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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향기 - 제16회 농악
민족의 향기
제16회 농악
1980.10.16 방송
‘DBS 리포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심층보도의 본격적인 녹음구성프로그램으로, 4회에 걸친 개국특집프로그램에서 성가를 높인 이후 ‘군사혁명특집·혁명의 발자취’ ‘6월의 정치 풍토’‘선거바람 선심바람’‘학생운동의 이모저모’‘지리산 도벌사건’등 역작을 내놓아 동아방송의 보도시각과 역량을 과시했다.
(음악)

특집방송 DBS 리포트 민족의 향기 그 전통의 현장을 찾아서

취재와 구성에 정경부 김진원 기자입니다.

(음악)

오늘은 농악 12차에 대해서 전해 드리겠습니다.

(전통음악-농악)

농악은 민속예술 가운데 가장 우리의 귀에 익은 가락이면서 대중적인 놀이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 지방에서는 정월이나 팔월대보름, 모내기와 논매기 때는

농악놀이를 했고, 지금도 일부지방에서는 이따금씩 농악으로 흥을 돋우면서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본래의 농악 그 자체는

배우기도 힘들 뿐더러 그 뜻을 이해하기도 매우 어려운 가락과 춤입니다.

(전통음악-농악)

농악은 삼한시대에 있었던 제천의식의 춤 장단에서부터 비롯된 그야말로 우리 고유의

가락이요 한국의 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옛 문헌을 보면은 풍년을 기원하고

집안이 무사태평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농악놀이를 했다고 기록돼있기도 하고

또 전쟁 때 적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서 수뢰옥진, 또는 팔진법 등을 노래와 춤으로

훈련하게 한 것이 농악 또는 농군악으로 발전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어쨌든 농악은 파종 때나 추수 때 풍년을 기원하고 수확을 감사하는 데서부터 구경거리의 연회물로

변천되기까지 서민들에게 가장 친근했던 농민음악인 동시에 민족음악인 것입니다.

(전통음악-농악)

농악은 원래 각각 다른 열두 가지의 기본 가락으로 구성됩니다. 그래서 농악에

12차라는 말이 붙어 있는데 이 12차, 다시 말해서 열두거리란 본래의 농악은

기본가락 열두 가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열두거리가 못되는 농악은

진짜 농악이 아니라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본래의 농악은 기본 가락이 열두 가지지마는

이 기본 가락에는 또 다른 가락이 각각 세 개씩 들어 있어서 결국 진짜 농악은 모두 다른 서른여섯 개의

가락으로 이루어진다는 얘기가 됩니다. 농악 12차에는 인간문화재가 단 한 명밖에 없습니다.

경상남도 삼천포에 살고 있는 일흔 한 살, 문백윤 씨가 바로 그분입니다. 문 씨의 말을 들어 보겠습니다.

(음성 녹음)

문 씨의 말처럼 사실 농악 12차의 서른여섯 가락은 말로는 설명하기가 어렵고

또 보고 들어도 전문가가 아니면은 각 가락을 구분해서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농악 12차는 옛 병법의 진법으로 구성됩니다. 이를 테면, 진을 둘로 나눈다는 쌍진.

고동모양으로 진을 친다는 고동진. 신장을 부른다는 강마진. 승패를 결판내기 위해서 친다는 황화진.

진 중에서 구름과 안개를 일으킨다는 운무진. 둥글게 진을 친다는 금쇠진 등등입니다.

문백윤 씨의 말입니다.

(음성 녹음)

전장에서 적과 싸우는 전법도 갖가지입니다. 변화무쌍한 가락으로 진을 쳐서 공격도 하고

후퇴도 하고 적진을 정탐도 합니다.

(전통음악-농악)

(음성 녹음)

농악 12차는 길군악, 반삼채, 도드리, 사모잡이, 반영산, 지화굿, 호호굿, 동맞이굿, 달거리, 허튼채.

그리고 영산의 이름이 기본 가락으로 진행됩니다. 우리가 흔히 시골장터나 방송에서 보고 듣는

농악은 이 열두거리 가운데 한두 거리에 불과하고 어떤 거는 가락 자체도 본래의 것과 전혀 다른 것도 있습니다.

