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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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DBS리포트
한강 - 제1회 한강 전반
한강
제1회 한강 전반
1978.05.01 방송
‘DBS 리포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심층보도의 본격적인 녹음구성프로그램으로, 4회에 걸친 개국특집프로그램에서 성가를 높인 이후 ‘군사혁명특집·혁명의 발자취’ ‘6월의 정치 풍토’‘선거바람 선심바람’‘학생운동의 이모저모’‘지리산 도벌사건’등 역작을 내놓아 동아방송의 보도시각과 역량을 과시했다.
(음악)

DBS 리포트 한강.

(물소리 및 배 갑판 삐걱거리는 소리)

취재와 구성에 사회문화부 나철삼 기자입니다.

(기차소리)

이 프로그램은 미원과 해태제과 제공입니다.

(광고)

(배 갑판 삐걱거리는 소리 및 물소리)

한강은 언제 생겼을까. 지질학자들은 한반도의 지형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때가

백악기 말인 칠천만 년 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뒤 동해안이 올라가고

서해안이 내려오는 지각변동을 시작했고 그때부터 비가 오면 동쪽 높은 곳의 물이

서쪽 낮은 곳으로 흘러 내려왔습니다. 그때가 어림잡아 육천만 년 전의 일입니다.

한강의 기원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이 됩니다. 무작정 흘러내려오는 물이 제 길을 찾기

시작하기를 무려 수천만 년 동안이나 시작하면서 오늘의 한강을 만든 것입니다.

(배 삐걱거리는 소리 및 물소리)

한강변에 사람이 언제부터 모여 살았느냐 하는 것은 고고학자들의 연구영역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정양모 학예관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한강이라는 이름은 한성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조 초기로 보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오랜 옛날 우리 조상들은 지금의 한강을 무엇이라고 이름 붙였을까. 기록에

이름 붙여 나타난 한강은 백제 초기의 일입니다. 그리고 그때 백제의 서울이 한강변이었다는 점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학자 이상옥 박사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삼국시대에 한강을 처음 차지한 나라는 한강변에 서울을 만든 백제였습니다. 그러나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 때 한강을 빼앗겼고 서울도 공주로 옮기지 않으면 안 됐습니다. 고구려가

한강을 차지한 70여 년은 고구려의 최전성기였습니다. 그 전성기가 끝날 무렵, 한강은

신라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게 됩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게

된 것은 여러 가지 많은 조건이 구비됐기 때문이겠지마는 신라가 한강을 차지했기 때문에

통일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뺄 수가 없습니다. 이병도 박사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한강을 지배하는 자, 강토를 지배한다. 삼국시대 이래로 우리의 역사에 흐르는 변함없는 힘의 등식입니다.

후삼국에 후고구려는 한강변을 제일 먼저 차지했고 그 뒤 통일된 나라 고려를 다듬었습니다.

그리고 한강을 중요하게 여겨 지금의 서울을 남경으로 승격시켰습니다. 이조시대 이성계는

공주와 서울 중에서 한강이 있는 서울을 수도로 택했습니다. 한강을 떠나서 이 강토를

지배한 나라는 없었습니다.

(음악)

한강이 이처럼 중요했던 것은 위치가 반도의 중앙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흐름이 사방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한강은 크게 나누어 북한강과 남한강으로 분류됩니다.

금강산에서 시작돼서 화천, 양구, 춘천으로 내려오는 북한강이 있습니다. 오대산에서 시작해서 정선, 영월,

단양, 충주 그리고 속리산 문장대에서 시작된 발천강과 합류되는 남한강이 있습니다.

남한강과 북한강은 양수리에서 만나 커다란 한강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강은 그 하류에서 임진강과

개성을 흐르는 예성강을 만난 뒤에 서해로 연결됩니다. 한강으로 들어온 배는 사방팔방으로

다닐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강은 다른 어떠한 강보다도 그 유역이 넓습니다.

