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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얘기의 샘
얘기의 샘 2 - 3.1운동의 전국적 양상
얘기의 샘 2
3.1운동의 전국적 양상
1969.01.22 방송
(음악)

신용 있는 버들표 유한양행 제공, 얘기의 샘.

(음악)

(광고)

(음악)

오늘은 3.1운동의 전국적 양상에 관한 얘기를 사학자 이선근 박사와 소설가 서기원 씨의

대담으로 들으시겠습니다.

- 3.1운동에 대한 일제의 그, 탄압에 관해서는 어, 널리 알려진 일이 많습니다만 특히 그,

에, 수원 조암리 말이죠.

- 제암리.

- 제암리.

- 네.

- 제암리 사건 같은 것은 유명하지 않습니까?

- 네네.

- 그런 상세한 장면에 대한 말씀을 듣기 전에 에, 전번 시간에 이어서 말이죠.

- 네네.

- 해외원조를 곁들여가지고 외국에서는 어떻게 그걸 평가하고 보았는가.

- 네.

- 그 말씀 먼저 듣겠습니다.

- 네.

- 고 전 시간에 잠깐 말씀했는데 그 뉴욕타임즈 말씀 잠깐 하지 않았어요?

- 네.

- 역시 뉴욕타임즈에 이 당시 직접 기자가 와설랍네 취재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여기 통신관리들 보니까 또 뉴욕타임즈는 어느 정도 말하면 미국 정부의 정략이라든지

정치라든지. 이런 것을 반영할 때가 많습니다.

- 네.

- 그렇지 않은 경우도 물론 많겠습니다마는. 그러니까 뉴욕타임즈지도 에, 또 1919년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날 때까진 말하면, 내 요전 시간에 말씀했죠? 러일전쟁 당시에 일본하고 미국이 말하면 한국에 대한 비밀협약을

체결해서 일영동맹 못지않게 일본을 지지해왔거든. 그런 관이 머리에 배겼으니까는 일본사람들이 올바른

판단을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유명한 닥터 헐버트 있잖아요?

- 네

- 헐버트 같은 분이 발표한 걸 보면은 그분은 정당하게 봤지. 그분이 한 데가 역시 한국은 잘못 다루면은

동양의 발칸이 될 거다. 그리고 한국 사람이 그만큼 용감하게 싸운 것은 마치 군국주의 독일에 항거한

벨기에와 대등한 그런, 기백을 보인 거다.

- 네.

- 어, 마, 그와 동시에 요전 시간에 말씀한 파이버 같은 사람은 직접 여기 와서 취재를 하면서 남녀 학생을 갖다가

일본 악질 헌병경찰이 체포해 구금해가는 모습을 목도했거든요.

- 네.

- 특히 여학생들이 수백 명씩 그냥 무더기로 끌고 가설랍네 고문당하는 걸 갖다가 그 사람이 잘 봤어요.

그러면서 줄기차게 참 자유독립을 외친다. 지금까지 일제에 의해서 야만민족이다, 열등한 민족이다, 낙인 찍혔던

이런 민족이 그만큼 말하면 부녀자까지 나설 수 있느냐?! 이런 정당한 판단을 글로도 많이 썼습니다.

- 네.

- 뭐, 그와 동시에 처음에 잠깐 말이 나왔습니다만 거 유명한 닥터 스코필드 같은 분이-.

- 네.

- 수원 제암리에서 영주해설랍네 일인들이 처참한 학살을 하는 거, 그걸 전부 사진 찍어서 외국으로 보냈거든요.

- 아.

-선교사회도 그 당시 선교사들 가운데는 두 갈래의 선교사들이 있다고 하죠. 여기서 참 말하며 자유와 독립을

염원하는 미국 시민들이 동정적으로 봐가지고 정당하게 모든 소식과 정보를 갖다가 전부 다 적어온 사람도 있고

1912년 이후로 일명 해리스 감독 같은 사람은 한때는 정치적으로 움직여서 한국교회를 갖다가 일본교회

밑에다 집어넣으려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 네.

- 그래가지고 해리스가 105인 사건 난 뒤에 와설랍네 여기 자기네 선교사 보고서 인제는 총독정치에 대해서

불리한 짓, 그런 짓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 또 한국사람 진도에 대해서 될 수 있는대로 말하면 총독정치 맞서는 그런 인식을

주는 그런 얘기를 삼가해라. 두 갈래가 있어요.

- 네.

- 따라서 마, 그 당시에 학문적으로 한국에 대한, 한국말을 잘 연구한 사람이 게일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만.

이런 사람들이 애매한 행동을 취했다는 것이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들은 상식입니다.

