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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향기 - 제13회 광대놀이
민족의 향기
제13회 광대놀이
1980.10.13 방송
‘DBS 리포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심층보도의 본격적인 녹음구성프로그램으로, 4회에 걸친 개국특집프로그램에서 성가를 높인 이후 ‘군사혁명특집·혁명의 발자취’ ‘6월의 정치 풍토’‘선거바람 선심바람’‘학생운동의 이모저모’‘지리산 도벌사건’등 역작을 내놓아 동아방송의 보도시각과 역량을 과시했다.
(음악)

특집방송 DBS 리포트 민족의 향기 그 전통의 현장을 찾아서

취재와 구성에 정경부 김진원 기자입니다.

(음악)

오늘은 고성 오광대와 통영 오광대에 대해서 전해 드리겠습니다.

(전통음악)

경상남도 고성과 통영, 지금의 충무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오광대는

춤과 창과 재담과 동작이 곁들여진 탈춤극의 하나입니다.

고성과 통영의 오광대는 모두 동래와 수영의 들놀음과 같이 경상남도 합천군 덕곡면 율지리

밤마을의 대광대에게서 금세기 초인 1900년경에 전래된 것으로 고증되고 있습니다.

오광대라는 이름의 다섯 오자는 금목수화토의 오행을 뜻한다는 설과 오방지신, 즉 동서중남북의

오방신장을 의미한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고성 오광대 인간문화재인 허판세 씨의 설명입니다.

(음성 녹음)

오광대놀이는 양반계급에 대한 반감과 모욕, 응징의 내용으로 구성돼있습니다.

양반과 상노의 계급차별이 심했던 조선조 중엽, 양반계급에 대한 평민들의 불만과

반발, 그리고 항거가 무기 없는 풍자 가면극으로 서민사회에 나타나게 됐던 것입니다.

통영오광대 인간문화재인 강연호 씨의 말입니다.

(음성 녹음)

또한 이 오광대놀이의 시초는 양반집 머슴살이를 하던 상노가 양반들의 구박이 너무 심해서

울분을 참지 못해 하루는 술을 잔뜩 마시고 취한 김에 탈을 만들어 쓰고 양반들을

실컷 욕해본 데서 비롯됐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같은 뿌리이면서도 동래와 수영 들놀음이

양반에 대한 항거와 함께 오늘날의 축제 형식을 띈 것과는 달리 고성과 통영의 오광대놀이는

줄곧 양반에 대한 반발과 인권 해방을 부르짖는 내용으로 일관돼 있습니다.

(전통음악)

고성 오광대와 통영 오광대는 다 함께 다섯 마당으로 구성돼서 그 흐름은 비슷하지마는

각 마당의 명칭이 다르고 또 한두 마당의 연출 내용이 각각 다른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고성 오광대는 첫째 마당이 문둥북춤, 통영 오광대는 법고탈로 그 이름이 붙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두 오광대 모두 양반의 자손인 문둥이가 조상들의 누적된 죄과로

그때만 해도 불치병으로 여긴 문둥병에 걸려서 출세를 하지 못하는 원한과 비분,

그리고 통탄을 춤으로서 표현합니다.

(전통음악)

문둥이가 된 양반의 자손이 신세자탄을 하는 첫째 마당이 끝나면 고성 오광대는 오광대마당,

통영은 풍자탈마당이라는 이름으로 둘째 마당이 펼쳐집니다. 본격적인 양반에 대한 반발과

증오의 장면입니다. 인간문화재 강연호 씨의 설명입니다.

(음성 녹음)

기골이 장대하고 웅장한 탈을 쓴 말뚝이는 양반들 몰아세우고 조롱합니다.

(전통음악)

둘째 마당에서 이처럼 말뚝이가 양반을 공격하고 기세를 꺾어도 오광대놀이는 양반에

대한 질책을 멈추지 않습니다. 셋째 마당에서 고성은 비비, 통영은 영노라는 무서운 모습을 한

괴물이 나타나서 양반을 잡아먹겠다고 을러댑니다.

고성 오광대의 비비마당입니다.

(전통음악)

이렇게 해서 셋째 마당에서 양반을 혼비백산시킨 뒤 고성 오광대는 승무라는 이름으로

통영 오광대는 농창탈이라는 이름으로 넷째 마당이 이어집니다. 고성의 승무마당은

입산수도하는 중이 파계를 하고 속세의 연정에 이끌려서 기생을 유혹하는 승려의 파괴상을 그려냅니다.

통영의 농창탈마당은 역시 부패한 양반의 생활상을 지적하면서 양반들을 공격합니다.

통영 오광대의 이 넷째 마당은 작은 어미라는 뜻의 제밀주라는 이름이 붙은 고성 오광대의

다섯째 마당과 그 내용이 같습니다. 즉, 양반인 영감이 본처를 버리고 첩을 얻어서 살다가

결국은 패가망신한다는 내용으로 당시 양반들의 축첩제도를 신랄하게 비꼬는 마당입니다.

(전통음악)

양반들의 무질서한 생활을 그리면서 죽음에는 빈부와 귀천이 없음을 깨닫게 하고

고성 오광대는 막을 닫습니다. 그러나 통영 오광대는 다섯째 마당인 포수탈마당을 통해서

또다시 양반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합니다. 강연호 씨의 설명을 듣습니다.

(음성 녹음)

양반사회의 파벌과 세력다툼이 쉴 새 없고 이 속에서 백성들은 죽은 듯 꼼짝을 못하지마는

약육강식의 엄연한 사실 앞에 결국 양반들의 운명도 풍전등화로 그같이 보잘것없다고 비꼬는 것입니다.

(전통음악)

다른 문화재도 마찬가지지마는 일제시대에는 오광대놀이도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다 기우제를 지내면서 광대놀이를 할라치면은 일제 관헌은 연기자들을

잡아다가 매를 때리고 탈까지 빼앗아 없애버렸습니다. 고성 오광대의 경우를

인간문화재인 허정복 씨는 이렇게 들려줍니다.

(음성 녹음)

해방을 맞아서 고성과 통영에서는 그때까지 살아남은 몇몇 기능보유자들이

탈과 의상을 다시 만들고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명절 때마다 놀이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정은 해방 직후여서 문화재 보호에 대한 당국의 배려도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기능보유자들의 생활 형편도 넉넉지 못해서 기능을 전수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현재 인간문화재로 지정돼있는 오육십 대의 기능보유자들은 모두 당시에 어려움을

무릅쓰고 스승에게서 춤과 악기를 배운 사람들입니다. 허정복 씨의 말입니다.

(음성 녹음)

특히 이들 인간문화재들이 오광대를 배우는 데 가장 참기 어려웠던 것은 주위사람들로부터

‘광대패거리’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역경을 딛고 기능을 배운

사람들로해서 오광대놀이는 그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고 통영 오광대는 지난 64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6호로, 고성 오광대는 70년에 제7호로 지정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고성, 통영 모두 명절 때와 행사 때 놀이를 하고 있고 각각 기능을 전수시킬

문하생 40여명에게 일주일에 두서너 시간씩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성, 통영지방에는

지금도 광대놀이를 하는 사람들에게 ‘광대패거리’라고 손가락질 하는가 하면은 문중에서조차

배척하는 관습이 남아 있습니다. 인간문화재들은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지방 주민들의

사랑과 이해가 아쉽다면서 전통문화에 대한 사랑과 이해 없이는 올바른 전수도

불가능하다고 역설했습니다.

(음악)

내일은 승전무에 대해서 전해 드리겠습니다.

취재와 구성에 정경부 김진원 기자였습니다.

(음악)

DBS리포트를 마칩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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