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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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DBS리포트
한강 - 제2회 한강 뱃길
한강
제2회 한강 뱃길
1978.05.02 방송
‘DBS 리포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심층보도의 본격적인 녹음구성프로그램으로, 4회에 걸친 개국특집프로그램에서 성가를 높인 이후 ‘군사혁명특집·혁명의 발자취’ ‘6월의 정치 풍토’‘선거바람 선심바람’‘학생운동의 이모저모’‘지리산 도벌사건’등 역작을 내놓아 동아방송의 보도시각과 역량을 과시했다.
(음악)

DBS 리포트 한강.

(물소리 및 배 갑판 삐걱거리는 소리)

취재와 구성에 사회문화부 나철삼 기자입니다.

(기차소리)

이 프로그램은 미원과 해태제과 제공입니다.

(광고)

(음악)

오늘은 뱃길로서의 한강은 어떠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음악)

한강이 운반수단으로 발달한 것은 이조 때였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적어도 배가 출현하기

시작한 이래 적어도 뭔가를 싣고 다녔을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고려 때도 한강이 운반수단으로 사용됐던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강의 뱃길은 역시 이조 때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세금을 쌀로 거두어 들였기 때문입니다. 한강은 강원도와 충청도, 경기도 지방을 흐르고 있습니다.

또 임진강과 예성강이 한강 하류에서 만나게 됩니다. 따라서 황해도의 세금도 한강을 이용해서

거두어들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강 상류와 낙동강 상류는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경상도 지방의 세금을 낙동강 상류로 거슬러 올린 후, 육지를 통해서

한강 상류로 옮겼다가 다시 배를 태워 보내는 방법도 생각해냈습니다.

서강대학교 이광림 교수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한강은 서해와 연결이 돼있습니다. 강을 통하지 못하는 곳의 세금은 남해와 서해를 통해서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강은 이조시대의 세금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한강은 세금 이외, 바다와 연결돼있기 때문에 각종 해산물도 운반해줬습니다.

(음성 녹음)

마포가 해산물의 집산지라고 하지마는 그들 중의 일부는 마포를 지나서 상류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경기도 여주읍 상리 이봉구 씨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당시의 교역은 모두 물물교환이었습니다. 바닷고기와 소금, 혹은 생활필수품을 싣고 올라가서

쌀이나 보리, 콩, 그리고 나무를 싣고 내려왔던 것입니다. 생산지에서는 그것이 무엇이든

다른 것과 바꿀 수 있었고 사들일 수가 있었습니다. 한강은 고전적인 의미의 상업의 교역장 역할을

해왔습니다.

(음악)

한강에 배가 많이 다녔다는 생각을 퍽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커다란 돛단배가 가득히 쌀이나 나무를 싣고 내려오고 그 사이를 뗏목이 내려오고,

그리고 고기를 실은 배들이 쏜살같이 다녔다는 상상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상상일 뿐, 뱃길에 관한 한 한강은 그렇게 낭만적인 강은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한강은 첫째로 물이 많지를 못했습니다. 한강변에서 살아온 국악인 이창배 씨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물이 없어서 1년에 한 번 갔다가 왔다는 사실보다도 우리를 더 어리둥절하게 하는 설명이 또 있습니다.

(음성 녹음)

강에는 가항거리가 있습니다. 배를 타고 항해를 할 수 있는 곳까지의 거리를 가항거리라고 합니다.

한강의 길이가 514킬로미터이지마는 배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330킬로미터, 줄잡아 천리길입니다.

