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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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논픽션 이화자의 일생
제15회 - 스물, 다시 찾아 온 사랑
제15회
스물, 다시 찾아 온 사랑
1980.05.21 방송
제2회 동아 햇님 어린이 보호상 대상 수상 특집 논픽션 드라마. 어려운 가운데서도 14명의 버려진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시켜 제2회 동아 햇님 어린이 보호상 대상을 수상한 이옥남 여사(일명:이화자). 어린시절 일본 서커스단에서 당했던 설움부터 귀국 후 아이들을 기르기까지 이 여사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논픽션 드라마.
극본 배명숙, 연출 이평선 열다섯번째.

- 화자야.
- 언니. 어서 옷 갈아 입어야지. 다음에 코끼리 탈 차레지?
- 그래. 그래. 박수가 굉장하구나. 니가 최고다. 니 인기가 최고야.
- 박수 받는 기분이 괜찮아 언니.
- 아니 괜찮고 말고. 그 재미도 없으면 무슨 맛으로 밤낮 이짓 하겠니. 옷 갈아 입자.
- 응. 근데 저것들 좀 봐.
- 꼭 잡아먹을것 같애.
- 죽겠을거야. 지들이 못하는걸 니가 하는데 배가 안아프겠니?
- 야! 지금 너희들 뭐라고 지껄이고 있는거야.
- 다리가 쭉 빠져서 부럽다고 그랬어. 왜.
- 뭐야? 이것들이 날 놀려?
- 저 무다리를 쭉 빠졌다고 했더니.
- 두 다리 못생긴건 아는 모양이지?
- 하나꼬. 너 지금 뭐라고 했어.
- 어. 우리끼리 한 얘기야 시비걸지마.
- 이 건방진 조센진 년이 어따대고 주둥아릴 나불거리니! 허어, 이게 아주 눈에 뵈는게 없어. 맛 좀 볼래?
- 맛?
- 그래.
- 어디 날 쳐봐. 내 몸에 상채기 하나라도 나면 재미 없을 테니까. 어디 쳐봐.
- 오냐. 니가 그러면 겁날 줄 알고?
- 야, 니네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 야마모도 감독님 하나꼬가.
- 아니, 지금 이것들이 뭘하고 있는거야. 옷 갈아입는 사람을 가지고. 너희들 정신이 있어?
- 글쎄 하나꼬 이것이.
- 듣기 싫어! 너희들 챙피한 줄 알아. 조센진 한테 눌리고도 챙피한줄도 모르고 이것들이 그냥. 하나꼬는 어서 옷 갈아입어.
- 네.


- 들어와요.
- 부르셨습니까 단장님.
- 어, 하나꼬. 어서 오너라. 이리, 이리 가까이 와.
- 네.
- 그래. 수고가 많지?
- 아, 아닙니다.
- 내가 다 알지 알아. 내가 모르면은 누가 알겠어. 안그래? 그런데 말이야. 하나꼬가 조금만 더 애교가 있으면은 훨씬 더 인기가 있을것 같단 말이야.
- 네?
- 생긋생긋 웃어. 생긋생긋. 아야꼬처럼 그렇게 웃으란 말이야. 그래야 손님들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아야꼬가 얼마나 인기가 좋았는지 하나꼬도 알지?
- 네.
- 알면은 아야꼬 처럼 해야지. 아마... 하하하하. 하나꼬가 아야꼬 처럼만 하면은 아야꼬가 그 인기보다 훨씬 더 인기가 좋을거야. 하나꼬는 아야꼬 보다 훨씬 더 예쁘거든. 내말 알아 들었지?
- 네. 단장님.
- 알았으면 됐어. 또, 음. 내가 오늘 하나꼬를 부른건 말이야. 내가 하나꼬 한테 상을 주려고 불렀어. 자, 이거 받아.
- 이 이건 돈 아니에요?
- 그래. 내가 상으로 주는거야.
- 네?
- 더 잘하라고 주는거야. 지금보다 더 잘하라고 말이야. 알았어?
- 네.
- 그리고 하나꼬만 잘하면은 앞으로도 또 상을 내릴거야 내가. 왜. 믿기지가 않아?
- 아...
- 믿어도 좋아. 못 하면 벌을 내릴거고 잘 하면 상을 내리고 그게 당연하지 않아?
- 네. 네.
- 그러니까 잘 하라고. 알았지?
- 네.


