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본 배명숙, 연출 안평선 스물 두번째.
- 으아앙~ 으아앙~
- 아가. 아가 울지 마라. 아니 누가 이 핏덩이를 내 집 울타리 밑에 놓고 갔을꼬. 아이고. 아이고. 야들아, 아이고 좀 인나거라. 좀 인나.
- 아으 엄니 왜그러시오.
- 아이고 야야 너 좀 인나거라. 아 거기다 이 아그 좀 눕혀야것다. 아가 추워서 새파려.
- 아니 왠 아그요. 잉?
- 아이고 야 나도 모르것다. 아 저 그보다 너 부엌에 나가서 뜨신 물 좀 떠오너라. 아이구 아이고 아니다. 뜨신 물이 있으면 뭘 하것나. 우유가 있나 뭐가 있나. 아이고 시상에 춥고 배고파서 애가 다 죽게 생겼네. 아이고 이를 어쩌면 좋다냐. 아이고 이를 어쩌면 좋아.
- 아이고 시상에. 아이고 아가 얼마나 배를 곯았으면 젖을 빨지도 못하네.
- 아 못 빨면 좀 짜서라도 넣어줘. 애 죽것어.
- 아이고 아니 근데 야는 도데체 누구여.
- 아 글쎄 젖이나 우선 좀 줘.
- 하이고 그려도 죽지 않을려고 빠네. 빨어잉.
- 빨어?
- 참나 살다가 별일을 다 보것네. 아니 꼭두 새벽에 왠 갓난쟁이 데불고 와갔고 젖 좀 주라니. 대체 얘가 누애여.
- 누가 내 집 울타리 밑에 버려 놨더구먼.
- 오늘 새벽에?
- 아 그렇다니께.
- 잉. 옳거니.
- 으잉?
- 그 가시나 애 구만. 그 가시나야.
- 그 가시내?
- 아이 왜 웃 뜸에 애 밴 기집애 하나 있었자녀. 저 바람 나갔고 나갔다가 배 불러가지고 잡혀 온 그 최씨네 딸.
- 어. 그 열아홉살 짜리?
- 그 집 식구들이 어젯밤 야반도주 한거 모르지?
- 야반도주를 혀? 아니 왜.
- 왜는 왜야. 딸년 때문이지. 딸년 데불고 아무도 모르는데 가서 살거라는 소문이 쫙 나돌더니 어젯밤에 그만 날라 버렸더라고잉. 아 애 새끼는 자네 울타리 밑에다 내 뻔지고.
- 아 가면 갔제. 애는 어째 버리고 가.
- 어이고 깜깜하기는. 아 애 새끼 버리고 낯선 땅에 가서 기집애 처녀 시집 보낼라고 버리고 갔지 왜 버리고 가. 여깄으면 그거 어따 치워. 잉? 애 딸린 기집애 워따 치우냐고.
- 어...
- 이제 알것어? 일이 고렇게 된겨. 고렇게.
- 시상에 아무리 그렇더라도 제 자식을 버리다니.
- 엄니. 엄니.
- 아니 어째. 애기 깼냐?
- 막 운단 말이여. 막 울어.
- 응. 아이고 알았다. 가자.
- 으앙~ 으앙~
- 아이고 배가 고픈 모양인데. 또 어디가서 젖 동냥을 한다냐. 아이구 그래. 오냐 오냐. 울지 말어. 울지 마. 아 저 영일아, 엄니 저 마을에 갔다 올게.
- 엄니, 워디 가시오?
- 어 마을에. 아니 어디갔다 오냐. 너.
- 읍네 갔다 오는 길이구만요.
- 아 읍네에는 어째.
- 그냥요.
- 또 일자리 알아보러 갔던 모양이구먼. 정수야.
- 엄니, 나 서울이든 부산이든 워디든지 갈라요.
- 저 그 얘기는 이따 밤에 허자. 우선 애 젖부터 좀 얻어 먹여야겠어.
- 엄니.
- 너 그런 걱정 안해도 돼야.
- 아 엄니가 딱혀서 안그라요. 아 젖이 있나. 우유 살 돈이 있나. 그걸 어떻게 키울라고 그러시냐구요. 일찌감치 고아원에 갖다 주쇼. 그 고생 하지 말고라.
- 고아원?
- 아 고아원에 갖다 주면야 우유 먹여서 키울거 아닌게라우.
- 너 생각 안나냐? 그새 잊었더냐? 고아원 보내 놨더니 열흘도 못 있고 너희들 도망 나왔지? 생각 나자?
