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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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논픽션 이화자의 일생
제6회 - 단장에게 불려 간 화자…
제6회
단장에게 불려 간 화자…
1980.05.19 방송
제2회 동아 햇님 어린이 보호상 대상 수상 특집 논픽션 드라마. 어려운 가운데서도 14명의 버려진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시켜 제2회 동아 햇님 어린이 보호상 대상을 수상한 이옥남 여사(일명:이화자). 어린시절 일본 서커스단에서 당했던 설움부터 귀국 후 아이들을 기르기까지 이 여사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논픽션 드라마.
극본 배명숙, 연출 안평선 여섯번째.


- 무슨 일이에요? 이 밤중에 하나꼬를 왜 찾죠?
- 왜냐구?
- 제가 뭘 잘못했나요?
- 잘못?
- 네.


화자는 문득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서 계속 희죽거리는 일본인의 입만 바라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 입에서 떨어질 말은 좋은 소식은 아닐것 같았다.


- 아 얘길 좀 하세요. 계속 웃지만 말구요.
- 야. 넌 좀 빠져. 다 떨어진 걸레조각 같은게 왠 참견이야 참견이. 넌 어서 나가서 하나꼬 목욕물이나 준비해.
- 목욕물.
- 목욕은 아까 했는데요.
- 또 해. 또. 알았어?
- 네?
- 목욕하고 제일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감독님 방으로 와.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알았지? 왜 대답이 없어.
- 네.
- 빨랑 와야 돼. 꾸물거리면 없어.
- 언니, 왜 그러지? 응? 언니.
- 드디어 올게 왔어.
- 올게 오다니.
- 모르겠니? 짐작 할 수 있지? 너도 이제 어른이야.
- 어른?
- 어른이 뭔지 알지?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게 아니다. 너도 이제 어른이야.
- 언니.
- 아까 낮에 단장이 다녀갔잖아. 너도 봤지?
- 응.
- 개 만도 못한 놈들.
- 언니, 난 어쩌면 좋아. 응? 응?
- 목욕물 준비할게.
- 언니.
-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 뿐이야. 그것 말고 널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겠니.
- 어어...


- 화자야. 화자야. 화자 있어?
- 아이 정철씨군요.
- 저 화자 잠깐 나오라고 하세요. 안 자죠?
- 화자 자요. 잠들었어요.
- 자요? 요새는 잘 자나 보죠?
- 삼촌 죽은지 석달인데요. 뭐.
- 저 미안하지만 잠깐만 좀 깨워줘요. 할 말 있어요.
- 아이 저 왠만하면은 내일 아침에 하지 그래요. 깨우면 또 못 잘지도 모르는데.
- 저 그랬으면 좋겠지만은 오늘 꼭 해야 될 말이 있어요.
- 아이 어쩌지?
- 내가 깨울까요?
- 아유 아니에요.
- 아니 왜그렇게 놀래죠?
- 아이 놀래긴요.
- 좀 깨워줘요. 그러면.
- 오늘 안하면 안 될 말이에요?
- 그러니까 자는 사람을 깨우죠. 안그러면 뭣때문에 그래요. 아니, 왜 그러죠?
- 그게...
- 화자, 정말 자는거에요? 좀 비켜서요. 아니, 화자 없잖아요. 네? 아니 없는 사람을 왜 잔다고 했어요. 무슨일 있어요? 네? 화자 어디갔어요?
- 화자.
- 이 밤중에 어딜 갔죠? 왜 말을 하다 말아요.
- 정철씨, 화자 좋아하죠?
- 알면서 왜 물어요 그건.
- 하지만 이 바닥에서 그게 잘 될지.
- 그런 걱정은 말아요. 내게도 생각이 있으니까요.
- 생각?
- 그럼, 아무런 작정도 없이 여자를 사랑한단 말이에요?
- 하지만.
-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걸 묻죠? 아니, 그보다 화자 어디갔어요.
- 그보다 그 작정이란게 뭐지요?
- 알거 없어요.
- 작정이라는게 있으면 왜 진작 작정대로 하질 못하고 어물거리고 있었어요.
- 화자랑 한 방에 있으면서 그걸 몰라요? 화잔 아직 사랑이 뭔지 몰라요.
- 걔가 왜 그걸 몰라요.
- 날 사랑하는지 어쩐지 확실하게 느끼질 못하고 있단 말이에요. 사랑이란건 혼자서 하는게 아니잖소.
- 하지만 이제 때가 늦었으니 어쩔거에요.
- 때가 늦어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죠?
- 왜 진작 어쩌지 못하고. 화자 지금 어디갔는 줄 알아요? 단장한테 갔다구요. 단장한테.
- 뭐라구요?


