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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향기 - 제3회 궁중요리
민족의 향기
제3회 궁중요리
1980.10.03 방송
‘DBS 리포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심층보도의 본격적인 녹음구성프로그램으로, 4회에 걸친 개국특집프로그램에서 성가를 높인 이후 ‘군사혁명특집·혁명의 발자취’ ‘6월의 정치 풍토’‘선거바람 선심바람’‘학생운동의 이모저모’‘지리산 도벌사건’등 역작을 내놓아 동아방송의 보도시각과 역량을 과시했다.
(음악)

특집방송 DBS 리포트 민족의 향기 그 전통의 현장을 찾아서 취재와 구성에 사회문화부 이창환 기자입니다.

오늘은 조선왕조의 궁중음식에 대해서 전해드리겠습니다.

(전통음악)

궁중이라는 단어는 단군 이래 부족국가 형태로부터 삼국시대와 고려, 그리고 이씨조선까지 왕이 정치를 책임지고 있는 동안 계속 사용돼왔습니다.

이와 함께 궁중에서의 요리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가장 좋은 여건 아래서 발달돼왔습니다.

국가대권을 모두 쥐고 있는 궁중에서 전국에서 생산되는 가장 좋은 식품재료를 구해다가 가장 뛰어난 기술로 만들어지는 요리가 발달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무형문화재 38호로 유일하게 지정된 황혜성 씨의 말입니다.

(음성 녹음)

이씨왕조가 막을 내리고 왕족이 없어지자 자연히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궁중음식문화가 사라지는 위기를 맞았었습니다. 이때 황혜성 씨가 마지막 꺼져가는 조선왕조의 음식을 배우기 위해 윤비를 모시는 주방상궁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상궁으로부터 조선왕조의 궁중음식을 배운 것입니다.

(음성 녹음)

황여사가 스승으로 모신 주방상궁은 고종 때 열세 살의 나이로 궁에 들어가 한평생을 궁중에서 음식을 다루는 데 보냈습니다. 한상궁은 그 당시에는 윤비의 전속조리사였습니다.

(음성 녹음)

(전통음악)

궁중음식에 쓰이는 모든 재료는 내수사에서 사람을 정해서 들여왔습니다. 그 전에는 궁중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담당하고 세금도 바치는 종로에 있는 유기견에서 궁중의 하인들이 파견돼 재료를 가져갔습니다.

이곳에 모여지는 음식재료는 지정된 곳에서 정기적으로 가져오게 돼있습니다. 지금은 모두 도심지가 됐지만 당시는 배추는 경마장에서, 무우는 연건동에서 어명에 따라 가꾸어졌습니다. 또 메주는 세검정 밖 생미리, 대추는 보은에서, 유자는 제주도에서 가져오는 등 팔도에서 가장 좋은 식품은 거의 모두가 진상품으로 궁중으로 상납됐습니다.

(전통음악)

음식은 서주방이라는 부엌에서 만들어집니다. 음식 만드는 곳과 임금이 계시는 곳은 거리가 멀어서 중간지점에 따로 방을 만들어놓고 음식을 중간지점에 가져다놓은 다음에 식사시간을 알려오면 그때야 음식을 들여갔습니다.

(음성 녹음)

기미상궁은 가장 나이가 많은 상궁으로 임금의 식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음식은 자신이 먼저 먹어보아서 아무런 이상이 없으면 임금에 올렸습니다. 그러니까 음식의 독성여부를 자신의 생명으로 식별한 셈입니다.

(전통음악)

궁중음식은 다분히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백성들의 집을 아흔아홉칸까지만 짓도록 제한했던 것과 같이 밥상차림도 민가에서는 9첩 반상까지만 허용했습니다.

임금의 밥상인 수랏상은 12첩 반상, 그러니까 열두 가지 반찬을 올려놓게 돼있습니다.

이는 의식주의 모든 분야에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차이를 뚜렷이 하려는 데서 온 것입니다.

