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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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DBS리포트
항구 - 제1회 프롤로그
항구
제1회 프롤로그
1979.04.01 방송
‘DBS 리포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심층보도의 본격적인 녹음구성프로그램으로, 4회에 걸친 개국특집프로그램에서 성가를 높인 이후 ‘군사혁명특집·혁명의 발자취’ ‘6월의 정치 풍토’‘선거바람 선심바람’‘학생운동의 이모저모’‘지리산 도벌사건’등 역작을 내놓아 동아방송의 보도시각과 역량을 과시했다.
(음악)

DBS리포트 항구.

취재와 구성에 사회문화부 김근 기자입니다.

(음악)

이 프로그램은 미원과 해태제과, 대한항공 공동제공입니다.

(음악)

(광고)

(광고)

(뱃고동 소리 및 갈매기 울음소리)

1876년 2월 27일 오전 9시, 강화부 연무당에서 일본과의 사이에 강화도조약이 맺어지고 바로 이날을 기해 우리의 부산항이 개항하면서

우리나라 항구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뱃고동 소리 및 파도 소리)

(갈매기 울음소리)

부산항의 개항에 이어 원산, 인천, 진남포, 목포, 군산, 마산, 성진 등 주요항구가 잇따라 개항이 됩니다.

개항 자체가 외세의 강요에 의해 이루어졌던 만큼, 개항 이후 개항장을 통해 밀려들어오는 근대문물을 이해하거나

소화할 수 있는 준비도 채 갖추지 못한 채 계속되는 외세의 침략에 속수무책일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개항 이후 외세가 침투해 들어오는 거점으로 부산, 원산, 인천 등이 개항장으로 이용됩니다.

개항장에는 일본이나 청국, 그리고 구미 각국 사람들이 치외법권적인 조계가 설치됐고 이들 외국인들의 조계는

본격적인 침략의 발판이었던 셈입니다. 개항장에 살던 조선 사람들은 자기네 조계를 설치하겠다는 외국인들의

당당한 위세에 눌려 정들어 살던 집에서 아무런 보상도 없이 쫓겨나야 했습니다. 인천에서 향토사를

연구하는 최성현 씨의 말입니다.

(음성 녹음)

(음악)

그 후,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을 거쳐 득세하게 된 일본에게 외교권을 빼앗기고 드디어 1910년, 우리의 주권까지

빼앗기면서 외세의 각축장이던 항구들은 일본의 본격적인 수탈창고로 변모되기 시작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 이현종 박사의 말입니다.

(음성 녹음)

군산과 목포 등 호남지방뿐만이 아니고 부산과 진남포항도 똑같은 수탈창고였습니다.

이현종 박사는 부산과 진남포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음성 녹음)

일제는 우리나라의 항구를 그들의 식량공급지와 원료공급지로 삼았고 항구를 통해 그들의 상품을 들여다가

한반도를 그들의 상품시장으로 변모시켜갔습니다.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일제가 식민지통치 말기, 공출이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쌀을 항구에서 실어내가고 쌀을 빼앗긴 우리들은 만주에서 들여온 좁쌀이나 콩깨묵으로

연명하던 일을 이제 악몽처럼 기억합니다. 그러나 일제시대의 항구는 생산물의 수탈창고로만 그친 게 아니었습니다.

일제의 간악한 식민정치에 의해 땅을 잃은 농민들이 연락선을 타고 일본공업지대의 하급노동자로 전락해간 곳도 항구였고

춘원 이광수 등 친일협력자들의 연설을 들으며 학병을 떠나던 곳도 항구였습니다. 또 조선의 꽃다운 처녀들이 정신대라는

이름의 군위안부로 팔려 우리의 항구를 떠나갔고 숱한 장정들이 부산이나 여수 등 항구에서 징용에 끌려 나갔습니다.

징용에 끌려 나가던 당시의 상황을 항일노동투쟁사의 저자인 김중렬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음성 녹음)

한때 선풍적 인기를 모았던 미국소설 뿌리의 주인공인 쿤타킨테처럼 조선의 장정들도 일제에 의해 노예같이 끌려갔고

그들 중 숱한 사람이 희생된 채 다시는 자기가 떠났던 항구로 되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음악)

항구에서 새삼스럽게 지적해야 할 것은 부두노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임금노동자가 탄생한 곳이

광산과 부두였던 만큼, 부두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은 당초부터 항일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전국부두노조 교육선전부장

김봉석 씨는.

(음성 녹음)

목포파업을 시작으로 부두의 노동자들은 특히 항일적인 분위기를 키워갔고 1929년에 이르러 원산파업이라는 불멸의

항일노동투쟁을 벌이게 됩니다. 원산항을 배경으로 벌어졌던 이 파업은 식민 학정에 시달리고 있던 이 민족에게

자부와 긍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던 사건이었습니다. 개항 이후, 70여 년만인 1945년, 오래도록 이 땅에 살리라 했던

일제가 패전과 함께 물러가고 일제가 물러간 그 항구에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합니다. 우리는 꿈에도 그리던

민족광복을 맞았으나 해방군이라는 이름의 미군과 소련군은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또 다른 외세임에 틀림없었습니다.

남과 북에 진주했던 미군과 소련군이 대립되는 이데올로기를 지키는 병사들이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민족적 비극은

잘 설명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8,15해방과 6.25동란을 지나면서 우리의 항구는 기능적인 면에서 변모를 보여 많은 생산물과 인력을 착취당하던

수탈창고에서 이제는 원조물자와 군수물자를 받아들이는 항구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서승욱 부두노조 인천지부 기획부장의

말입니다.

(음성 녹음)

이제 다시 현재로 눈을 돌려보면 나라의 문을 연 지 103년이 지난 지금에도 외세에 의한 민족분단은 계속되고 있고

한때 물러갔던 일본인들은 그들의 예언대로 거드럭거리며 이 땅에 몰려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지금

개항 당시보다 더 심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음악)

8.15해방으로 항구들은 우리들 것이 되었지마는 그 항구를 경제 건설의 발판으로 삼기 위한 아무런 투자도 없었던 게

또한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여수지방 해운항만청장 김형언 씨는 이렇게 개탄합니다.

(음성 녹음)

그런가 하면 항구에서 사는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부두노동자들의 임금이

얼마나 적은가를 부두노조 여수지부장 이동근 씨로부터 들어봅니다.

(음성 녹음)

또 선원들은 선원들대로 어려운 생활에 불평이 많습니다. 그래서 수산업협동조합이 과연 어민들을 위한

기관인가 하는 반문도 나옴직한 것입니다. 임홍석 해운노조 군산지부장의 불평입니다.

(음성 녹음)

수협의 영세어민에게 관심을 둘 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에 수산업계의 고리대금업자인 객주는 지금도 존재합니다.

목포 수협의 한 직원은 객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음성 녹음)

우리가 항구를 생각하면 먼저 개항과 함께 밀려들어오는 외세. 거기에 일제 36년의 착취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부분이 항구의 과거라면 경제개발과 함께 들어오고 나가는 수출입물품을

취급하는 기능면으로서의 항구. 그 때문에 파생되는 여러 문제들,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현재 부분에 속한다 할 것입니다. 또 앞으로 지향해나가야 할 미래의 항구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생각의 골격 아래 앞으로 이 달 한 달 동안 항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취재, 보도해 드리겠습니다.

(갈매기 울음소리 및 뱃고동 소리)

(음악)

내일은 개항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취재와 구성에 사회문화부 김근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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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DBS리포트. 지금까지 대한항공, 해태제과, 미원 공동제공이었습니다.

(입력일 : 201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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