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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의 샘. 스칼프터, 동서약품 제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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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10만세운동의 의의에 관한 얘기를 사학자 이선근 박사와 소설가 서기원 씨의
대담으로 들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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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시간에는 물산장려회와 협동조합운동에 관해서 말씀을 들었는데요.
- 네네.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그, 농민을 대상으로 하는 조직운동은 처음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 네.
- 네, 성과 면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 게 있습니까?
- 에, 요전 시간에 잠깐 말씀한 대로 농촌에 있어 설랍네 중간이윤의 배제, 혹은 고리채의 구축
말이면-.
- 아.
- 그리고 농민의 산학의식을 갖다가 자주산학의식을 갖다가 고양합니다.
그래가지고 그 당시 반응이 썩 좋았습니다.
- 네.
- 에, 그러면서 협동조합운동사 본부를 갖다가 아... 1928년에 서울로 옮겼어요.
대체로 이 해에 있던 그, 각 단위조합 있지 않습니까?
- 네.
- 이것이 에, 약 스물두 개 조합, 그리고 조합원 수는 말이죠. 요것은 말하면 직접 자기가 고금을 내고
조합원이 돼서 조합을 이용할 수 있는 스물두 개 조합에 설랍네 에, 그, 조합원 수가 소속된 수는 한
칠팔천 명까지 나갔었다.
- 네.
- 또 지역으로 보면은 에, 경상도 상주에서부텀 대체적으로 그 당시 몇몇 독립운동들이 영남에서는
상주를 중심으로 해왔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 인제 북쪽에서 말하면 정주, 오산, 이런 데를 중심으로 해설 랍네
상당히 활발히 전개했던 겁니다.
- 네.
- 그러니까 상당한 성과를 얻어 가다가 그만 나중 가서 썩은 탄압을 당했다.
- 네.
- 음.
- 그, 저, 그 다음이 6.10만세사건에 들어가겠는데요.
- 네.
- 고 전에 잠깐 최근에 선생님께서 바삐 저, 이태리를 다녀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 네네. 예헤헤헤.
- 고적 보존에 관한 무슨, 국제회의인가 참석하시고, 무슨 세미나에 참가하신 것 같은데-.
- 네네.
- 재밌는 말씀 간단하게 한두 마디-.
- 그,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말이죠. 에, 국제문화재. 에, 보존복구에 대한 말하면 그, 세미나 같은 게 있었습니다.
- 네.
- 여기에 대해서 국제기구 설랍네 로마에 이 센터가 있어요. 42개국이 가맹돼 있습니다.
- 네.
- 어, 10년 넘어 계속했는데 2년마다 한 번씩 해요. 근데 우리나라에서는 작년에 가맹을 했고, 그런데 작년에 총회가 없었고.
- 네, 과거엔 별로 알려지지 않은-.
-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 네,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 네, 그래서 제가 문화재위원장 자격으로-.
- 네.
- 잠깐 다녀왔습니다만 베니스에서 열렸어요. 근데 그 이번에 베니스에 가봐서 퍽 나로서는 말하면
그 우리나라 문화재 보존에 대해서 에, 상당한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 마, 그렇게 믿습죠.
- 네.
- 어, 또 한 가지 퍽 흥미 있는 것은 거기서 인제 세미나식으로 하는데. 에, 서로 토론하고 그러다가
요즘 말하면 실험실습 모양으로 현재 베니스에서 큰 사찰을 복구시키는.
- 아하.
- 공사현장을 가봤어요.
- 네.
- 근데 거기서 퍽 느껴진 것은 에, 우리나라 불국사 있지 않습니까? 석굴암.
- 네.
- 연내에 그걸 복구공사 했습죠?
- 네, 그렇죠.
- 그때도 제가 잠깐 얘길 했는데 그... 베니스의 큰 사찰을 복구공사 하는 역사적 사실이 우리나라 석굴암 공사와
유사하다는 걸 내가 목도하고 왔다.
- 아하.
- 제가 중학교 때 그 석굴암 입구에 돌 하나가 빠져가지고 물이 새니까 그 당시 총독부의 토목기술자, 고도기술자들이
모여서 고친다고 이걸 덤벼들다가 손을 댈수록 자꾸 물이 더 세거든요?
- 네.
- 나중 가서 그 석굴암 뒤의 산야를 끊고 석굴암을 갖다가 횟감 엎어놓은 것처럼요. 전부 시멘트로 만들었습니다.
- 네.
- 시멘트가 침수작용을 한다는 걸 이 사람들이 계산을 못했던 모양이지. 그래가지고 그 다음부턴 말이죠.
석굴암이 풍화작용, 침전작용을 받아가지고 애먹지 않았어요?
- 네.
- 그래서 몇 년 전에 우리가 그걸 다시 뜯어 설랍네 지금 복구한 지 수년밖에 안 됩니다만. 이번에 마침 거기 갔을 때요.
