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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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논픽션 이화자의 일생
제21회 - 그렇게 모여든 아이들이 어느 새 열 네명
제21회
그렇게 모여든 아이들이 어느 새 열 네명
1980.05.28 방송
제2회 동아 햇님 어린이 보호상 대상 수상 특집 논픽션 드라마. 어려운 가운데서도 14명의 버려진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시켜 제2회 동아 햇님 어린이 보호상 대상을 수상한 이옥남 여사(일명:이화자). 어린시절 일본 서커스단에서 당했던 설움부터 귀국 후 아이들을 기르기까지 이 여사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논픽션 드라마.
극본 배명숙, 연출 안평선 스물한번째.


- 어머니, 왜 그러고 있어요. 순경 아저씨 오셨는데.
- 아이고 이거 어떡하냐. 들어오시라 할 수도 없고.
- 저 잠깐 실례 하겠습니다. 아주머니.
- 아저씨, 들어오세요.
- 아 이거 앉을 자리가 없는데 이거 어떻게.
- 아 예. 괜찮습니다. 저 잠깐 앉겠습니다.
- 아 이 토굴 속에 어떻게 앉으시겠다고.
- 아 뭐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왜 못 앉습니까. 거 아주머니도 앉으세요. 내 잠깐 드릴 말씀이 있으니까요.
- 아휴. 네. 아 저 너희들은 잠시 나가들 있거라.
- 네. 나가자.
- 빨리 나가자.
- 아이들이 모두 몇 입니까.
- 일곱 입니다.
- 다 부모 없는 아이들이죠?
- 네. 난리통에 집 잃고 부모 잃은 아이들이죠.
- 소문이 아주 자자해요.
- 무슨 소문이요?
- 장산리 외딴 토굴에 혼자 사는 여인네가 거지들을 데리고 산다는 소문이죠. 그래서 순찰차 나온 겁니다.
- 순찰 이라고요? 아 내가 뭐 잘못 한거라도 있어요?
- 아하하하. 화는 내지 마세요. 배고픈 애들에게 밥주고 잠 재워 준 아주머니께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전 다만 소문을 듣고 우리 관할이니까 한번 둘러보러 온 겁니다.
- 그리고 저희 애들보고 모두들 거지 거지 하시는데 저 애들 난리통에 집 잃고 부모 잃은 고아들이에요. 불쌍한 애들한테 밥은 못 줄 망정 거지라니요.
- 아 그건 뭐 구걸을 하고 다녔으니까 그냥 그렇게 부르게 된거죠.
- 이제 그 애들 구걸 안 다녀요.
- 압니다.
- 내가 원채 빈 손이라 먹이는데에도 힘이 부쳐서 제대로 입히질 못해 그렇지 어디 그지가 따로 있던가요? 부모 없으면 그렇게 되는거죠.
- 네. 그건 그래요. 아 근데 아주머니는 혼자 살기도 힘드신거 같은데 왜 저 애들을 데리고 계십니까. 한둘도 아니고 일곱 씩이나.
- 배가 고파서 찾아드는 것들을 어찌 내칩니까.
- 에. 아주머니.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저 애들을 고아원에 보내면.
- 고아원이요?


- 마님. 마님 계세요?
- 에. 자네 왔는가.
- 부르셨습니까. 마님.
- 에. 좀 해줘야 겄어. 행랑어멈이 앓아 누웠어.
- 네.
- 뭐 바쁘진 안제?
- 바쁘긴요. 겨울철에 품 팔 데나 있나요?
- 근데 자네 왜그리 기운이 없어 뵈? 어디 아픈감?
- 아니에요. 아픈데 없어요.
- 이리 들어와. 손이나 녹이고 일을 하던지 하라고.
- 괜찮아요.
- 아하 글씨 잠깐 들어와봐.
- 네.


