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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편 - 화가가 되어야만 했던 숙명
천경자 편
화가가 되어야만 했던 숙명
1967.03.28 방송
‘나의 데뷰’는 가수, 영화배우, 스포츠 선수에서 시인, 화가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의 저명인사들을 초청해서 데뷰시절의 숨은 얘기를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누구나 화려하고 대성한 오늘이 있기에는 가슴 설레이며 등장하던 데뷰시절이 있습니다. 각계 각층의 저명인사들을 초대해서 정다운 음악과 함께 데뷰시절의 얘기를 들어보는 이 시간. 자 오늘은 어떤분을 모셨을까요?》

-여류화가 한분을 모셔봤습니다.
천경자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데뷰시절의 얘기를 듣는다고 타이틀에서도 나갔습니다만 화가 천경자씨의 얘기를 들어야 할지 수필가의 얘기를 들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화가지요.

-그림 얘기가 되겠는데요. 그림 맨 처음 시작하실때 굉장히 오래된 일이 아니겠어요?
한 23년쯤 되죠.

-힘 드셨을거에요. 아마 어른들도 많으셨구요. 옛날에는 여자들 그림 그린다고 하며는...
그 무렵만 하더라도 동경 미술학교에 유학간 사람은 여자로서는 저 혼자였어요.

-네. 우리나라에서요?
-네. 굉장히 센세이션..
물론 선배야 몇분 계셨지만 그 해에는 저 혼자 갔었죠.

-유학 훨씬 이전에 그런것이 있기 전에 유학가실때는 이미 그림을 그려야 겠다고 결심을 하셨죠?
네.
-네. 그때 말고, 그림 방면으로 자꾸 흘러가고 학교 시절에 그림을 그릴때 집에서 반대같은 것은 없으셨어요?
저는 우연히 좋아서 그 방면에 간게 아니고, 아마 어떤 숙명적으로 평생동안 그림을 그리다 죽어라하는 아닌가하고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저희 어머니가 그림을 그리셨어요. 그러니까 물론 사생해서 그림을 그린게 아니고 남화 같은거 산수화 사군자 이런걸 어릴때 보니까 더러 하시고 계시더라구요. 그런거에서 이어받은 것도 있겠고, 제 아버지는 평범한 관리지만 퍽 사람이 좋고 낭만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양쪽부모에게 이어받은 것 같습니다. 또 제 고향이 남쪽입니다. 그러니까 풍광이 밝고 맑았었죠. 그리고 바다가 있었고 어릴때 자연을 좋아해서 들이나 바다 같은데 잘 놀러 갔었어요. 그리고 지금도 아주 인상적이고 잊지 못하는 것은 봄에 들이나 밭에 가 보면 풀꽃, 나물꽃 같은 이런 조그만 꽃이지만 아주 빛깔이 알름답습니다. 가끔 시골이니까 신파같은 것이 들어오지 않겠어요? 요런게 떠난 다음에는 공연히 쓸쓸하고 이상한 공허감을 받아 들이거든요. 요런게 그와 같은 것이 어릴때 저에게 달 표면처럼 무수한 구멍, 공동을 뚫어 놓은 것 같애요. 그니까 이걸 메꾸기 위해서 제가 열심히 그림을 그린게 아닌가 싶어집니다.

-그림으로 완전히 메꾸어진 오늘이 되신 셈이 되겠습니다.
앞으로 메꿔져야 되겠죠.

패티김의 노래 들어 보시죠.

♪ 패티김의 내 사랑아 ♪

-자기의 전공분야의 데뷰를 하나 하면 갖은 노력도 많았고 난관도 많았을텐데 선생님께서는 숙명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돼 있었나부다고 말씀하셨는데 화단의 데뷰도 거의..
네. 제가 그걸 데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글쎄. 그런 생각이 안드실것 같애요.
데뷰한 것은요. 1942년이 아닌가 싶어집니다. 그 무렵에 선전, 조선미술전람회라고 했죠. 그걸 선전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출품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 또 출품해서 입선하고 그리고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때 그린 테마가 `조부상` `노부` `노부` 죠. 그러니까 제 할아버지, 할어미를 모델로 해서 많이 그렸습니다.

-네. 아마 남쪽에서 어릴때 생활이 많이 젖어..
그렇죠.

-입선으로 시작을 하셔서 화단에 들어가시게 된거네요.
그때 이런일이 있었어요. 신문에 입선자들의 명단이 보도되지 않겠어요? 요즘같이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했구요. 그런데 특이한것은 작가의 주소를 발표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저의 경우도 아주 시골, 촌인데 집이 편지를 많이 받게 되었죠.

-그때도 집(주소지)은 고향에 계시면서..
일본서 마지막 선전이 끝나고 해방되던 전해에 동경서 돌아왔었습니다. 그러니까 편지를 그 무렵에 청년 미술가들한테 많이 받았죠. 지금은 할아버지 다 됐을 거에요. 서로 동지입장에서 열심히 공부해 나가자는 격려의 편지가 답장하고 나면 결국 나중에 결혼하자느니 그런 프로포즈성 편지로 변하고 말더군요.