강원도와 충청도, 경기도, 서울 그리고 경상도 일부에 열다섯 개 군이 포함되며, 그 길이가 1300 리인

514킬로미터, 남한 전체 면적의 약 3분의 1인 26270평방킬로미터가 한강의 유용면적입니다.

이렇듯 한강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때는 바로 이씨 조선 때였습니다.

서강대학교 이광린 교수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한강이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구실만 한 것은 아닙니다. 서울사람들의 연료, 또 집을 짓는 재료.

그리고 일용품 등 모든 생활의 기본을 운반해줬습니다.

한강변에서 살아온 국악인 이창배 씨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한강의 주변의 고을, 특히 서울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구실을 해왔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연료를 실어 날랐다는 것은 오늘의 서울시민의 생활과 비교해서 변함없는

하나의 맥을 이루고 있어 흥미 있는 일입니다. 서울대학교 정창의 교수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750만 서울시민의 연탄을 공급해주는 탄전이 한강 상류에 있다는 사실과 비유되는

또 하나의 사실이 있습니다. 지금 한강변에는 화천, 춘천, 소양, 의암, 청평, 팔당 등 여섯 개의 댐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발전되는 발전량이 57만 킬로와트입니다. 우리나라의 수력발전량이 72만 킬로와트.

그러니까 수력발전의 80퍼센트 이상을 한강이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강은

예부터 지금까지 에너지자원의 운반, 수송 그리고 생산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음악)

한강은 서해를 통해서 중국으로 가는 뱃길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중국과의 무역을 이뤄놓은 길이기도 합니다.

이상옥 박사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백제가 서울을 한강변에 세운 뒤 그들은 한강을 통해서 동진에서 불교를 들여왔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문화를 들여왔습니다. 신라는 문화뿐 아니라 정치적인 연대관계도 맺었습니다. 한강변의 문화,

그 중에서도 우리가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이조시대의 백자는 바로 한강이 낳은 빼어난 예술이었습니다.

다시 정양모 씨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전통음악)

우리선조들은 오래전부터 한강을 즐겨왔습니다. 강가에 정자를 짓고 그곳에서 시를 읊었습니다.

배를 타고 강을 따라 오르락 거리면서 자연을 만끽했고 그곳을 그림으로 그리기도 했습니다.

여주읍 상안리 일흔 두 살 이봉구 씨의 얘깁니다.

(음성 녹음)

한강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그 어느 강보다도 주변 정세가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한강이

가진 특색이기도 합니다.

(음성 녹음)

지금 말씀해주신 정문기 박사는 담수어 전문가로 특히 한강의 고기를 처음으로 그림으로 표시한 분입니다.

한강은 이렇듯 좋은 구실만을 해온 것은 아닙니다. 한강에는 비극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한강의 홍수는 기록에서만도 멀리 백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홍수 때마다

이곳에서 숨졌고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특히 1925년, 소위 을축년 장마는 지금도 기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음성 녹음)

강을 다스리는 자만이 나라를 다스린다고 했습니다. 홍수를 막고 그 물을 이용해서

풍요한 수확을 올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올해 착공되는 충주댐이 완공되면은 한강의 홍수는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관계당국의 얘깁니다. 그러나 홍수에 대한 방비는 이미 고전적인

치수 방법입니다. 한강은 오염으로 크게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물고기들이 죽고 새들이

날아오지를 않습니다. 물고기가 마음 놓고 살아가지 못하는 물은 사람도 먹을 수 없는 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물을 걸러서 먹고 있습니다. 상처 입은 한강, 그것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 것인지

그것은 한강을 가진 우리 모두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한강의 옛날의 모습 그리고 오늘 한강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가, 앞으로 한강은 어떻게 개발되어야 할 것인가. DBS 리포트 한강은

이런 문제들을 한 달 동안 다루게 됩니다.

(음악)

내일 이 시간에는 뱃길로서의 한강은 어떤 구실을 해왔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취재와 구성에 사회문화부 나철삼 기자였습니다.

(광고)

(음악)

DBS 리포트 한강. 해태제과와 미원 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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