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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이해랑 편 - 가친의 명성에 대한 반발로 시작한 연극
연출가 이해랑 편
가친의 명성에 대한 반발로 시작한 연극
1967.03.13 방송
‘나의 데뷰’는 가수, 영화배우, 스포츠 선수에서 시인, 화가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의 저명인사들을 초청해서 데뷰시절의 숨은 얘기를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 천리길도 한 걸음 부터, 예로부터 이런 격언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만은 화려하고 대성한 오늘이 있기에는 가슴 설레이며 등장하던 첫 무대가 있습니다. 예술, 문화, 연예, 스포츠 등 각계의 저명인사들을 초빙해서 데뷰 시절의 얘기를 청취자 여러분이 보내주신 엽서의 신청곡과 함께 들어보는 이 시간 그럼 오늘은 어느 분을 모셨을까요.

- 여러분 안녕 하십니까. 김상희 입니다. 오늘은 나의 데뷰 일곱번째 시간인데요. 연극 연출가 이시며 예총회 회장이신

- 이해랑 입니다.

- 네. 오늘 나와 주셔서 감사 합니다. 이해랑 씨 하면은 연극하곤 아주 끊을 수 없는 사이라고 이렇게 알고 있는데요. 아 연극을 하시게 된 동기라도 있었는지 여쭤보고 싶군요.

- 네. 뭐 동기라는거는 우연일 경우도 많죠. 그래서 제가 연극을 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여러번 여러군데서 얘기를 한거 같아요.

- 네.

- 그런데 인제 그 동기라는건 반드시 하나만 일 수 없으니 또 다른 지금 생각나는 제가 연극을 하게 된 동기에는 이런게 있죠. 저희 가친이 부산서 병원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가친의 함자로 병원을 내고 있었거든요.

- 네.

- 근데 제가 중학을 졸업 맞고 부산에 가 있으면은 친구들 하고 인제 어디 술집을 가던지 말이죠 놀러 가면은 나를 인사 시키는데 내 이름을 불러서 소개를 하지 않고, 우리 가친의 이름을 불러서 소개를 해요. 아무아무개의 자손이다. 아무아무개의 아들이다. 이렇게 하니까는 그런 그 우리 가친에 대한 명성의 반발이라 그럴까요? 그런 것에서 그때 뭐 손쉽게 제가 털 수 있었던 것도 연극 이었습니다. 그래서 연극을 처음 시작은 일본서 일본대학 연극과를 다니면서요 연극을 배우기 시작한 후 부터 였습니다. 그러데 그 연극을 공부한 후 저는 그 때 인제 처음에는 가친 이상의 명예라 그럴까 그런걸 생각 했었는데 연극을 공부한 후 부터는 그것이 참 그릇된 생각이다 이 연극이란 그런 그 명성을 날리기 위해서 하는게 아니고 개인의 전체 속에 연극이라는 그 전체의 예술적인 그 분위기라 그럴까요? 같이 그 연극을 만드는 속에서 자기가 살아야 한다 하는것을 배웠습니다.

- 네. 그럼 지금서부터 몇 년 전의 얘기가 될까요?

- 한 삼십여년전 얘기가 되겠군요.

- 네. 그럼 연극 배우로서 첫 번째 무대는?

- 네. 그것도 일본에서 저 그 유치진 선생의 춘향전을 할 때 였었는데 그 때 저는 저... 그 때 그 김동훈 군이 이 도령을 했어요 지금. 그리고 저는 그 때 농부 하고 역졸하고 뭐 그런 아주 그냥 요새 엑스트라 라고 그럴까요 그런걸 했는데. 그것도 잘 못했어요. 그 때 지금 기억나는 생각이 뭐냐면은 처음 무대를 서니까요 앞이 캄캄 하더구만요. 보이질 않아요.

- 네.

- 무대에 불은 켜 놨죠 조명은 비췄는데도 무대가 보이질 않구요. 그러고 또 무대에 나가니까 객석은 불을 꺼 놓지 않았습니까 더욱 깜깜해요.

- 네.

- 아주 무슨 저 이 참 그냥 어떤 함정에 빠진것 같아요. 그러고 상대의 소리가 들리지 않더구만요.

- 네.

