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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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논픽션 이화자의 일생
제24회 - “나가 좋아서 키운 아들인데 왜 나를 상을 준댜?”
제24회
“나가 좋아서 키운 아들인데 왜 나를 상을 준댜?”
1980.05.31 방송
제2회 동아 햇님 어린이 보호상 대상 수상 특집 논픽션 드라마. 어려운 가운데서도 14명의 버려진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시켜 제2회 동아 햇님 어린이 보호상 대상을 수상한 이옥남 여사(일명:이화자). 어린시절 일본 서커스단에서 당했던 설움부터 귀국 후 아이들을 기르기까지 이 여사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논픽션 드라마.
극본 배명숙, 연출안평선 스물 네번재 (마지막회)


- 박 경장님.
- 아, 아니 아주머니 아니신게라우?
- 좀 들어가도 되는기라우?
- 아이 그럼요. 저 어서 들어오시오.
- 안 바쁘신가 모르겄네요.
- 아유 점심시간인디요. 뭐.
- 예.
- 아이 근데 아주머니가 여기까진 왠일이신가요? 아이 뭔일 있나요?
- 아이고 아니여라우. 아무일 없어라우.
- 아 저 아무튼 좀 앉으시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쯤은 내 한번 들러볼까 했구만요. 어떻게 지내시나 하고.
- 고맙기도 하시제. 외딴 데라고 꼭 한번씩 들러가시고. 참말로 박 경장님 신세를 워떻게 다 갚지요?
- 아이고 참 아주머니도. 아 왜 그걸 신세라고 생각 하세요. 아 오가는 정을 가지고.
- 워쨌거나 박 경장님이 계셔서 난 늘 든든 허다구요. 오늘 온 것도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왔어라우.
- 아 무슨 부탁인디요?
- 아 저 이거 돈 인디요.
- 돈 이요? 아니 아주머니가 돈이 어디 있어서 돈을 다 가지고 계신게라우?
- 아휴 그거 내 돈 아니구먼요.
- 그럼요?
- 아들이 군대 감서 나한테 주고 간 돈들 이어요. 5만원 주고 간 놈도 있고, 10만원 주고 간 놈도 있고, 그 동안 객지 나가서 번 돈들 이라고들 하네요.
- 이이. 효자들이구만요. 정말.
- 그랑게 말이여라우.
- 아니 근디, 와 이것을 나한테 가지고 오셨지요?
- 그 돈을 좀 맡아 주시라고요.
- 지가요?
- 읍내 나가시는 길 있으믄 통장을 좀 만들어 주시라구요. 5만원 짜리, 10만원 짜리, 각각 그 이름하고 돈하고 거기 적어 놨구만요.
- 예. 각각 통장을 따로 만들라고요?
- 야. 그동안 객지에들 나가서 제 힘껏들 번 돈인데 통장으로 만들어 놨다가 군대 갔다 오면 줄랍니다. 아 저그는 날 보고 살림에 보태 쓰라고 갖다 주더구만서도 나가 어떻게 그걸 쓰겄소. 그게 어떤 돈들인데.
- 아이 그래서요.
- 작든 많든 은행에 넣어노면 3년 후에는 그래도 쪼깨 안 불어 나겄소?
- 그렇지요.
- 근대 갔다 오면 또 맨 손인디 아 그거라도 밑천삼아 살믄 그래도 조깨 안 수월 하겄소.
- 알겄습니다. 무슨 말씀 이신지.
- 통장 맨들어서 박 경장님이 맡아가지고 계시다가 그것들 오면 하나씩 내 주시쇼.
- 참. 하여튼 대단 하십니다. 그렇게 해 드리지요. 뭐 어려운 일도 아니구요.