- 네. 생각나요. 나고 말구라.
- 근디. 이 젖맥이를 고아원에 갖다 주다니.
- 아이 젖맥인데 뭘 아나요.
- 어이고 이것도 사람이여. 젖만 먹인다고 사는 중 아냐. 엄니가 있어야 하는기여. 엄니가.
- 하지만 엄니가 애기 엄만 아니잖아요.
- 야는 내 자식이여. 느그들이 내 자식이듯이 야도 내 자식이여. 내 집에 들어오면 다 내 자슥이여.
- 아 허지만.
- 니 마음은 내 알아야. 허지만 내 걱정은 조금치도 할 거 없다.
- 으아앙~
- 어어어. 그래. 오냐 오냐. 가자. 아이고. 이 쬐끔한 배를 못 채워서. 아이고 그려 그려.
- 아 그라지 말고 젖꼭지 좀 물려 줘. 애가 지쳐서 울지도 못하자녀.
- 아이고 금매. 빈 젖꼭지를 물리면 뭘 혀.
- 나도 지금 눈 앞이 아물아물 혀. 먹은 것도 없는디 아새끼가 하루 왠 종일 젖꼭지 물고 사니께 속이 허해서 나도 죽겠고. 그렇다고 내 새끼 배나 채워준 줄 알어? 먹은게 있어야 젖이 나오지. 안그려?
- 아이고 그라면 이 노릇을 어쩐댜. 이?
- 저기 돌이 어멈한테 가 봐. 돌이 어멈은 젖이 많은 여편네니께.
- 돌이 어멈은 성질이 매몰차서 젖이 남아돌아도 줄 것 갖지 않은디. 아녀. 아녀. 저도 애 키우는 여편넨데 설마 그럴라고.
- 이이. 그려 그려. 어서 가보라고.
- 아이고 이러다가 그냥 애 배 곯아 죽이것네.
- 뭬여?
- 새끼도 새끼 나름이라고 혔어. 아 가시나가 서방질 해서 내질러 놓은 종자한티 젖 물리고 싶은 맘 없구만. 내는.
- 아 애가 무신 죄가 있다고 그런 소릴 혀. 응? 아 말이면 다 하는겨? 응?
- 왜. 나가 틀린 말 혔어?
- 아 주기 싫음 고이 주기 싫다고 하제. 죄 없는 애 한테 해도 너무 하는고만. 이.
- 자네가 성낼 것 없자녀? 자네 새끼도 아닌디 왜 자네가 성질을 내고 그려?
- 아니 뭬 뭬라고?
- 꼭 지 새끼나 되는 것처럼 성질을 내고 그라네 정말.
- 아 내가 키운 내 자식이여. 야는 내 자슥이라고 내 자슥.
- 허허허. 자식도 많기도 허지. 김제 바닥 거지란 거지는 다 쓸어 모아가지고 고 청승을 떨고 댕기더니 아 이제는 남이 버린 아새끼 까정 가로 맡아 가지고 공연한 사람한테 시비를 붙이고 그려.
- 아 나 나가 시비를 붙인다고?
- 시비가 아니면 뭐여. 뭐어.
- 아 시방 누가 시비를 붙이는지 모르것네.
- 아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와서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는 사람이 누군디 그려? 누군디? 누군디.
- 아 그려. 그려. 그만 둬. 나가 잘못혔어. 나가 잘못 혔다고. 나가 잘못 혔어. 내 자식 내가 키우제. 남한테 젖 달라고 한 내가 그르제. 잉.
- 아이고. 겨우 잠이 드는구나.
- 자요?
- 잉. 잔다 이자.
- 밥물 그거라도 넘기니께 허기는 면했나 봐요. 자는거 보니께.
- 겨운 두 숟갈을 받아 넘겼다.
- 그렇게 실갱이를 하고도요?
- 아 젖 밖에 빨줄 모르는 거이 그걸 받아 넘기것냐?
- 허긴.
- 아이고 불쌍한것. 태어나자 마자 이 무신 고생인지. 참말로 배고파 우는 꼴 눈 뜨고는 못 보것다.
- 우유만 있으면 되는디.
- 우유가 워딨냐.
- 나 내일 당장 떠날라요. 가서 뭐든 해갖고 돈 벌어야 겠어라.
- 이것아. 누가 돈 벌줄 몰라서 못 버냐. 시상에 해 먹을게 있어야 말이제.
