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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DBS리포트
항구 - 제8회 부산항
항구
제8회 부산항
1979.04.08 방송
‘DBS 리포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심층보도의 본격적인 녹음구성프로그램으로, 4회에 걸친 개국특집프로그램에서 성가를 높인 이후 ‘군사혁명특집·혁명의 발자취’ ‘6월의 정치 풍토’‘선거바람 선심바람’‘학생운동의 이모저모’‘지리산 도벌사건’등 역작을 내놓아 동아방송의 보도시각과 역량을 과시했다.
(음악)

DBS 리포트 항구.

개항 100년의 물결을 따라.

취재와 구성에 사회문화부 김근 기자입니다.

(음악)

이 프로그램은 대한항공, 해태제과, 미원 공동제공입니다.

(음악)

(광고)

(음악)

오늘은 부산항을 찾아 부산항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겠습니다.

(음악)

부산은 멀리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역사와 더불어 심한 변천을 겪어오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부산은 우리나라의 최남단에 위치해 있는데다 특히 일본과 가까워 이곳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은 우리나라의

역사의 한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고려시대부터 왜구들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고

그 후 임진왜란의 길목이 되는 등 여러 수난을 겪으면서 1876년 개항을 맞게 됩니다.

부산항만연구회 회장 김형오 씨는 개항 당시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음성 녹음)

개항 후에는 부산과 시모노세키 간에 무역이 시작되고 또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은 부산항 개발의

필요성을 느껴 부산항 개발을 서둘렀습니다. 이에 따라 1905년에 경부선 부설을 마친 후, 곧이어 부산항 개발에 착수해서

산을 깎아 바다를 메우는 등 부두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부두공사는 1905년부터 1943년까지의 사이에 네 번에 걸쳐 계속됐는데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부두가 1,2,3,4부두의 네 개 부두였습니다.

(음악)

부산에는 개항 전, 세종대왕 때부터 설치된 왜관이 있어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맡고 있었습니다.

왜관이 있을 당시 일본과의 관계는 우리가 우위에 선 선린외교관계였지만 개항 후에는 거꾸로 되어 일본이 우위에 선

불평등한 관계로 바뀌어졌습니다. 이에 따라 개항 후 부산에는 일본단독 조계가 들어선 것을 시작으로 곧이어 청국 조계가

들어서고 일본 조차지, 러시아 조차지도 들어섰습니다. 이처럼 부산을 무대로 일본인, 청국인, 러시아인들이

활발히 오가자 부산에는 외래문물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조풍현 씨는 말합니다.

(음성 녹음)

이후 부산은 더욱 활기를 띠어 많은 물자와 사람들이 부산을 통해 들어오고 나갔습니다. 특히 관부연락선이 떠났던

부산 부두는 이 민족의 애환의 현장이었고 이에 따른 숱한 화제를 뿌린 곳이기도 합니다. 조풍현 씨는-.

(음성 녹음)

(음악)

이미 8.15해방 때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항만으로 발전한 부산항은 6.25를 맞아 군수물자보급항으로서의

기능을 십분 발휘해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루기도 했습니다. 전국부두노조 부위원장 최봉상 씨는 6.25 당시

군수물자를 하역하기 위해 분주했던 부산항의 모습을 근로자들의 숫자를 들어 설명해줍니다.

(음성 녹음)

부산항은 전쟁 중 임시수도가 돼 한때 정치도시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고 그 당시 많은 피난민들이

고향에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실의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었습니다. 6.25와 더불어 이 나라에 본격적인 양키문화가

상륙한 것이 부산이었고 이와 함께 춤바람이 유행하면서 당시 세태를 날카롭게 묘사해 당시 논쟁까지도 불러일으켰던

정비석 씨의 소설, ‘자유부인’이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서울로 환도할 때까지 부산은 대중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해서 부산을 무대로 한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 대중가요는 당시 전쟁에 지친 국민들의 마음을

한동안 달래주기도 했었습니다.

(음악)

해방 당시 네 개의 부두를 가지고 있던 부산은 그 후 항만개발에 별 신경을 쓰지 않은 채 그 시설 그대로 유지돼오다가

지난 74년부터서야 항만개발 1단계 사업에 착수했습니다. 늦었지만 작년에 1단계 사업이 준공된 부산항은

우리나라 최대 항만으로서의 면모를 어느 정도 갖추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부산항 건설사무소 공사과장 황호형 씨가 부산항의 하역능력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음성 녹음)

그러나 너무 늦게 항만개발에 착수했던 관계로 부산항은 엄청나게 늘어나는 수출입화물을 원만히 처리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황호형 씨는 부산항의 현재 시설로는 엄청나게 늘어나는 물동량을 감당하는 것이 기적적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음성 녹음)

이처럼 부산항의 항만시설 부족이 심각한 상태이기 때문에 정부는 부산항 부두의 신설이나 확장을 위해 장기 계획을

세워두고 계속해서 사업을 벌려나갈 계획으로 있습니다. 이에 따라 600억 원을 투자해 오는 7월부터 2단계 사업을

착공해서 81년에 완공할 예정입니다. 2단계 사업이 준공되면은 현재의 컨테이너 부두와 삼사부두, 그리고

중앙부두가 확장돼 하역능력이 1400만 톤에서 1650만 톤으로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2단계 사업에 이어 81년부터 86년까지

5년 동안, 3단계 사업을 벌일 예정인데 이 계획을 위한 타당성 조사를 금년에 착수할 예정으로 있습니다.

현재 계획으로는 3단계 사업에 1500억 원을 투자해서 외항의 암벽과 방파제를 축조하고 하역능력을 1650만 톤에서

3000만 톤으로 늘린다는 것입니다. 이어 4단계 사업도 추진한다는 생각이지마는 4단계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서 있지 않습니다. 이 같은 부산항의 4단계 사업과 함께 부산은 감천항이라는 새로운 항구를 개발할 예정으로

부산시민의 감천항 개발에 대한 기대는 큽니다. 감천항 개발의 필요성에 대해서 황대섭 부산항만청 계획조사과장이 설명해줍니다.

(음성 녹음)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감천항이 개발되는 것이기 때문에 감천항이 맡는 역할 또한 다양하리라는 것입니다. 황대섭 씨는-.

(음성 녹음)

오는 90년대에 가면 우리나라의 수출액이 1000억 달러에 달하리라는 정부의 예견입니다마는 그때 가면 전국의

물동량은 4억 톤으로 추정되고 부산항에서 처리해야 될 물동량은 7000만 톤으로 예상됩니다. 7000만 톤이면은

현재 부산항에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의 다섯 배 반이 넘는 화물량입니다마는 부산항 개발 4단계사업과

감천항 개발이 끝나면은 이 같은 물동량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계자들의 견해입니다.

본격적인 경제개발과 함께 한동안 잠자고 있던 부산항은 이제 손색없는 국제무역항으로 점차 변모돼가고 있는 것입니다.

(음악)

지금까지 취재와 구성에 사회문화부 김근 기자였습니다.

(광고)

(음악)

DBS 리포트, 미원, 해태제과, 대한항공 공동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1.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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