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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가 강선영 편 - “열 다섯에 본격적으로 데뷔”
무용가 강선영 편
“열 다섯에 본격적으로 데뷔”
1967.03.23 방송
‘나의 데뷰’는 가수, 영화배우, 스포츠 선수에서 시인, 화가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의 저명인사들을 초청해서 데뷰시절의 숨은 얘기를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 천리 길도 한 걸음 부터, 예로부터 이런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만 누구나 화려하고 대성한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가슴 설레이며 등장하던 첫 무대가 있습니다. 예술, 문화, 연예, 스포츠 등 각계 각층의 저명 인사들을 초빙해서 그 분들의 데뷰 시절의 얘기를 국내외 가요와 함께 들어보는 이 시간, 오늘은 과연 어떤 분을 모셨을까요.

- 안녕 하십니까. 나의 데뷰 꼭 열 다섯번째 시간이 됩니다. 오늘은 여자 분으로 무용가 한 분을 모셨습니다.

- 안녕 하세요?

- 네. 누구신지 모르실거에요.

- 강선영 입니다.

- 네. 아주 무용으로 단련이 된 아름다운 몸매를 보여드리지 못하는 것이 유감 입니다. 음성도 아주 아름다우신데요. 오래되신 관록이 몸에 붙었다 뭐 이런 말들 하잖아요? 각 부문 에서요. 어떻게 그런 말을 쓸 수 있을런지. 얼마 오래 되셨어요?

- 네. 무용 생활은 오래 됐어요. 시작 한지는 뭐 25년이 넘었다고 해도 되겠지요.

- 네. 그러면은 거의 뭐 국민하교 때 부터 이제 소질이 보인다던가 뭐 이런 말 많이 들으셨겠네요.

- 네. 제가 무용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결국 국민학교 학예회 때 선생님 한테 인정이 돼가지고 선생님이 무용을 했으면 좋겠다 하는데서 여학교 들어가가지고 시작했죠.

- 네. 국민학교 때 부터 거의 한 셈이 되겠죠?

- 그렇죠.

- 네. 그 때는 뭐 과외로 돈을 내고 배운다던가 그런게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 그건 없었어요. 학교에서는 뭐 그대로 지금 같이 무용과가 있다던지 이런것도 없고, 그러니까 학교에 들어가서 무용 연구소를 다녔죠.

- 아 무용 연구소를 다니고. 그럼 학교에서도 인제 여러가지 활동 그 때에도 여고시절에는 활동을 할 일이 많으셨겠죠? 학교에서.

- 근데 그 뭐 그 때는 뭐 학예회 라던지 그 무슨 행사 라던지 그런데 별로 뭐 한국 무용이 많이 저기 되진 않어요. 또 제가 그 때 다닐 때만 해도 뭐 그렇게 무용이 한국 무용을 가정에서 뭐 환영해서 가르치고 할 때도 아니니까.

- 네. 그 얘기 들으니까 생각 나는데 정말 무용 뿐이 아니라 그 땐 여자들이 하여튼 나선다는 것 만으로도 굉장히 제제를 받았을 것 같은데요. 참 애로가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 네. 제가 무용소에 들어가고 한성준 씨 무용 연구소에 입소 하고 나서 저희 어머니가 그 때 혼자 계실 땐데 할아버지께서 노하셔가지구요 어머니를 시골집에서 서울로 쫒아 보내신 일도 있어요.

- 네.

- 그래도 이렇게 뭐 어머니 하고 나 하고 전대 나가서 이렇게 지금 무용을 하고 있습니다.

- 네. 어머님 지금 계세요?

- 네.

- 네. 그러면은 그 때 얼마나 잘 했었는가 지금도 가끔 옛 얘기 처럼 하시겠네요.

- 뭐 잘 했다는거 보다두요. 선생님 한테 딴 사람 보다는 조금 귀여움을 받았다고 해둘까요?

- 네. 어떻게 해서 무용을 하시게 됐나 얘기를 들어 봤는데 그 때 이제 어떤 작품에 어떻게 출연을 하셨는지 그거 음악 하나 지금 준비가 돼있는데요. 들어보고 또 얘기 들어보죠.

- 네.

- 이 시스터즈가 불러주는 `서울의 아가씨` 입니다.

