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예수와 마호메트와 부처가 한자리에 계시다면 잘 토론 하실 거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종교란 게 믿는 사람이 절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단과 사교란 관점도 있잖습니까? 공산주의와 종교가 통할 것 같은 뉘앙스도 말씀하셨는데.
A) 이념에 있어서도 휴머니즘을 발견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종교에 있어 양면성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양면성일 것 같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중세와 달리 보수적이고 그런 완고함에서 탈피했습니다. 과거에 교회는 그런 이미지가 있었죠. 직접 대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스스로 선전하기는 좀 그렇지만) 카톨릭은 대단히 열려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Q) 제가 처음에 이런 얘기를 한다고 했을 때, 추기경 전하? 이런 이름을 불러야 하는 건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편안하고, 이전의 제가 알던 느낌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겨주십니다.
A)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물에 물탄 듯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자기의 신념을 뚜렷하게 가지되 그렇다고 남을 배척하거나 단죄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도 믿고 있다는 신념이 있다면 우리가 못 본 진리의 다른 면을 보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서로 틀리다기 보다는 같은 점을 찾아보자는 겁니다. 대화라는 형태로서 교회와 교회 간에 다른 종교 간에 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교든 어떤 종교든 말이죠.
Q) 원자력과 무기경쟁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신가요?
A) 그것이 발전이다 개발이다... 자연세계에 있는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한다면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그런데 무기로 쓴다면, 그럴 위험이 너무 크다면, 그래서 반대하는 건데요. 그것을 어떻게 쓰는가는 인간의 윤리관에 달려 있습니다. 성자의 손에 있는 원자탄은, 강도의 손에 있는 권총보다는 덜 위험합니다. 정말 평화를 사랑하는 성자의 손에 원자탄이 있다면 남을 죽이기 위해 쓰지 않을 겁니다. 권총은 조그만 무기이지만 강도의 손에 있으면 위험합니다. 결국은 인간 자체에 달려 있습니다.
Q)그런데 인간은 약하지 않습니까? 믿기 힘들고, 변하기 쉽습니다. 악마의 힘이란 게 인간을 변질시킨다면, 성자는 어느 조건이라도 꾸준하게 성자일 수 있을까요?
A)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겠죠. 저희들 교회 입장은 한편 과학의 발달은 지지하면서도 무력 경쟁은, 참으로 민감한 문제입니다. 평화라는 것은 무력균형을 통한 평화유지가 현실적인 것 같습니다. 남북한이 서로 대결하고 있지 않고, 서로 왕래하면서 평화를 누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안 되고 인간이 욕심이 많고, 서로 믿지 못하니, 무력의 균형으로서만 평화를 유지할 수가 있다는 것. 그것이 모순이죠. 요전에도 8군 사령관이 "힘을 통한 평화만이 영구적이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군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겠죠. 무력을 생각 안하고 무력을 제어할 능력 없이 평화를 말할 수 없겠다고. 그렇다고 힘에 의한 평화가 참된 평화인가? 쉽게 말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현실에서는 그렇습니다. 카톨릭은 참된 의미의 평화는 물리적인 힘에서 얻어질 수 없고 오로지 마음에서 얻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맥브라이드라는 노벨 평화상을 탄분이 계시는데, 이분이 군축운동을 벌였습니다. 이분은 사례로 강대국들의 군비경쟁 과정에서 하루에 10억불 이상을 쓴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 돈을 평화를 위해 쓴다면 얼마나 이롭겠는가, 하고 말하더군요.
A) 이해는 합니다. 국제 정치 산업 자체가 단순하지 않다. 이상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게 문제겠죠.
(입력일 : 2009.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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