- 그래도 모르겠어?
- 알겠어 이제.
- 널 부축여서 손님 더 끌자고 하는 수작이야. 돈 좀 더 벌어보자고. 그래놓고 무슨 상을 내린다고? 쥐새끼 같은 놈들.
- 이게 미낀줄도 모르고 감격한 내가 어리석지. 하지만 나쁘진 않아. 생전 처음 만져본 돈 아니니? 그것도 이렇게 큰 돈을. 아마 쌀 한가마도 더 살수 있을거야 이거면.
- 널 내세워서 놈들이 버는 돈이 얼만데 그걸가지고. 허긴. 돈 구경이라곤 이날 이때까지 해본적이라곤 없으니 그것도 감지덕지지.
- 나, 이 돈 고향에 보낼래.
- 그러렴.
- 어머니 아버지가 얼마나 좋아하실까.
- 그래. 역시 인기는 끌고 볼일이다. 나쁘진 않아 여러모로 그지?
- 돈까지 생길 줄 누가 알았겠니. 왜 그렇게 봐. 응?
- 니가 좋아하니까 내 맘도 좋아.
- 아이.
- 화자, 너 오늘따라 별나게 더 이쁘다.
- 몰라.
- 화자야.
- 이러지 마. 누가 봐.
- 보긴 누가 봐. 우리 둘 뿐인데. 화자야.
- 이상해.
- 뭐가?
- 다신 아무도 좋아질 것 같지 않았는데 말이야.
- 난 또 무슨 얘기라고.


참말이지 정철 아저씨랑 헤어지고 나서 다시는 남자한테 정을 줄 것 같지가 않더만요.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나가 정철 아저씨 한테 준 정은 상민이 한테 가는 정하고는 다르더군요. 나는 어린 마음에 정철 아저씨를 삼촌처럼 오빠처럼 그렇게 의지하는 마음이 더 컸던가 봐요. 하기는 그 때 내 나이 열 여섯 열 일곱 이었으니께요. 하지만 상민이 한테 정을 주기 시작한건 스물이 돼가면서 였으니께 나는 그 때사 비로소 여자가 돼있었던 모양 입니다. 어쨌거나 나는 스물 전후해서 몇 년은 그래도 견딜만 했지요. 곁에 상민이도 있고, 인기가 좋아 대접도 좀 잘 받고. 그란디.


- 아니, 아니 대낮에 이게 무슨 사이렌 소리지?
- 그러게 말이야.
- 어? 아 이거는 또 무슨 소리야? 아이 갑수야, 왜그러니.
- 큰일났어.
- 아니, 큰일이라니 왜요.
- 또 중국으로 간데.
- 중국은 전쟁중이라고 그러던데 아니 그럼 또 위문공연인가 뭔가.
- 그러니까 큰일이지.
- 내 이럴 줄 알았다고. 전쟁 났다고 할 때 알아 본거야.
- 아, 무슨놈의 중국을 또 가나 또.


1930년대 일본의 팽배한 궁극주의에 휩쓸려 식민지 확대에 광분한 일본은 1937년 만주에 괴뢰정부를 세운지 5년만에 또 다시 중국 대륙에 야욕을 품고 중일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 빨리 빨리 가. 빨리 빨리!


1938년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중국에 대하여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기에 실패한 일본은 동남아의 대륙과 섬들 그리고 서남태평양 방면의 침략을 꾀하고 그해 9월에 중국의 해남도를 점령했다. 이를테면 그들의 궁극주의를 대동화공용권 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중국 본토는 물론이요 타이, 버마 등 온 동남아를 휩쓸게 됐으니 전 아시아 대륙이 그들 침략의 무대가 된 셈이었다. 일본이 전쟁을 그렇게 확대시켜 나갈 쯤 화자와 그 일행은 또다시 위문 연회단으로 차필 돼 또다시 배에 올라탔으니.


- 드디어 떠나는구나. 우리의 위대한 영웅들을 위해 떠나는 여행이다. 모두들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각별한 각오들을 할 것이라 믿는다.
- 영웅이면 너희들 영웅이지 우리 영웅이냐?
- 누가 아니래? 소문 듣자니 금방 끝날 전쟁도 아닌 모양이던데. 지난번 만주 싸움은 아무것도 아니래.
- 그럼 그 때보다 전쟁을 더 오래 한다구요?
- 더 크고 더 오래한데.
- 어후, 이 놈의 노릇을 어쩐다지. 만주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데 그 때보다 더 오래 한다니.
- 서커스 인생 만큼 더 드러운 인생이 있을까. 남들 안가는 전쟁터까지 쫓아 댕기니 그 수모를 받아야 하잖니.


- 어, 화자.
- 여기서 혼자 뭐해?
- 뭘하긴 좀 심난해서.
- 나 땜에 그러지?
- 너 여기있어.
- 어디 가려구.
- 갔다 와서 얘기할께.
- 아니, 어딜 가는거지?