♬ 서울의 아가씨 - 이 시스터즈

- 그러니까 인제 이 국민학교 때 학예회 때 부터 뭐 그 무용에 재질이 보이긴 했지만은 이제 여러가지 그 난점을 물리치고, 소위 아주 본격적인 그런 데뷰가 있었을텐데 그 때가 이제 언제쯤 이었을까요.

- 그 때가 그러니까 열 다섯 적 엔가 봐요.

- 네. 그러니까 무용을 해야 되겠다 이걸 결심한 훨씬 후가 되겠죠? 그렇게 되면은.

- 그 때가 아마 연구소 입소한 때가 무용을 하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 일거에요.

- 네. 열다섯 이면은 굉장히 어린나이 아니에요? 여고

- 그쵸. 2학년.

- 네. 그 때 중학교.

- 네.

- 그럴 때에 무대라면은 이제 아주 그

- 무대는 제가 선 것이 그러니까 한 연구소에 입소 해가지고 3년 만에 부민관에 섰는데 선생님 발표회 작품 발표회? 지금으로는 신작 발표회 때 제가 그 연구생으로 섰었죠.

- 네. 그것이 인제 열 다섯 그 전

- 그 후죠.

- 그 후요.

- 네. 한 3년 후 입소 해가지고 연구소 입소 해가지고 한 3년 후죠.

- 네. 그 때에 출연 하셨던 작품을 아마 기억을 하고 누구든지 기억 할거에요. 처음에 자기가

- 네. 제가 춘 춤이 그 때 학춤, 그 학춤이 있어요. 한 선생님의 유명한 학춤이 있는데 거기에 새끼 학을 했어요. 그래서 그 전체 털 이거든요. 근데 여름이니까 그 털을 입고 나가니까 안 추다가 처음 해보니깐요 객석을 보니까 막 캄캄한데 순서를 다 잊어버렸어요. 덥긴 하고.

- 네.

- 눈 하고 숨 쉬는 입만 내 놓고 구부리니까 말이죠. 객석도 안 보이고 무대도 안 보이고 아무것도 안 보여요.

- 원래는 보이게 돼 있는 거죠.

- 그렇죠. 물론 보이게 돼 있는 거죠. 근데 순서를 다 잊어버려가지고 그대로 그냥 그 큰 학, 말하자면 아버지 학 이지요.

- 네.

- 엄마 하고 아버지 학인데 그 학만 따라 다니다 나와가지고 선생님 한테 걱정을 들은 적이 있어요.

- 그 무대 위에 서 셨던 그 시간이 얼마나 됐었던가요?

- 그게 그러니까 5분 동안이죠. 5분 동안인데 처음서 부터 끝까지 생각이 하나도 안 나요. 연습은 한 3개월 해가지고 나갔는데요.

- 네.

- 처음 무대 라는게 좋다고도 하지만은 참 제일 어려운게 첫 무대에요.

- 네. 아마 그게 정상적인 건지도 모르죠.

- 글쎄요.

- 선생님이 그 제자들을 가르치고 보람을 느꼈다 그런 말을 그 때는 하실 수가 없었겠네요.

- 그렇죠. 지금도 가끔가다 제자들 한테 그런 얘길 해요. 첫 무대 나가는 사람 한테는 무대를 무서워 하지 말라는 애기를. 겁에 질려서 그랬죠. 그 때는.

- 그게 인제 나중에 큰 교훈이 되기도 하겠지요. 노래 또 하나 들어 봅니다. 박형준 씨가 불러주는 `나 홀로 있어도`

♬ 나 홀로 있어도 - 박형준

- 작년 이던가요? 제작년 이던가요. 그 서울시 문화상 까지 타신 강 선생님을 그 때 그 당시에 그 아버지 학을 아주 우둔하게 따라 다니던 그 소녀라고는 아마 기억을 하는 분이 별로 없을 거에요. 근데 그 연글 하시는 분도 그렇고 그 관객이 잘 눈치를 못 채도록 그 당시 그 당시 넘어가야 되는데 아마 그 때에 관객들은 잘 몰랐겠죠? 선생님 자신이 그렇게 생각을 하시는 거죠.