- 대처에 나가면 무슨 수가 있것지라.
- 대처에 간들 무슨 수가 있것어. 배운게 있나. 기술이 있나. 아니 누가 온겨?
- 늦었어요. 엄니.
- 아 그래.
- 기호랑은 다들 안 들어 오냐?
- 와요. 다들.
- 아휴 아직 안 주무셨어라우?
- 아휴 언제는 나가 일찍 자더냐?
- 일찍이는요. 열두시가 다 됐는디요.
- 아 그려. 느들은 하루 왠종일 읍내에서 뭘했냐. 오늘은 그 이야기 좀 들어보자.
- 꾸미라도 팔아볼까 하고 극장 앞에서 빙빙 돌았죠 뭐.
- 하루 왠종일 팔아야 기껏 대통. 아무래도 여길 떠나야 겠어요. 여기선 아무것도 해 먹을게 없어라우.
- 그라믄 니들도 다 떠나것다 그거제?
- 그래야 할까봐요. 우리라도 엄니 옆에서 살았으면 좋것는디.
- 하나 둘 떠나드니 이제 느들마저 떠나믄 나는 어떻게 살꼬. 잉?
- 아휴. 우리가 워디 떠나고 싶어 떠나남유. 엄니 짐 덜어 드릴라고 떠나지라. 생각해 보시오. 엄니 밥 얻어먹고 산게 꼭 7년 이라고라. 열살 때 엄니한테 와서 내 나이 인자 열일곱 이지라. 인젠 내 밥 벌인 내가 해야 안 하것소.
- 가도 멀리는 안 갈라요. 전주로 가지요 뭐.
- 저 서울 간 사람 한테는 아직 소식 없지요?
- 서울간 일구하고 칠성이는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갑다. 발써 집 떠난지 일년인디 편지 한 장 없으니. 부산서도 그렇고 그 객지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 걱정 마시오. 죽진 않았을 거잉께.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데 죽것시요. 엄니가 우리를 워떻게 먹여 살렸는디 우리가 죽어라우?
- 느들이 벌써들 다 컸구나. 다 컸어.
- 그랑께 아무 걱정 마시고 우리들 돈 벌어갖고 올 날만 기다리시 라구요. 저 애기나 키움선.
- 나 돈 안 벌어줘도 좋으니께 워딜가도 느들 몸이나 편케있어. 하다하다 안 되면 애미 한테로 돌아오고 말이여. 알았제?
- 그래. 남은 애들이 몇 인가요?
- 셋 남고 다 떠났지요. 영일이 하고 정식이 하고 갓난쟁이 하구요.
- 그 영일이가 아직 6학년 이지요?
- 정식이도 한 반 이잖아요.
- 아 참. 그 새월 빠르고만요. 아이 근데 왜 그렇게 언짢은 기색이세요?
- 그것들 여비도 제대로 못 줘 보내고 빈 손으로 그 객지에 가서.
- 고생이야 하겠지요. 허지만 뭐 살 길 들을 찾을 나인데 어쩝니까.
- 변변히 한번 먹여 보길 했나 입혀 보길 했나.
- 그래도 힘껏 하셨는데 뭘 그러세요.
- 힘껏이야 했지만 애들 떠나보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구만요.
- 그렇게 마음 아파 하시지 마세요.
- 아 아주머니가 그 애들 안 거뒀으면은 걔들 이날 이태까정 떠돌아 다니면서 뭐가 되겠어요. 걸식하다가 나쁜 짓이나 하는게 딱 알맞죠. 그래도 먹고 자는데가 있었으니까 이제 돈벌이 해볼 궁리들을 하고 살아볼라고 그러지요.
- 으아앙~
- 아이고. 아이고 이 녀석이 벌써 다 잤나벼.
- 아이고 고놈 아주 똘똘하게도 생겼네.
- 아이 워째 이런 자식을 버리고 가는 애미가 있는지 모르겄다구요.
- 그래도 지 자식 귀하게 거둘 사람 한테다 버리고 간 거 보면 자식 걱정은 되던가 보지요?
- 마음만 있으면 뭘 혀요. 작은 배 하나를 제대로 못 채워 주는데.
- 아니 어딜 가시게요.
- 밭에 가야지요.
- 아이 그 애를 업고 밭일 하시게요?
- 부지런히 일궈야 아 이녀석은 그래도 제대로 공부도 시켜보고 그러지요.
- 네. 거 밭에 뭐가 좀 됩니까?
