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화려하고 대성한 오늘이 있기에는 가슴 설레이며 등장하던 데뷰 시절이 있습니다. 각계 각층의 저명 인사들을 초대해서 정다운 음악과 함께 데뷰 시절의 얘기를 들어보는 이시간. 자, 오늘은 어떤분을 모셨을까요.》
- 안녕하십니까. 서른 다섯번째를 맞이하는 나의 데뷰. 오늘 이시간에는 우리 문단의 중진이신 소설가 한분을 모셨습니다.
- 김동리 올시다.
- 네. 뭐, 청취자 분들 너무도 유명한 선생님의 단편 무녀도라든가 황토기라든가 뭐 읽으신 분이 많으실 것 같아요. 금년도 그 삼일 문화상 예술부문 본상을 수상하셨는데요. 축하드립니다. 좀 늦었지만. 선생님 뭐 상 처음이 아니시죠? 이 상을 받는 기쁨은 많이 가져 보셨을 것 같아요.
- 세번째 입니다.
- 세번째요. 네. 그럼 선생님 어리셨을 때는 이렇게 훗날 작가가 되시고 또 이런 그 전문분야에서 상을 받으리라고 생각은 못하셨을텐데요. 어디에서 어릴때 시절을 보내셨어요?
- 고향이 경준데요. 그러니까 고향에서...
- 네. 학교도 거기서 다니시구요.
- 그렇죠. 국민학교를 거기서 하고, 중학은 대구에 나와서 하다가 나중에 서울로 옮겼어요.
- 네. 그럼 학교 다니실 때 뭐 작문시간 같은 때에는 좋은 작품 많이 내셨을 것 같은데.
- 아 작문 뭐 요즘으로 말하면 `수`인가 그런거 못 받았어요.
- 그러세요?
- 네. 그 때는 갑을병정 이랬는데 보통 을 좀 받았죠.
- 그럼 그런건 어떻게 들으면 될까요. 요전에 어느분도 어렸을 때 음악을 참 못했었다고 그런데 지금은 성악을 하시는데 말이죠. 뭐 역시 노력.
- 글쎄요. 그러니까 그 때 학교다닐 때에나 어려서 자기가 문학을 한다거나 작가가 된다는 생각은 안했죠.
- 그런데요. 어떤 계기가 그런 길을 마련해주게 됐는지 궁금한데요.
- 글쎄 그 뚜렷하게 이렇다는 생각이 없어요. 그 학교를 다니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부산에 가있었는데 거기서 주로 책을 읽었습니다. 그때. 그러다가 시골 고향에 들어가서 마침 그 환경에 문학책이 많이 있었죠. 그래서 읽는 동안에 문학하는것 같이 돼버렸죠.
- 네. 역시 많이 읽어야 되겠죠?
- 네. 역시 처음에는 소위 세계의 문학이라는 그거 모조리 읽었습니다.
- 그러면은 정독하고 다독하고 어떻게 생각 하세요?
- 네. 그당시에는 정독은 못하고 다독 보다도 남독이죠. 뭐. 아주 함부로 마구잡이로 줏어 읽었으니까.
- 네. 근데 그런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역시 남독이라도 많이 해봐야 될까요?
- 안되죠. 정독이라야 되죠.
- 정독이.
- 독서는 정독이라야 됩니다. 천천히 읽고 해야 되는거지 지금 생각하면 안 읽었던것 보단 낫죠. 그래서 그 뒤에 자기가 좋다고 생각된 작품은 다시 읽었던 것도 많습니다.
- 네. 읽으시면서 뭐 습작 비슷하게 이렇게 좀 흉내라도.
- 별로 안했어요. 별로 안하고 반드시 자기가 작가가 된다거나 이런 뚜렷한 목표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서울 왔는데 지금 시인의 서정주씨라고 그 사람을 만나서 같이 인제 놀았지요.
- 네.