(음성 녹음)

왕족의 결혼이나 회갑 등 큰 잔치는 진찬의궤에, 그리고 작은 잔치는 정례의궤에 각각 기록돼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기록에 따르면 궁중음식은 계절에 따라 조금씩 바뀌지만 쓰이는 재료는 규칙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잔치를 준비하기 전에는 필요한 재료는 물론 음악과 무용 등의 순서까지를 기획해서 상부의 결재를 받게 돼있습니다.

또 잔치가 끝나면은 그 잔치에 관한 모든 것을 기록해두었습니다. 고종을 임금 자리에 앉히기 위해 옥쇄를 감추었다는 조대비의 환갑잔치에 대한 기록 일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 잔치에는 열세 명의 악사와 백 여덟 명의 악공들의 저녁식사에 쌀 네 가마를 비롯해서 참기름과 간장이 각각 두 되가 들어갔다는 것까지 기록돼있습니다. 춤추는 무희에게는 떡국에 산적을 주었고 반찬에는 김치와 곰국, 북어무침, 무나물, 고사리무침 등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또 음악하는 사람들의 후식으로는 배와 곶감, 그리고 밤을 주었습니다. 이 잔치에는 내 외빈을 위해 모두 아흔 세 개의 상이 준비됐었습니다.

밥상의 식단은 계급에 따라서 메뉴가 다르게 꾸며졌다고 합니다.

(전통음악)

궁중음식은 뚜렷한 기록 없이 주방에 전속된 상궁들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왔습니다.

모든 주방상궁은 열세 살 되던 해에 궁중으로 들어갑니다. 스무 살이 되면 관례를 올리고 어른이 됩니다. 주방상궁은 물론 결혼도 할 수가 없습니다. 여자들만의 사회에서 몸으로 음식솜씨를 배우는 것은 여간 힘이 들지 않습니다.

(음성 녹음)

이들 주방상궁은 일생을 궁중 주방에서 오직 한 분의 식사를 만들다 사라져가는 것입니다.

궁중에서 쓰이는 음식 이름도 일반 서민과는 달랐습니다. 깍두기를 송송이라고 하는 것 외에 장아찌는 장과로 부릅니다. 궁중에서는 되도록이면 딱딱한 표현은 하지 않고 말을 할 때 입이 비틀어지게 되는 발음도 피했습니다. 또 고기를 구워먹는 것을 지금은 불고기라고 하지만 원래는 너비아니였습니다. 옛날에는 너비아니, 숯불로 고기를 구워먹는 거였으나 요즘은 숯불구이를 못하고 따라서 불고기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하게 된 것입니다.

황여사는 표현은 어쩔 수 없더라 하더라도 양념이나 맛의 기본은 절대로 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일컬은 만큼 예절을 제일로 알았던 우리 선조들의 식사예법은 더욱 알리고 계몽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상을 옆으로 갖다놓는다든지 심지어 임금의 주안상에 제사 모시는 데 쓰이는 높은 다리가 있는 접시를 올려놓는 등의 실수는 없애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윤비를 모시던 한희순 상궁에게서 우리의 귀중한 궁중음식을 전수받은 황혜성 씨는 이런 옛 선조들의 음식솜씨와 식사예법을 알리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인정한 전수 장학생 2명에게는 자기가 기록해둔 모든 자료를 가르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황여사는 이 같은 궁중요리는 한국여성이면 누구나 알아야 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보급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갖고 싶다고 했습니다.

(음성 녹음)

선조들의 손끝으로 전해진 우리의 궁중음식이야말로 조상의 숨결이 담긴 진정한 한국의 맛이라 하겠습니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음식도 달라지고 그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입맛도 달라지게 마련이지만 선조들의 정성이 깃든 전통음식만은 후세에 길이 남겨야 될 것 같습니다.

(전통음악)

(음악)

내일은 판소리에 대해서 전해드리겠습니다.

취재와 구성에 사회문화부 이창환 기자였습니다.

(음악)

DBS 리포트를 마칩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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