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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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 편 - 시인 서정주씨를 만나 신춘문예에 응모를 하다
김동리 편
시인 서정주씨를 만나 신춘문예에 응모를 하다
1967.04.14 방송
‘나의 데뷰’는 가수, 영화배우, 스포츠 선수에서 시인, 화가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의 저명인사들을 초청해서 데뷰시절의 숨은 얘기를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누구나 화려하고 대성한 오늘이 있기에는 가슴 설레이며 등장하던 데뷰 시절이 있습니다. 각계 각층의 저명 인사들을 초대해서 정다운 음악과 함께 데뷰 시절의 얘기를 들어보는 이시간.
자, 오늘은 어떤분을 모셨을까요.》

- 안녕하십니까. 서른 다섯번째를 맞이하는 나의 데뷰. 오늘 이시간에는 우리 문단의 중진이신 소설가 한분을 모셨습니다.

- 김동리 올시다.

- 네. 뭐, 청취자 분들 너무도 유명한 선생님의 단편 무녀도라든가 황토기라든가 뭐 읽으신 분이 많으실 것 같아요. 금년도 그 삼일 문화상 예술부문 본상을 수상하셨는데요. 축하드립니다. 좀 늦었지만. 선생님 뭐 상 처음이 아니시죠? 이 상을 받는 기쁨은 많이 가져 보셨을 것 같아요.

- 세번째 입니다.

- 세번째요. 네. 그럼 선생님 어리셨을 때는 이렇게 훗날 작가가 되시고 또 이런 그 전문분야에서 상을 받으리라고 생각은 못하셨을텐데요. 어디에서 어릴때 시절을 보내셨어요?

- 고향이 경준데요. 그러니까 고향에서...

- 네. 학교도 거기서 다니시구요.

- 그렇죠. 국민학교를 거기서 하고, 중학은 대구에 나와서 하다가 나중에 서울로 옮겼어요.

- 네. 그럼 학교 다니실 때 뭐 작문시간 같은 때에는 좋은 작품 많이 내셨을 것 같은데.

- 아 작문 뭐 요즘으로 말하면 `수`인가 그런거 못 받았어요.

- 그러세요?

- 네. 그 때는 갑을병정 이랬는데 보통 을 좀 받았죠.

- 그럼 그런건 어떻게 들으면 될까요. 요전에 어느분도 어렸을 때 음악을 참 못했었다고 그런데 지금은 성악을 하시는데 말이죠. 뭐 역시 노력.

- 글쎄요. 그러니까 그 때 학교다닐 때에나 어려서 자기가 문학을 한다거나 작가가 된다는 생각은 안했죠.

- 그런데요. 어떤 계기가 그런 길을 마련해주게 됐는지 궁금한데요.

- 글쎄 그 뚜렷하게 이렇다는 생각이 없어요. 그 학교를 다니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부산에 가있었는데 거기서 주로 책을 읽었습니다. 그때. 그러다가 시골 고향에 들어가서 마침 그 환경에 문학책이 많이 있었죠. 그래서 읽는 동안에 문학하는것 같이 돼버렸죠.

- 네. 역시 많이 읽어야 되겠죠?

- 네. 역시 처음에는 소위 세계의 문학이라는 그거 모조리 읽었습니다.

- 그러면은 정독하고 다독하고 어떻게 생각 하세요?

- 네. 그당시에는 정독은 못하고 다독 보다도 남독이죠. 뭐. 아주 함부로 마구잡이로 줏어 읽었으니까.

- 네. 근데 그런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역시 남독이라도 많이 해봐야 될까요?

- 안되죠. 정독이라야 되죠.

- 정독이.

- 독서는 정독이라야 됩니다. 천천히 읽고 해야 되는거지 지금 생각하면 안 읽었던것 보단 낫죠. 그래서 그 뒤에 자기가 좋다고 생각된 작품은 다시 읽었던 것도 많습니다.

- 네. 읽으시면서 뭐 습작 비슷하게 이렇게 좀 흉내라도.

- 별로 안했어요. 별로 안하고 반드시 자기가 작가가 된다거나 이런 뚜렷한 목표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서울 왔는데 지금 시인의 서정주씨라고 그 사람을 만나서 같이 인제 놀았지요.

- 네.

