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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의 샘
얘기의 샘 2 - 6·10만세운동의 의의와 성격
얘기의 샘 2
6·10만세운동의 의의와 성격
1969.04.29 방송
(음악)

얘기의 샘. 스칼프터, 동서약품 제공입니다.

(음악)

(광고)

(음악)

오늘은 6.10만세운동의 경과에 관한 얘기를 사학자 이선근 박사와 소설가 서기원 씨의

대담으로 들으시겠습니다.

- 전 시간에는 6.10만세운동의 의의와 성격에 관해서 말씀 드렸는데요.

- 네.

- 어떻습니까? 3.1운동하고 비교해서 6.10만세는 역시 운동의 규모가-.

- 네.

- 퍽 작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 네.

- 그리고 전국적으로 이렇게 확대되지도 않구요.

- 네.

- 요거는 어느 정도 규모로 동원이 됐습니까?

- 대체로 6.10만세운동 당시에, 전 시간에 잠깐 언급했습니다마는. 거, 기미독립운동 때 고종황제의 인산을 계기로

해서 기미독립운동이 터졌기 때문에 당시의 총독부로서는 정규병력 약 2개 대대 병력입니다.

- 사전에 단단히 경계 태세를 갖춘 셈이죠.

- 그렇죠. 5,6천 명 이제 동원시켜 가지고, 정규 병력만.

- 네.

- 거기에 인제 경찰, 헌병, 말하자면 자기네 말하면 경계 태세를 무지무지했거든요. 그리고 동시에 요전 시간에 잠깐

말씀드린 대로 어... 4,5일 전에 말하면 6.10만세운동 하던, 거, 이, 저, 이면에서 주동하던, 공산당의 권오설이-.

- 네.

- 그 일당이 전부 다 말하면 체포됐어요.

- 그러니깐 드루 당시 총독부 경찰당국으로서는 에, 문제없다 낙관했거든.

- 네.

- 그러던 것을 역시 그 당시의 그, 우리 학생들, 애국학생들이 궐기해가지고 인산 당일 날 단성사 앞에서부터 말하면.

- 네.

- 한 5.6천명이 설랍네 삐라를 뿌리고 독립만세를 붙이고서 수많은 군중 속에 설랍네 말하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 3.1운동 때와 비슷한 어떤, 선언문 같은 것은 그때 만들지 않았습니까?

- 그런 선언문은 작성 못했죠.

- 네.

- 그리고 말하면 인제 반 일제 독립을 강조하는, 말하자면 삐라 있지 않습니까? 이것을 약 이만 오천 매 정도 말이면, 삐라를 선포했다.

- 네.

- 그러니까 독이 오른 일제 측에서는 말이죠. 거 처지해서 본보기로 말하면 대 탄압을 가하고, 처음에 수백 명 검거했다가

그러다 나중 가서는 그, 주모자, 학생운동의 주모자인 이천진 이하 십 수 명을 갖다가 아... 결국 취소된 사람도 퍽 적습니다.

- 네.

- 네. 열네 명인가 그렇게 됐어요. 에, 마, 그리고 따라서 이 사건이 어... 지방으로 확대되질 못했습니다.

- 네.

- 아... 내가 이 당시에는 동경 유학할 당시니깐 드루 직접 서울서 목도하진 못했어요.

- 네.

- 그 후문만 지가 들었습니다만 아, 따라서 역시 일반 부형 측이나 기성세대에서는 봉기를 못하는데

애국학생들의 용기로 봉기할 수 있었다.

- 네, 마, 이런 인식을 갖다가 국내외에다가 소개하고 그러면서 이 운동은 말하면 그다지 각 지역으로 확대해서

번져나가지는 못했다. 마, 그러나 이 운동이 그 당시 그 일제 총독정치와 아울러서 국내 기성세대의 민족운동 방향에 영향을

크게 줬다고 난 믿고 있습니다.

- 네.

- 왜 그러냐 그러면 에, 바로 거, 6.10만세운동 터지던 그 6월 달에 요전 시간에 잠깐 언급한 동경 유학생를 중심으로 한

합동조합운동사가 발족되기를 2월 달에 발족이 됐고.

- 네.

- 두 달 지난 8월 달에 가서는 개벽잡지가 발간금지를 당했어요.

- 아하.

- 판매금지가 아니라 발간금지입니다. 그러니까 이 문제는 역시 이 당시 그 6.10만세운동의 배후에 천도교인들이 관계됐다.

마, 그래서 이것이 영향을 줘 설랍네 개벽잡지가 발간정지를 당하게 됐다.

- 네. 고런 관점에 본다면은 3.1운동의 연장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 물론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당시에-.

- 나중에 그 이, 광주학생사건을 비롯한 학생운동과도 연결이 되는-.

- 연결이 돼죠. 그러니깐 드루 제일 기미독립운동, 광주학생운동의 거족적인 항일독립운동의 제일, 그, 말하면 피크, 정점 아니겠어요.

