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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향기 - 제24회 학춤과 승무
민족의 향기
제24회 학춤과 승무
1980.10.24 방송
‘DBS 리포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심층보도의 본격적인 녹음구성프로그램으로, 4회에 걸친 개국특집프로그램에서 성가를 높인 이후 ‘군사혁명특집·혁명의 발자취’ ‘6월의 정치 풍토’‘선거바람 선심바람’‘학생운동의 이모저모’‘지리산 도벌사건’등 역작을 내놓아 동아방송의 보도시각과 역량을 과시했다.
(음악)

특집방송 DBS 리포트 민족의 향기 그 전통의 현장을 찾아서

취재와 구성에 사회문화부 이창환 기자입니다.

(음악)

오늘은 승무와 학춤에 대해서 전해 드리겠습니다.

(전통음악-승무)

승무는 불교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춤 가운데 하납니다. 승무는 조선왕조 때의 명기 황진이가

수도승인 지족선사를 파괴시키기 위해 세모시장삼에 고깔을 쓰고 다홍색 띠를 맨 요염한 승복 차림으로

춤을 춘 것이 승무가 시작된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승무는 불교의 의식 무용인

법고에서 유래됐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나 어떤 뚜렷한 증거는 찾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중요무형문화재 27호로 돼있는 승무의 유일한 인간문화재, 예순한 살 한영숙 여사의 말입니다.

(음성 녹음)

한영숙 여사는 조선조의 말기의 학춤과 함께 승무를 정리해 체계를 세운 한성준 씨의 친손녑니다.

한 여사는 할아버지에게서 직접 이 춤들을 배웠습니다.

(전통음악-승무)

승무는 혼자 또는 둘이 추는 게 보통이나 떼를 지어 추는 경우도 있습니다.

승무는 춤사위, 다시 말해서 춤의 동작이 아주 다양하고 각 과정마다 춤의 형식이

뚜렷이 돼있고 잘 짜여 있어서 우아한 분위기를 불러 일으켜 줍니다. 또 춤의 폭이 넓고 깊이가 있어서

명실 공히 우리나라 민속무용 중에서 으뜸이라 할 만하다고 한영숙 씨는 말합니다.

(음성 녹음)

승무에는 피리와 대금, 해금, 장고, 북의 악기가 동원됩니다. 대부분의 장단은 염불장단으로 이어집니다.

거기에는 긴 소매에 하얀 고깔 등, 스님의 복장이 제격입니다.

(음성 녹음)

(전통음악-학춤)

한영숙 여사는 무형문화재 40호 학춤에서도 유일한 인간문화재로 지정돼있습니다.

학춤은 서기 1300년대 고려시대로부터 전해져오는 궁중무용으로서 조선왕조의 세조 때에

보강이 됐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학춤은 악학궤범에 수록된 무보에 의해 추어지고 있는데

거기에서 학춤은 혼자서 추는 독무였습니다. 학춤은 성종 조에 이르러서는 악학궤범에 기록될 만큼

큰 발전을 했고 성종 이후에도 조선왕조실록에 학춤이 궁중행사에 포함돼왔다는 기록으로 봐서

처용무와 함께 학춤이 궁중에서 계속돼왔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별도로

민속적인 학춤도 계속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한영숙 여사의 할아버지 한성준 씨는

바로 이 민속적인 학춤을 정리해 전승시킨 것입니다.

(음성 녹음)

학춤을 출 때 학의 탈은 닭의 털을 씻어 말려 학의 기본모양에 풀로 붙이면서 꿰매 만들었습니다.

이와 같은 학의 탈을 쓰고 춤을 추면은 여간 힘이 들지 않습니다.

(음성 녹음)

학의 탈을 쓰면은 너무 힘이 들기 때문에 맨몸으로 연습을 하다가 공연할 때야 탈을 쓰면은

동작이 틀려지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연습할 때부터 무겁고 힘든 탈을 쓰고 해야 합니다.

학의 우아한 걸음걸이와 몸짓, 날갯짓, 그리고 먹이를 쫓고 부리를 털에 닦는 것 등

동작 하나하나를 학과 똑같이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렵지가 않은 것입니다.

한영숙 여사는 학의 이런 모습 하나하나를 배우기 위해 창경원에 학을 찾아가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습니다.

(음성 녹음)

옛날 왕산악이 거문고를 탈 때,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는 얘기도 전해지지만 학춤의 음악 또한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학춤에는 장고와 피리, 해금, 북 등의 악기가 동원됩니다.

(음성 녹음)

(전통음악-학춤)

한 여사는 무대에 오르면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수많은 관중을 사로잡는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전수생 박재희 씨의 말입니다.

(음성 녹음)

열세 살 되던 해에 할아버지 한성준 씨가 운영하던 조선고전음악무용연구소에

처음으로 들어가 춤을 배우기 시작했던 한영숙 여사는 올해 환갑을 맞았습니다.

그러니까 47년을 승무와 학춤으로 보낸 셈입니다. 어려서 할아버지에게서

우리 고유의 무용을 그대로 배워 그것을 몸에 익혀 왔기에 더욱 애착이 가는 것은 물론이고

승무나 학춤의 어느 것 하나를 더하거나 빼고 싶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한 여사는

특히 원형을 그대로 전수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음성 녹음)

한영숙 여사는 세 평 남짓한 현재 살고 있는 집 마루에서 쇠약해진 몸으로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전통무용을 위해 일생을 바쳐 왔기에 후배들에게 좋지 않은 여건 속에서나마 학춤과 승무를

전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은 결사적이라고 볼 수 있는 한 여사의 전수활동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가끔 있다고 합니다.

(음성 녹음)

한 여사는 의사로부터 춤을 추어서는 안 된다는 진단을 받고서도 춤을 추었습니다.

병석에 그대로 누워 있으면은 할아버지에게서 배운 전통무용이 끊길 것만 같아서

필사적으로 춤을 춘 것입니다. 스승의 건강을 걱정하는 제자들의 보살핌 속에 오늘도 한 여사는

조상의 체취가 깃든 우리의 춤을 추고 있습니다. 한 여사는 자신의 육신은 힘이 다해

춤을 추지 못해도 영혼은 계속해서 춤을 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전통음악-학춤)

내일 이 시간에는 남사당패에 대해서 전해 드리겠습니다.

취재와 구성에 사회문화부 이창환 기자였습니다.

(음악)

DBS 리포트를 마칩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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