- 아픈 데 없다면서 왜 그러나. 혼자 산다고 누가 얕보고 행패라도 부리던가?
- 아니에요. 애들을 보내고 나니까 이렇게 서운한게.
- 에. 참 저 애들을 고아원에들 보냈다제?
- 제일 꼬맹이 하나만 두고 다 보냈지요.
- 잘혔어. 자네가 뭔 수로 그 애들을 다 거두나?
- 부지런히만 하면 밥은 먹이겠는데 입힐 것도 없고 학교도 못 보내고 뭣 보다도 학교보낼 재주가 있나요? 그래서 박 경장 말대로 했죠. 고아원에 가면 학교는 다 보내준데 잖아요.
- 그럼. 학교 보내주고 말고.
- 보내긴 잘 보낸 것 같은데 그새 정이 들었던지 마음이 좋질 않아요. 눈 앞에 삼삼한게.
- 자네도 정이 많아서 탈이야. 하지만 잘 보냈어. 남의 자석 그거 아무 소용 없어. 소용 없고 말고. 공연한 고생 할 필요 없다고.
- 뭘 바라고 데리고 있었나요? 부모 형제 없는 그 애들 처지를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아니까요. 서른이 넘어서도 하늘 아래 내 몸둥이 하나 뿐이라고 생각하니까 천지가 캄캄하던데 그 어린 것들이 길거리를 헤메고 댕기면 얼마나 서럽겠어요.
- 하기사.
- 이 세상 불쌍한 인생이 왜 그리도 많은지요. 어머, 아이구 제가 또 왜이리 말이 많은지 모르겠네 오늘. 저 나가 보겠어요.
- 잉 그려. 저 나가거든 쇠죽부터 좀 끓이게. 여태 여물도 못 줬응게.
- 예. 마님.



- 아니, 영일이 왜 그러고 있어. 밥 안 먹고.
- 나 배 안고파.
- 왜. 이렇게 하얀 쌀밥인데도 싫어? 엄마가 우리 영일이 줄려고 안먹고 싸가지고 왔는데 왜그래.
- 배 안고프단 말이야.
- 배가 안고프다니. 아 지금이 몇 신데 배가 안고파. 깜깜한 밤이야 밤.
- 나 헝아들 보고싶단 말이야.
- 헝아들?
- 헝아들 다 데리고 와. 헝아들 없으니까 재미도 하나도 없구잉. 이히힝.
- 그새 정이 들어서. 영일아. 영일아.
- 몰라. 몰라잉. 히힝.
- 엄마가 있잖아. 엄마가.
- 엄만 맨날 일하러만 가고.
- 자식도. 울지 마라. 엄마가 잘못 했다. 내일부턴 우리 영일이 데리고 일하러 갈게.
- 정말?
- 정말이고 말고. 자 눈물 닦고. 아 아니, 아니 이게 무슨 소리지?
- 누가 오나봐.
- 아니 이 밤중에 누가 여길 와.
- 엄마.
- 아 아니.
- 엄마.
- 아 아니, 너.
- 야, 헝아다 헝아.
- 어머니.
- 아니 너희들.
- 다 와요. 다 온다구요. 야, 빨리들 와. 빨리 뛰어.
- 헝아들 다 온다. 다 와.


