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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 제5회 한강에 살아온 사람들
한강
제5회 한강에 살아온 사람들
1978.05.05 방송
‘DBS 리포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심층보도의 본격적인 녹음구성프로그램으로, 4회에 걸친 개국특집프로그램에서 성가를 높인 이후 ‘군사혁명특집·혁명의 발자취’ ‘6월의 정치 풍토’‘선거바람 선심바람’‘학생운동의 이모저모’‘지리산 도벌사건’등 역작을 내놓아 동아방송의 보도시각과 역량을 과시했다.
(음악)

DBS 리포트 한강.

(물소리 및 배 갑판 삐걱거리는 소리)

취재와 구성에 사회문화부 나철삼 기자입니다.

(기차소리)

이 프로그램은 미원과 해태제과 제공입니다.

(광고)

(음악)

오늘은 한강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얘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음악)

한강에는 어부가 있었습니다. 강에 배를 띄워서 낚시를 하는 사람도 있었지마는

그물로 고기를 잡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한강의 물고기는 다른 강보다 더 종류가 많고

또 풍부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강의 어부는 다른 강의 어부와는 조금

다른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담수어 전문가 정문기 박사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한강의 명물은 잉어입니다. 지금은 보기조차 힘들지마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겨울철 한강 얼음 위에서의

잉어잡이는 강변사람들의 여가선용의 하나였습니다. 국악인 이창배 씨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물속을 지나는 잉어를 눈으로 보고 있다가 낚아챘다는 원시적인 방법이 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만큼 한강물이 맑았다는 데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잉어를 잡을 때는 추운 겨울입니다.

요즘처럼 오래전에 한강변 사람들이 가죽잠바에 가죽장화를 신고 털샤스를 입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춥다 하지 않고 잉어를 잡았습니다. 그때는 그때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었습니다.

경기도 양평군 양근리 이인환 씨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대부분의 한강 어부들이 고기 잡는 것만으로 생업을 이어오진 않았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그래도 그것이 주업이었던 사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의

생활은 극히 어려웠다고 양주군 능내면 마제강변의 김판수 노인은 얘기했습니다.

(음성 녹음)

(음악)

배를 타고 한평생을 한강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어떤 다른 부업도 없이

배 하나만으로 생활을 이어 왔습니다.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상리 이봉구 씨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이봉구 씨는 뱃사공을 둘로 구분했지만 한강변의 뱃사공은 사실은 셋으로 구분해야 옳습니다.

자기가 직접 배를 가지고 운영하는 뱃사공과 그 배에 고용돼서 일하는 뱃사공, 그리고 나룻배의 뱃사공입니다.

직접 자기 배를 가진 뱃사공은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고용이 돼서 배를 탄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던 거 같습니다. 더구나 한강은 뱃길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가장 고된 강입니다.

배를 줄에 매달아 끌고 가야 하는 강이고 여기저기 많은 장애물이 있어서 위험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한유성 씨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음악)

한강변에는 많은 술집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강을 오르고 내리는 뱃사공들을 상대로

영업을 해왔습니다. 이 술집들은 강변을 따라 하류에서 상류까지 양편에 있었습니다.

요즘 얘기대로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도 있었지마는 그래도 요즘 인심보다는 훨씬

후하다는 것이 한강변 사람들의 얘깁니다. 이성신 노인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한강변에 이동술집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한강변의 술집들은

도로변의 술집과는 달리 배가 술집 근처에 닿아야만 장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진수성찬에

서비스가 좋아도 배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기웃거릴 수도 없거니와 전달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배 들어오기만을 기다릴 수만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아예

술집을 배에다 차려놓고 지나가는 배를 향해 가서 직접 장사하는 방법입니다. 판매 전략으로 보면은

적극적인 판매 전략이라고 보겠습니다. 한유성 씨 얘깁니다.

(음성 녹음)

바가지를 씌웠다고 하지만은 이런 장사법은 뱃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배를 뭍에다가 데어놓고 다시 출발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항해를 계속 하는 데

지장을 받지 않아도 됐기 때문입니다.

(음악)

한강변에 동빙고동과 서빙고동이 있습니다.

(음악)

얼음을 쌓아두는 창고인 빙고가 있었던 곳입니다. 석빙고가 경주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은

우리 조상들은 실로 오래전부터 얼음을 쌓아두는 방법을 알았고 그래서 무덥기만 한 여름을

시원하게 즐기는 슬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동빙고와 서빙고의 얘기를 서강대학교

이광림 교수로부터 들어보겠습니다.

(음성 녹음)

동빙고와 서빙고는 이조왕실에서 직접 관리해온 대규모의 빙고였습니다.

이를 본 딴 개인의 빙고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이조말로 짐작이 됩니다.

한강변에서 빙고를 경영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음성 녹음)

추운 겨울에 한강 얼음을 잘라내고 그것을 빙고로 옮기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얼마간에 수입을 올리는 사람들이 한강변에 많았습니다. 물론 그것이

주업은 아니었습니다. 한유성 씨의 얘기 다시 들어 보겠습니다.

(음성 녹음)

몇 해 전 한겨울이 지났는데도 한강이 얼지 않았다고 크게 보도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여러 가지 많은 이유들을 열거하면서 왜 얼지 않았느냐 하는 것을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매우 드문 일이지만 겨울 날씨가 따뜻해서 한강이 얼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한강변의 빙고를 비워 둘 수는 없었습니다. 한강 아닌 다른

곳의 얼음을 가져오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창배 씨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음악)

한강에서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 임방질이라는 특이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은 지게꾼이었던 것 같습니다.

(음성 녹음)

이제 생활의 형태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옛날과 같은 방법으로 한강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옛날 한강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한강을 아꼈습니다. 파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고기를 잡아도 씨가 마르도록

잡지를 않았습니다. 뱃사공이나 한강의 술집도 한강물을 크게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강물을 바가지로 떠서 그것을 식수로 해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강물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지 조용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음악)

내일은 한강변의 홍수 얘기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취재와 구성에 사회문화부 나철삼 기자였습니다.

(광고)

(음악)

DBS 리포트. 해태제과와 미원 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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