- 몰랐을 테지요. 네. 그 그래도 선생님 한테 인제 들어가서 걱정 듣고 나서 제가 생각 할 때는 역시 무대는 그렇게 무서워서는 안되나 보다 하는 그런 그 제 자신도 그렇게 생각 했고, 선생님도 또 그걸 강조 하시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무대 나가면 아무도 없다는 걸 먼저 인식 하느라고 애써요.

- 네. 저희도 마이크 앞에 서 돼, 서기 전에는 긴장하고 무서워 하지만 일단 서면은 자신있게 해야 된다 뭐 그런 얘기 선배님들이 하시는데 아마 비슷할 거 같아요. 뭐 강 선생님 아주 바쁘신걸로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 하고 또 일본하고 뭐 거의 반반 말수를 트셔야 되겠네요.

- 네.

- 일본에 연구소 가지고 계시다구요.

- 네. 동경하고 테판에 가지고 있는데요. 뭐 그래도 한국에 더 주로 있어요.

- 그러면은 인제 일본 같은데 나가시고 또 외국에도 오가시고 하시게 되면은 그 훨씬 전에 외국 무대에 데뷰를 하신 일이 있으실텐데요. 그 때가.

- 네. 그러니까 그 때가 해방 아마 3,4년 전 되겠죠? 그 때 십 몇년이라고 기억하는데요. 그 때 히비야 공예단 이라고 거기서 그 때 제가 처음 데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 네.

- 그 때 공연을 할 적에 이런 일이 하나 있었어요. 제가 무용을 하는데 그 마이크 이렇게 나오고 들어가고 그러는 저기가 있잖아요? 무대 안에. 그것이 아마 잘못해서 열렸던가 봐요. 그 문이. 조그만한게. 다리가 거기 빠졌었어요.

- 네.

- 뛰면서. 농학인가 무슨 춤을 하다 뛰다가 다리가 하나 그리 빠졌는데 그대로 뛰느라고 그냥 확 잡아 뺐어요 다리를. 그러니까 다리가 다 벗겨졌을거 아니에요?

- 네. 옷은 의상은 어떤거 였었는데요.

- 의상이 아마 바지였던가 봐요.

- 네. 그러니깐 다 이게 살이 벗겨져 가지구요. 그래도 그걸 다 끝 마쳤어요. 무대는 그대로. 그러고 화장실을 들어가 보니까 막 분장실을 들어가 보니까 다리가 막 다 벗겨졌어요. 그래가지고 한 보름을 무대를 못 섰죠. 다리가 부어서. 그래서 동경에 처음 데뷰하는 그런 에피소드가 있어서 아주 기억에 남습니다.

- 긴장 하셨기 때문에 아마 아픈것도 모르셨던 것 같아요.

- 네.

- 외국 무대에 서 셨을 때는 이제 훨씬 그 무용가로서의 그 연륜도 많이 지니신 후 였겠는데 그래도 다르겠죠 또.

- 그러믄요. 그런데 이제 그거 보다도 무대 그 때는 저 자기 책임감 이겠죠. 그 자기가 거기서 쉰다던지 하면은 그 작품이 안되겠다 하는데서 그 저 자기 책임감에서 그대로 췄을 거에요. 끝까지. 다친걸 알면서도.

- 오늘 끝으로 준비한 노래는 `왜 그런지` 성재희 씨가 불러주는 곡이 되겠습니다.

♬ 왜 그런지 - 성재희

- 선생님이 처음 데뷰 하실 때는 그 어른 되시는 분들의 반대도 있었고 그런 말씀 이셨지만은 지금 와서는 연구소 그 열의 굉장하죠? 그 때 하고.

- 네. 지금은 뭐 학교에도 각 대학에 다 무용과가 있는 현장 이니깐요.

- 아주 바라보시기가 기쁘시겠습니다.

- 네.

- 일본에 언제 또 가세요.

- 새 달 중순경에 갈 것 같아요.

- 네. 한달 후에는 그럼 못 뵙게 되겠네요.

- 잠깐 갔다 올걸이요 뭐.

- 네. 고맙습니다 오늘. 안녕히 다녀 오십시오.

- 감사 합니다.


코티 벌꿀비누 분포, 동산유지 제공 나의 데뷰. 오늘은 그 열 다섯번째 시간으로 무용가 강선영 인사를 모시고 얘기와 음악을 들어봤습니다.

(입력일 : 2007.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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