- 아 요리들 오십시오. 새참 내왔응께 여그 먹고 합시다.
- 아 오라고 안혀도 오요. 새참 내오는거 보고 벌써 배가 딱 보채는디 오라고 할 때 기다리고 있겄소?
- 오뉴월 긴긴 해에 참 먹는 맛도 없으면 워떻게 일을 한다요?
- 아 행복이 엄니도 오소.
- 예. 아저씨.
- 행복이랑은 저희들끼리 놈서 안 우요? 외딴데 아무도 없어서.
- 그래서 개 한마리 얻어다 놨구만요. 아들은 개를 좋아하니께 같이 놀기도 하고 집도 보라구요.
- 행복이가 벌써 2학년 이제잉?
- 야. 희옥이는 1학년 이고.
- 아이고 참 세월 빠르제. 갓난쟁이 데불고 이 골목 저 골목 댕김서 울어쌌더니.
- 그러게 말이여라우.
- 형들은 그 제대해 갖고 서울로 갔담서?
- 야. 자리 잡히는 데로 한번 올 거 구만요.
- 행복이 엄니도 인자 고생 다 했지?
- 행복이 중학교 보내고 고등학교 보내고 공부만 시키면 뭘 더 바라겄소?
- 아이고. 지 형들이 많으니께 뭐 공부는 워떻게 안 시키겄어?
- 행복이 공부는 나가 시킬라요. 아 와 지 형들이 시키요. 지 형들도 장가가고 아들 낳고 살아야지 이자.
- 하지만도 자네가 무슨 수로 공부를 시키겄소.
- 아 시방 돈 안 버요. 이 품팔이. 아 이거 나 행복이 공부 시킬려고 하는거요. 시방. 아 먹는거야 이자 밭에서 나는 곡식 가지고도 우리 세 식구는 먹고 지낸다구요.
- 아이고 하지만도 거 품팔이 고거이 몇 푼이나 된다고.
- 티끌 모아 태산 이라고요.
- 아이고 저런 억척스런 여편네.
- 아주머니. 아주머니.
- 아니 저 박 경장님 아니여.
- 저건 또 뉘기여? 박 경장이 뉘기를 저 업고 오잖여?
- 업고 오는게 누구여. 박 경장님.
- 영일이여요. 영일이.
- 뭐여? 영일이?
- 엄니.
- 아 아니.
- 아이 왜그려. 아니 어찌 그런댜. 어찌 그래 업혔냐. 으이?


- 그 그려서.
- 그려서 일년 봉급 10만원 저금해 놨던거이 은행에서 찾아가지고 버스를 탔는디.
- 아 그것을 노린 그 소매치기가 있었던가봐요.
- 소매치기?
- 소매치기가 아니고 바로 강도라구요. 버스 갈아 탈라고 내렸는디 내 뒤를 바짝 따라오더니 골목으로 끌고 가선 날 그냥 잉.
- 아이고 그것들이 널 쳤구나. 그려서 업혀 왔구나. 잉.
- 아 어떻게 맞았는지 가슴팍이 아파서 제대로 걷지를 못하잖여. 세 놈이 그냥 한꺼번에 달겨들어서 때린 모양이여.
- 세상에 모진 놈들도 있지. 아 어디 털어 먹을게 없어서 이 불쌍한 것 돈을 털어. 돈을 털면 털었지 사람을 어찌 쳐.
- 엄니, 그 돈 그 돈 엄니 갖다 드릴려고 모은 돈 인디.
- 이 자슥이 누가 널 보고 돈 벌어다 달라드냐. 이? 아이고 그나저나 워디가 월매나 아픈겨. 아 가슴을 맞았디야? 아 워디 보자.
- 좀 있으면 괜찮아 질거라요. 걱정 마십시요.
- 시상에 뼈는 안 상했는지 모르겄다.
- 뼈는 괜찮은 게비요.
- 영일아, 잊어버려라. 돈 생각은 하덜 말고 따신데 누워 몸조리나 혀.
- 어떻게 잊어요. 그걸 그냥.
- 잊어야지 워쩌냐. 세상엔 나쁜 사람도 많은겨. 하지만도 악을 악으로 갚으면 안되는겨. 잉. 그럴 수록에 마음 단단히 먹고 올바르게 살아야지. 일년 안 번 셈 치고 마음 편케 가져. 넌 젊은께 또 벌면 되잖여. 잉.
- 엄니 말씀이 옳어.
- 내 말 알아듣제. 영일이?
- 예. 엄니.
- 불쌍한 자식.


- 엄니. 엄니.
- 와그냐.
- 엄니, 경수 성이 왔어.
- 경수가?
- 야. 색시하고 같이 왔구만이라. 색시 하구요.
- 그려. 온다고 하드니 정말 왔구먼. 언능 가보자. 내 며느리 감이 왔다니.