- 에잇.
- 누구야.
- 하나꼬 어딨어.
- 뭐?
- 하나꼬 어딨냐고.
- 이 이게.
- 하나꼬 내 놔. 어? 하나꼬!
- 뭐야, 이 새끼 너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뭐!
- 하나꼬 내 놔. 하나꼬!
- 이 새끼가 죽을라고 환장했군.
- 에이! 그래. 죽을려고 환장했다. 야,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응? 너 죽고 나 죽어.
- 누누... 누구 없어. 누구 없어!
- 야! 어디로 도망가. 이 쥐새끼 보다 못한 인간아. 이리 와. 이리 오란 말이야. 물어. 물어.
- 저 새끼 잡아. 저 새끼. 어서.
- 오냐. 오너라. 아주 오늘 사생 결단을 내자. 더러운 놈의 세상 아주 끝장을 보자고. 응? 와! 오란 말이야. 와!
- 뭘 하고 있는거야. 이 등신들아. 뭘 하고 있어. 저 놈을 잡어.

- 어서 와!


- 들어 와.
- 하나꼬 대령입니다. 단장님.
- 음. 음. 수고 했어.
- 이리 들어와.
- 어어.
-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 하나꼬?
- 네.
- 이리 가까이 오너라. 이리 가까이 오라니까.
- 네.
- 어, 아니 왜 그러느냐. 어디 아프냐?
- 아 아닙니다.
- 어... 그럼 네 얼굴이 왜 그 모냥이지? 새파랗게 질려가지고? 아니, 떨긴 왜 이렇게 떨지?
- 아아 아니에요.
- 이리 이리 더 가까이 오너라.
- 예.
- 아니, 너 정말 어디 아픈 모양이구나. 살이 쏙 빠져가지고. 어디 아픈데 있느냐?
- 어 없어요.
- 그래? 정말이냐?
- 예.
- 그런데 왜 이렇게 살이 쏙 빠져버렸지? 흐흐흐흐흐. 살이 빠지니까 제법 여자 냄새가 나는 군. 음?
- 사 삼촌이 죽어서 그래서 아팠어요.
- 삼촌?
- 네.
- 아니, 불 타죽은 그놈 말이냐? 그놈이 니 삼촌이냐?
- 네.
- 그래?
- 흑흑.
- 아니, 왜그러느냐. 너 지금 우는거냐?
- 아 아니에요.
- 삼촌이 죽었다고. 애미 애비는 없느냐?
- 얼굴도 모릅니다.
- 얼굴도 모른다?
- 네.


- 에잇!
- 어어어...
- 이 놈이. 이 더러운 조센진 새끼. 어디 죽어봐라.
- 감독님, 저희들에게 맡기 십시오. 저희들이 해치우겠습니다.
- 놔 둬. 이 놈은 내손으로 처치한다. 내 손으로. 더러운 조센진 놈이 감히, 감히 나를. 이 새끼야.
- 으으윽. 아...


- 언니, 언니 어딨어요? 아 어디갔지? 잠을 안자고 어딜 갔을까. 숙자 언니. 어? 이게 무슨 소리지?
- 으... 으...
- 아니.
- 하나꼬?
- 정철 아저씨.
- 하나꼬.
- 아니 이게 왠일이야. 이게.
- 하나꼬.
- 언니, 정철 아저씨 왜이래. 어? 정철 아저씨. 아저씨가 왜이래. 어? 언니.
- 그보다 너 어떻게 된거니? 어떻게 돌아 온거야? 도망쳐 나왔니?
- 도망?
- 어떻게 왔어. 응?
- 가라고 해서 왔어. 막 뛰어왔어.
- 가라고 해? 단장이?
- 응.
- 가라고 했어. 정말이야. 언니. 가라고 했다고.
- 아무일 없이?
- 응.
- 정말?
- 그렇다니까.
- 어쩌면.
- 그보다 정철 아저씨가 왜그래. 어?