- 그래서.
- 보모만 무서운게 아니고 원장도 무섭더라구요. 밥도 쬐끔밖에 안 주고.
- 조금만 잘못해도 막 때리구요. 그래서 맨날 울었다구요.
- 그래서.
- 그래서 도망 나오기로 했죠. 다들 잘 때 살금살금 빠져나와서 뒷문 열어서 뛰었지요 뭐.
- 거긴 죽어도 있기 싫더란 말이에요.
- 그래도 거기 있어야 학교도 댕기고 하는데.
- 학교 못 댕겨도 좋아요.
- 나두요.
- 창준이도 택수도 너희들 다 학교 못 댕겨도 좋으냐?
- 네. 네.
- 네. 못 댕겨도 좋아요.
- 네.
- 그러고 보니 너희들 학교 댕기기 싫어서 도망 나온게로구나.
- 아니에요.
- 아니야?
- 학교 댕기는건 좋은데 거기서 사는건 싫단 말이에요. 정말 이에요.
- 네. 정말이에요.
- 그래도 학교들을 댕겨야 해. 여기 있으면 학교도 못 댕기고 까막눈이 된단 말이야. 내가 왜 너희들을 거기 보냈겠니. 학교 댕기라고 보냈잖아. 그러면은 참고 있어야지. 열흘도 못 있고 나오면 어떡하니. 응?
- 어머니, 우리들 온 거 싫어요?
- 자식들 싫기는. 나도 너희들 보고 싶었다. 영일이도 보고싶어 하고.
- 그런데 왜 그러세요.
- 그래도 내 말 못 알아듣니? 학교에를 댕겨야 된단 말이야. 학교에.
- 그럼, 우리 도로 고아원에 가라구요? 네?
- 내일 아침 나랑 같이들 가자.
- 싫어요. 거긴 안 가요. 이제.
- 안 가요. 안 가요.
- 왜.
- 여기서 어머니랑 영길이랑 같이 사는게 좋단 말이에요. 여기서 살고 싶단 말이에요.
- 거기 사는게 그렇게도 싫더냐?
- 맨날 맨날 여기로 오고 싶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맨날 밤에 울었단 말이에요. 어머니. 흑흑...
- 이 녀석들.
- 엄만 왜 헝아들 야단치고 그래? 헝아들 왔는데 왜 가라고 그래? 잉잉...
- 안 갈래요.
- 그래. 가기 싫음 가지 마라. 그렇게 가기 싫은걸 어떻게 가겠니.
- 안 가도 돼요? 여기 있어도 돼요?
- 그래. 여기서 같이 살자. 나랑 같이 살아보자.
- 와아! 어머니.
- 불쌍한 것들. 이 토굴속이 뭐가 좋다고 여기를 못 잊어서 또 찾아와.
- 그래 어쩔 참이세요.
- 어쩌긴요. 정이 그리워 내 품 찾아온 것들 내가 거두어야죠. 하는데까지 해 보겠어요. 얼마나 오고 싶었으면 밤에 도망질들을 했겠어요.
- 그래요. 배가 고파도 못 살지만 정이 없어도 못 살아요. 애 어른 할거없이.
- 어젯밤 한 숨도 못 잤어요. 내 옆에 오골거리고 붙어서 자는 모습들을 보니까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그 어린 것들이 무슨 죄가 있어요. 한편으로는 가슴도 뿌듯하구요. 한꺼번에 자식 여섯이 생긴거나 다름 없잖아요.
- 그렇죠.
- 걱정은 태산이지만 마음은 누구보다도 부자 같아요.
- 학교에다가는 제가 얘기를 해보겠어요. 사정얘기 다음은 월사금 면제는 안 받겠어요?
- 월사금 면제만 받을 수 있으면 학굔 보낼 수 있을 거에요. 공책만 사주면 되니까요.
- 품 팔아서 밥 먹이기도 힘들텐데요.
- 하는데까지 해보죠 뭐.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 아주머니 마음 씀씀이가 그러니가 애들이 한사코 안 갈라고 그러지요.
- 어...
- 저도 힘 닿는데 까지 돕겠습니다.
- 고맙습니다. 정말로.
- 고맙다는 말은 제가 하고싶은 말이에요. 세상에 품 팔아서 남의 자식 키우는 사람이 또 어디있드란 말입니까. 그것도 일곱 씩이나.

죽으면 썩을 몸 아껴서 뭐하겠어요. 내 몸 하나 놀려서 그 어린것들 눈에 눈물이나 안 나면 그것도 사는 보람이죠. 고향에 돌아와서 이날까지 뭣 때문에 내가 사는지 모르고 살았는데 이제 사는 보람이 생겼어요.


허나 마음만 가지고 정만 가지고 살아지는 세상이 아니었다. 농사철 지난 겨울에 어디 품 팔 데가 있겠는가. 그녀는 온 동네를 다니며 빚을 내서 아이들을 먹었다. 빚이라고 해야 집도 절도 없는 그녀에게 누가 빚돈을 내주겠는가. 기껏해야 이집 저집 다니며 보리 몇 되박 씨의 빚을 지는게 고작이었으니. 그런 어느 날.


