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DBS 리포트 한강.
(물소리 및 배 갑판 삐걱거리는 소리)
취재와 구성에 사회문화부 나철삼 기자입니다.
(기차소리)
이 프로그램은 미원과 해태제과 제공입니다.
(광고)
(음악)
오늘은 옛사람들이 한강을 어떻게 즐겨왔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음악)
어느 강이거나 뱃놀이가 있습니다. 가을바람에 떨어진 낙엽 같은 조그만 배이지만은
뜻이 맞는 친구들과 같이 술을 마시면서 세상을 논하고, 산천을 음미하고, 그리고 강을
오르고 내리는 것은 정말 멋이 있는 일입니다. 오래 전 한강에는 이 같은 뱃놀이가 요즘 말로
대유행이었습니다. 특히 한강은 그 어느 강보다도 주위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춘천과 가평으로 올라가는 북한강 끝에는 금강산이 있고 여주, 이천, 충주로 올라가는
남한강에는 단양팔경이 있습니다. 요즘처럼 오락시설이 제대로 돼있지 않던 당시로서는
한강의 뱃놀이가 유일한 놀이의 코스였습니다. 그래서 이조시대에는 풀코스의 한강 뱃놀이
한번 해보는 것을 평생의 호강으로 생각했습니다. 국립 중앙박물관 정양모 학예관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뱃놀이와 더불어 한강변 경치 좋은 곳에는 고관대작의 별장도 많았습니다. 이 가운데는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많습니다. 김학수 화백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여주읍에도 이러한 흔적은 많습니다. 특히 이조시대의 중앙관서였던 육조가 여주에 있었다고 할
정도로 당시 고관을 비롯한 서울의 양반들이 한강을 즐겨왔습니다. 여주읍 상리 이봉구 씨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지금도 한강변에는 여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별장들이 많이 있습니다. 북한강이나 남한강
상류까지 뱃놀이를 한다는 것은 상당한 경비가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선비가 가질 수 있는
일생의 호강으로 여겼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아예 이런 정도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서울 부근의 한강에서
뱃놀이를 했습니다. 이창배 씨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오래전 한강에서의 놀잇배는 배 한 척이 아니었고 두 척 이상의 배를 하나로 묶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널판자를 놓고 널따랗게 만들었으며 원두막처럼 짚으로 지붕을 해서 햇볕을 가렸습니다.
이런 한강의 뱃놀이는 그다지 멀지 않은 옛날까지도 계속돼왔습니다. 조풍연 씨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한강의 뱃놀이는 지금도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지금 한강변에 있는 유원지에는 어느 곳이든 선유정이
있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때의 손님들은 아름다운 산천을 음미하면서 시를 읊었고
그리고 당시의 세상사를 논했지마는 오늘의 손님들은 녹음기를 틀어놓고 고고 춤을 춘다는 것이 다릅니다.
(음악)
한강변에는 정자가 많았습니다. 지금 강남구에 압구정동이라는 동이 있습니다.
압구정동이라는 이름이 바로 압구정이라고 하는 정자에서 연유된 동의 이름입니다.
서울 주변에만 한강연변에 70여 개의 정자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상옥 박사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이런 정자는 서울 부근에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상류를 따라 올라가는 길목, 경치 좋은 곳이면 거의
대부분 정자가 있었습니다. 다만 서울 주변 한강에 정자가 더욱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옥수동에서
제3한강교 부근에 정자가 많았던 거 같습니다. 그곳의 경치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이창배 씨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정자에서는 한여름 더운 때, 시원하게 지낼 수도 있었고 그곳에서 시 한수를 읊으면서 부근의
자유 경관을 즐길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공부하는 곳으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그 가운데서 옥수동에 있었던 독서당은 나라에서 학문을 권장하기 위해 이용됐던 유서 깊은 곳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모인 선비들은 한강의 아름다움에 끌려 공부보다는 한강을 즐기는 데 더 마음을 쏟던 거 같습니다.
이상옥 박사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이상옥 박사가 말하는 저자도는 지금 없어졌습니다. 소위 을축년 홍수 때 그 섬이 없어진 것입니다.
지금 현대아파트 부근, 그리고 옥수동 앞 그 중간에 저자도가 있었습니다. 한강을 즐기는 것은 고관이나
시인만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화가들이 그들과 어울려서 한강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린 그림들이 지금까지도 보관되고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정양모 학예관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음악)
한강은 돈 많고 권세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은 아니었습니다. 시 한수 읊을 수 없고 붓 한 자루 만져보지
못했던 많은 서민들에게도 한강은 유원지 구실을 해왔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한강 지리 부근의 천렵은
주변 마을사람들의 즐거운 나들이였습니다. 국악인 이충선 씨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한강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여름이면 한강을 찾았습니다. 멱을 감기 위해서도 그랬지마는 한강변에서 나는
물고기를 직접 그곳에서 만들어먹는 즐거움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휴일이면 한강을 찾았습니다.
이창배 씨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서울 사람들이 한강에서 사뭇 살다시피 했던 것이 그리 오래전의 일은 아닙니다. 불과 칠팔 년 전만 해도 뚝섬은 물론이고
여의도가 있는 마포 부근에서 서울 사람들은 여름을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수영을 했고 보트를 탔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일들이 슬그머니 없어졌습니다. 한강변에서 그물로 고기를 잡던 모습도 사라졌습니다.
복사꽃이 피어 있는 아름다운 모습도 볼 수가 없습니다. 백사장에서 모래찜을 들였던 일도 이제는
옛일이 돼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지금 십여 층이 넘는 아파트들이 무리를 이루어 한강을 가로막고
그리고 한강을 내려 보고 있습니다. 한강은 적어도 서울 부근에 관한 한 이제 유원지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음악)
지난 5월 1일부터 오늘까지 한강의 나루터와 주변 마을, 한강에서 살아온 사람들, 한강의 홍수,
그리고 뱃길로서의 한강의 역할, 또 역사에 나타난 한강 등 모두 11회에 걸쳐서 한강의 옛 모습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들으신 대로 한강은 역사 이래로 이 나라 중앙을 흐르는 큰 강으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한강은 지금도 옛날 못지않게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상수도원으로, 전력공급으로
그리고 농업과 공업용수 등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강은 옛날과는 달라졌습니다. 그것이 발전의 한 단면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마는
오염으로 더렵혀졌고 주변의 자연경관은 인위적인 건설로 파괴되고 있습니다. 내일부터는
이러한 오늘의 한강은 어떤 모습을 띠었으며 그 문제점은 어떤 것인지 사회문화부 김근 기자의
취재와 구성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취재와 구성에 사회문화부 나철삼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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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DBS 리포트. 해태제과와 미원 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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