-한번도 만나 보신 적은 없으시겠죠?
왜요. 지금도 그런 분이 생존에 계신분이 계신분이 많이 계시죠. 서양화가에도 있고 동양화가에도 있고.

-네. 같이 그림도 그리시구요?
네. 지금 만나면 싱겁죠.

-네. 지금으로 말하면 소위 팬레터 같은거군요.
그것도 아니구 같이 피차 화가니까 열심히 그려가자..이런 얘기겠죠.

-네. 좋은 추억거리군요.

♪ 최희준씨의 길잃은 철새 ♪

-개인전이 역시 선생님 노력의 결정이 되겠는데요. 개인전을 처음 가지신게 언제?
제가 처음 가진것은 6·25 전에 1년전에 그때 동아백화점 그러니까 지금의 신계계백화점에서 거기서 가졌습니다. 그 다음해 1년후 6·25 가 됐죠. 그 다음에 가진게 부산서 가졌는데요. 그때 부산에 임시 수도 시절이었겠죠. 그때 제가 좀 알려졌습니다. 왜냐면 뱀을 테마로 한 그림이 있었어요.

-개인전 작품중에
뱀, 해골 같은 표상을 그때 많이 그렸어요. 왜 뱀을 많이 그렸냐하면요 그 무렵에는 6·25 를 겪은 무렵에는 누구나 고생한 것은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저는 그것도 그거지만 그때는 제 청춘시절이었으니까 여러가지 연애도 했고 또 반면에 경제적으로 아주 고생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이걸 뚫고 앞으로 나아가 사느냐? 어런 판국에 뱀이라도 그려야 살 수 있지 저항을 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뱀을 한달쯤 매일같이 사생을 갔었습니다. 역전에 뱀집이 있지요? 사생을 해 가지고 한 1년만에 이 작품을 완성했었죠.

-뱀집이라는건?
그 뱀을 파는 집이죠. 약용으로 쓰기 위해서 뱀을 파는 집이 있었어요.

-네.
거기가서 살아있는 걸 지금으로 말하자면 인형 케이스 같은거를 만들어 가지고 그 속에다가 많이 집어 넣어가지고 사생을 했는데 엄청 힘이 들었습니다. 왜 힘이 들었냐면 보통 개구리나 다른 것은 가만히 있으면 그릴 수가 있는데 이건 긴것이 그저 움직입니다. 실 같이 고운 실이 그저 움직입니다. 무슨 전기장치를 해놓고. 이걸 그릴라니까 움직이니까 그릴수가 없지요. 그래서 1시간쯤 그럴 가만히 보고 있으면 뭔가 통일이 돼서 움직여도 스케치 할 수가 있었습니다. 뱀을 출품했더니 여러가지 재미있었나봐요.

-그때 그릴때 상점주인이라든가 이상스럽게 생각했을텐데..
그렇지는 안했었던것 같습니다. 안했구. 다만 제가 가서 스케치를 못하고 돌아오면 붓대를 놓아버릴려고 결심을 하고 갔었죠. 결국 그것을 계기로 선생님 여러가지로 그 당시에 뱀을 그려야 되겠다 생각한 ..

-유명해지셨고.
-그리고 인제 아까부터 궁금한게요. 요즘 글 수필 많이 읽어보게 되는데..어느것이 먼저였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그림이 먼저고, 제가 수필을 제가 쓴 동기가 그 무렵입니다. 부산서 개인전 할 무렵에 시인 박기원씨라고 계시죠? 머리 허연 영감님 ..그분께서 개인전한 소감을 써보라고..문예지에 실어주시겠다고 , 그렇게 청탁을 하셨어요. 그래서 개인전 소감을 몇번 써 봤죠. 글이라고는 편지도 잘 못썼으니까..써 봤는데 별 것도 아니고 그저 고생스럽다는 얘기만 나오고 해서 엉뚱한걸 쎴죠. `신부리`라고. 제가 옛날에 시골로 신부리 가던 얘기를 .. 이게 아마 신부리라는게 결혼식을 올려가지고 8개월쯤 몇개월쯤 친정에 있다가 이바지 해가지고 가는거 있잖습니까? 신랑집에.

-근친가는거 ..
신부리라고 어려서 들어서. 그런 엉뚱한 수필을 써서 드렸더니 한달후쯤 문예지를 실렸어요. 그게 호평을 받아가지고 계속해서 쓰게 됐습니다. 네.고건도 어떻게 수필을 쓰시게 되었나 그 데뷰 얘기가 되겠습니다.

-그래 어떠세요? 글 써보시고 그림 그려보시니까 다 어렵죠?
다 어렵지요.

-오늘 또 얘기도 아주 재밌게 해주셨습니다. 세가지 전부 아주 재밌게 해주신 셈인데요. 고맙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입력일 : 2007.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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