천리길을 뱃사공들이 배에 줄을 매어 달고 강변을 따라 끌고 올라갔다면은 그것은 항해가 아니라

고통과 고난의 험난한 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난항의 험로가 그것으로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배를 끌고 올라가다 보면은 모래와 자갈 때문에 강줄기가 막혀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한혜성 씨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서울에서 춘천까지 한 달 사흘이 걸리고, 그리고 그곳에서 장마가 질 때까지 꼼짝 못하고 묶여

있었다면 과연 배를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그 경비를 부담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음성 녹음)

(음악)

한강을 지나다녔던 배들이 내려올 때는 쉽게 내려왔다는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강물이 불었을 때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강물이 너무 많으면 흐르는 속도가 빨라

내려올 수가 없었습니다. 적당히 물이 불었을 때 내려왔습니다. 그런데도 배를 타고

내려오는 뱃길로서의 한강은 적당하지 못했던 거 같습니다. 강물은 갑자기 불어나고

갑자기 줄어들기 때문에 침몰이 잦았습니다. 세금을 거두어 들어야 했던 이조왕실의 입장에서

이런 일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국립박물관 정양모 학예관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한강에서는 배가 뒤집힌다 해도 그렇게 넓지도 또 깊지도 않았기 때문에 큰 인명피해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화물은 다시 건져낼 수도 있었습니다. 경기도 양주군 문내면 마제강변의

김판수 노인과 이성신 노인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한강에는 바다에서 암초라고 부르는 커다란 바윗돌이 있는 곳이 많았습니다.

여울져 흐르는 곳에 양편이 바윗돌로 된 협곡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완전히 배가 부서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경기도 양평군 양근리 부근의 한강변 모랫벌에는 대추나무가 많습니다.

그곳에서 살고 있는 김만석 노인은 대추를 가득 실은 배가 바로 그 자리에서 파손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줬습니다.

(음성 녹음)

(음악)

한강물이 흐리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1한강교와 제2한강교를 지나는 사람들의 얘깁니다.

그것이 하수구에서 흘러나온 오물 아니면 공장폐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쪽 한강물이 탁한 것은

오물이나 공장폐수가 아니고 조수 때문입니다. 서해안에서 밀려오는 바닷물과 상류에서 내려오는 한강물이

엉켜져 흙탕물을 일구고 있는 것입니다. 그 흙탕물은 제1한강교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서해안에서 마포로 배가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흙탕물 덕분이었습니다.

그 흙탕물이 많아질 때 서해안에 큰 배들이 한강으로 들어왔습니다.

이상옥 박사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한강의 험난한 항로는 이조왕실의 두통거리였다는 얘기를 해드렸습니다. 세월이 가면서 세금으로

받아들여지는 쌀의 양이 늘어나자 이 문제는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안전한 쌀의 운반, 이것이 그 당시의 숙제였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이조왕실은 새로운 방법을 찾았습니다.

다시 서강대학교 이광림의 교수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나라에서 거두어들이는 세금을 개인에게 도급시켰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변화입니다.

그만큼 상업이 발달했으며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소질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한강변에는 근대적인 의미의 자본가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또 물상객주라고 하는 이들 자본가를 통해서 근대적인 유통구조가 이루어져가고 있었습니다.

조풍현 씨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한강은 비록 그 항로가 순탄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오랜 세월 동안 화물을 운반해주는 구실을

해왔습니다. 국가의 재정인 세미를 운반했고 서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생활필수품을 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천리길에 뻗어 있는 강변 고을을 따라서 그들이 생산한 것을 팔아주었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강은 상업 발달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습니다. 한강이 이런 구실을 이뤘던 것은

자동차와 기차 등 새로운 교통수단이 발달했다는 이유도 있지마는 한강 하구가 휴전선으로

막혔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한강에는 잠수교를 비롯한 많은 다리들이 그 물줄기를 따라

곳곳에 놓여 있습니다. 또 여섯 개의 댐들이 있어서 더 이상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없게 됐습니다.

운송수단으로 화려하게 각광을 받아왔던 한강. 한강은 이제 그러한 역할을 해낼 수 없게 됐습니다.

(음악)

내일은 한강의 나루터를 중심으로 한강을 어떻게 건너다녔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취재와 구성에 사회문화부 나철삼 기자였습니다.

(광고)

(음악)

DBS 리포트. 해태제과와 미원 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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