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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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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편 - 제16회 6.25때 얘기
김수환 추기경 편
제16회 6.25때 얘기
1980.04.16 방송
김수환 추기경은 1980년 당시 신군부에 뺏기기 전 동아방송(DBS) 간판 프로그램의 하나였던 `DBS 초대석`에 4월1일부터 23일간 출연했다. 동아일보 논설주간이었던 권오기 전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이 진행했던 이 대담 프로그램에서 김 추기경은 유학시절이야기, 종교·정치, 여러가지 사회문제에 관한 생각 등을 들려 주었다.
Q) 6·25 때 어디 있었습니까?

A) 당시 서울에 있었습니다. 가톨릭대학 당시 성신대학에서 재학 중이었습니다. 교회 교구장 되시는 분이 저를 로마로 유학을 보내기로 결정하셔서 로마 가는 수속을 하고 있었는데 수속 시작한지 3일 만에 6·25가 터졌습니다. 결국은 6월 27일 학교를 떠났고 28일 새벽에 한강을 건넜습니다. 한강다리가 폭파됐습니다. 이상스럽게 저에게 매일 생각나는 것은 한강변에서 사람들이 아직도 다 건너갈 길이 막혀 한강변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입니다. 새벽이 되서야 철도가 끊기지 않은 것을 알고 건넜습니다. 비가 내리고 서울은 빛이 번쩍하고 폭발소리가 들렸습니다. 서울이 그런 상태라는 게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지금은 서울이 너무 비대해져서 그런 친근감을 못 주는 데 그 때 서울은 나라의 심장, 공산 수중에 떨어졌다는 게 매우 비감을 느꼈습니다. 감상적일 수도 있지만 하여튼 새벽에 다리를 건너 대구까지 갔습니다.

Q) 51년에 성신대학에 졸업하고 신부가 되셨습니다. 전쟁 중이었는데…?

A) 가톨릭 대학은 본시 6년제이지만 상지대학하고 졸업하고 와서 편입한 상태였습니다. 졸업은 먼저 되어 있었고 대구서 독학을 하다시피 마치고서 51년 9월에 신부가 되었습니다.

Q) 신부는 병역을 할 필요가 없었나요?

A) 신부든 아니든 관계없이 길거리 나가면 징집되고는 했습니다. 영장 발부하고 그럴 겨를도 없고 걸리면 그냥 군대가고 안 걸리면 안 가고. 교회 안에 사람들 피난하는 일이나 신부 아닌 학생이지만 그런 일을 돕고 있었습니다. 요원증이라는 게 있어서 요원증을 가진 사람들은 거리에서 징집이 안 되었습니다. 그런 일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징집은 안 되었습니다.

Q) 해방될 때 젊은 나이로 일본 군인에서 한국 신부가 되기까지가 청년기였고 전쟁을 겪고 이런 속에서 혹 연애를 하시거나 그런 일을 없었나요?

A) 그것은 글쎄요. 밖에서 생각하듯이 재미나는 스토리는 없고 그 시대는 남녀간의 거리가 있던 시대라 요새하고는 다릅니다. 헌데 제가 그래도 전쟁에서 돌아와서 신학교 가기까지 한 9개월 가까이 대구에 있으면서 교회일도 돕고 형님 신부님 일을 돕고 그럴 때 한 9개월 가량 공백기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 어떤 아주 고민하는 신자 여성이 있어서 그런 분을 정신적으로 도와준 적이 있고 그 분이 마음을 가까이 갖는다는 것을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으나 재미난 스토리는 없습니다. 보통 여자 신자를 대하는 것과 달랐습니다.
그 분이 니체의 책 심취해서 읽었는데 말하자면 허무주의에 빠져있는 상태여서 `신은 죽었다` 그런 면에 빠져 있었습니다. 니체의 다른 면은 종교가 우상화시킨 신은 죽었다, 즉 다른 의미로 신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고 조언했습니다. 영원한 것에 대한 갈망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9.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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