- 배고파. 나 배고프단 말이야.
- 영일아, 너 정말. 내가 뭐랬니. 배고프단 소리 하지 말랬지?
- 하지만 배가 고픈걸?
- 아휴 이를 어쩌나. 막막 하구나. 막막해. 이제 더 빚 낼 데도 없는데. 아호 이놈의 겨울 길기도 하지. 어서 봄이 오고 일거리가 생겨야. 봄이 오면 일궈 논 밭에다가 감자라도 심어 봐야지. 자라도 케서 양식에 보태면 애들 견디기가 한결 수월 할텐데. 봄이 되면 틈틈히 움막이라도 지어야 되겠고. 언제까지 애들 토굴속에 재울수는 없는 일. 아호 그러나 저러나 당장 어디가서 양식을 구하나. 아호.
- 어머니, 어디 갈라고요?
- 어. 마을에 가 볼란다. 어디가서 동냥이라고 해 와야지. 이 긴긴해를 어떻게 넘기게.
- 어머니, 나도 따라갈까?
- 아 안 돼. 넌 여기서 형아들하고 놀고 있어. 아 참 기호랑 창준이는 어디갔니? 이 추운날에.
- 마을에 갔어요. 곧 올거구요.
- 마을은 뭣하러 갔니?
- 아이 추워.
- 밥 얻어 왔어?
- 그래. 자 봐.
- 어머니, 밥 얻어 왔어요.
- 아니...
- 야 밥이다.
- 너희들! 이 녀석들아 누가 밥 얻어 오랬어. 누가 동냥질 해 오랬어. 어? 어?
- 어머니.
- 누가 이 따위짓 하랬어. 이 녀석들아 동냥질을 해도 내가 하지 왜 너희들이 해. 말 해. 다시 또 이딴 짓 할거야? 응?
- 안해요. 어머니.
- 잘못했어요. 어머니.
- 아이고 이 녀석들아. 굶기는 것도 원통한데 동냥질이라니. 으흑흑...


참말로 그 때 일은 잊혀지지가 않더구만요. 어찌 그리도 가슴이 아프던지요. 저희들은 어린 소견에도 날 돕자고 나 몰래 밥을 얻어 온 모양인데 그게 더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더구만요. 참말이지 그 해 겨울은 참 어려웠지요. 아니 그 해 겨울 뿐 아니고 해마다 겨울만 되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나가 동냥질을 해 본것도 겨울 이었지요. 하지만 부끄러운 줄도 몰랐어요. 부끄러운거 생각하다가 자식들 동냥 나서는거 보게 될까봐 앞 뒤 돌아 볼 겨를이 없더구만요.

그런데도 자꾸만 식구는 늘어갔다. 어디서 소문을 듣고 오는지 전쟁 고아들이 하나 둘 그녀의 움막으로 모여들어 일곱이 여덟 아홉이 되더니 어느 새 열 넷이 돼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찾아드는 고아들을 한번도 내친 적이 없었다. 오는 족족 고스란히 다 맞아 들였다. 그녀는 그것을 축복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 많은 아이들을 일일이 다 보살펴주지 못하는 것만 안타까울 뿐.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정신없이 흘러간 어느 가을 날.


- 어 어머나, 벌써 첫 닭이 우네. 아 시상에 첫 닭 울기 전에 일어나야 밭데기 손을 좀 볼거인데. 해 뜨면 군산 댁 아줌씨네 타작 해주러 가야 할낀데. 아휴, 아이고 몸둥이가 두 개만 되면 월매나 좋을꼬.
- 으앙. 으앙~
- 워매. 왠 갓난애기 울음 소리제? 아이고 참 이상하기도 혀라. 이 허허벌판에 왠 어린애 우는 소리. 아이고 아고매 이게 이게 왠 언네제? 잉?



장미자, 김태현, 권희덕, 안경진, 양미학, 신성호, 서지원, 홍경화, 해설 김규식,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정천모, 주제가 작곡 김학송, 노래 문주란.
제 2회 동아햇님 어린이 보호상 대상수상 특집 논픽션 이화자의 일생.
배명숙 극본, 안평선 연출 스물 한 번째로 롯데제과에서 보내드렸습니다.

(입력일 : 2007.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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