- 딴 사람이 대사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말을 하는 소리도. 그래 이 뭐라고 표현을 할까요. 하여간 모든 일상적이 그 감각이 무대에 서니깐 마비가 됐다고 할까요? 그런것이 지금 생각 나는 구만요. 그러고는 인제 일년 후에 제가 동경 학생 예술제에서 일년만에 한번씩 했습니다.

- 네.

- 그 후 일년에는 어떻게 됐는지 제가 주연을 했어요.

- 네.

- 그것이 인제 번역극인데 그 때 유징오닐의 `지평선 저 넘어` 라는 거요.

- 네.

- 거기 동생의 역, 로버트의 역을 했습니다.

- 네.

- 그 때 인제 또 생각나는 것이 공연 전날 밤이죠.

- 네.

- 전날 밤 도무지 긴장하고 흥분해서 잠을 못 잤어요. 그래가지고 하룻밤새 수면제를 먹고 아무리 잠을 이룰라고 해도 잠이 오지 않아서 고생했던 그런 생각이 납니다.

- 지금 생각 하시면은 무척 아주 그리워지기도 한 때 였었죠?

- 네. 그야 뭐 지금 생각하니까 그 가소롭다 그럴까요? 우습다 그럴까요?

- 아 참, 선생님의 고향은 어디세요?

- 저 서울 이에요.

- 서울 이세요? 그러면 고향을 느끼실 수가 없겠네요?

- 네. 지금 뭐 저 뭡니까 도나문 앞에서 났어요.

- 네.

- 그래서 지금도 도나문 앞을 이렇게 지나갈 적 마다 참 옛일이 생각 납니다.

- 네. 그럼 오늘 우리 애청자 여러분들을 위해서 선생님께서 곡을 하나 선사해 주시겠습니까? 제일 좋아 하시는 곡으로.

- 네. 저 그 `고향의 봄` 이요.

- 네. `고향의 봄` 저희들이 마련한 것은 이 시스터즈 것이 있는데 제가 한번 골라 보지요.

- 아, 네.

♬ 고향의 봄 - 이 시스터즈

- 네. 선생님이 지금은 연기를 하시게 된 동기를 말씀해 주셨는데요. 지금 저희들 생각에는 연출가 이해랑 씨, 이렇게 뇌리에 박혀 있는거 같아요. 그래서 연출은 언제부터 시작을 하셨는지.

- 네. 그거는 그게 정확히는 그러니까 해방 직후에 제가 한거 같아요. 해방 후죠. 직후는 아니겠습니다. 몇 해 갔는데 그 때 그 지금 영화에도 나와서 지금 인기가 있고 감독도 하는 친구 최무룡 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 네네.

- 그 최무룡 군이 그 때 중앙대학 재학 시대인데 그 때 거기서 `햄릿` 을 한다구요 셰익스피어의.

- 네.

- 그래서 절 보고 그 학생극이죠 그걸 연출해 달라고 그래서 그걸 갖다가 제가 처음 연출을 했습니다. 근데 그건 학생극이었었구요. 그리고 저는 인제 그러니까 직업 극단에서는 연출한 것은 훨씬 뒤에요.

- 네.

- 그 후 인제 6·25 사변이 일어나가지고 연출하던 친구들이 많이 참 없어지고 그래서 연출가가 아쉬웠었죠. 그 때 인제 그러면은 우리 내부에서 연출가를 마련해야 할텐데 그 때 마침 피난 가가지구서 심야극단에서 그것도 또 우연이라면 우연이겠습니다만은 셰익스피어의 `햄릿` 을 공연을 하게 됐어요.

- 네.

- 그러니까 그 때는 그렇게 연습이 많지 않았습니다. 또 연출가가 연출 플랜을 세울 그런 그 기한도 적었죠.

- 네.

- 그런데 이제 그 전 까지는 쭉 유치진 선생이 연출을 봐 오셨는데 이제 그 연습 시일도 짧고 그러니까 그 전에 연출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어떠냐 그렇게 얘기가 돼서 제가 또 `햄릿` 의 연출의 맡았습니다. 그러니까 둘 다 처음 연출 한것이 학생극에서도 `햄릿` 이었었고, 어떤 직업 극단에서도 `햄릿` 이었었습니다.

- 네.

- 어떻게 뭐 좀 인연이 있는거 같으네요.

- 네.

- 근데, 다른 연출자 하곤 달리 선생님은 무대에서 연기까지 하시면서 또 연출을 하시지 않습니까? 무척 힘이 드실걸로 아는데.

