마음 입니다.

- 네. 오늘 고맙습니다. 여러가지 이렇게.

- 나의 데뷰. 오늘은 마흔번째 시간으로 가요계에 선구적인 가수 백년설 씨를 모시고 얘기와 음악을 들어봤습니다.

(입력일 : 2007.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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