- 그 때 우리 그 사람도 역시 나 비슷합디다. 역시 인제 책을 세계 문학 이라는 것을 많이 읽고 왔어요. 둘이서 밤낮 그런 얘기 했죠. 그런 동안에 그해 경우대 친구 집에 있는데 신문에 신춘문예 모집 광고가 납디다. 그 때 돈이 궁하고 이러니까 그거 인제 상금을 타서 쓸라고 겨울인데 한 스무날 동안에 작품을 많이 썼습니다. 각 신문 마다 소설 시 전부다 썼죠. 그러니까 한 열편이나 소설 세편인가 시곡 세편 시조 뭐 있는데로 다 썼죠. 그거 다 보냈는데 다 떨어졌어요.

- 네.

- 그 때 시 한편이 가작으로 조선일보에 입선했죠. 다 떨어지고. 그 뒤에 알아보니까 맞춤법이나 이런게 많이 틀렸어요. 그 밖에 또 틀린점도 많았겠지만 그래서 인제 한 해 동안 그 때는 소위 세계문학 이라는거 일본어로 번역된거 이거를 가지고 너무 함부로 읽기만 하고 우리말로 다시 말하자면 우리 문장이죠. 그런거 쓰는쪽에 너무 소홀 했던 가봐요. 한 해 동안 문장을 공부했죠. 그래서 인제 그 다음에 신춘문예 소설이 당선되고 `화랑의 후예` 입니다.

당선 됐지만 별로 문단에서 알아주는것 같지 않아서 쉬고 있을 땝니다. 있다가 또 한편 써서 동아일보에 보냈는데 그 때 당선됐던 그러니까 그 때는 한편씩 `화랑의 후예`도 소설 한편만 또 동아일보 때 그 `산화`도 소설 한편만 써서 보낸게 한편씩만 보낸게 그 때 당선이 다 됐어요. 그 다음 부터는 주문도 들어오게 됐는데 소위 투고라고 할까 기고라고 할까 그런건 그 뒤로부턴 없었지요.

- 그러니까 선생님 작가로 들어오시게 된 계기가 역시 그 응모에서 아마 시작이 됐던것 같아요.

- 그렇죠. 그 신춘문예 광고보고 그러니까 더 솔직히 말하자면 상금에 욕심이 나서 썼다고 할까. 읽는 것은 왜 읽었나 그런게 문제가 돼겠지만 재미가 나서 읽었다 우선 그렇고 더 본질적으로 말하면 어릴 때 부터 그 좀 부끄러운 말이지만 사람 죽는거에 참 겁을 냈어요.

굉장히 생각만 하면 말할 수 없이 아주 우울하고 겁나고 그래요. 그런데 어떻게 문학을 자꾸 읽으면서 그런 그 무서움을 어떻게 좀 덜어 준다고 할까 어떻게 해결한다고 할까 그런 인식이 막연하게 결부 돼있었어요. 그런다고 뭐 자기가 작가가 된다거나 꼭 그 작품을 쓴다고서 그 문제가 해결 된다거나 이런 생각은 안했지요. 그리고 이제 그랫던것이 쓰게 된 동기는 신춘문예 광고 보고 상금이 욕심나서 한거고 그랬죠.

- 아마 책 많이 읽으신게 밑받침이 되셨겠죠.

- 그렇겠죠.

- 그 때 생각 하시면서 `고향 생각`이라는 노래를 하나 준비했는데요. 홍난파 작곡으로 돼있는거요. 소프라노 이명숙씨의 노랩니다.

♬ 고향 생각 - 소프라노 이명숙

- 그 맨처음에 응모를 하셔서 당선이 되신것이 시라고 그러셨죠? 가작으로.

- 네.

- 굉장히 까마득한 옛얘기가 되겠습니다.

- 네. 1934년 입니다.

- 그러면은 44, 54, 64 한 삼십년 전 얘기죠?

- 네. 33년 만 33년 됐겠죠.

- 그 때에 상금이 얼마정도 였어요?

- 상금이 당선이 5원 인데, 소설은 50원이고 시는 5원 입니다. 가작은 2원 이던가 그렇게 조금 받았습니다.

- 네. 지금 돈으로 가치를 따지면은.

- 지금돈이 그 때 50원이 지금 돈 한 5만원 이상 되겠지요.