- 네. 그 때도 또 연길 하면서 했죠. 그러니까 제가 인제 원채 연기자 출신이니까요. 제가 연기를 안할 수 없고 그래서 인제 겸해서 했는데 사실은 그러지 말아야 겠죠. 연출가는 연출만 해야지 말이죠.

- 네.

- 그 연출가가 또 연기를 하면 그러면은 내가 하는 연기는 누가 연출을 하나 그럴거거든요. 그래서 인제 저는 똑똑한 그럴 경우에는 똑똑한 조연출이 꼭 반드시 거울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 네. 감사 합니다. 그러면은 여기 지금 엽서가 많이 와있는데요. 선생님이 한 장만 뽑아 주세요.

- 네.

- 어느게 나왔는지요? 읽어 주시겠습니까?

- 제가요?

- 네.

- 서울 용산구 용산동 2가 8 이로구만요.

- 네. 김광수 씨죠?

- 김광수 씬가요? 네. 아이고 글씨가 가늘군요.

- 네. 아주 우리 나의 데뷰를 무척 아껴주시는 분 같습니다. 근데 굉장히 무안하게도 제 노래를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려야 되겠군요.

- 김상희 씨가 부른

- 네. `처음 데이트` 보내 드리겠습니다.

♬ 처음 데이트 - 김상희

- 네. 오늘 일곱번째 시간이라서 그런지 이 선생님에겐 특히 여쭤볼게 굉장히 많은거 같은데요. 한 2년 전 이었었던가요? `밤으로의 긴 여로` 에서 연출하고 또 연기 이렇게 겸해서 하셨는데요.

- 아 네.

- 그 이후로는 무대에서 잘 뵐수가 없었던거 같애요. 물론 요 근래에 신문에서 예총회장으로 당선 하셔서 무척 바쁘신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곤 하지만 다시 연기자로서 무대에 서실 생각은 없으세요?

- 왜요. 저는 그 뭐 앞으로 또 제가 어떤일을 하던간에요. 제가 처음 시작 한것이 연기자 배우 생활이기 때문에요. 그 배우 생활에 대한 그 동경 이랄까 향수를 잊어 버릴 수가 없어요.

- 네.

- 또 사실 지금 현재 연출을 하고 있지만 연출 이라는건 정신적인 배웁니다.

- 네.

- 그러나 그 정신적인거 보다는 몸을 담궈서 하는것이 훨씬 더 느낌이 많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 더더군다나 무대에 선 배우가요 관객을 상대로 관객과의 그 극적 정서를 주고 받을적에 그 긴장이라는 것은 그건 여느 예술가들은 도무지 맛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 네.

- 저는 그것을 잊을 수가 없어요 아직.

- 네.

- 그러니까 요새 뭐 또 뭐 바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또 연출을 하면서 또 제가 연출을 안하더래도 누가 인제 젊은 친구들 참한 친구가 좋은 연극 할 적에 저는 그 무대에 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네. 그럼 저희들도 기다려도 괜찮겠죠?

- 사실 말이지요. 이 나이들어서 무대에 서서 연기를 해야 참 인생의 떫은 맛, 인생의 그 참 뭡니까 이렇게 그 그 얕은 맛이 아니고 그 뭐 삶은것 같은 아주 곰심한 맛이 말이지요. 그게 다 나이 든 사람들이 연기를 해야 나오지 않겠습니까?

- 네. 아이 저희들도 기대를 하겠습니다. 아 참, 선생님 말씀 듣다 보니까 오늘도 엽서 한 장을 또 못 고른거 같습니다. 매일 저희 나의 데뷰 시간은 청취자로부터 온 엽서 두 장을 고르기로 돼있거든요? 근데 오늘은 제가 또 선생님의 말씀이 너무 연극을 원하시는 분이나 또 선생님을 사랑하시는 팬들에게 전해주다 보니까는 꼭 시간이 모자라는것 같군요. 다음 여러분들에게 다시 보내드리겠어요. 그리고 나의 데뷰 담당자 앞으로 여러분들께서 듣고 싶으신 음악이나 또는 가수의 노래 이렇게 적어서 보내 주시면 들려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 내일 약속 하면서 오늘 이해랑 씨와 이렇게 안녕을 고하겠습니다. 선생님 감사 합니다.

- 네. 감사 합니다.

(입력일 : 2007.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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