- 미국이 그, 주요 일간지, 주요 신문에 문제는 말이죠.

- 네.

- 대부분 자료나 정보를 일본에서 발행하는 일자,

- 그렇습니다.

- 영자 신문.

- 네네,

- 아니면 일본 신문을 밑천으로 해가지고-.

- 네.

- 에, 사설도 쓰고 그랬던 모양이에요.

- 네, 일본의 나가통신. 대부분 그 사람들이 그걸 가지고 했으니깐 일방적인 자리에서 판단을 했지. 그러나 인제 한두 줄 재밌는 것은 말하면

같은 독립운동을 다루는데 애란 문제는 그 사람들이 말하면 그렇게 다루지를 않았거든. 역시 애란은

언어 모든 걸로 봐서, 또 그 당시 애란 사람들이 미국에도 많이 있지 않았습니까?

- 네.

- 근데 미국, 그 의회가 취한 태도를 보더라도 애란독립운동은 미국에 상정해가지고 독립을 지지한다느니

그런 결의를 했고. 우리 한국문제도 나왔지만 패거리 수가 부족이 돼서 통과가 안 됐다, 이건 선생님 말씀입니다만.

- 예.

- 네, 해외원조는 그 정도로 말씀 듣기로 하고.

- 네.

- 전국적으로 퍼진 양상이 어땠는지.

- 내가 보는 것은 말이죠. 그 철통같은 일제의 경찰, 그 기찰망 속에서, 감시망 속에서 3월 1일 한날한시에 일어난

도회지 숫자가 요전 시간에 개성 얘기를 갖다가 잠깐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내 고향 개성, 평양, 진남포, 선천, 안주, 의주.

그리고 동쪽으로 가선 원산, 함흥, 남쪽에선 태외에서 일어났어요.

- 네.

- 그리고 황해도에설랍네 황주, 수안, 곡산 이렇게 일어났습니다. 이런 적어도 십 수 개 도시가 한날한시에 궐기했다.

- 주로 서북이 많습니다.

- 서북이 많습니다. 여기 또 서북이 말하면 천도교나 기독교의 조직망이 많이 퍼져나가지 않았어요?

- 네.

- 그러니까 이런 의미에 설랍네, 말하자면 경기도 이북 각 지방에 설랍네 전부 궐기했다. 역시 인제 기독정신,

동학정신까지 혁명적인 요소가 다분히 있거든요.

- 네.

- 그러니깐드루 뭐, 지역적으로 봐서 이런 데서 크게 궐기했다. 물론 내가 이 당시, 다른 데는 잘... 직접, 나이가 어렸고 워낙.

여기서 특별한 사실은 개성 같은 데선 말하면 3월 1일 날 호손여학교 여학생을 사오백 명, 만이 궐기했습니다.

- 아...

- 네, 순전히 여학생들만이 궐기를 했거든요. 그 당시 그 이면 사실 같은 걸 보면은 어... 이화대학의 안병숙이라고 하는

대학생이 있었어요. 그분하고 내 맏누님, 이경지라고 합니다만. 그 누님이 이화대학 댕기다가 호손대학교 4학년에 전학을 와가지고 가정형편으로.

- 네.

- 교내 YWCA 회장노릇을 하다가 이 기미독립운동 나던 해에 고 전에 졸업을 하고 호손대학교에

부속여학교가 하나 있어요. 소학교 정도의-.

- 네.

- 미리엄여학교라고 했습니다만. 여기 개성에는 청상과부가 많이 컸어요. 과부들 모아가지고 초등교육을 시켰는데요.

- 아하...

- 거 교편을 잡고 내 둘째 누이한테 회장바통을 갖다가 넘겼다고 합니다. 서울서 안병숙이라는 그분이

내 맏누이가 이화대학 댕길 때 써핀했어요. 그리고 여러분 잘 아시는 류관순 여사하고 내 맏누님하고 말하면

같은 기숙사에 있었는데 내 맏누님은 시골에서 올라와서 공부를 하시니깐드루 나이가 숙성해서 올라갔습니다.

열칠 팔 돼서 소학교를 댕기고 그랬어요.

- 네.

- 그러니까 기숙사에서는 한 방에서 말하면-.

- 이화대학이 아니라 이화학당이었구만요.

- 이화학당이죠. 옛날 말로. 그래, 거기 중등부를 댕겼거든. 그러니깐 류관순 여사랑 모두 다 절 일맥상통합니다.

- 네.

- 그래서 그 기미독립운동 터지기 얼마 전에 안병숙 여사가 몰래 와가지고, 비밀리에 와서 이런 일이 터지니깐드루

평양서 니들이 적극적으로 일어나라. 물론 나중 가서 관계자 몇 명들 가운데 일면 권애라 여사 같은 분 있죠?