- 그 때 우리 그 사람도 역시 나 비슷합디다. 역시 인제 책을 세계 문학 이라는 것을 많이 읽고 왔어요. 둘이서 밤낮 그런 얘기 했죠. 그런 동안에 그해 경우대 친구 집에 있는데 신문에 신춘문예 모집 광고가 납디다. 그 때 돈이 궁하고 이러니까 그거 인제 상금을 타서 쓸라고 겨울인데 한 스무날 동안에 작품을 많이 썼습니다. 각 신문 마다 소설 시 전부다 썼죠. 그러니까 한 열편이나 소설 세편인가 시곡 세편 시조 뭐 있는데로 다 썼죠. 그거 다 보냈는데 다 떨어졌어요.
- 네.
- 그 때 시 한편이 가작으로 조선일보에 입선했죠. 다 떨어지고. 그 뒤에 알아보니까 맞춤법이나 이런게 많이 틀렸어요. 그 밖에 또 틀린점도 많았겠지만 그래서 인제 한 해 동안 그 때는 소위 세계문학 이라는거 일본어로 번역된거 이거를 가지고 너무 함부로 읽기만 하고 우리말로 다시 말하자면 우리 문장이죠. 그런거 쓰는쪽에 너무 소홀 했던 가봐요. 한 해 동안 문장을 공부했죠. 그래서 인제 그 다음에 신춘문예 소설이 당선되고 `화랑의 후예` 입니다.
당선 됐지만 별로 문단에서 알아주는것 같지 않아서 쉬고 있을 땝니다. 있다가 또 한편 써서 동아일보에 보냈는데 그 때 당선됐던 그러니까 그 때는 한편씩 `화랑의 후예`도 소설 한편만 또 동아일보 때 그 `산화`도 소설 한편만 써서 보낸게 한편씩만 보낸게 그 때 당선이 다 됐어요. 그 다음 부터는 주문도 들어오게 됐는데 소위 투고라고 할까 기고라고 할까 그런건 그 뒤로부턴 없었지요.
- 그러니까 선생님 작가로 들어오시게 된 계기가 역시 그 응모에서 아마 시작이 됐던것 같아요.
- 그렇죠. 그 신춘문예 광고보고 그러니까 더 솔직히 말하자면 상금에 욕심이 나서 썼다고 할까. 읽는 것은 왜 읽었나 그런게 문제가 돼겠지만 재미가 나서 읽었다 우선 그렇고 더 본질적으로 말하면 어릴 때 부터 그 좀 부끄러운 말이지만 사람 죽는거에 참 겁을 냈어요.
굉장히 생각만 하면 말할 수 없이 아주 우울하고 겁나고 그래요. 그런데 어떻게 문학을 자꾸 읽으면서 그런 그 무서움을 어떻게 좀 덜어 준다고 할까 어떻게 해결한다고 할까 그런 인식이 막연하게 결부 돼있었어요. 그런다고 뭐 자기가 작가가 된다거나 꼭 그 작품을 쓴다고서 그 문제가 해결 된다거나 이런 생각은 안했지요. 그리고 이제 그랫던것이 쓰게 된 동기는 신춘문예 광고 보고 상금이 욕심나서 한거고 그랬죠.
- 아마 책 많이 읽으신게 밑받침이 되셨겠죠.
- 그렇겠죠.
- 그 때 생각 하시면서 `고향 생각`이라는 노래를 하나 준비했는데요. 홍난파 작곡으로 돼있는거요. 소프라노 이명숙씨의 노랩니다.
♬ 고향 생각 - 소프라노 이명숙
- 그 맨처음에 응모를 하셔서 당선이 되신것이 시라고 그러셨죠? 가작으로.
- 네.
- 굉장히 까마득한 옛얘기가 되겠습니다.
- 네. 1934년 입니다.
- 그러면은 44, 54, 64 한 삼십년 전 얘기죠?
- 네. 33년 만 33년 됐겠죠.
- 그 때에 상금이 얼마정도 였어요?
- 상금이 당선이 5원 인데, 소설은 50원이고 시는 5원 입니다. 가작은 2원 이던가 그렇게 조금 받았습니다.
- 네. 지금 돈으로 가치를 따지면은.
- 지금돈이 그 때 50원이 지금 돈 한 5만원 이상 되겠지요. - 네. 그 한 시가 한 5천원 정도 되셨을텐데요. 그 때 그래서 상금을 타기 위해서 하셨다고 했는데 어디다 쓰셨어요? 맨 처음에.
