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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향기 - 제14회 승전무
민족의 향기
제14회 승전무
1980.10.14 방송
‘DBS 리포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심층보도의 본격적인 녹음구성프로그램으로, 4회에 걸친 개국특집프로그램에서 성가를 높인 이후 ‘군사혁명특집·혁명의 발자취’ ‘6월의 정치 풍토’‘선거바람 선심바람’‘학생운동의 이모저모’‘지리산 도벌사건’등 역작을 내놓아 동아방송의 보도시각과 역량을 과시했다.
(음악)

특집방송 DBS 리포트 민족의 향기 그 전통의 현장을 찾아서

취재와 구성에 정경부 김진원 기자입니다.

(음악)

오늘은 경상남도 충무의 승전무에 대해서 전해 드리겠습니다.

(전통음악)

옛 이름으로 통영인 충무는 조선왕조 때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던

전략기지였고 특히 임진왜란 때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무찌르고

공을 세운 곳이기도 합니다. 승전무는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이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싸움에 이기고 나서는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서 추게 했던 북춤의 하나입니다.

북춤은 원래 고려 충렬왕 때 시중 이곤이 섬에서 귀향살이를 하면서

바다에 떠내려 온 나무토막으로 북을 만들고 이에 맞는 춤을 창안해낸 것이 그 기원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고려사에 따르면 북춤을 추는 모양을 나비가 쌍을 지어 꽃가지 사이로

훨훨 날고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서로 빼앗으려고 싸우는 형상이라고 그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려 때 시작된 북춤은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는 연회담당부서인 이른바 교방청에

예속돼서 구한말 고종 때까지 전래돼왔습니다.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던 통영에도

관에서 교방청과 이른바 취고수청을 두고 제비, 바꿔 말해서 악사를 양성해서 행사 때마다 북춤을

추게 했습니다. 특히 이순신 장군이 통제사로 있었을 때는 왜적들을 물리친 승전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서 이 북춤을 추게 했는데 이때부터 통영에서는 북춤을

승전무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전통음악)

승전무는 옛 병법에 따라서 용병을 하는 형식으로 구성돼있습니다.

인간문화재 이치조 씨의 설명입니다.

(음성 녹음)

한가운데 놓은 북은 오방신장 가운데 으뜸인 황제장군을 뜻하는 것으로 모든 지휘와 호령, 그리고 신호를

맡고 있습니다. 이 북이 한 번 울리면 집합을 하라는 신호이고 두 번 울리면 진격 또는 전투,

세 번 울리면 퇴진 또는 정전을 하라는 명령입니다. 승전무의 춤사위는 원무와 현무, 삼진삼퇴,

그리고 쌍오리사위로 이루어집니다. 원무는 네 명이 동서남북으로 갈라서 추는 춤이고 현무는 원무의 들러리로 원무

바깥쪽에서 중앙을 호위하면서 열두 명이 춤을 추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삼진삼퇴는

세 번 전진하고 세 번 후퇴하는 작전을 나타낸 춤사위로 세 번 앞으로 가고, 또 세 번 뒤로 물러서는 춤입니다.

그리고 쌍오리사위는 둘씩, 둘씩 어깨를 맞춰서 오른손을 상대방 어깨 위에 얹고 왼손은 상대방

허리를 잡고 추는 춤사윕니다. 승전무는 전체적으로 춤가락이 부드러우면서도 중후한 멋이 있습니다.

인간문화재 박복률 씨의 말입니다.

(음성 녹음)

승전무는 처음 원무로부터 시작해서 현무가 나오고 원무와 현무가 끝나면

춤추던 열여섯 명의 무인들은 지화자를 창을 함께 부릅니다.

(전통음악)

지화자를 창을 네 번 하고 나면 다시 현무가 이어지고 충무공의 높은

공을 찬양하는 노래에 이어서 기세를 올리는 것을 뜻하는 허튼타령의 지화자창이

다시 이어집니다.

(전통음악)

허튼타령의 지화자노래가 스물네 번 반복되고 나면 마지막으로 전투에서 이긴 것을

기뻐하는 굿거리장단으로 이어집니다.

(전통음악)

승전무도 조선왕조 말엽까지 교방청과 취고수청에 의해서 전해 내려오다가

일제시대에는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돼서 하마터면 없어져버릴 뻔했습니다.

60년대 초에 들어와서 정부당국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찾으려 애썼습니다마는

이때 승전무를 출 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밖에 생존해 있지 않았습니다.

교방청 출신은 모두 세상을 떠난 뒤였고 교방청 출신인 고 김해근 할머니에게서

춤을 배운 정순남 씨 혼자만이 생존해 있었습니다. 또한 악사도 취고수청 출신들은

모두 작고하고 취고수청 출신에게서 악기를 배운 고 이갑조, 주봉준, 박경규 씨 등

세 명만이 생존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이처럼 기능보유자들이 몇 명 되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승전무를 제자들에게 전수시킴으로서 재연할 수 있게 됐던 것입니다.

인간문화재 이치조 씨는 승전무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 전수받던 당시의 사정을 이렇게 들려줍니다.

(음성 녹음)

특히 인간문화재 박복률 씨는 아버지인 박경규 씨가 피리를 부는 악사였는데

아버지가 연로한 후에서야 그 기능을 이어받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이치조 씨와 함께 악을 배웠습니다. 이치조 씨는 박 씨와 함께 전수받을 때의 상황을 이렇게 말합니다.

(음성 녹음)

박복률 씨는 아버지가 젊었을 때 일찌감치 배워놓지 못해서 후회도 했고 어려움도 많았었다고

이렇게 들려줍니다.

(음성 녹음)

박 씨는 특히 30대의 젊은 나이에 어선 선장을 집어치우고 피리를 불기로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도 했다고 합니다. 이 씨와 박 씨는 주위로부터 미친 사람이라는 손가락질도 받았고

생활고로 주린 배를 움켜쥐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회상합니다.

이치조 씨의 말입니다.

(음성 녹음)

그러나 이 씨와 박 씨는 생업을 집어치우고 승전무를 배운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으며 전통문화를 이어간다는 긍지로 살아가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받은 박 씨는 자신이 부는 피리 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면서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기능을 다시 자녀들에게라도

가르쳐서 전통문화를 이어가도록 하겠다고 굳은 각오를 보였습니다.

(음성 녹음)

(전통음악)

승전무는 지난 64년에 중요무형문화재 21호로 지정된 이후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 사당의

봄, 가을의 향사 때와 이 충무공의 생신제, 지신제 때 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인간문화재를 둔 충무 시내에 전수관을 마련해서 일반인과 학생들에게 일주일에 두 시간씩

춤과 악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특히 인간문화재들은 충무의 충렬여자상업고등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이 학교 학생들에게 집중적으로 전수시키고 있습니다.

(음성 녹음)

인간문화재들은 이처럼 열심히 전수시키고는 있지만 역시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젊은 층의

적극적인 참여가 아쉽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것을 먼저 알고 남의 것을 배워야 되는데

많은 우리의 젊은이들은 국악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른 채 서양의 팝송만을 먼저 배운다고

인간문화재들은 한탄했습니다.

(음성 녹음)

(전통음악)

이들 인간문화재들은 이제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발굴, 전승시키는 차원에서

보급하고 대중화하는 그와 같은 차원으로 발전시켜야 하고 관계당국도 이런 측면에서

문화정책을 세우고 실행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음악)

내일은 진주검무에 대해서 전해 드리겠습니다.

취재와 구성에 정경부 김진원 기자였습니다.

(음악)

DBS리포트를 마칩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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