- 네.

- 고 중간에 중계적인 역할을 한 것이 6.10만세운동이다.

- 네, 네. 지금 선생님 말씀 들으니 아주 그 개념이 인명적이십니다.

- 네. 그러니까 우리 사학자들 입장에서 볼 때는 말하자면 그런 의의가 충분히 말하자면, 내포되고 있다.

- 네.

-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죠. 그리고 기미독립운동 때 주동역할, 중견역할을 한 것이 학생이고 6.10만세운동하고

광주학생사건하고는 순전히 학생들이 주도가 됐거든요?

- 네.

- 그러니깐 드루 민족진영 학생들을 볼 땐 확실히 지금 말씀드린 대로 기미독립운동하고 광주학생운동을 갖다가

연계시키는 그런 중계적인 역할을 한 것이 6.10만세운동이다.

- 네. 제가 인제 한 가지 6.10만세운동에 대한 소박한 의문이라고 할까요?

- 네.

- 학생들의 일부는 인제 용감하게 떨쳐 일어났는데 거기에 일반민중이 그다지 호응을 하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별로 확대되지 않았다 하는 것은 역시 재등 총독이 와가지고 슬로건을 내건 문화정치라고 할까요?

- 네.

- 일종의 회유정치죠.

- 네.

- 회유정치가 효과를 거둬가지고 그것이 일반 민중의 어떤 그, 민족저항의식을 다소 둔화시킨 결과가 되지 않았느냐 하는

그런 일에, 생각이 다소 듭니다만, 어땠나요?

- 그것 역시 그런 경향도, 그런 관찰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 네.

- 어, 그러면서 그 당시에 국내 민족운동 있잖아요?

- 네.

- 국내 민족운동의 방향이 그 당시 인제 지식층, 고위 지식층에설 랍네, 에, 해외와 달리, 해외에서는 직접행동이 취해집니다.

어, 말하면 의사, 열사들의 어... 직접적인, 행동적인 항일투쟁.

- 네.

- 이것이 해외에서는 취해지지마는 국내에서는 말하면 재등 총독이 와서 문화정치를 간판으로 내거는 반면에 고등경찰정치, 그걸

고도화시켰어요. 그러니까 아주 고차적인 책략을 쓰게 됐지.

- 네.

- 그러면서 해외 독립 운동가들을 이 당시에 말하면 이면으로 회유한다든지 또는 해외에서 고생하다가 국내로

자진해서 돌아오는 사람 있잖아요?

- 네.

- 이런 사람에 대해서 과거를 갖다가 심하게 추궁 안 하고서 포섭하는-.

- 네.

- 마, 이런 면에서 볼 때 나로서는 거기 미안한 얘기나, 춘원 이광수 같은 사람이 거기 대표적인 것입니다.

- 그렇죠.

- 그래가지고 춘원 이광수 같은 이가 그 당시에 국내에 들어와서 어떤 일을 했느냐. 이 당시에 그, 1924년에 말이죠.

6.10만세운동이 터지기 전전해에 에, 바로 그 당시 동아일보에 『민족적 경륜』이라고 하는 논설을 갖다가-.

- 네, 쌔렸나요.

- 네, 쌔려소설 랍네 춘원 이름으로 낸 게 있어요.

- 아아.

- 거기에 대해선 우리가 여러 가지로 검토해보면 현실 민족적 이익을 추구하는 방면에서는 확실히 일리가 있다.

- 네.

- 그러나 인제 그 당시, 어, 말하면 기미독립운동에 피 흘리고 싸운 그런 애국지사에서 볼 땐 이건 기회주의다.

- 네.

- 마, 이건 수정주의요 타협이다.

- 네.

- 이래가지고 그, 일부 분들은 이 당시에 애란의 자치운동이 있잖아요?

- 네.

- 그 모습을 우리도 본떠서 꼭 독립을 할 거 없이 자치운동으로 해도 되지 않냐, 이런이런 실정을 전개하게 돼요.

그 이론을 갖다가 대표적으로 쓴 사람이 춘원이다.

- 네.

- 춘원의 논설이 나가자마자 반발이 심하게 나왔습니다. 거기에 대한 반격이.

- 그러한 관점에서 좀 더 구현하고 전개하는 것이 민족개조론, 나중에 나온, 그런 셈이겠죠.

- 그렇습니다. 그러니깐 드루, 민족적 청년, 민족개조론 말하면 이것이 나오면서 그 당시에 상당히 논쟁이 많았습니다.

- 네, 시간이 다 됐습니다.

(음악)

오늘은 6.10만세운동의 경과에 대해서 이선근, 서기원 두 분의 대담으로 들으셨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는 신간회의 발족 직전의 국내의 정세에 관한 얘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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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얘기의 샘. 스칼프터, 동서약품 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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