- 하...
- 아저씨, 이제 정신이 드세요?
- 화자. 화자.
- 네. 저예요. 화자에요. 나에요. 내 얼굴 보여요?
- 화자야.
- 나 아저씨 죽는 줄 알았어요.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 뭐?
- 아저씨, 나 아무일 없어요. 단장이 그냥 가라고 해서 바로 돌아왔어요. 단장님 정말 좋은 분이에요.
- 음...
- 왜요. 거짓말 같아요? 하지만 정말이에요. 정말 이라구요.
- 정말이야?
- 그래요. 정말 이에요. 조금만 아저씨가 참았으면.
- 정말 아무일 없었냐구.
- 괜히 나 때문에 아저씨만.
- 난 괜찮아.
- 괜찮기는요. 팔도 부러지고 갈비뼈도 부러지고. 아저씨, 며칠만에 깨났는지 아세요? 사흘만이에요. 사흘.
- 그래도 죽진 않았나보지.
- 하지만.
- 그런데 왠일일까.
- 뭐가요.
- 단장 말이야.
- 내가 불쌍해 보였든가 봐요. 내가 사시나무 떨듯 떠니까. 떨지 마라. 떨지 말고 어서 가거라. 그래서 막 미친듯이 뛰어 왔어요. 그런데 아저씨가.
- 난 괜찮다니까.
- 하지만 의사 한테도 못 가고 병신 될지도 모른다는데.
- 병신 될 팔자면 하는 수 없지. 뭐.
- 이렇게 될 줄 알면서 왜그랬어요.
- 그 때 내가 미쳤었던가봐. 쥐가 고양이를 물 수 있다는거를 나도 그제야 알았어.
- 하지만 이게 뭐예요.
- 괜찮아. 하늘이 도왔나부다. 니가 무사히 돌아 오다니 오래 살고 볼일이야.
- 미안해요. 나 때문에.
- 너 때문이 아니야. 나 때문이었지.
- 가만 누워 계세요. 가서 된장국이라도 몰래 가지고 올게요. 야마모도 놈이 아무것도 먹을걸 주지 말라고 했데요.
- 개 같은 놈.
- 갔다 올게요. 들키지 않을 자신 있어요.
- 화자, 가지 마라.
- 왜요. 뭐든 먹어야지요.
- 가지 말고 거기 앉아 있어. 내 곁에 있어. 화자야.
- 아저씨.
- 아저씨라고 부르지마.
-그럼 뭐라고 불러요?
- 아저씨만 아니면 뭐라고 부르든 좋아.
- 아 그럴게요. 그럼.
- 화자 니 손 한번 잡아보고 싶은데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어.
- 아저씨.
- 화자야, 니가 이제사 여자가 됐구나. 기다렸어. 니가 날 남자로 봐 줄 날을.
- 이제 알겠어요 저도. 내가 아저씨를 유난히 따른 까닭을요.
- 너, 오늘따라 더 곱구나.
- 아이.
- 화자야.
- 네.
- 우리, 어떡하든 도망가자.
- 도망.
- 여기선 못 산다. 내가 일어나거든 우선 여기부터 빠져 나가자.
- 이제야 생각나요. 오사카 가는 기차 안에서 아저씨가 날 보고 함께 도망가자고 하던 말. 그 땐 말 귀를 못알아 들었어요.
- 그래서 기다린거야. 이런 율금이 올 줄 알면서도 그래서 기다린거야. 그 땐 정말 기회가 좋았었는데. 다시 그런 기회가 올런지는 모르겠다만은.


지금 생각하니께 사람에게는 기회가 일생을 두고 몇번은 오는거 같아요. 꼭. 그러나 사람들은 기회가 와도 온 줄을 모르고 지나치는 수가 많더군요. 오사카 가는 기차에서 우리는 그 첫 번째 기회를 놓친 거지요. 하지만은 내가 단장에게서 무사히 풀려날 수 있었던거는 내가 운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증거였지요. 지금 생각혀도 그건 참 내게는 크나큰 행운이었구만요. 그러고보면 일본 사람이라고 다 악독한건 아니었나 봅니다. 거기다가 단장은 악랄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에게도 한 구석에 인간의 마음이 있었다고 생각하니께 완전한 선인도 없고 완전한 악인도 없다는 생각이 들더만요.

그러고 보면 화자의 열 여섯살은 삼촌을 잃은 불행과 사랑을 얻은 행운을 동시에 가진 해였다. 그러나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을수록 그녀의 앞날은 점점 더 굴곡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장미자, 이동주, 윤병훈, 김원진, 이기전, 안경진, 정경애, 신성호, 서지원, 해설 김규식,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정천모, 주제가 작곡 김학송, 노래 문주란.

(입력일 : 2007.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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