- 그건 본래 소설 50원 이거 보고 쓴거니까 문제가 안되지요. 그 다음 해에 소설 상금 50원 받았을 때는 그 때 고향 가있을 땐데 친구들하고 술을 좀 마셨지요. 그 다음에 그것 가지고 인제 노자해서 준비를 좀 해서 절간에 한 1년동안 가서 공부하러 갈 때 그 때 그 노자해서 갔습니다.
- 네. 그리고 지금으로 와서 아까 그 삼일 문화상에서의 상금이 굉장히 많은 액수였죠? 그 상금은 곁들여서 어떻게 쓰셨는지 궁금한데요.
- 그건 뭐 상금이 어떻게 많은지 암만 써도 자꾸만 남아 있어서 아직 남아 있습니다.
- 근데 선생님 그 신춘문예에 응모하기 위해서 작품을 쓰신게 아니에요? 말씀들어보면은 그런거 하고 또 요즘 그 문학청년들은 아주 그 응모를 기다리면서 그냥 일년 내내 아주 힘들여서 작품을 써놓고 그러고 응모했다가 인제 당선이 되지 못하고 하는데 말이죠. 그런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 그러니까 그 때도 그랬죠. 그 때도 그 응모자 수는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데 역시 그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수도 관련이 있겠죠. 그렇게 수많은 사람 가운데 뽑힌다는것은 요행히 나는 두번 당선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작가생활 하라는 또 그런 무슨 운이라고 할까 그런 점도 있겠죠.
- 그렇게 해서 인제 그 때 아까 말씀하신 `화랑의 후예` `산화` 이런 작품으로 인제 작가에 문단에 오르시게 된거죠.
- 그렇죠. 그러니까 `화랑의 후예`가 정식 당선이니까 신인으로서의 자격을 얻었다고 할까 그리고 인제 `산화` 당선으로써 본격적인 작가 생활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네. 그 시절의 작품 다시한번 지금 이렇게 보시고 그럴 기회가 있으실텐데요. 그럴 때는 어떤 생각이 드세요.
- 네. 이번에 어디서 이렇게 책을 몇 권 내 준다고 그래서 옛날 작품들을 교정을 좀 보니까 역시 초기 작품들이 문장은 불완전한게 많습디다. 사람들이 대게 난 초기 작품이 뭐 인상적이라고 말을 하는데 실제로 보니까 문장 특히 문장 면에 있어서는 아주 미숙한 데가 많아요. 아주 새로 쓰고 싶을 정도로.
- 네. 욕심이시겠죠. 부족한거 같이 느끼셨다는 말씀이시죠? 그럼 오늘 두번째 노래는 `나물 캐는 처녀` 현제명 작곡으로 돼있는 우리 DBS 합창단의 합창으로 들어보겠습니다.
♬ 나물 캐는 처녀 - DBS 합창단
- 저 부부가 같은 분야의 길을 걷는 다는 데 대해서 의견이 여러가진데요. 선생님은 그 작가 손소희씨 하고 결혼 생활 하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시간도 조금 남은거 같은데.
- 네. 근데 뭐 내 자신으로는 역시 같은 업을 가진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는 경우가 합리적이고 퍽 이렇게 좋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그 사람 말 들으면 역시 남자가 사회적으로 말하자면 대표하기 때문에 작가로서 자기의 독립성이라고 할까 그런 그 존재가 대단히 아주 손해를 본다고 그래서 작가로서 참 불리하다고 그런 말들 해요.
그렇지만 우리가 생각할 땐 역시 소설 쓰는 사람을 가장 인간 적으로 깊이 믿을 수 있으니까. 뭐 그 사람도 그렇겠죠. 그런데 소설쓰는 사람이라는 것이 자기도 택한 직업이기 때문에 서로 그래도 인간적으로 믿을 수 있다는건 있겠죠.
- 네. 같이 도울 수도 있고 그럴 거 같애요.
- 그런 점도 있겠죠.
- 네. 오늘 여러가지 말씀 고맙습니다.
- 코티 벌꿀 비누 분포 동산유지 제공 나의 데뷰 오늘은 소설가 김동리씨를 모시고 얘기와 음악을 들어봤습니다.
(입력일 : 2007.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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