- 자아, 인자 신랑 각시 맞절 하라고.
- 옳지. 옳지. 아이고 절도 얌전케도 하지.
- 그라면은 인자 느그 엄니한테 절 혀.
- 아이구 아이구 저 할망구 우네 그랴. 울어.
- 아 울지 않고. 며느리를 보는디 눈물이 안나겄소?
- 엄니, 절 받으시지요.
- 어머님 절 받으세요.
- 경수야.
- 엄니, 워째 자꾸 우시쇼.
- 좋기도 허고, 찬물 떠 놓고 혼례를 올리니 그러고도 절을 받을 면목이 없고.
- 엄니, 그런 말씀 마시쇼. 지가 사람 구실 하게 된게 다 누구 덕인게라. 다 엄니 덕이지라우. 엄니가 날 거두어 주시지 않았음사 지가 사람꼴이 됐겄는감요. 아 장가나 가 보겠어라우.
- 아따 그려. 경수가 맞는 말만 골라서 헌다.
- 그런디도 지가 엄니 모시지도 못하고 또 객지 나가 살아야 된게 지야말로 면목 없어라우. 그 대신 설, 추석엔 꼭꼭 빠지지 않고 찾아 뵐 거구만요. 자주는 못 와두요.
- 그려. 그려.
- 이 사람 한테도 엄니 얘기 다 햇어라.
- 워디서 살던지 둘이 합심혀서 잘만 살어. 나도 이젠 한시름 놨다. 혼자들 객지에 나가 있으니께 밤낮없이 걱정이 끊일 날이 없더니만 인제 둘이니께 내 느들 걱정 쪼깨 덜 해도 되겄어. 인제 기호도 곧 장가 든다고 허고, 창준이는 나가 물색해 놨고 그 밑에 놈들도 금방 갈거고.
- 오래만 사세요. 어머니.
- 그려. 고맙구먼.
- 내일 행복이 중학교 입학식이라고 혔지라?
- 그랴. 우리 내일 같이 입학식에 가자꾸나. 잉?
- 엄니, 우리집에 중학생이 다 나오고 우리도 이만함사 성공 했지라.
- 암만 성공했고 말고. 고 많은 자슥들 하나 삐뚤어지게 나간 자슥 없이 제 앞가림 다 하고 중학생도 나왔고, 고러자니 니 엄니 얼굴에 느는이 주름살이다. 니 엄니 쪼까 보그라. 꼭 쪼그라진 대추 안 같냐.
- 아 그런 말씀 마시쇼. 그려도 나는 시상에서 우리 엄니가 제일 이뻐 보이지라.
- 아 요러니 가족 없는 사람 서러워서 못 산다고 그러제이.


- 아유 고추도 곱기도 혀라. 워쩌면 색깔이 요롷게도 고울까요 엄니. 열리기도 많이도 열리고.
- 올 고추 농사는 제법 괜찮은거 같다만 원채 작게 심가서.
- 저쪽 굴 속도 딸까요. 엄니?
- 고추는 내가 딸 틴께 넌 가서 행복이 배고플라 오기전에 저녁이나 혀.
- 아직 저녁 때 멀었는디요?
- 아 그래도 학교 갔다오면 월매나 배고프겄냐. 공부도 힘들다는디.
- 아 참, 엄니.
- 와.
- 행복이 오빠 고등학교 안 가겄다고 하데요?
- 뭐여? 고등학교를 안 간다고?
- 야.
- 어째. 아 어째 안간댜. 으잉?
- 고등하교 갈 형편이나 돼요. 어디?
- 형편이 안 된다고?
- 중학교 그것도 과분하제 뭐.
- 아 그려도 고등학교 까정 보낼껴. 꼭 보내고 말고. 그거 하나는 워디까정 고등학교 까정은 보내기로 작정혔어 나가.
-글씨. 뭘로 보내냐니께요.
- 느그들은 그런 걱정 안해도 돼야.