농악 12차의 첫머리, 바꿔 말해서 총사령관은 꽹가리인 상쇱니다. 총사령관인 상쇠가 처음부터

끝까지 서른여섯 가락을 쳐서 전투를 이끌고 나머지 대원들은 상쇠가 지휘하는 대로

일사분란하게 따르는 것입니다.

(음성 녹음)

(전통음악-농악)

농악 12차는 모두 서른여섯 명으로 구성합니다. 이 서른여섯 명은 농악의 서른여섯 가락,

다시 말해서 36진을 뜻한다고도 합니다.

(음성 녹음)

또 다음에는 허드레광대와 양반 호저, 꽹과리를 치는 상쇠 네 명, 징을 치는 세 사람. 설장구 네 사람.

작은 북을 치는 열두 명이 나오고 맨 마지막에는 포수가 대원의 뒤에 섭니다. 맨 앞의 깃대가

갈 길을 정리하는 반면에 포수는 맨 뒤에서 부대원의 이탈을 막고 독전을 하는 역할을 맡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성된 농악은 12차까지 마치는 데 네 시간가량이 걸립니다.

(음성 녹음)

이처럼 놀음시간도 길고 가락 가락을 펼쳐내기도 어려워서 요즘에 와서는 두 시간 반 정도로 줄여서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전통음악-농악)

농악을 12차까지 제대로 해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렸습니다마는 경상남도 삼천포의

문백윤 씨는 농악 12차의 진본을 재현해낼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인간문화재입니다.

문 씨 외에 농악 부문에서 진주 출신의 황일백 씨가 문 씨와 함께 지난 66년에 인간문화재로

지정이 됐었지만 7년 전에 예순 한 살의 나이로 작고했습니다. 문백윤 씨는 어렸을 때부터

농악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다고 합니다. 남달리 기골이 컸던 문 씨는 열다섯 살 때부터

동네 어른들 틈에 끼어서 모내기와 김매기 등 농사일을 했습니다. 이때부터 문 씨는 꽹과리를 치게 됐다고 합니다.

(음성 녹음)

그러나 문백윤 씨가 정통적인 꽹과리 치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은 열여섯 살 때부터였습니다.

스승인 고 김한로 씨가 문 씨의 이웃 마을로 이사 와서 어느 날 밤 모내기를 끝내고

농악을 노는 자리에 끼게 된 것이 문 씨가 진짜 농악을 배우게 된 인연이었습니다.

(음성 녹음)

이때부터 문백윤 씨는 김한로 씨를 따라다니면서 농악 12차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오십대 후반의 나이였던 고 김한로 씨는 이른바 정월집돌림이나 행사 때 문 씨를 데리고

다니면서 틈틈이 자기의 기능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음성 녹음)

그러나 그때는 꽹과리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서 스승의 꽹과리는 놀이 때만 사용하고

배울 때는 양철로 꽹과리를 만들어서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음성 녹음)

그러나 문백윤 씨는 스승 김 씨의 기능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열심히 배운 끝에

여섯 달 후에는 자신이 앞장서서 농악대를 지휘하기 시작했다고 이렇게 말합니다.

(음성 녹음)

이렇게 해서 스승으로부터 기능을 전수받은 문 씨는 일제시대에는 일제의 탄압으로

농악을 하지 못하다가 해방을 맞아서 해방농악이라는 농악대를 조직하고

온 고을을 돌면서 해방의 기쁨을 나눴습니다. 문 씨와 한동네에서 살아온 이창동 씨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음성 녹음)

해방 이후 문 씨는 6·25동란을 겪으면서 부산과 진주, 그리고 고향인 삼천포를 오가면서

각종 농악대회 심사위원도 맡고 농악대를 조직해서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66년에는 농악 12차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면서

문 씨는 인간문화재로 지정을 받았습니다. 문 씨는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기능을 이어받을 제자 여덟 명을 키웠지마는 모두 문 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고

지금은 오직 한 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문 씨는 이 한 명의 제자만으로는

도저히 농악 12차를 이어갈 수 없기 때문에 여생을 더 많은 제자를 길러내는 데 바치겠다고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음성 녹음)

(전통음악-농악)

(음악)

내일부터는 전라도와 충청도 지방의 강강술래와 남도들노래, 은산별신제, 한산모시 등을

보도제작부 김수연 기자가 소개해 드립니다.

취재와 구성에 정경부 김진원 기자였습니다.

(음악)

DBS리포트를 마칩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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