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DBS 리포트 한강.
(물소리 및 배 갑판 삐걱거리는 소리)
취재와 구성에 사회문화부 나철삼 기자입니다.
(기차소리)
이 프로그램은 미원과 해태제과 제공입니다.
(광고)
(음악)
오늘은 한강변에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음악)
삼국시대 이래로 한강을 버리고 이 강토를 지배한 나라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강을 지배하는 자, 강토를 지배한다’는 힘의 등식이 우리민족사에 흐르고 있습니다.
한강이 왜 그처럼 중요한가. 이병도 박사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경제적으로 한강이 중요했던 것은 넓은 한강유역 중에서도 특히 김포와 고양군 일대에 퍼져있던
평야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언론인 유광렬 씨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또 한강은 요새로도 훌륭한 장소였습니다. 국립 중앙박물관 정양모 학예관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이러한 중요한 한강이었기 때문에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는 이곳에서 패권을 다뤘습니다.
맨 처음 한강을 차지했던 나라는 한강변에 서울을 만들었던 백제였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한강을 차지한 나라가 고구려입니다. 이병도 박사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한강을 잃은 백제는 신라와 동맹을 맺고 한강을 찾기 위한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백제는 한강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한강의 중요성을 알게 된 신라는
당초 백제와의 동맹을 깨고 백제가 점령한 한강을 뺏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병도 박사의 얘기 다시 들어보겠습니다.
(음성 녹음)
신라에게 한강을 빼앗긴 고구려는 그 뒤 오랫동안 한강 탈환작전을 펴왔습니다.
그러나 끝내 고구려는 한강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고구려와 신라의 가장 치열했던
전쟁지는 지금의 워커힐 부근, 아차산 혹은 아단산성으로 불렸던 곳입니다.
그곳에서 바로 유명한 바보온달장군이 전사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의 한강 탈환작전은
끝이 났고, 한강은 완전한 신라의 영토로 굳혀지게 됐습니다. 이상옥 박사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충청북도 충주시에 남한강의 한 지류인 달천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달천강에 우륵이 말년에
가야금을 뜯었다는 유명한 탄금대가 있습니다. 이 탄금대에 얽힌 슬픈 전쟁의 역사가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맨 처음으로 피를 흘렸던 곳이 바로 탄금대였습니다.
유광렬 씨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한강은 탄금대의 슬픈 사연만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임진왜란 때 3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이 바로 한강 하류인 행주산성에서 있었습니다.
동아일보의 조강환 기자는 ‘역사의 고전장’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조 기자는 전국에 있는
격전지를 직접 찾아다니면서 잊혀져가는 전적지를 들춰냈고, 또 사라져가는 전설을 알뜰하게
모았습니다.
(음성 녹음)
2800명의 권율 장군 부대와 이여송도 이겨내지 못했던 정예부대, 3만의 왜군이 한강에서 싸웠습니다.
왜군은 당시의 신무기였던 조총을 가졌고, 권율 장군 부대는 활과 화차. 그리고 석포 등의 빈약한
장비였습니다. 밀리고 밀치는 접전에서 권율은 죽기를 각오하고 앞장서서 왜병의 목을 베었습니다.
2800명의 부하들은 권율의 그 용맹에 탄복했고 그래서 물러나지 않고 싸웠습니다.
이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느냐 하는 것은 싸우는 도중에 화살이 떨어졌다는 대목에서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조강환 기자의 얘기, 더 들어보겠습니다.
(음성 녹음)
한강은 이 전쟁에서 화살 보급로의 중요한 역할도 했습니다. 이 싸움에서 3만의 왜군 가운데 사상자가
2만3000이었고 조총과 병마 등 노획물만도 727점이었다고 역사의 고전장에 기록돼있습니다.
(음악)
한강은 또 서양세력과 처음으로 무력충돌을 일으킨 곳이기도 합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불란서 함대가 바로 한강을 거슬러 올라왔습니다. 서강대학교 이광린 교수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불란서 함대가 한강을 거슬러 올라왔다는 것은 1866년에 대원군이 천주교도를 한강변 절두산에서
처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처형자 중에는 세 명의 불란서 신부가 포함돼 있었는데 그 중에
리젤이라는 하는 신부가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청나라주재 불란서 공사에게
알려줘 보복으로 쳐들어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2차 공략 때 매복했던 우리 군대의
기습공격을 받고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언론인 유광렬 씨는 쫓겨났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음성 녹음)
불란서 군이 한강에서 떠난 뒤 미국의 군함들이 한강을 차지한 일도 있었습니다.
소위 신미양요라고 부르는 사건입니다.
(음성 녹음)
신미양요는 비록 짧은 시일에 끝났지마는 피해는 엄청났습니다. 조강환 기자의 ‘역사의 고전장’ 기록에는
이 전투에서 아군 350명이 전사했고 미군은 겨우 3명이 전사, 10명이 부상했다고 돼있습니다.
한강에서 서양세력과의 대립을 얘기하면서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사건이 있습니다.
일컬어 ‘운양호 사건’으로 시작되는 강화도조약입니다. 조풍연 씨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이 조약 체결 후 일본은 한강을 차지했고, 그리고 이씨조선은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한강은 백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민족의 흥망성쇠를 지켜봤습니다.
(음악)
내일은 한강변의 민속행사를 알아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취재와 구성에 사회문화부 나철삼 기자였습니다.
(광고)
(음악)
DBS 리포트. 해태제과와 미원 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