- 네. 그 한 시가 한 5천원 정도 되셨을텐데요. 그 때 그래서 상금을 타기 위해서 하셨다고 했는데 어디다 쓰셨어요? 맨 처음에.

- 그건 본래 소설 50원 이거 보고 쓴거니까 문제가 안되지요. 그 다음 해에 소설 상금 50원 받았을 때는 그 때 고향 가있을 땐데 친구들하고 술을 좀 마셨지요. 그 다음에 그것 가지고 인제 노자해서 준비를 좀 해서 절간에 한 1년동안 가서 공부하러 갈 때 그 때 그 노자해서 갔습니다.

- 네. 그리고 지금으로 와서 아까 그 삼일 문화상에서의 상금이 굉장히 많은 액수였죠? 그 상금은 곁들여서 어떻게 쓰셨는지 궁금한데요.

- 그건 뭐 상금이 어떻게 많은지 암만 써도 자꾸만 남아 있어서 아직 남아 있습니다.

- 근데 선생님 그 신춘문예에 응모하기 위해서 작품을 쓰신게 아니에요? 말씀들어보면은 그런거 하고 또 요즘 그 문학청년들은 아주 그 응모를 기다리면서 그냥 일년 내내 아주 힘들여서 작품을 써놓고 그러고 응모했다가 인제 당선이 되지 못하고 하는데 말이죠. 그런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 그러니까 그 때도 그랬죠. 그 때도 그 응모자 수는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데 역시 그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수도 관련이 있겠죠. 그렇게 수많은 사람 가운데 뽑힌다는것은 요행히 나는 두번 당선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작가생활 하라는 또 그런 무슨 운이라고 할까 그런 점도 있겠죠.

- 그렇게 해서 인제 그 때 아까 말씀하신 `화랑의 후예` `산화` 이런 작품으로 인제 작가에 문단에 오르시게 된거죠.

- 그렇죠. 그러니까 `화랑의 후예`가 정식 당선이니까 신인으로서의 자격을 얻었다고 할까 그리고 인제 `산화` 당선으로써 본격적인 작가 생활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네. 그 시절의 작품 다시한번 지금 이렇게 보시고 그럴 기회가 있으실텐데요. 그럴 때는 어떤 생각이 드세요.

- 네. 이번에 어디서 이렇게 책을 몇 권 내 준다고 그래서 옛날 작품들을 교정을 좀 보니까 역시 초기 작품들이 문장은 불완전한게 많습디다. 사람들이 대게 난 초기 작품이 뭐 인상적이라고 말을 하는데 실제로 보니까 문장 특히 문장 면에 있어서는 아주 미숙한 데가 많아요. 아주 새로 쓰고 싶을 정도로.

- 네. 욕심이시겠죠. 부족한거 같이 느끼셨다는 말씀이시죠? 그럼 오늘 두번째 노래는 `나물 캐는 처녀` 현제명 작곡으로 돼있는 우리 DBS 합창단의 합창으로 들어보겠습니다.

♬ 나물 캐는 처녀 - DBS 합창단

- 저 부부가 같은 분야의 길을 걷는 다는 데 대해서 의견이 여러가진데요. 선생님은 그 작가 손소희씨 하고 결혼 생활 하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시간도 조금 남은거 같은데.

- 네. 근데 뭐 내 자신으로는 역시 같은 업을 가진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는 경우가 합리적이고 퍽 이렇게 좋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그 사람 말 들으면 역시 남자가 사회적으로 말하자면 대표하기 때문에 작가로서 자기의 독립성이라고 할까 그런 그 존재가 대단히 아주 손해를 본다고 그래서 작가로서 참 불리하다고 그런 말들 해요.

그렇지만 우리가 생각할 땐 역시 소설 쓰는 사람을 가장 인간 적으로 깊이 믿을 수 있으니까. 뭐 그 사람도 그렇겠죠. 그런데 소설쓰는 사람이라는 것이 자기도 택한 직업이기 때문에 서로 그래도 인간적으로 믿을 수 있다는건 있겠죠.

- 네. 같이 도울 수도 있고 그럴 거 같애요.

- 그런 점도 있겠죠.

- 네. 오늘 여러가지 말씀 고맙습니다.

- 코티 벌꿀 비누 분포 동산유지 제공 나의 데뷰 오늘은 소설가 김동리씨를 모시고 얘기와 음악을 들어봤습니다.

(입력일 : 2007.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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