거기 베니스의 큰 사찰이 과거에, 여러 해 전에 말이면 침수를 받아서 못쓰게 돼설랍네 시멘트로 해봤단 말이죠.
시멘트로 해서 해수 짠물 더 들어오거든요?
- 네.
- 그래서 전보다 더 심해서 그걸 전부 뜯어 제끼고 이번에도 공사현장을 나가봤어요. 나가봤더니 역시
그런 면에 대해선요. 이태리도 잘하지만 독일 이사를 초빙해다 했거든요?
- 네.
- 보수공사를 하더군요. 그래서 그 현장 가서 물어봤더니 그 침수는 뭘로 막느냐? 과거엔
시멘트를 썼다 실패했다. 플라스틱을 집어넣는다고 그래요.
- 네. 플라스틱이 아주 만능 시세입니다.
- 네, 역시 플라스틱을 갖다가 벽돌하고 외벽사이 중간에다 집어넣으니깐 드루 이미
침전을 안 받는다-.
- 아.
- 그래서 우리나라 문화재 보수 문제에서 우리가 여러 가지로 고심하던, 거기다 좋은 참고-.
- 네.
- 플라스틱을 쓴다는 거요. 마, 그런 점에서 대해설랍네 감명 깊게 봤습니다.
- 네.
- 에,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그, 역시 외국의 전문기관. 전문연구기관과 실험실 같은 거요.
이런 것이 완비되어 있어요.
- 네.
- 그리고 엑스퍼트, 기술자들이 많이 완비됐습니다.
- 네, 더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만 저희가 또 본 줄거리로 들어가야죠.
- 아, 네. 그렇습니다.
- 6.10만세사건인데요.
- 네.
- 3.1운동은 굉장히 알려져 있고 퍽 유명한데 6.10만세사건에 대해서는 에, 그저 대충 그저 그
줄거리나 이름만 알려졌을 뿐. 일반적으론 널리 아직도 인식이 잘 안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 네.
- 그래서 6.10만세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정세부터 잠깐 말씀 듣겠는데요.
- 대체로 6.10만세사건 전의 운동은 모든 운동의 형태가 과거처럼 저항을 표면에
드러내는-.
- 네.
- 국내에서는 그 운동이 일어날 수가, 그 운동 말하면 침식이 돼가지 않았어요?
- 네.
- 문화운동이나, 사회운동, 경제운동에 설랍네 전면에 항거하는 이런 운동은 침체상태에 들어갔죠.
그런 침체상태에 빠지면서 일제 측에서는 모든 걸 낙관했다 그런 말이죠. 그러자 때마침 1926년
6월 10일. 6월 10일이라 6.10만세운동 아닙니까?
- 네.
- 앞서 설랍네 구한말 초 비운의 군주인 순종황제가 승하를 하고 6.10일이 장례식 날로 결정이 됐어요.
- 네.
- 그러니까 그 당시 일제 측에선 뭐냐. 기미독립운동, 3.1운동이 고종황제 장례식을 계기로 터졌거든요?
- 그렇죠.
- 그러니까 순종황제의 장례식에도 무슨 큰 사건이 날 거다. 그래가지고 비상경계령을 쳤습니다.
- 네.
- 자기네로 봐선 쓰라린 체험을 했으니깐 드루 기미독립운동, 3.1운동을 재판해서는 안 되겠다.
이래가지고 어마어마한 삼엄한 경계였어요. 그네들의 재항군인들, 그네들의 말하면, 경찰, 헌병조직을 갖다가 고대로
동원시켜서는 철통같이 에워쌌지.
- 네.
- 거기서 용감하게 그걸 뚫고 일어난 것이 뭐냐, 역시 민족학생들이었습니다.
- 네.
- 그런데 6.10만세운동에 대해서는 대체로 주도세력이 누구냐? 그 당시에 좌익이었다 하는 것이 모든 얘기에
나오는 말하면, 줄거리가 그렇게 되어왔습니다.
- 아.
- 그러나 내가 볼 때는 좌익이 기획한 일부 좌익운동은 실패하고 말았어요. 총검을 당하고 말았고.
역시 6월 10일 날 그 장례식에 궐기해서, 서울서 5, 6개 지역에 설랍네 삐라를 뿌리고 만세를 부르고
전개하는 것은 그 당시의 민족주의 학생들이었다.
- 네.
- 그렇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네, 다음 시간에 이어서 듣겠습니다.
- 네.
(음악)
오늘은 6.10만세의 의의에 대해서 이선근, 서기원 두 분의 대담으로 들으셨습니다.
내주 월요일 이 시간에는 6.10만세운동의 배경에 관한 얘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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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의 샘. 스칼프터, 동서약품 제공이었습니다.
(입력일 : 2011.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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