- 생각을 혀보세요. 엄니. 엄니 나이 올해 예순 셋이에요. 환갑 진갑 다 지내셨으께요.
- 그려도 아직 월매든지 일할 수가 있어.
- 고건 엄니가 잘못 생각하고 계신거구만요.
- 잘못 생각하다니.
- 아 저저 그 말씀은 지가 드리지요. 행복이 말이 늙은 엄니 고생시켜 가면서 고등학교를 안 가도 기술 중학교를 나왔으니께 저 서울 공장에 취직을 해 가지고 야간 고등학교에 가겠답니다.
- 서울? 공장에 취직혀서?
- 야. 학교서 교장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데요. 기능공으로요.
- 그랴?
- 아 애가 워낙 착실 하니께요.
- 그랴.
- 엄니, 지가 하자는데로 혀요. 그게 좋아요.
- 아 그럼 서울에는 정수도 있고 기호도 있잖여.
- 그렇기는 햐.
- 나도 그람 서울가서 취직 할까봐요. 엄니.
- 안돼야. 넌 여기 있어. 여기 있다가 참한 사람 나타나면은 시집이나 가면 돼어. 행복이나 느그 오빠들은 남자니께 서울이든 어디든 다 보내지만은 너는 안 돼야.
- 왜요. 요센 여자들도 다들 취직혀서 돈 버는디.
- 글쎄 너는 안 돼야. 여자라는 거는 그저 부모 밑에서 곱게 있다가 시집 가서 애 낳고 사는게 젤로 좋아. 나는 이렇게 살았지만은 너는 나같이 살아서는 안돼는겨.
- 엄니 말씀이 맞어. 희옥이는 살림 사는거나 착실히 배워둬. 그것도 돈 버는거 못지 않게 중요한 거니께.
- 암. 중허고 말고. 여자는 그저 남들 사는거 같이 사는게 좋구만. 인자 조금만 더 크면 그땐 나 가진거 다 해줄틴게. 니가 짐작이나 허겄냐. 애미 가슴에 맺힌 한을. 하지만도 내 후회는 없느니 후회는 없구만.


- 들어 가시래요. 엄니.
- 오냐. 가거든 부디 몸 조심 하고. 잉.
- 야. 엄니도 몸 조심 하세요.
- 오빠, 편지 자주 혀. 잉?
- 그려. 그려.
- 아주머니. 아주머니. 아이구 저 기쁜 소식이 있어요. 아주머니.
- 아니 기쁜 소식 이라니.
- 저 서울 동아일보사 하고 롯데제과에서 말이요. 아주머니 한테 상을 준다는 군요. 상을.
- 상을?


- 참 모를 일이제. 아 나가 좋아서 키운 아들인데 와 신문사에서 나를 상을 준댜. 응?
- 아이고 참 아주머니도. 아주머니가 좋아서 하신 일이지만서도 그것이 세상에 본보기가 되는 훌륭한 일이거든요. 그래서 상을 주는 것이란 말이요. 그래서.
- 난 뭔 말인지 알아 듣지도 못 하갔구먼. 아 그라고 나가 아들을 키웠는지 워쨌는지 신문사 사람들이 워떻게 알고.
- 신문사서 그런 훌륭한 일허신 분들을 찾는다기에 지가 추천서를 올려 보냈지요.


- 이옥남 할머니, 지금 단상으로 올라오고 계십니다.
- 네. 아 얼굴에는 아주 그 주름살이 많으신데요. 어. 아주 그 다소곳한 모습이 참 인상적이죠?


- 엄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계신 거이요. 예?
- 으응? 아이고 여기가 어디냐. 아이고 시방 나가.
- 엄니. 기분이 워떠세요? 상 받으시는 기분이 워떠세요?
- 모르겄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나서 정말이지 별의 별 생각이 다 나네.


난생 처음 가슴에 안아보는 꽃다발에 파뭍혀 만감이 교차 하는데 착잡한 얼굴로 시상대에 앉아있는 그녀 이화자 여사. 내가 좋아서 키운 아이들인데 왜 신문사에서 상을 주냐고 의아해 하던 여인 이화자 여사. 그 순백의 고결함과 겸손함이 있어 오늘도 5월의 하늘은 저렇게 푸르른가. 여사의 그 맑고 투명한 희생정신과 따뜻한 인간애가 있어 어린 싹은 외롭지 않으리라. 이렇게 5월을 가꾸는 손들이 있어 5월은 언제나 푸르고 아름다울 수 있으리라. 우리의 장한 할머니 이화자 여사. 그녀의 여린 가슴에 바치는 동아햇님 어린이 보호 대상. 숨어서 5월을 가꾼 그녀의 손길에 빛이 있으리니.


- 장미자, 장건일, 김태현, 유근옥, 김원진, 이기전, 유명숙, 정경애, 서지원, 장춘순, 전기병, 해설 김규식,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정천모, 주제가 작곡 김학송, 노래 문주란.
제 2회 동아햇님 어린이 보호상 대상수상 특집 논픽션 이화자의 일생
배명숙 극본, 안평선 연출, 스물 네번째 마지막회로 롯데제과에서 보내드렸습니다.

(입력일 : 2007.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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