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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향기 - 제7회 황해도 탈춤
민족의 향기
제7회 황해도 탈춤
1980.10.07 방송
‘DBS 리포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심층보도의 본격적인 녹음구성프로그램으로, 4회에 걸친 개국특집프로그램에서 성가를 높인 이후 ‘군사혁명특집·혁명의 발자취’ ‘6월의 정치 풍토’‘선거바람 선심바람’‘학생운동의 이모저모’‘지리산 도벌사건’등 역작을 내놓아 동아방송의 보도시각과 역량을 과시했다.
(음악)

특집방송 DBS 리포트 민족의 향기 그 전통의 현장을 찾아서

취재와 구성에 사회문화부 이창환 기자입니다.

오늘은 황해도 지방의 탈춤에 대해서 전해 드리겠습니다.

(전통음악)

황해도에는 열일곱 개 군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각 군마다 별도의 탈춤이 있었습니다.

황해도의 주요 읍들은 농산물과 수공업 생산물의 교역지여서 탈춤을 뒷바라지 할 수가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해주, 감행에서는 매년 4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서 황해도 안에 있는 모든 탈춤들이 참석하는 고전 향토계라는 일종의 탈춤 경연대회가 있었습니다.

1등을 한 팀에게는 돈 천 냥이 상금으로 수여됐습니다. 이 경연대회는 한일합방 전까지 계속됐습니다.

일제 시대에는 그와 같은 대규모 경연대회는 열지 못하고 각 군마다 나름대로 그 명맥을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다가 남북이 갈라지고 남쪽으로 피난해온 실향민들이 두고 온 고향의 탈춤을 잊을 수가 없어 타향에서 다시 이를 재현시킨 것입니다. 맨 처음으로 구성된 봉산탈춤이 무형문화재 17호로, 강령탈춤이 34호로, 그리고 은율탈춤이 61호로 각각 지정됐습니다.

황해도 지방의 탈춤은 그 내용이 비슷하지만 춤사위와 대사가 각기 다릅니다.

봉산탈춤의 인간문화재로 지정됐다가 마흔 살이 안 됐다는 이유로 지난 71년에 지정이 취소돼 지금은 봉산탈춤의 이수생으로 돼있는 김기수 씨로부터 황해도 탈춤의 내용을 들어보겠습니다.

(음성 녹음)

황해도에서는 8월 추석보다도 5월 단오에 더욱 큰 탈춤 행사가 베풀어졌습니다.

봉산탈춤의 인간문화재 김선봉 씨의 말입니다.

(음성 녹음)

(전통음악)

탈춤에 드는 비용은 그 지방 유지와 상인들이 마련해 관람료는 따로 받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가장 명성이 높았던 봉산탈춤은 반가에 경사가 있을 때나 특히, 중국 사신을 영접할 때는 특별공연을 했습니다. 장작불을 뛰어넘는 정도로 활달하고 절도 있는 춤을 추는 봉산탈춤은 화려한 옷과 굴곡이 심한 탈의 율동에서 더욱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김선봉 씨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강령탈춤은 해주 감행의 탈춤이 그만 해산되자 그 일부가 강령으로 모여 새로운 탈춤을 만들면서부터 비롯됐습니다. 강령은 해주에서 남서쪽으로 80여 리 가량 떨어져 있는 300가구 정도 규모의 작은 읍입니다. 강령탈춤에서는 탈놀이를 하기 전에는 온 마을을 한 바퀴 도는 길놀이를 하고 고사도 지냅니다. 이때부터 북, 장고, 피리, 해금 등의 악기가 동원됩니다.

강령탈춤의 인간문화재 지관룡 씨의 말입니다.

(음성 녹음)

강령탈춤은 마한, 진한, 변한의 양반 삼 형제가 등장해서 양반의 근본을 찾고 말뚝이가 재담하는 장면은 경상도의 오광대와 비슷합니다.

옷 빛깔은 화려하지 않은 회색입니다.

(음성 녹음)

강령탈춤의 이수생인 김정순 씨의 말이었습니다.

계속해서 강령탈춤의 인간문화재 김지옥 씨의 말입니다.

(음성 녹음)

(전통음악)

한편 은율탈춤은 구월산 아래 은율에서 전승돼왔습니다. 은율은 땅이 기름져서 농산물의 집산지로 유명합니다. 은율탈춤은 어느 난리를 피해 은율 근처의 섬으로 피난 갔던 사람들이 그곳에서 나올 때 얼굴을 가리기 위해 탈을 썼는데 이것이 계기가 됐다고 전합니다. 은율탈춤의 인간문화재 장용수 씨의 말입니다.

(음성 녹음)

탈춤에 쓰이는 탈은 지방마다 약간의 특징이 있었습니다. 은율 탈은 혹에 파랑색과 노란색, 빨간색, 흰색, 검은색의 다섯 가지 색을 칠했습니다.

강령 탈이 사실에 가까운 탈인데 비해서 봉산 탈은 사실과 다르게 만들어졌습니다.

단오 탈춤이 지난 열흘 후에는 뒤풀이라고 해서 다시 탈춤놀이를 했는데 이 뒤풀이가 끝나면은 그동안 사용했던 탈들을 모두 태워버렸습니다.

따라서 매년마다 탈을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강령탈춤의 박동신 씨로부터 탈 만드는 과정을 들어보겠습니다.

(음성 녹음)

박동신 씨는 어렸을 때 썼던 탈은 굉장히 컸었고 모습도 지금보다 훨씬 무서웠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전통 음악)

황해도 탈춤 관계자들은 되도록이면 황해도가 고향인 사람에 의해서 탈춤이 전수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같은 소망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가 어렵습니다.

(음성 녹음)

은율탈춤의 장용수 씨였습니다.

이 같은 실정은 강령탈춤에서도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봉산탈춤만은 그런대로 전수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봉산탈춤은 남북이 분단된 다음에도 많은 탈춤 관계자들이 남하해서 비교적 보존이 잘됐기 때문입니다.

탈춤 중에서 봉산탈춤만이 유일하게 지난 77년부터 올해까지 계속해서 4년 동안 해외공연을 했습니다.

올해에도 지난 5월 26일부터 40여 일 동안 프랑스 등 유럽 다섯 개 나라를 다녀왔습니다.

현재 황해도 탈춤에 관계된 인간문화재의 공통점은 모두가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고향에서 하던 탈춤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기에 더욱 고향이 그리워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음성 녹음)

(전통 음악)

실향민들과 함께 다시 한 번 통일의 그날을 기원합니다.

(전통 음악)

(음악)

내일은 송파산대놀이와 양주별산대놀이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취재와 구성에 사회문화부 이창환 기자였습니다.

(음악)

DBS 리포트를 마칩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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