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특집방송 DBS 리포트 민족의 향기 그 전통의 현장을 찾아서
취재와 구성에 정경부 김진원 기자입니다.
(음악)
오늘은 동래야유, 동래들놀음에 대해서 전해 드리겠습니다.
(전통음악)
경상남도 지방에 분포돼있는 야유, 즉 들놀음과 오광대놀이는 모두 탈을 쓰고
춤을 추는 우리나라 가면무극의 하나입니다. 이들 들놀음과 오광대는 조선조 말기에
낙동강변에 있는 합천군 덕곡면 율지리 밤마을에서 형성된 대광대에 그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밤마을의 대광대가 조선과 통영 등지로 전파돼서 오광대가 됐고 동래와 부산, 수영에서는
들놀음이라는 이름으로 정착됐습니다. 동래야유 인간문화재인 문장훈 씨의 설명입니다.
(음성 녹음)
야유, 바꿔 말해서 들놀음은 굿거리장단에 덧배기춤이 주가 되고 거기에 재담과 동작이 곁들여진
연출형식을 가진 탈춤놀이가 중심이 됩니다. 특히 동래야유는 덧배기춤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옛날부터 동래사람은 팔만 벌리면 춤이 된다는 얘기가 있다고 합니다마는
동래야유의 덧배기춤은 특출한 춤사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원인은 옛날 동래는 부사가 있었던
고을이어서 비방도 많았고 부유한 계층의 한량들도 다른 지방보다 특별히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동래 사람들은 설명하기도 합니다.
(전통음악)
동래들놀음은 음력 정월대보름날 밤에 펼쳐집니다. 대보름날 동부와 서부 간의 줄다리기 경기가 끝나면
부산다리 위에서 출발하는 들놀음은 비문위로 이어집니다.
이 들놀음은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새벽 2~3시경까지 순서대로 각 과장, 다시 말하면
마당이 연출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길놀이, 문둥이, 영감, 할미영감 이렇게 네 마당으로
이어지면서 권선징악과 인생의 히로애락이 펼쳐집니다. 동래들놀음 네 마당 가운데
으뜸은 역시 길놀이마당입니다.
(음성 녹음)
불교의식적인 관등이 결합된 이 길놀이마당에는 청사초롱과 중등, 일산 등이 주를 잇고
오동통하게 울리며 육잽이가 등장하고 한량들이 난봉가를 부르면서 행렬은 약 1km나 뻗칩니다.
(음성 녹음)
이처럼 흥이 절정에 달하는 군무가 진행되면은 인생을 한탄만 하며 사는 문둥이들까지도
풍악에 흥이 겨워서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자정이 넘고 아낙네와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며는 춤추던 군중은 한 발치씩 물러서서 관객이 되고 탈춤놀이의 연희자 삼십여 명이 나와서
양반마당을 연출합니다. 말을 끄는 마부, 말뚝이가 등장해서 그 시절 양반 사회의 모순과
비리를 비꼬아 공격합니다.
(전통음악)
결국 말뚝이는 양반의 허세와 가식을 벗겨버리고 양반들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도록
촉구합니다. 말뚝이 역에 인간문화재 박정실 씨의 말입니다.
(음성 녹음)
옛날 동래 사람들은 이 풍자극을 통해서 당시 양반의 세도에 억눌려 지내던 울분을
잠시나마 발산시키는 쾌감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양반마당이 끝나면 남녀 애정 갈등이 빚어내는
가정비극이 할미영감마당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집니다.
인간문화재 양세주 씨의 설명입니다.
(음성 녹음)
이렇게 해서 영감, 할미 , 제대각시의 삼각관계가 이루어지고 결국 영감이 조강지처인 할미와
말다툼을 하다가 할미를 밀어뜨려서 숨지게 하고 맙니다. 할미가 숨지자 영감은
지나간 젊은 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후회하지마는 이미 때는 늦었고 영감은 슬픔 속에
할미의 장례를 치러줍니다.
(전통음악)
(음성 녹음)
이렇게 할미영감마당을 끝으로 화려한 동래들놀음이 막을 내리면 길놀이마당에서
마부로 등장한, 이른바 오입장들과 한량들은 기방을 찾아서 그날 눈이 맞은 기생과
사랑을 나누게 된다는 뒷얘기는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전통음악)
동래들놀음이 지난 66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조선조 말기로부터 1930년대까지 해마다 정월대보름날 밤이면 이 들놀음이 진행됐지만
30년대 이후로는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제 관헌들은 악기와 탈, 의상
등을 빼앗아 불살라버렸고 들놀이놀음을 하던 연기자들도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해방 이듬해인 46년에 3.1운동을 기념하기 위해서 단 한 번 이 행사가 베풀어지긴 했지마는
대부분의 기능보유자들은 이를 제대로 전수하지 못한 채 차례로 작고하고 말았습니다.
60년대 들어와서 정부가 전통예술을 발굴하기 시작했을 때는 박덕업 씨와 신우환 씨, 이렇게
두 분만이 겨우 생존해 있었습니다마는 그분들도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장원 씨의 말입니다.
(음성 녹음)
예술을 하려면 속된 말로 예술에 미쳐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마는 인간문화재들도 그 악기와
놀이에 미치지 않고는 예능과 기능을 제대로 이어받을 수가 없습니다.
말뚝이 역의 인간문화재 박정실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음성 녹음)
올해 나이 예순여덟 살인 박 씨는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이어간다는 긍지를 갖고
지금까지의 고달픈 삶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면서 지난날 멋진 춤을 배우기 위해서
스승인 고 박덕업 씨로부터 꾸지람도 많이 들었다고 회상합니다.
(음성 녹음)
(전통음악)
동래들놀음은 주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로 해마다 봄에 한 번씩 소규모로 재연되고 있고
무대에서는 약식으로 봄에 두 번, 가을에 두 번. 이렇게 네 차례 공연되고 있습니다.
또 부산시 민속예술보존협회에서는 금강공원 안에 전수관을 마련해서
인간문화재들이 나서서 단체나 혹은 개별적으로 전수시키고 있습니다.
문장원 씨의 설명입니다.
(음성 녹음)
그러나 이처럼 열심히 전수교육을 하고는 있지마는 인간문화재들은 젊은 층의 호응도가 낮은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인간문화재 양세주 씹니다.
(음성 녹음)
인간문화재들은 젊은 층이 우리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배우게 하기 위해서는
정책적으로 중고등학교 때부터 교과의 단원으로 삼지 않고서는 후대에 이를 계승시키기 어려울 거라면서
당국의 배려와 결단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전통음악)
(음악)
내일은 수영들놀음과 좌수영어방놀이에 대해서 전해 드리겠습니다.
취재와 구성에 정경부 김진원 기자였습니다.
(음악)
DBS리포트를 마칩니다.
(입력일 : 201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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