- 뭐라고. 조센진만 따로 떼서 한 패를 만들지 말고 우리 일본인하고 섞어서 패를 만들라구?
- 만주에서도 보셨죠? 순례 죽는거. 기억하고 계시죠? 네?
- 기억하고 있어.
- 그러니 제발 우리 조선 사람만 보내지 말고 섞여서 가요.
- 좋은 생각이야. 좋은 생각.
- 그럼 그렇게 해주실 겁니까? 네?
- 나도 단원들 줄어드는거 원치 않아. 하지만.
- 네?
- 네 놈은 건방진 놈이야.
- 네?
- 네 놈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와서 그 더러운 주둥아리를 나불거리는거냐. 어? 감히 내가 누구라고 네 놈이 이래라 저래라 말이 많아. 어? 이 새끼! 일어나 이 새끼.
- 잘못했습니다. 전 다만.
- 닥쳐! 이 새끼 어따대고 자꾸 주둥아릴 나불데. 이 새끼가. 일어나!


- 상민아.
- 괜찮아.
- 괜찮긴 엉망진창인데.
- 각오하고 갔는데 뭐. 이렇게 될거 각오하고 갔어.
- 각오하고 가다니 왜이렇게 미련스러워. 응?
- 그럼 어떻게 가만있니? 모르면 모를까. 뻔히 알면서 어떻게 가만히 있어.
- 하지만 말짱 헛 일이잖아. 매만 맞고 쫓겨났잖아.
- 아니, 그렇지 않아. 녀석도 솔깃한 모양이더라. 내가 얻어맞긴 했어도 내가 하자는데로 할테니 두고봐.
- 믿을 수 없어.
- 믿어도 좋아. 놈들도 멀쩡하니 훈련시켜 돈벌이 되는 애들이 죽어 없어지는거 바라지 않거든.
- 그렇긴 하지만.
- 내 말 믿으라니까.
- 그렇다면 니 말에 솔깃 했다면 널 치긴 왜 쳐.
- 그게 바로 왜놈들이잖아. 그걸 모르진 않겠지.
- 아휴.
- 가서 자. 자둬야 해. 내일이면 하루빈에 도착할거야. 도착하면 또 짐 풀릴 때까지 끌려다녀야 해. 왜 그러고 있어? 가 자라니까.
- 잠이 와?
- 그렇다고 앉아서 밤을 세울수는 없잖아. 그저 왜놈들 망하기만 빌어. 그 길 밖에는.
- 그 악독한 것들이 망해? 갈수록 더 기세가 등등한데.
- 아니야. 두고 보라고. 언제든 망하고 말테니까. 꼭 망하고 말테니까.


- 걸을 수 있어?
- 그럼. 그깟 놈 한테 맞고 못 걸을 내가 아니야.
- 자, 내 어깨 잡어.


헌데.


- 조용 조용들 해. 조용들 하고 지금부터 내가 하라는데로 하라고.
- 이것들이 왜 부대에 몰아넣고 떠날 생각을 안하고 이러지?
- 가만 좀 있어 봐.
- 에... 또, 지금부터 우리는 세갈래로 갈라져서 위문공연을 하러 떠나게 된다. 한패는 중국으로 또 한패는 필리핀으로 나머지 한패는 인도차이나 쪽으로 각각 흩어져서 공연을 하기로 했다.
- 아니 그럼...
- 조용 조용히 해!
- 감독님, 패를 나눌까요.
- 그래. 나눠라. 시간없다.
- 상민아, 세 패로 가른다는데 어쩌지?
- 내가 공연한 짓을 했나보다.
- 어?
- 세 패로 가르기로 작정들을 하고 떠날 줄을 모르고 공연히 가서 저놈한테 미움만 받게 만들어 놨으니. 화자야, 너랑 떨어지면 어쩌지?
- 상민아, 어떡해 어떡해.
- 하늘에 맡기는 수 밖에.
- 어, 넌 이쪽 넌 저쪽.
- 미리 명단을 만들어 놨구나. 쪽지를 보고 가르잖아 지금.
- 어휴, 숨막혀. 나 상민이 니 등뒤에 꼭 붙어 있을께.
- 소용없는 짓이야.
- 숙자, 넌 저쪽. 상민이 넌 이쪽. 하나꼬.
- 네.
- 넌 숙자하고 같이 다녀야겠지? 넌 저쪽으로.
- 저... 난 상민이하고 같이 갈래요.
- 그건 안돼.
- 왜요.
- 감독님 명령이다. 자, 여길 봐. 여기 니 이름이 적혔지?
- 하지만.
- 명령대로 해! 왠 잔말이 많아.
- 화자야.
- 상민아. 흐흑...


장미자, 양성진, 이동주, 유민석, 오세홍, 설영범, 김환진, 이기전, 유명숙, 안경진, 전경애, 전기병, 해설 김규식,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정천모, 주제가 작곡 김학송, 노래 문주란.
제2회 동아햇님 어린이 보호상 대상수상 특집 논픽션 이화자의 일생, 배명숙 극본, 안평선 연출로 롯데제과에서 보내드렸습니다.

(입력일 : 2007.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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