- 아직 뭐 하나 제대로 자라진 않아요. 워낙에 박한 땅이라.
- 아 그래도 그 개간은 꾀 하신것 같으시던데. 아매 칠팔백평은 될거구만요.
- 아이고. 그 바쁜 중에 많이도 하셨네요.
- 새벽에 두어 시간씩 얻은데서 일궜지요. 안 그라면 그것도 없시요. 땅 파헤칠 세가 있었간디요? 애들 거둬 먹이질 못해서 밤낮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 엄니. 아저씨, 안녕 하세요.
- 어. 어. 학교들 댕겨오냐?
- 저 방에 밥상 차려놨다. 씻고들 공부들 혀. 엄니 밭에 나가니께.
- 애기는 우리가 볼게요. 엄니. 우리 둘이 볼게요.
- 아이고 아녀 아녀. 아직 떡애기라 느그들이 못 봐.
- 아유 하도 업고 날뛰니께 너도 대근한가비네. 아이고 그려그려. 오늘은 그만 허자.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고.
- 엄니. 엄니.
- 영일이냐?
- 엄니, 큰일 났어유.
- 잉? 아이 큰 일 이라니. 아이 뭔 일이여?
- 큰일 났어요. 엄니.
- 아 뭔 일인디.
- 마루 밑에 애기가 또 있어요. 애기가.
- 애 애기가?
- 예. 애기가 또 있다구요. 포대기에 싸가지고 누가 또 갖다 놨다봐요.
- 아니 뭐여?
- 아이고 세상에. 이제 겨우 배꼽 떨어진 아그를.
- 여기 편지가 있어요.
- 편지?
- 예. 기저귀 밑에 들었어요.
- 아이고 워디 워디. 미안 합니다. 부탁 합니다. 엎어 버려야 할 형편인디 차마 내 손으로 그 짓을 못해서 아주머니께 부탁 합니다. 죽이든 살리든 아주머니 마음대로 하십시오. 정말 미안 합니다.
- 그리고 또 딴 소리는 없어요?
- 아이고. 아이고 시상에. 아이 줄라믄 있는 집에나 주지. 젖도 없는 나가 갓난쟁이 둘을 어떻게 키워?
- 엄니, 이 애기는 계집아이에요. 계집아이.
- 계집아이라 그런지 참 조그맣다. 그제?
- 아이.
- 으앙~ 으앙~ 으아앙~
- 아이고 또 울어 또. 아이고 이 노릇을 워쩐댜. 아이고 이 노릇을 워쨔. 아이고 어느 놈을 업어야 되는지 알 수도 없고. 이제 겨우 배꼽 떨어진 놈한테 밥물 먹일 수도 없고. 아이고. 이 밤중에 또 어딜 가서 젖 동냥을 한댜? 아 워디가서 젖 동냥을 혀.
- 아 아이 여그 뭣들 하는거여. 밤중에 잠 안자고 여편네들이 모여갖고 왠 주댕이들을 놀리고 있는고.
- 아 알지를 못하면 좀 가만히 있으라고.
- 어. 아이 요거이 왠 아그여. 왠 아그를 등에다 지고 손에 안고 그라고 서 있는거여. 응?
- 저 아저씨. 이게 뉘집 씨앗인지 알아 보겄소잉? 자 보시요. 야가 기집애라우.
- 기집애? 아 어디 기집애가 한둘인가?
- 아 뉘집서 애를 갖다 버렸겠냐고. 뉘집서.
- 아 고걸 나가 어떻게 알아.
- 아 시방 그것 따져서 뭐 할라고들 그려. 젖이나 한 모금 물려달라고 왔는디.
- 아이 저러니께 아를 고 집구석에 갖다 버렸제.
- 빨리 한 모금 안 줄기여?
- 아이고 엄마. 아이고 꼭 맡겨 논거 같이 보채쌌네.
- 안그면 워짜. 죽일 순 없자녀. 잉?
- 아이고 시상에 이것도 다 팔자여. 팔자.
- 장미자, 장건일, 김태연, 유근옥, 이기전, 양미학, 신성호, 서지원, 장춘순, 이효숙, 홍경화, 해설 김규식,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정천모, 주제가 작곡 김학송, 노래 문주란. 제 2회 동아햇님 어린이 보호상 대상수상 특집 논픽션 이화자의 일생. 배명숙 극본, 안평선 연출 스물 두 번째로 롯데제과에서 보내드렸습니다.
(입력일 : 2007.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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