혹은 또, 이, 저, 조수경 여사.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마는. 좌우간 이 당시 여성들이 먼저 그걸 알고서, 그 당시 남학교는

한양서원에 비밀리에 연락을 했어요. 그런데 남학교가 여학교에 그, 피동적으로 일어난다는 마, 이것도 조금 안 된다.

또 한 가지를 말하면 이 당시에 만약 궐기하면은 내란죄로 몰린다는 걸 누구나 다 압니다.

- 네.

- 동수원에서 낭독하고 나루 와서 행동 전개하면 내란죄로 몰리니까 내란죄는 걸핏하면 사형이 된다,

생명을 걸고 하면 안 된다. 그래서 그, 한양서원에서는 호응을 안 했어요.

- 네.

- 그래가지고 3월 1일에 말하자면 순전히 호손여학교 여학생들이 개성이 동서남북 사부거든.

사부 큰 거리에 미션스쿨입니까. 찬송가, 바이블 들고 나가서 전도한다고 그러면설랍네 떼를 지어서 모두 사부로 배치했어요.

여학생들이 갑자기 3월 1일 낮에 나와 설랍네 찬송가 부르고 모두 하니깐 드루 시민들이 확 모일밖에.

거기서 시민들이 어느 정도 모인 다음에 독립만세를 불러 설랍네 오늘부터 독립이 됐다. 그러면서 그 당시에 개성서는

그... 독립선언서를 갖다가 정식으로 대집회에서 낭독은 못하고-.

- 네.

- 어윤희라고 하는 전도부인 한 명이 있습니다. 과부되고 설랍네 이때 참회부를 소집,

이분이 나가서, 또 눈먼 장님으로 신관빈 여사라고 하는 분이 한 분 있어요. 이런 분들이

독립선언서를 안고 나가 설랍네 전빵, 큰 거를 전빵, 가가오에다 집어넣고 학생들은 나가서

찬송가 부르고, 어, 노래 부르고 전도하는 척 하다가 만세를 불렀거든.

- 네. 지방에서 따라서는 독립선언서 전문을 읽을 시간이 없기 때문에-

- 없기 때문에-.

- 줄여서 읽었거나 또 별도로 짤막한 격문을 작성해서 읽은 그런 지방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 네. 나옵니다. 그러니깐 나중 가서 찬송가 한참 부르면 사람이 많이 모이잖아요.

그럼 의무로 했습니다. 그리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했거든.

- 네.

- 그래가지고 설랍네 그러고 인제 맨 나중 가서야, 저녁때가 됐는데 개성 앞에선

일인 경찰대와 헌병대를 동원해 설랍네 학생들을 갖다가 주모자를 잡으려고 했어요.

주모자 누구냐? 주모자 없다. 잡을려면 우리 다 잡아가라. 여학교 학생 사오백 명이

전부 단체로 그냥 행진해가지고, 개성은 우선은 경찰서하고 군청이 같은 마당 안에 있습니다.

- 네.

- 군수가 나와서 그러지 말라고 하니까 그때 산기라는 군수가 있어요. 일본에. 야마사키.

당시 무슨 수작을 하냔 말이야. 우리가 독립했으니 당신이 한국에 살려면 독립만세를 불러라.

- 음.

- 당시 야마사키 군수가 말도 못했다 이거야. 근데 사오백 명이면 다 잡아낼 수 있나?

미션스쿨의 교장 왕래라고는, 미스 왕래를 하는 이군이 쫓아 나와서 교장 책임으로 전부 인수해갔어요.

그래, 며칠 동안 거기서 연금을 했습니다.

- 네.

- 근데 개성에서 3월 1일날 벌인 그 사건이 왜 기록에 안 나오느냐. 그날 체포해서 투옥돼설랑 징역을 산 사람이 없거든요.

교장이 전부 인수해갔으니까. 그래서 개성에서는 말이면 그 뒤에 가서 사흘 날 한양서원 남학생들이 이틀 뒤에 나왔거든.

그때 난투극이 벌어졌어요. 그 기록만 남아 있고. 실상은 3월 1일 날 만세를 불렀거든요. 그러니까 한날한시에

적어도 열두 곳에서 십 수 개 선언이 나왔다 그렇게 되겠습니다.

- 시간이 다 됐습니다.

- 네.

(음악)

오늘은 3.1운동의 전국적 양상에 대해서 이선근, 서기원. 두 분의 대담을 들으셨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는 일제의 폭압과 수원 제암리 사건에 대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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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의 샘, 신용 있는 버들표 유한양행 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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