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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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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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의 고향 - 제10회 충북 영동군 양산면
민요의 고향
제10회 충북 영동군 양산면
1974.09.30 방송
‘DBS 리포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심층보도의 본격적인 녹음구성프로그램으로, 4회에 걸친 개국특집프로그램에서 성가를 높인 이후 ‘군사혁명특집·혁명의 발자취’ ‘6월의 정치 풍토’‘선거바람 선심바람’‘학생운동의 이모저모’‘지리산 도벌사건’등 역작을 내놓아 동아방송의 보도시각과 역량을 과시했다.
(음악)

DBS 리포트. 여러분의 기업 현대자동차 제공입니다.

(음악)

동아방송에서는 대중생활 속에 살아있는 민요의 남은 모습을 되찾아 조상이 물려준 생활

의식과 미의식을 오늘의 것으로 되살려 보려는 노력의 하나로 묻혀져 가는 민요를 찾아내

고, 잃어버린 민속과 농촌 정서의 향상을 위해 하나의 민요가 구전돼 내려오는 현장과 함께

현지 농어민의 생활을 취재, 방송하고 있습니다. 상고시대에서 부터 우리 겨레와 함께 살

아 온 우리의 민요는 우리의 언어인 동시에, 우리의 염원과 호소, 저주와 울분등을 노래한

민중의 소리요, 시대의 부르짖음인 것입니다.

(음악)

민요의 고향. 오늘은 열 번째 시간으로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을 찾아 양산도 유래를 알

아 봅니다. 충청북도 영동에서 금산으로 가는 버스를 바꿔 타고, 24km를 달리면은 아직 고

증되지는 않았지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양산도의 고향이라는 영동군 양산면 가산리에 닿

는다. 영동군 양산은 금강 상류를 끼고 있어, 충청북도와 남도의 경계지역이면서 1300년 전

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였다. 금강 상류인 양산은 당시 삼남의 교통의 요로로 신라와

백제의 국토 확장을 위한 싸움이 잦았다. 그래서 신라는 김흠운 장군으로 하여금 백제를 방

어케했으나, 백제의 야습을 받은 신라의 김흠운 장군을 비롯한 모든 장병이 전사하자, 주민

들이 김흠운 장군과 장병을 애도하는 뜻으로 양산가를 지어 불렀다는 것이 양산가의 시초라

고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 이 곳에서 양산가의 전설을 알아도 양산가를 완전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순 세살 이완주 씨의 얘기를 듣자.

(음성녹음)

그래서 신라와 백제의 전투가 벌어졌었던 가내. 지금의 가선리를 찾았으나, 이곳에서도 아

는 이는 아무도 없고, 다만 지금 불리우는 양산도의 가락과 가사가 다르다는 말은 들을 수

있었다. 예순 네살 김범식 씨의 얘기다.

(음성녹음)

이 가선리 마을은 인삼경작으로 5년 전 부터 부촌이 되있고, 72년에는 대통령 표창까지 받

은 새마을 운동의 모범부락으로 되어 있지만은 5년 전만해도 생활이 양산면에서 제일 어려

운 마을이었다. 그래서 민요를 알고 부를 경황이 없었다고 김범식 씨는 말한다.

(음성녹음)

다시 선비가 많이 살고 있다는 옛 백제 땅인 금산군 제원면 저공리를 찾았으나, 이 곳에서

도 아는 이는 없고, 다만 쉰 아홉살 김덕봉 씨가 지금의 양산가를 자기 나름대로 가사를 지

어 불러주었다.

(소리-양산가 와 음성녹음)

금산에서 다시 양산면 사무소에 양산면지를 들추어 봤으나, 전설은 소상히 적혀 있었으나

양산가의 가사는 가자서라 가자서라 모랭이 도라. 양산구경 가자서라. 라고 꼭 스물 한 자

가 이 행으로 적혀 있었다. 그런데 양산가의 전설이 소상히 적혀 있는 것은 삼국유사와 삼

국사기에 적혀 내려오기 때문이라고 면장 이완주 씨는 말해 주면서 양산가에 대한 얘기를

들려준다.

(음성녹음)

교통의 중심지로 삼남대로였다는 이 곳의 지세로 보아 많은 사람의 빈번한 왕래가 신라의

본 고장인 경주 부근인 언양 양산에서 유행했으리라는 가능성도 짙어진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양산가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다는 이대현 씨를 만났다. 이대현 씨는 40년 전에 경

성제국대학 학생들이 양산가에 대해 조사하러 내려 온 것을 계기로 양산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조사했지만은 정확히는 알 수가 없었고, 다만 노인들이 술좌석에서 부르는 것을 유심

히 들어 글로 적어 놓았다고 말한다.

(음성녹음)

지금의 양산도하고는 완연히 다른 맛이 난다. 그러나 많은 세월 속에 가락과 가사도 변질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도 되지만은 그런대로 양산가의 참모습을 조금은 되찾아 낸거 같다.

이대현 씨는 지금은 가사도 제대로 외지 못하고 숨이 차서 노래를 끝까지 부를 수 없다면

서 오래전에 녹음했다는 테잎 하나를 건내 준다. 1300년 전에 불리어 졌다는 양산가를 들

어보자.

(노래-양산가)

양산가가 생겨났다는 고장에서 양산가를 정확하게 알아내지 못하고 떠나 오는 것이 못내 아

쉬웠다. 더구나 이것이 1300년전에 불리워졌던 양산가인지 확인할 길도 없다. 노산 이은상

씨는 영동군지에 신라명장 김흠문 장군의 죽음을 슬퍼하여 노래를 지어주니 그것이 양산가

의 유래이나, 양산가의 노래곡조는 이미 오래전에 끊어졌고, 흠운의 거룩한 애국정신만 남

아 흐른다고 적었다. 이제 겨레와 숨소리를 같이 해왔던 우리의 민요는 이렇게 또 하나 사

라져 간 것이다.

(음악)

DBS 리포트. 오늘은 양산가의 고향이라 전해지는 영동군 양산면을 찾았습니다.

내일은 경상남도 마산시 도개리를 찾습니다.

지금까지 제작 이문현, 기술 김창성, 아나운서 김기경 이었습니다.

(음악)

DBS 리포트. 여러분의 기업 현대자동차 제공 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9.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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